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데이비스 논평:
미국 경제 활동 재개는 지옥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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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 마이크 데이비스가 미국의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해 말한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미국의 사회주의자로 도시사회학·역사학·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마르크스주의 분석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책갈피, 2020)의 공저자다.
이 밖에도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돌베개, 2008),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 2007),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후, 2008년), 《한권으로 읽는 자동차 폭탄의 역사》(전략과문화, 2011년),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창작과비평사, 1994) 등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다섯 달째로 접어든 현재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지옥에라도 끌려간 듯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
실업률이 (공식 발표로만) 30퍼센트 이상으로 치솟아 2000만 명 이상이 꼼짝없이 빈곤선 이하에서 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계 미국인 60퍼센트, 30세 미만 미국인 노동자 50퍼센트가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줄었다.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바쳐서 마련해 온 주택·연금·의료보험·예금 등 다른 모든 것들도 함께 잃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 붕괴의 예고편을 이미 혹독하게 체험한 바 있다. 그 예고편은 바로 2008~2009년 “대침체”였다. 18개월 동안 많은 흑인 가구와 라틴아메리카계 가구가 순자산을 모조리 잃었고, 서민층 대졸자들은 저임금 서비스 업종에서 (어쩌면 평생)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래서 버니 샌더스가 내건 ‘그린 뉴딜’의 기치 아래에 지지자가 그토록 많이 몰려든 것이다. 그러나 닥쳐오는 위기는 [뉴딜 정책이 시행됐던] 1933년 이래 전례 없는 가난과 기아를 초래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서 일터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헤지펀드와 억만장자 카지노 소유주들이 조종하는 ‘MAGA’[트럼프가 내세운 “미국의 위대함을 되찾자”라는 구호] 시위대의 요구대로 “경제 활동을 재개”했다가는 비극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 보호나 검사 없이 노동자들을 대거 일터로 돌려보내는 것은 수많은 이들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55세가 넘는 노동자가 3400만 명, 65세가 넘는 노동자가 1000만 명에 이른다. 당뇨병, 만성 호흡기 질환 등을 앓는 사람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집을 나와 일터로 갔다가는 중환자실과 시체 안치소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 보호 장비가 부족해 수많은 “필수 업무 노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보건 노동자들에게 물자가 충분히 공급되기까지는 최소 몇 주가 걸릴 것이다. 물류 창고, 시장,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관련 법이 도입되지 않으면 마스크를 구경조차 못할 수 있다. 지금을 전시라고 한다면, 트럼프가 기존 권한으로도 마스크와 산소 호흡기 생산을 정부 통제 하에 둘 수 있는데도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전쟁 범죄라 할 만하다.
- 혈액을 검사해서 적절한 항체가 있으면 인증서를 발급해 사람들을 일터로 돌려보내자는 제안은 지금으로서는 터무니없는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기업 100여 곳이 임상 시험이나 미국 식품의약품국(FDA) 인증을 거치지 않은 혈청 검사 키트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거기서 나오는 검사 결과는 천차만별이고 엉망진창이다. 공중 보건 노동자들이 믿을 만한 검사를 받게 되기까지는 최소 몇 주가 걸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모든 인력을 검사하기까지는 여러 달이 걸릴 것이며, 문 닫은 모든 작업장을 안전하게 재가동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항체를 갖게 될지도 미지수다.
- 백신은 아무리 낙관적으로 내다봐도 2021년 초에야 나올 것이며, 그 백신으로 갖게 될 면역력이 지속될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한편, 수많은 연구진과 소규모 바이오테크 기업들이 호흡기능 상실이나 신장 손상의 위험을 줄일 약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각개약진하는 이런 실험들은 서로 조율되지 않고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무기한 직장폐쇄
어떤 점에서 미국인들은 현재 무기한 직장폐쇄를 당하고 있다. 이 상황을 관리하는 미국 정부는 검사, 안전 장비, 치료제를 위한 긴급 계획을 세워서 사람들을 안전하게 일터로 돌려보내려 하기보다는 우편 서비스를 파괴하는 데에 더 혈안이 돼 있다.
아마존이나 유나이티드헬스그룹 같은 거대 괴물 기업들도 트럼프의 공범들이다. 아마존은 지난 2주 동안 회장 제프 베이조스의 자산을 250억 달러 늘려줬다. 세계 최대 건강보험 회사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대유행 첫 석 달 동안 수익이 [지난해 동기 대비] 41억 달러나 늘었다. 건강보험 업계는 횡재를 얻었다. [코로나19 위기로 의료 체계가 과부화돼] 가입자들이 수술을 예약하지 못하거나 중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분노가 용암처럼 치솟고 있다. 우리는 이런 분노를 모아 노동조합을 방어하고,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을 쟁취하고, 돈방석에 앉은 나쁜 놈들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야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지난해 12월 31일, 우리가 잔을 기울이고 동료들을 껴안고 수 세기 전 스코틀랜드의 한 혁명가가 지은 노래[로버트 번스가 가사를 쓴 ‘올드 랭 사인’. 이 노래는 영미권에서 한 해를 떠나보내는 축가로 쓰인다]를 부르는 동안, 중국의 의사들은 우한시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급성 폐렴 증례가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것임을 전 세계 동료 의사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일주일도 안 돼 그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 서열이 밝혀졌고 그 바이러스는 “코로나바이러스”인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까지 코로나바이러스 연구는 주로 가축이나 가금류 등 여러 동물 종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질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에 감염한 사례는 두 건뿐이었고 가벼운 감기 증상만을 일으켰기 때문에 당시 연구자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2003년 신종 바이러스성 유행병이 중국의 한 호텔 투숙객에게서 시작됐다. 그와 접촉한 모든 사람이 바이러스에 전염됐다. 24시간이 안 돼 바이러스는 다섯 개 나라로 퍼졌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으로 알려진 이 감염병은 감염자 10명 중 1명을 사망케 했다.
사스 병원체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스는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로 알려진 작은 육식동물로 전염돼 다시 인간으로 전염됐다.(예로부터 사향고양이는 중국 남부에서 별미로 통했다.) 사스는 30개국으로 퍼졌고 국제적으로 굉장한 공포를 자아냈다. 그러나 사스에는 중대한 약점이 있었다. 감염자가 마른 기침, 열, 근육통 같은 증상을 보일 때에만 전염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쉽게 식별됐고 결국에는 유행이 저지됐다.
2012년에도 마치 미라의 저주처럼 무덤 박쥐에서 낙타로 전염돼 다시 인간에게 전염된 바이러스가 일으킨 질병[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1000명이 죽었다. 사망자는 주로 아라비아반도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는 대개 낙타와 직접 접촉할 때에만 전염됐기 때문에 대유행(팬데믹)감으로 여겨지지 않았다.[국내에서는 사람 간 전염으로 186명이 감염돼 39명이 사망했다 - 역자]
스텔스 바이러스
현재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기존 사스와 대부분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연구자들은 이번에도 감염과 증상의 상관관계로 감염자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처참하게 빗나갔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인간 세계에서 4개월 넘게 유행하고 있는 현재 우리는 이 바이러스가 이전 코로나바이러스와 달리 무증상자들을 통해서도 쉽게 전염된다는 사실을 안다. 마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보다 훨씬 전염력이 강한, 어쩌면 미생물학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로 확산된 “스텔스 바이러스”임이 드러났다. 미 해군이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승무원 거의 전원을 검사했을 때 거기서 확인된 감염자 60퍼센트는 가시적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감염자가 무수히 많다는 소식은 어쩌면 좋은 소식일 수도 있다. 감염이 지속적인 면역력을 낳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현재 FDA 인증 없이 시행되고 있는 항체 검사들의 결과는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다. 항체 인증서를 발급해 사람들을 일터로 돌려보낸다는 발상이 지금으로서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까닭이다.
게다가 최근 연구 결과(미국 국립보건원이 개설한 코로나19 정보 사이트 LitCovid에서 볼 수 있다)는 획득되는 면역성이 매우 제한적일지도 모르며 코로나바이러스가 인플루엔자처럼 고착화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급격한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최초 감염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2차·3차 감염이 덜 위험할 가능성이 높지만, 감염되지 않은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에게도 덜 위험하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따라서 코로나19는 한동안 다락방의 괴물 같은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알고도 당한 재앙
그러나 코로나19는 운석을 타고 외계에서 날아온 전혀 예상치 못한 감염병이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치고 전염력이 강하기는 했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이 대유행은 조류 인플루엔자에 관해 오래 전부터 제시된 시나리오에 매우 근접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주요 국가 정부들은 거의 한 세대 동안 그러한 대유행을 감지하고 대처할 계획을 세웠다. 조기 발견, 긴급 의료 물자 비축, 환자 급증에 대비한 중환자 병상 확충의 필요성에 대한 분명한 국제적 이해가 있었다. 특히 WHO 회원국들이 표결로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대응을 조율한다는 내용의 협약이 가장 중요했다. 포괄적 검사, 접촉자 추적, 감염 의심자 격리 같은 초기 대응이 중요했다. 대규모 격리, 도시 출입 차단, 경제 가동 중단 같은 조처는 대대적인 방침으로 피할 수도 있는 최후의 수단일 뿐이어야 했다.
2005년 조류 인플루엔자가 미국에 상륙한 이후 미국 정부는 이런 노선을 따라 야심차게 “인플루엔자 대유행 대응 국가 전략”을 발표했다. 미국의 공중 의료 체계가 대규모 발병 사태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라는 보고를 기반으로 한 계획이었다. 2009년 돼지 인플루엔자[국내에서는 '신종 플루'로 알려져 있다 - 역자] 공포가 지나간 이후 이 전략은 갱신됐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일주일 전에는, 떠나가는 오바마 행정부 관료들과 새로 오는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이 공동으로 모의 대응 훈련을 벌였다. 이는 세 가지 상이한 시나리오(돼지 인플루엔자, 에볼라바이러스, 지카바이러스)를 놓고 대유행에 대한 정부 기관들과 병원들의 대응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모의 대응에서 유행을 방지하거나 유행곡선을 완만하게 하는 데에 실패했다. 조기 발견과 조율에 문제가 있었다. 물자 비축량도 충분하지 않았고, 핵심 보호 장비 생산을 몇몇 해외 공장에 의존하는 등 공급 사슬의 명백한 병목 구간들도 문제였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혁명적으로 발전한 백신 설계 등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항바이러스제와 백신으로 무장하는 데에 실패한 것이 이 모든 문제의 배경에 있었다.
다시 말해 미국은 대유행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앙의 도미노
2020년 1월 말 세 가지 일이 벌어졌다. 첫째, WHO는 독일 과학자들이 개발한 검사 키트를 신속하고 대대적으로 배급했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각국 정부로부터 외면당했다. 각국 정부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이전의 상호 지원 약속을 무시했다.
둘째, 의료 자원이 잘 준비돼 있고 단일의료보험 체계를 갖춘 세 아시아 국가들, 즉 한국·싱가포르·대만은 적은 사망자를 내고 한정된 기간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고 나서 확산을 저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중국은 초기에 재앙을 막지 못해 바이러스가 항공로를 따라 퍼지는 데에 속수무책이었고 우한을 봉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전례 없는 규모의 동원으로 우한 바깥 지역의 모든 발병을 재빨리 진화했다.
셋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WHO 배급 키트가 아니라 자체 제작 키트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CDC의 생산 라인은 바이러스로 오염돼 있었고 거기서 생산된 검사 키트는 쓸모가 없었다. 그러면서 2월을 통째로 날려먹었다. 검사와 접촉자 추적으로 기하급수적인 감염을 막는 것이 여전히 가능했던 시점이었는데 말이다.
이것은 첫 번째 재앙에 불과했다. 그 다음 재앙은 위중한 환자들이 병원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 3월에 찾아왔다. 산소호흡기와 방역 마스크(N-95)가 바닥나기 시작한 의료 기관들은 주 정부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 다음에는 연방 정부의 국가전략비축물자에 손을 벌렸다. 국가전략비축물자는 정확히 지금과 같은 사태에 대처하려고 고안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물자가 부족했다. 비축량은 2009년 돼지 인플루엔자 사태와 그 이후 비상 상태 때 대부분 소진됐었다. 트럼프 정부는 재고를 다시 채워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들었지만 CDC 예산을 깎거나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개혁법을 폐지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그 결과 무수히 많은 미국 노동자들이 병원, 요양원, 대중교통, 아마존 물류 창고 등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푼돈만 들여도 만들 수 있는 필수적인 보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말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과학적·기술적 우월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으스대던 바로 그날 〈뉴욕 타임스〉에는 “가정에서 마스크를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트럼프 정부의 직무 유기를 이보다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도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