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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보장 없는 기업 규제완화로 지원하는 문재인 정부
사회적 대화는 양보 압박만 키울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노동절 메시지에서 “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류로서 모든 삶을 위한 ‘연대와 협력’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이 말은 노동자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자신의 요구를 앞세우지 말고 희생을 감수하라는 주문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임금 인상이나 방어를 삼가고 순환·무급휴직 등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의 골간이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주52시간 상한제가 이뤄졌으니 이런 희생은 치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정책 모두 생색내기에 그쳤거나 심지어 정부 스스로 무력화시킨 바 있다.

사실 이번 코로나19 확산으로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후퇴와 배신으로 제대로 된 처우 개선도 얻지 못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정부는 가장 피해를 입은 노동자·서민에 대한 지원과 보호에는 굼뜨고 인색하면서 기업 지원에는 노동자 지원에 쓴 돈의 20배를 쏟아부었다. 이런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균형’ 운운하는 것 자체가 위선의 극치다.

정부는 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겠다지만 그 핵심 내용은 기업을 지원하는 규제 완화로 채워져 있다. 특히, 4월 29일 ‘10대 산업분야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규제 완화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6개월짜리 최저임금 수준의 저질 일자리를 ‘공공 일자리 창출’로 포장해 덧붙였다.

그래서 우파 신문 〈조선일보〉조차 정부가 “우파 정책으로 일부 방향 전환[했다]”고 반길 정도다(〈조선일보〉 5월 6일치). 같은 기사에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우클릭’이라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주요 조직들이 노정협의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한국노총 집행부는 총선 때 민주당을 조직적으로 지원했을 뿐 아니라, 3월 6일 임단협 연기(임금 인상 요구 자제), 집회 자제를 선언한 노사정 선언(경사노위)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저임금 일자리 양산으로 임금 삭감 압박을 키울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다시 복귀했다.

4월 29일 민주노총-보건복지부 '코로나 19 정책협의' ⓒ출처 공공운수노조

민주노총 집행부는 총선 후 “문재인 정부의 보수화 가능성이 높고 경제활력 제고를 앞세워 규제 완화, 노동개악을 강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예측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민주노총 집행부는 문재인 정부와 협의해 성과를 얻어 내겠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총선 직후 코로나19 위기 극복 원포인트 비상협의 기구를 제안한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과 함께 정부 부처별 긴급 정책 협의도 정례화하려고 한다.

그 일환으로 4월 29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코로나 위기 극복” 정책 협의 자리를 가졌다.

그러나 정부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4월 29일 회동에서 김명환 위원장이 원격의료 추진 등 규제 완화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또, 민주노총은 고용 유지, 이익 공유 등이 전제된 기업에 대해서만 금융 지원을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유감 표명을 들은 척하지도 않았고, 법 개정 과정에서 관련 요구는 가뿐하게 삭제됐다.

이런 사례들은 정부가 지금 사회적 대화에 공을 들이는 진정한 목적이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시켜 양보를 이끌어 내고 저항을 무마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코로나19-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 대책위원회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인가

4월 28일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참여연대·경실련·YMCA 등 NGO, 한국진보연대가 주축이 돼 노동·시민·사회 단체 535곳이 참여한 ‘코로나19-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 대책위원회’(이하 시민사회대책위)가 발족했다.

시민사회대책위는 해고 금지와 고용 유지, 취약계층 지원, 공공의료 확대, 사회안전망 확충, 지속가능한 경제산업구조로의 전환 등의 요구를 내놓았다.

모두 지당한 요구들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예컨대,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도입은 마땅히 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재원 마련을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험료도 인상하는 양보안도 함께 내놓았다.

일부 NGO 인사들은 기업은 해고 금지 노력을 하고, 노동계는 임금 동결, 사회연대기금 마련 등의 양보를 하는 사회적 합의 구상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면한 전망인 구조조정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두산중공업이나 항공업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태도도 적잖이 있다. 이런 태도는 해고에 일관되게 반대하기 어렵다.

우려스러운 ‘사회적 협의’ 구상 4월 28일 '코로나19 경제사회 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출처 참여연대

시민사회대책위는 ‘전 사회적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협의(교섭)’ 추진을 주요한 계획으로 삼고 있다. 이 점은 실제로는 우려스럽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구상과도 맞닿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런 사회적 합의 추진은 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자들도 양보해야 한다는 압력만 키우기 십상이다. 노동운동 안에서 ‘계급 연대’를 명분으로 정부와 사용자들에게 양보안을 내놓을 테세가 된 민주노총 집행부와 같은 개혁주의 세력의 목소리는 저항을 약화시키고 노동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것이다.

이런 점들을 볼 때 특히 좌파단체들이 시민사회대책위에 참가한 것은 부적절하다(반면 사회변혁노동자당이 이 대책위에 불참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오히려 좌파 활동가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품거나 계급 협력을 추구하는 것의 문제점을 들춰내며 자본주의 위기에 대응할 더 효과적이고 좌파적인 대안을 제시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