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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대통령 취임 3주년 연설:
경제 활성화 위해 규제와 방역을 완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
‘전 국민 고용보험’ 애드벌룬 띄우더니 며칠 만에 후퇴

5월 10일(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이 여러 채널에서 생중계됐다.

그러나 20분을 약간 넘긴 대통령의 연설은 자화자찬으로 시작해서 경제 활성화를 한참 강조하다가 자화자찬으로 끝났다. 노동자·서민이 바라는 내용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이날 연설은 총선 이후 집권 후반기 정부 방향 기조를 밝힌 것이다. 그 핵심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기업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자”는 것이다. 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방역을 완화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 지원을 강화하겠다.”

경제 위기가 심각해 그에 대한 대처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것이다. “방역이 먹고사는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말은 지금 시기 방역 완화의 목적을 분명히 보여 주는 말이자, 친기업 규제 완화에 딴지 걸지 말라는 것으로 들린다. 따라서 국민의 “연대와 협력”은 고통 분담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양보를 요구할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 ⓒ출처 청와대

문재인은 이날 연설에서 방역과 관련해 감염병을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과 연구소 설립 등을 언급했다. 진보·좌파 세력이 요구해 왔던 바다. 그러나 정부 전체가 방역을 완화하면서까지 기업 이윤 활동을 고무하고, 공공의료보다 의료 산업화(영리화)를 위한 규제 완화로 질주하는 것과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진성성 있는 방역 강화 계획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문재인이 “문제는 경제”라면서 강조한 바는 네 가지다. ①ICT(정보통신기술) 산업과 그에 기초한 신성장 동력 산업(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자동차)에 대한 정부 지원 강화, ②고용보험 대상 확대 등 실업 대책, ③한국판 뉴딜 계획, ④연대와 협력의 국제질서 선도.

그런데 한국판 뉴딜 자체가 ICT(정보통신기술) 산업 활성화를 위한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두고 있으니, 사실상 문재인이 강조한 것은 신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와 그것을 위한 규제 완화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의료가 중요하다는 말이 빈말로 들리는 까닭이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물리적 거리두기가 보편화된 점을 이용해 비대면 서비스 강화 등을 내세우는 걸 보면, 정부가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말의 본뜻도 디지털 규제 완화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연대와 협력의 국제질서 선도에 관한 얘기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방역 문제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지만, 그렇다고 국제 질서를 선도할 국가가 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말은 이번에 오른 국가 위상을 세계적 경쟁에 활용하고 특히 “첨단 산업의 세계 공장”이 되는 것에 쓰겠다는 뜻이다. 디지털 인프라 투자와 규제 완화로 이를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날 연설에서 문재인은 고용보험 수혜 대상의 단계별(점진적) 확대를 통해 전 국민 고용보험의 기초를 놓겠다고 했다. 경제 위기로 실업이 빈번한 시대에 고용보험의 수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미약하더라도 필요한 일이다. 현재 경제활동 인구 중 고용보험 미가입자들은 영세 자영업자, 기업의 규모나 노조 가입 등에서 열악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노동계는 10여 년 전부터 이를 요구해 왔다. 지급 조건을 완화하고 기간과 액수도 지금보다 더 늘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의 고용보험 대상 점진 확대 방안은 며칠 전 당·청이 공론화한 전 국민 고용보험 전면 도입안에서 후퇴한 것이다. 기초를 놓겠다고 했지만 그래서 언제까지 완료하겠다는 말이 없다. 현 정부가 외면해 온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법 개정 언급도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단계별 정규직화 공약이 허무한 결과를 낳았던 일이 떠오른다. 국민취업지원제도(2차 안전망)도 현재 확대되는 실업(미취업 포함) 추세에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애초 전 국민 고용보험은 청와대 정무수석 강기정과 민주당 전 원내대표 이인영이 애드벌룬을 띄웠던 것이다. 그러나 재정 부담 문제, 개혁 기대감이 커질 것에 대한 정치적 우려 등으로 사용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자, 청와대와 민주당이 “단계별 확대” 수준에서 서둘러 봉합한 것이다. 개혁 염원을 실현하는 것에서는 후퇴하지만, 개혁 추진 중이라는 이미지는 줄 수 있도록 절충한 것이다. 개혁을 포기하겠다고 해서는 노동계 지도자들을 포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부가 고용보험 수혜 대상의 점진 확대 과정을 사회적 대화의 일부로 가져가 노동계 지도자들로 하여금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설득하게 하는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게다가 현재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조처를 언급하지 않고 사후 안전망 문제(그조차 부실한)만 강조한 점은 고용에 관한 규제도 완화하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유연안정성”) 이 대책들은 해고가 벌어진 후의 안전망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향은 연설 후 문답 시간에서 문재인이 내놓은 답변을 봐도 이 점을 엿볼 수 있다.

“디지털경제는 한편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낼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존 일자리를 많이 없애게 될 것입니다. 이분들을 어떻게 새로 생겨나는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 갈 수 있게 해 주고 또 옮겨 갈 수 있을 때까지 그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느냐라는 것이 앞으로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

결국 문재인의 3주년 연설은 초유의 위기 국면에서 정부가 기업주 보호에 우선순위를 둘 것임을 새삼 확인해 줬다.

감염병 전문 병원 설립 부분과 고용보험 비판 내용을 일부 개정했다.(5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