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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실패 인정한 김정은:
세계적 불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북한 경제

최근 북한 경제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분석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북한 당국이 경제 관련 통계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 관찰자들이 북한 경제의 상태를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북한 경제가 좋지 않다는 증거들이 있다.

첫째, 김정은의 발언이다. 지난해 10월 조선로동당 창건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열린 당대회에서도 김정은은 경제 성과가 목표에 많이 미달했다고 직접 시인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되었습니다.”

둘째, 지난해 대중국 교역이 급감했다. 중국 당국의 통계를 보면, 중국과 북한 간 공식 교역은 거의 붕괴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북한 당국이 국경을 봉쇄한 탓이 크다. 그간 북·중 교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 온 비공식 교역(밀수와 더불어 국제 대북 제재를 우회한 교역까지)도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셋째, 지난해부터 북한 정부가 재정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북한 예산 수입 중 83퍼센트를 차지하는 거래수입금(남한의 부가가치세와 비슷함)과 국가기업이익금(남한의 법인세와 비슷함)의 지난해 증가율 전망치가 각각 1.1퍼센트, 1.2퍼센트에 불과했다. 제재가 한창 강화되던 2017~2019년에 견줘도 2분의 1 내지 3분의 1까지 급감한 수치다. 올해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된 예산 수입 계획은 지난해에 견줘 0.9퍼센트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는데, 이는 김정은 집권 이후 가장 낮다. 김정은 집권 직후인 2012~2016년에 북한 정부 예산 수입은 매년 평균 5퍼센트 증가해 왔고, 2017~2019년에도 매년 3.3퍼센트씩 늘었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이 신경써 온 경제 프로젝트의 일부도 계획 달성에 차질을 빚고 있다. 예컨대, 원산갈마관광지구는 김정은이 역점을 둔 건설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애초 2019년에 예정된 완공 시점이 지난해 4월로 연기됐지만, 2021년 2월 현재까지도 완공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김정은이 직접 독려한 평양종합병원 건설 사업도 지난해 10월이 목표 완공 시점이었는데 아직까지 완공되지 않은 듯하다.

교역 붕괴

북한 경제는 1950~60년대에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코리아의 기적”이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북한 관료들은 국가자본주의적 축적 방식을 채택해 한동안 성공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흔히 국유화된 경제를 근거로 북한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보지만, 국가는 언제나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적 일부다. 북한은 서방 시장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독립한 후발 국가들에서 국가가 자본 축적 과정을 주도한 경우가 많았는데, 건국 후 북한 관료들도 국가기구를 이용해 가용 자원을 중공업에 집중 투자해 자본을 축적했다.

북한 관료가 자본 축적에 열을 올리게 한 진정한 동력은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경제적 경쟁이었다. 그 논리는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인 ‘축적을 위한 축적, 경쟁을 위한 경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노동자들은 축적 경쟁에 종속되고 착취를 당했다.

그러나 북한 경제도 여느 서구 경제들과 마찬가지로 축적 노력 그 자체가 경제 위기를 부르는 경향을 피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공업 성장율이 떨어지자 북한에서는 소비를 희생시켜 투자를 확대하는 일이 반복됐고, 그럴수록 경제의 불균형은 심화됐다. 그리고 불황을 피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 세계 자본주의의 세계화 추세가 발전하면서, 이제 폐쇄적인 국가자본주의 방식은 점차 낡고 사태에 뒤처지는 것이 됐다.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관료도 경제 성장 방식을 바꿀 필요를 느끼면서 여러 차례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런 조심스런 경제 개혁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1980년대에 이미 북한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1989~1991년 동구권 붕괴는 북한 경제에 치명타를 안겼다. 1990년대 북한은 최악의 위기를 겪어야 했고, 대규모 아사 사태까지 벌어졌다.

김정일은 서방과 관계를 개선해 경제 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이런 시도를 가로막았고, 북한은 대북 군사 위협과 제재에도 시달려야 했다.

화폐 개혁

김정은은 누적된 위기로 경제가 매우 취약해진 상태에서 권력을 물려받았다. 게다가 김정은 집권 전인 2009년 화폐 개혁이 실패해 북한은 단기간에 엄청난 물가 앙등(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민심이 크게 동요했는데, 그 여파로 화폐 개혁 책임자인 박남기가 처형될 정도였다.

그래서 김정은 정부는 경제를 안정시키고 성장시키려고 애썼다. 이 과정에서 중국 등과의 교역이 크게 증가했다. 북한은 무연탄·철광석 등 지하자원 수출을 크게 늘렸고, 노동력의 해외 파견에도 열을 올렸다.

교역 증대와 해외에서의 송금 등으로 북한에 외화 반입이 늘어났다. 이렇게 되자 국내 거래에서도 달러 등의 외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2009년 화폐 개혁으로 북한 화폐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탓이었다. 김정은 정부는 이런 추세를 묵인해서라도 재정 수입을 늘리고 국내 경제 활동을 활성화하려 한 듯하다.

김정은 정부는 국유기업들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농업에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등 시장 지향적 조처도 일부 실시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경제는 한동안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 경제가 세계 자본주의의 리듬에 더더욱 종속돼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2017년 이후 미국이 북한의 교역에서 크게 증대된 부문들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제재 조처를 내리자, 북한 경제는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제재가 강화되자 북한은 우회로를 찾으려 애썼다. 대북 제재로 지하자원과 의류의 수출이 어려워지자, 같은 기간 북한에서 가발·시계 등의 임가공 수출이 증가한 것이 한 사례다.

그러나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은 북한 경제를 강하게 옥죄어 버렸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가 국내로 유입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고 우려해 국경을 막았고, 국내에서도 지역 간 이동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북한 경제에 큰 충격을 준 듯하다.

교역 축소는 당장 공업 가동에 필요한 중간재 확보와 외화 반입을 어렵게 할 것이다. 중간재 확보 미비로 공장 가동이 어려워진 곳이나 수출 길이 막힌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처지도 곤궁에 빠졌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경제 위기로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이 북한에서 한둘이 아닐 것이다.

북한 당국이 경제를 생각해 록다운(물리적 거리두기 강제 조치)을 푸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북한 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에드윈 살바도르 세계보건기구(WHO) 평양사무소장은 지난해 10월 말까지 북한에서 1만 2072명이나 코로나 진단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모두 음성 판정). 록다운을 쉽게 풀 상황이 아닌 것이다.

역대 북한 당국은 “우리식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 경제를 표방해 왔다. 지금 김정은 정부도 자력갱생을 엄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북한 경제가 세계경제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보여 준다. 북한은 세계 자본주의의 경쟁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고, 북한 관료는 그에 반응해 선택해 왔다. 그리고 교역 증대로 북한은 더더욱 세계경제의 리듬에 종속돼 왔다. 팬데믹 위기는 바로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의 일부임을, 그래서 세계적 보건·경제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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