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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에 전기요금 인상!:
부채와 기후 위기 비용을 서민에게 전가 말라

17일 정부와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 안은 내년 1월 시행된다.

이번 개편의 핵심 내용은 연료비에 따라 전기료를 오르내릴 수 있게 하고(연료비 연동제), 전기료에서 기후환경요금을 분리해서 고지하고, 전기를 적게 쓰는 991만 가구에게 제공하던 할인 혜택을 대부분 폐지한다는 것이다.

소득 감소, 실업, 빈곤이 증가하는데 전기 요금까지 인상하겠다니 ⓒ이미진

먼저 연료비 연동제는 3개월마다 석유·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의 가격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책정하는 것이다.

이 정책은 “콩(원료)이 두부(전기) 보다 비싸다”(한전 사장 김종갑)며 전기요금 인상을 주장한 한전 사측이 요구해 온 것이다.

전기요금은 다수 가정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요금이기 때문에 이제까지 정부가 정책적으로 통제해 왔다. 그래서 전기료는 2013년 이후 동결돼 왔다.

그런데 연료비 연동제에 따르면 시장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전기료가 오르내릴 수 있게 된다.

올해는 심각한 불황 속에 유가가 전례 없이 낮아져서 내년 상반기에는 전기료가 찔끔 인하되겠지만(4인 가구 기준 1050~1750원) 현재 유가는 상승세이기 때문에 내년 하반기부터는 전기요금이 오를 공산이 크다.

정부는 연료비 인상에 따른 가격 조정 범위를 제한했다지만 기준에 따르더라도 가구의 전기료는 해마다 5퍼센트씩 인상될 수 있다.

기후·환경요금을 분리 고지하는 것도 전기료를 더욱 쉽게 인상하기 위한 포석이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더욱 쉽게 비용을 전기료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후·환경요금은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전기를 많이 쓰는 부자에게 더 유리하고 서민들에게 더 불리하다. 기후 위기의 비용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물론 기업들도 전기요금이 오를까 봐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요금 인상으로 인한 진정한 부담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5년간 한전이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50대 대기업에게 무려 7조 원에 달하는 요금 혜택을 줬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전기를 적게 쓰는 991만 가구에게 제공하던 할인 혜택을 폐지하는 것은 취약계층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할인액을 50퍼센트 축소하고, 이듬해에는 일부 취약계층을 제외하고 할인 적용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이를 통해 한전은 약 4000억 원을 절감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서민 가정에 부담이 떠넘겨지는 셈이다.

정부가 이런 전기요금 개편을 한 이유는 한전의 부채 부담을 완화하고, 심각한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비용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민 전기요금 인하와 기후 위기 대처에서 비롯한 적자는 정부가 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

게다가 한전의 부채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한전이 석탄화력발전 등 환경 파괴적 사업에 투자해 대규모 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한전은 이명박 정부 시절 무리한 해외 투자를 추진했고, 최근에도 호주의 석탄 사업에 투자했다가 사업이 좌초 위기에 처한 것 등 때문에 큰 손실을 보고 있다.

이런 데 쓸 돈의 일부만 투자해도 서민들의 전기료를 더 많이 인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전 사측의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서민들에게 떠넘기려는 것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

우파들은 정부의 탈핵 정책 때문에 부실이 커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다. 정부 스스로가 밝혔듯 2019년 원전 이용률은 70.6퍼센트로 2018년 대비 오히려 4.7퍼센트포인트 상승했다.

기후 위기 대처 비용 전가

환경 비용을 이유로 서민들의 전기세를 인상하겠다는 것도 결코 지지할 만한 정책이 아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현재 각국 정부들은 기후 위기를 막을 진정한 대책은 취하지 않으면서 유류세·전기세 인상 등 기후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겨 왔다.

문재인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하겠다며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실상 이 정부 하에서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들의 전기료를 올리는 것은 기후 위기의 책임을 개인들에게 떠넘기고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환경 NGO들과 진보진영의 적지 않은 단체들은 이번 정부의 전기요금 개편안을 지지했다. 〈민중의 소리〉도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늦었지만 환영한다” 하는 사설을 냈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려면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민들의 전기료를 올린다고 기후 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지금도 한국에서 가정용 전기는 전체 소비량의 10퍼센트대에 불과하다. 한국의 가구당 전기 소비량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전기료 인상은 전기 난방기에 의지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한층의 고통을 줄 것이다.

정부의 전기요금 개편안을 지지하는 것은 말로만 그린뉴딜 운운하며 실제로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후 위기의 비용을 전가하는 정부의 위선을 포장해 주는 효과만 낼 것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유류세를 인상하며 기후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는 마크롱 정부에 맞서 노란조끼 운동이 터져 나왔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노란조끼 시위대는 정부의 유류세 인상 조처에 반대하며 “부자들이 생태적 전환에 필요한 돈을 내게 하라” 하고 요구했다.

사실 정부가 별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이런 정책을 발표한 배경에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 일부 온건한 NGO와 진보진영 지도자들을 정부 지지층으로 묶어 두려는 계산도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기후 위기에 맞서고 노동자·서민의 삶을 지키려면 이런 정부의 위선을 폭로하며 잘못된 정책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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