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대안:
노동자·서민 피해에 주목한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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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월 31일 노동자 연대가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당시 영상 링크)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특별보고서가 요구한 변화들을 시도할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 중 누구를 중심에 놓느냐에 따라 그 방안이 달라진다.
전기 생산 부문
첫째, 온실가스 배출 없이 전기를 만드는 문제에서 자본가를 중시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시장 제도를 이용해 자본가들이 풍력과 태양 발전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얼마 전 그리스의 중도 우파 정부가 비슷한 목표를 내걸고서 전력 부문을 일부 민영화했다. 그러자 자본가들은 그리스의 일부 섬을 사실상 통째로 발전소로 바꾸는 일에 착수했다. 그 섬에 사람이 이미 살고 있다는 것은 전혀 안중에 없었다.
해당 섬의 주민들은 갑자기 섬 곳곳에 들어서는 거대한 풍력 발전 장비 탓에 생활공간이 망가지자 투쟁에 나섰다. 이전까지 풍력 발전 확대를 요구해 온 환경운동가들과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들도 섬 주민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이건 환경이 아니라 자본의 탐욕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백 번 옳다.
독일 정부가 지난해 석탄 발전소 폐쇄 계획을 발표하면서 택한 방법도 전형적으로 자본가들을 중시하는 방식이었다. 석탄 발전 기업과 탄광 회사에 6조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화석연료 기업들이 보상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온실가스를 내뿜고 환경을 파괴하며 돈을 벌었고 오히려 세계의 무수한 노동자들이 그 피해를 입었다.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를 중심에 놓는 방식은 발전소와 탄광 회사, 전기를 주로 사용한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을 물어 전환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돈으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짓고 폐쇄되는 석탄 발전소 노동자들의 생계와 재취업을 보장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민간 기업에 내맡기는 것은 사실상 전력 민영화로 이에 반대해야 한다. 이런 방식에는 태양과 풍력 발전에 투자하는 자본가들에게 보상해 주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다만 그 보상 방식이 보상금 지급이 아니라 이윤 추구를 허용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처럼 시장을 이용하는 방식은 대규모 에너지 전환에 효과적이지 않다. 개별 기업주들은 사회나 심지어 해당 분야 전체의 필요보다 자신의 이윤을 앞세우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장마 시기에 곳곳에서 산사태를 일으킨 부실 태양광 시설이 세워지는 것이다. 안전에 충분히 투자하기보다 단기 이익에 매달리는 시장 논리가 낳은 결과다. 또 시장의 변동에 따라 다른 많은 산업처럼 해당 부문에서 충분한 이윤이 나오지 않을 경우 아예 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국내 주요 풍력 발전기 제조업체들이 사업을 청산한 이유다.
시장 상황이 가장 좋을 때조차 기업주들은 에너지 전환 비용을 소비자인 노동자·서민에게 전가하려 할 것이다. 전력 민영화가 전기 요금 인상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는 매우 현실적이다.
한편 많은 환경NGO들과 개혁주의자들이 전기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제안한다. 이 때 기업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요금도 함께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한국에서든 세계적으로든 노동자와 서민의 전기 사용량이 유난히 많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본가들의 공장과 사무실보다 에너지를 훨씬 덜 쓴다. 아래 그림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을 부문별로 나눈 것인데 노동자와 서민이 쓴 부분은 빌딩, 그 중에도 일부에만 해당한다. 빌딩 항목에는 대형마트처럼 기업들이 사용한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사용량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도 않다. 특별보고서는 “에너지를 최종소비단계보다 그 상위 단계에서 줄이는 것이 몇 배에서 몇십 배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에게 에어컨 끄라고 하는 것보다 에너지 효율이 더 좋은 에어컨을 보급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이 생존하려면 전기를 쓸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예컨대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폭염에는 에어컨을, 혹한에는 전열기를 켜는 것 외에 선택지가 거의 없다. 이런 사정이 빤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올리자는 것은 노동자·서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별보고서가 단기적으로는 전기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고 했지만 기후 위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전기 사용량은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간극을 무기 생산 등 불필요한 공장 가동을 줄이거나 일부 공장은 아예 멈추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와 서민을 중심에 둔 방식이다.
운수 부문
둘째, 운수 부문 배출(특별보고서에서 “별다른 묘책이 없는 만큼 필요한 모든 조처를 강구해야 한다”고 했던 부문)을 줄이는 데서도 상이한 방식이 있다.
일각에서는 탄소세 도입이나 유류세 인상을 제안한다. 취지는 풍력과 태양 발전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자는 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는 자본가를 위하는 방법이다.
탄소세나 유류세는 모두 소비 행위에 세금을 부과하는 소비세다. 그러나 소비세는 평범한 사람들의 불가피한 소비와 기업주들의 생산(이윤을 위한 소비)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기업주들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반면, 노동자·서민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 되기 쉽다. 상품에 매겨지는 부가가치세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지지할만한 대안이 못 된다.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려는 것에 맞서 세계적으로 저항이 크게 벌어져 왔다. 2003년 한국에서 노무현 정부를 위기에 빠뜨린 화물연대 파업, 2018년 프랑스 노란조끼운동, 지난해 말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모두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촉발됐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런 투쟁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운동의 든든한 아군들이다. 유류세 인상이나 탄소세를 요구하는 것은 중요한 아군들을 적으로 돌리는 잘못된 전략이다.
무엇보다 각국 정부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필요한만큼 유류세나 탄소세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가는 화석연료 기업들과 자동차 기업들, 이와 연관된 수많은 기업들의 이윤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기업 이윤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이를 지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긴다. 그것이 국가의 세계적 위상과 영향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자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등에 업을 수 있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기후 위기를 막으려면 운수 체계를 근본에서 바꿔야 한다. 시작은 자동차와 비행기 대신 대중교통과 화물 열차를 늘리는 것이다. 단지 버스와 열차 대수를 늘릴 뿐 아니라 노선도 대대적으로 신설해야 한다. 현대 도시들은 승용차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데 이를 대중교통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예컨대, 고속도로와 시내 도로를 대부분 버스 전용차로로 바꾼다면 버스 이용이 지금보다 훨씬 쾌적해 질 것이다.
현재 버스가 전국적으로 10만 대, 화물차가 300만 대 있고 서울에만 승용차가 300만 대 등록돼 있다. 버스를 빠르게 늘리고 승용차와 화물차는 줄여야 하고, 화물차를 몰던 노동자들이 버스를 운행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으로 그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승용차를 대폭 줄이고 도로 대부분을 버스 전용으로 만드는 것은 자동차 기업의 이윤을 크게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격하게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가 승용차(전기차 포함) 말고 다른 것을 생산하는 게 옳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강구해야 한다”는 특별보고서의 호소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자본가들도 받아들일만한 세금 제도 도입이 아니라 이들의 저항을 무력화할 힘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에 맞선 운동이 체제 자체에 맞선 운동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자동차 회사들은 얼마든지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다. 지난해 덴마크 회사 베스타스는 호주의 포드 자동차 공장을 인수해서 풍력발전기를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
이처럼 운수 체계를 바꾸는 것은 산업 체계를 바꾸는 것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자동차 같은 일부 공장만 바뀌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공장을 옮길 생각도 해야 한다.
특별보고서는 ‘운수 효율을 높이는 것’(대중교통과 열차 확대), ‘불필요한 운수와 환적 없애기’가 전기차 도입보다 효과가 더 크다고 했다. 불필요한 운수와 환적을 없앤다는 생각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밀어부치면 최종 소비지에 가깝도록 공장을 옮기자는 대안에 도달한다.
핸드폰 공급을 생각해 보자. 한국의 삼성, LG, 미국의 애플, 중국의 화웨이가 설계한 핸드폰을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조립해서 전 세계로 다시 옮기고 있다. 이것이 과연 최선일까? 만약 이 기업들이 기술을 공유해서 아프리카에서 쓸 핸드폰은 아프리카에서 만들고, 아시아에서 쓸 핸드폰은 아시아에서 만든다면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바다를 건너는 횟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육지 교통도 크게 다변화하고 운송 거리가 짧아질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생산의 세계적 분업은 일부 지역의 생산력이 낮아서가 아니라, 단지 비용을 줄여 이윤을 남기기 위해 이뤄진다. 이런 산업들을 현지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자본가들은 이윤에 타격이 된다면 절대로 공장을 옮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트럼프가 전혀 다른 이유로 공장을 옮기면 세금 혜택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자본가들은 대부분 슬금슬금 피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운송 거리를 줄이기 위한 공장 이전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내가 일하던 공장이 다른 곳으로 떠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의 공장이 오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충분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전 세계 핸드폰을 소수의 공장에서 생산하느라 한편에서는 가혹한 노동 조건이 강요되고 다른 곳에서는 실업이 넘쳐나는 모순도 없앨 수 있다.
공장 가동 부문
셋째, 공장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소재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는 특별보고서의 제안도 노동자·서민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
먼저 에너지 효율이 낮은 설비는 즉각 퇴출시켜야 한다. 그동안 자본가들은 에너지 효율이 낮은 설비도 최대한 가동하며 에너지를 낭비해 왔는데 이를 금지해야 한다.
또한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염두에 두고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흔히들 플라스틱이나 일회용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틀린 생각이다.
애초 플라스틱이 유리병을 대체한 것은 소비자들의 요구가 아니라 석유 사용이 급증하면서 그 부산물로 얻는 플라스틱이 싸기 때문에 기업들이 선택한 것이었다. 애플 같은 기업들이 일부러 제품의 수리를 어렵게 만들고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은 소재를 낭비해서 이윤을 늘리려는 작태다. 앞서 특별보고서가 “에너지를 최종소비단계보다 그 상위 단계에서 줄이는 것이 몇 배에서 몇십 배 더 효과적”이라고 한 것은 소재 선택 문제에도 적용된다.
자본가들은 무질서 속에서 세계 시장을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중복 투자와 과잉 생산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와 소재가 낭비된다. 이런 낭비를 없애는 방법은 에너지를 가장 덜 쓰는 생산 방식을 공유하고 수요에 맞게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본가들은 이런 조처 하나하나가 경영권 침해라고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자본가들의 경영권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조처가 이익이다. 기술을 공유하면 경쟁으로 회사가 망해서 일자리를 잃을 위험도 줄고, 과잉생산을 줄이면 노동시간도 줄 것이다.
빌딩 부문
특별보고서의 넷째 제안은 빌딩의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건설 붐이 한창인 가난한 나라부터 최신식 단열 기술의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해 소량만 비싸게 짓는 것은 소용이 없고 대규모로 지어서 무상으로 공급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에 건설 자본가들은 절대 그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도 자본가를 중시하는 방식으로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 반면 ‘관리비가 적게 드는 내 집 마련’이라니, 노동자와 서민들 입장에선 쌍수 들고 반길 일이다.
이런 조처가 개발도상국으로만 국한될 이유는 없다. 지금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다. 예컨대 홍콩의 끔찍한 집값은 지난해와 올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홍콩 대중이 입을 모아 성토한 문제였다. 이런 나라들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이 부동산으로 고통받는 만큼 건설 자본가들이 부를 쌓았다. 그들의 이윤으로 단열이 잘 되는 집을 짓고 온실가스도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