코로나19:
팬데믹 추가 확산을 부추기는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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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만 명을 넘겼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는 곧 6만 명을 넘을 듯한데 이는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보다 많다. 지난 한 달 동안 26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전시 상황’이라는 표현이 전혀 과장스럽지 않다.
문제는 트럼프에게 코로나바이러스보다 경제 활동 마비가 더 큰 적이라는 데 있다. 트럼프는 미국 노동계급 수십만~수백만 명을 희생시켜서라도 기업주들의 이윤을 위한 전쟁에서만큼은 승리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연말로 예정된 대선 때문에 더욱 조바심을 느낄 것이다. 브리핑룸 연설이 조롱거리가 돼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환자에게 소독약을 주입해 보면 어떻겠냐’는 트럼프의 말은 이 자가 노동계급의 생명을 어떻게 여기는지 보여 준다. 트럼프가 무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독약이 약이 아니라는 것을 몰라서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노동자와 유색인종 등에게 이런 위험한 짓을 ‘시험 삼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이날 뉴욕시에서는 소독약 오용으로 인한 사고 발생이 급증했다고 한다. 소독약 기업들은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광고를 온라인 상으로 내보내야 했다.
트럼프는 경제 활동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지사들을 닥달하더니 조지아 주지사가 주요 상업·서비스 산업 활동을 재개하자 “너무 이르다”며 면박을 줬다.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할 경우 책임지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그 자신도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하루 확진자가 2만 5000여 명에 이르고, 사망자도 매일 2000명 넘게 증가하고 있다. 뉴욕주만 따져도 하루 확진자가 3400여 명에 사망자도 매일 500여 명씩 늘고 있다. 이 숫자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 수다.
〈워싱턴 포스트〉는 예일대학교와 함께 3월 1일부터 5주 동안 미국 전역의 사망자 수를 조사했는데 이 기간에 평소보다 1만 5400명이 더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에 코로나19 사망자가 8128명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평소보다 사망자가 7000여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다른 원인으로 사망자가 늘었을 수도 있지만 이들의 상당수는 집계에서 제외된 코로나19 사망자일 듯하다. 다른 병 때문에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이 마비돼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4월 셋째 주에는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가공업체인 스미스필드의 사우스다코타주 공장이 문을 닫았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사용 언어만 40개가 넘는다.
그런데 공장 측은 ‘발열 등 코로나19 증상이 있는 직원은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안내문을 영어로만 작성해 작업장에 배포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기 식으로 사실상 일을 계속 하도록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3월 24일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을 때에도 공장 가동을 중단하지 않고 추가수당 지급을 약속하며 출근을 독려했다.
결국 738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2명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공장은 멈췄다.
베트남 전쟁
이런 일은 일본에서도 벌어졌는데 놀랍게도 그 장소는 병원이었다. 일본 오사카시에 있는 나미하야 재활치료 병원 측이 4월 20일 업무 중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에게 다음 날 오전까지 당직 근무를 지시한 사실이 폭로됐다. 같은 날 양성 판정을 받은 다른 간호사는 자택 격리 중 당직 근무를 하라는 병원 측의 지시를 받고 이튿날 출근해 밤샘 근무를 했다.
일본에서는 도쿄올림픽이 연기된 후 확진자가 급증해 그동안 일본 정부가 고의로 검사를 안 한 것 아니냐는 의심에 신빙성을 더했다. 항의가 거세지자 아베 정부는 4월 16일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검사 건수를 하루 2만 건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일본 전체의 코로나19 검사 건수는 평균 6800건 정도로 확진자 증가 추이가 비슷한 나라들에 비해 턱없이 적다. 검사는 마지못해 하는 시늉일 뿐이고 사실상 악명 높은 ‘집단면역’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4월 13일 도쿄도(都) 의사회가 일선 의사들에게 사실상 ‘숨 넘어갈 지경’이 된 경우에만 검사를 하라고 지시한 문서가 폭로됐다.
문서를 보면 세 가지 조건(분당 호흡수가 20회 이상, 폐렴, 산소포화도 93퍼센트 이하)을 모두 충족할 때만 검사를 하라고 돼 있다. 이 조건에 충족하는 사람은 “죽을 것처럼 괴로운” 상태다.
일본 내 여러 전문가들은 확진율 등을 고려할 때 일본의 실제 감염자 수는 현재의 10배는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엄청난 항의에 직면해 외출금지령 등 물리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한 영국에서도 사망자가 크게 늘었다. 현재 영국 정부는 코로나 사망자가 2만 명(전체 확진자의 13.5퍼센트)을 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통계가 축소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사망자가 쏟아져 나오는 요양원 통계를 제외한 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망자 수는 4만 명을 넘겼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확진자도 많을 것이다. 살아 돌아온 보리스 존슨이 정부 내 일각의 ‘거리두기 해제’ 의견에 반대한 이유다.
집단면역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위기가 계속되는 한편 러시아와 브라질, 인도 등 남반구 나라들이 새로운 코로나 진원지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보며 인플루엔자 유행 패턴을 떠올리고 있다.
북반구가 겨울에서 벗어날 즈음 남반구는 가을을 지난다. 인플루엔자의 경우 종류가 다양해 매년 새로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맞는 백신을 생산해야 하는데, 북반구를 기준으로 그해 여름에 남반구에서 유행한 바이러스를 조사해 적합한 백신을 생산해 겨울에 접종한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생존 시간이 기온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실내 활동 시간이 길고 건조한 가을~겨울에 바이러스 감염이 더 쉽게 이뤄지는 것으로 보아 코로나19도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도 인플루엔자처럼 전 세계로 확산한 만큼 남반구에서의 코로나19 확산 양상이 오는 가을 북반구에서의 재확산 가능성과 양상을 어느 정도 보여 줄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인플루엔자와 달리 코로나바이러스는 아직 백신이 없다.
따라서 지금 중환자실과 인공호흡기 등 필수 의료 물자를 대량 생산하고 비축해야 한다. 공공의료체계를 대폭 확대하고 마스크 등 방역 용품도 준비해야 한다. 경제 위기가 단기간에 회복이 어려운만큼 노동계급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지원도 더 충분히 오래 지급돼야 한다.
그러나 전 세계 지배자들은 지금 이 시기에 경제 ‘정상화’를 외치며 그 재원을 기업 지원에 쏟아부으려 한다. 동시에 이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는 방역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코로나 안정화가 오래 버티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5월 11일부터 대면 수업을 재개하는 등 사실상 거리두기를 종료할 계획으로 보인다. 또한 정부는 코로나 방역 ‘성공’을 자화자찬하며 이를 각종 친기업 지원과 규제 완화 정책 추진을 정당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4월 29일에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및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10대 산업분야 규제혁신 방안(I)” 문서를 보면, “코로나19 계기로 가속화될 디지털 및 비대면 경제 중심”으로 규제를 완화해 원격 진료 등 의료 산업화 정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원격으로 코로나19 치료는커녕 감염 여부라도 알 수가 있을까? 된다 해도 최소 진단키트를 보유한 환자(고객)만 가능할 것이다.
감염병 위기를 대중이 그 필요를 절실히 경험한 공공의료 확대의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의료 기술을 이용한 각종 돈벌이 사업 장려에 골몰하는 것이다. 이는 계급 간 보건 격차를 늘리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이런 방향에 따라 최근 정부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비롯해 각종 규제 완화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자본주의적 근시안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를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위험해지는 세계 — 코로나19로 제국주의 갈등이 더 심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조기 경제 정상화를 선언하는 한편, 대중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려 애쓰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이런 노력은 더욱 강화될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 책임론이다. 트럼프는 정작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때에 미국 내 전문가들의 경고를 묵살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중국 책임론을 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을 언급하며 배상금 청구를 언급하기도 했다. 어느덧 사망자가 6000명을 넘긴 독일에서는 한 언론이 중국에 배상금을 청구해야 한다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이런 조처가 얼마나 실질적인 것으로 발전할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긴장이 주요 열강 사이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예컨대 1차세계대전 직후 승전국들이 독일에 부과한 엄청난 전쟁배상금은 독일 경제를 늪에 빠뜨렸고, 이는 나치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독일은 제1차세계대전 종전시 체결한 베르사유조약의 결과로 경제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조약은 독일에 막대한 외채와 배상금 부담을 지웠던 것이다. 1923년 독일은 외채 상환 불능 사태에 봉착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프랑스가 라인 지방을 점령했다. 그러자 독일의 물가는 천정부지로 폭등했다. 이 초인플레로 중간계급은 저축을 날리게 됐다. 중간계급 대중은 분노하고 절망하고 자포자기했다.”(최일붕, ‘1933년에 나치는 어떻게 쉽사리 권력을 장악했는가?’)
이런 위험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지난 수십 년 이래 가장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