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코로나19 집단 감염:
기업 이윤 위해 방역 완화한 정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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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은 예고된 사건이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두 달 전 서울 구로동 콜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생겼을 때 너 나 할 것 없이 하던 얘기다. 뿐만 아니라 서구 ‘선진국’들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할 때에도 지겹게 들어 온 얘기다.
친민주당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의 방역 ‘성과’만 강조하며 ‘생활 방역’의 문제는 지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언론들도 다른 나라 정부들의 방역 완화에 대해서는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누가 봐도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친민주당 언론들의 확진자 개인 탓하기와 노골적인 정부 편들기는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돌연변이로 생겨난 신종 바이러스다. 이는 인류 전체가 면역력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감염을 막으려면 물리적 거리두기 외에 방법이 없다.
둘째,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한 번 번지면 따라잡기 어렵고 순식간에 환자가 급증할 수 있다. 우한, 대구, 뉴욕, 런던에서는 기존의 병원과 기반시설들이 갑자기 늘어난 환자 수를 감당하지 못해 손 한 번 못 쓰고 죽어간 환자들이 많다.
셋째, 예상보다 치명률이 높다. 아직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지만 고령층에 매우 치명적이고(한국의 경우 80대의 치명률은 20퍼센트가 넘는다), 전 세계 모든 대륙으로 확산하면서 돌연변이도 일어나고 있다.
넷째이자 마지막으로, ‘무증상 감염’은 다른 감염병과 가장 다른 특징이자 가장 위험한 특징이기도 하다.
다른 감염병의 경우 증상 발현이 감염자의 활동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아프니까), 전염력이 생길 때쯤 증상이 발현돼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 신호로 작용한다. 감기에 걸려 훌쩍대는 가족이나 온몸에 발진이 생기고 열이 나는 아이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코로나19의 경우 증상이 아예 없는 경우도 20~30퍼센트가량 되고, 전염력이 생기고 나서 한참 뒤에야 증상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감염자가 매우 활동적이면 자기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외출제한령, 이동제한령, 심지어 완전봉쇄까지 극단적 처방이 내려졌다.
따라서 방역 완화는 거의 필연적으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독일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은 사실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것도 아닌 듯하다. 최초 확진자로 지목된 사람과 같은 날 증상이 생긴 사람, 즉 다른 경로로 감염됐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태원의 다른 클럽에 다녀간 경우가 최소 두 건 발견됐다. 이태원이 아닌 지역에서도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역학 조사 기간을 4월 24일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어요. 정부 스스로 감염이 시작된 시점을 4월 말~5월 초 연휴 이전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미 퍼지고 있던 감염이 연휴 기간에 크게 확산됐다는 뜻이죠.”(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2019년 연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환자가 발견된 이래로 이제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 사이에서 전파되고 있다. ‘최초’ 확진자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66번이든 31번이든 분명히 누군가에게서 감염된 것이고 이는 여기저기서 여전히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거리두기를 강화하면 확산세가 느려지다가 일부 지역 내에서는 바이러스가 모두 사멸해 없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로 바이러스가 확산돼 있으므로 사람들이 이동하면 다시 감염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혹여라도 등교를 강행한다면 싱가포르 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싱가포르는 3월 말 확진자가 줄자 등교 개학을 강행했는데, 그 결과 재확산이 시작돼 며칠 만에 다시 학교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 달 넘게 매일 수백 명씩 확진자가 늘고 있다.
이태원에서 발견된 집단 감염이 얼마나 확산될지는 알기 어렵다. 5월 13일 현재 이태원 관련 확진자는 120명으로 서울(70명)을 비롯해 전국으로 이동해 2~3차 감염이 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실제로는 4~5차 감염일 수도 있다. 그러면 아직 알지 못하는 다른 지역에서도 집단 감염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대구에서처럼 말이다.
적반하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정부 핵심 인사들과 기성 언론들은 클럽에 간 청년들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될 때와 똑같은 반응이다.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방역을 완화한 당사자들이 청년과 성소수자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마치 클럽이나 유흥주점 등의 영업을 재개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2미터씩 간격을 두고 접촉하지 않은 채 대화도 없이 술만 먹고 나갈 것을 기대한 것일까? 아니면 열이 펄펄 나서 증상이 확연한 사람이 코로나 따위 알 바 없다며 클럽을 드나들었다고 여기는 것일까? 무엇보다, 4월 19일에 종료된 영업정지 명령을 연장하지 않고 영업 재개를 허용한 것은 박 시장 자신이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정부가 집단 감염을 유발한 장본인이라고 지적한다.
“총선 직후에 정부 자신이 클럽 등 유흥주점을 다 열어 주고는 이제 와서 놀았다고 비난하는 건 황당한 일이에요. 그럼 클럽에서 뭘 하라고 열어 준 겁니까? 당시에도 일각에서는 단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베트남에서는 클럽과 노래방을 마지막까지 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거리두기를 완화한 것은 경제적인 동기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죠.
“정부가 ‘숨은 확진자’니 ‘조용한 전파자’니 하며 피해자들을 비난하는데, 진정한 ‘숨은 전파자’는 정부 자신이라고 봐야 해요.”
문재인은 5월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도 기업 지원과 규제 완화 등 ‘경제 활성화’를 집중 강조했다. 이를 위해 방역도 완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구로 콜센터, 요양병원들, 이태원 클럽에 이은 집단 감염은 반복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확산 대비는커녕 확률 낮은 도박에 미래를 내맡기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그때마다 ‘생활 방역’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며 확진자 중 일부를 마녀사냥해 책임을 떠넘기려 할 것이다. 지금도 성소수자에 이어 간호사, 의사, 학원 강사 등 불필요한 정보를 공개하며 사람들의 주의를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거리두기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호한 지침만 내려놓은 이유는 이런 책임 전가를 위해서일 것이다.
개인정보 공개와 권위주의적 통제가 오히려 방역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일자 정세균 총리는 “이태원 방문 외엔 아무것도 안 묻겠다”며 빨리 검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동통신 기지국 정보를 뒤져 이태원 방문자들을 찾아내고, 휴대전화 사용 기록, 신용카드 사용 기록 조회 등에 이어 이제 CCTV까지 조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으니 앞뒤가 안 맞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엉터리 ‘생활 방역’을 중단하고 거리두기를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등교 개학 방침을 취소하고 온라인 교육 개선 방안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선 현장의 혼란을 줄여야 하고, 아프면 쉴 수 있도록 사용자들을 강제해야 한다. 경제 때문에(즉, 기업 이윤 때문에) 정부는 정말로 재난적 상황이 벌어질 때까지 그러려 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 운동은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와 협의를 강조하지 말고 그저 비판과 독자적 행동만을 강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