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받는 북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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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경제가 곤경에 빠졌다는 지적들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특히 세계적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가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퍼지자 북한은 올해 초부터 중국과의 국경을 전면 차단하는 조처를 내렸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에 대처할 물자와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북한 당국의 고육지책이다. 최근 평양 출입 제한을 위해 방역 초소 40여 곳을 새로 설치하는 등 국내 이동 제한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북한 대외 무역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대(對)중국 무역이 거의 중단돼 버렸다. 2020년 1~2월 북한·중국 간 무역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수출은 71퍼센트, 수입은 23퍼센트나 줄었다. 3월에는 더 악화돼, 북한의 대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96퍼센트, 수입도 무려 90퍼센트 하락했다.
그전부터 북한·중국 간 무역 규모는 국제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2016년 58억 달러에서 2019년 28억 달러). 코로나19 사태는 가뜩이나 위축된 북한의 대외 무역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허리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후 경제난 극복과 인민 생활 보장을 강조해 왔다.
1990년대 북한 체제는 옛 소련 블록 몰락의 여파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야 했다(‘고난의 행군’). 그때 적어도 수십만 명이 굶어 죽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경제는 2000년대까지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초에 그런 난관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겠다고 약속했다. 2012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민이 다시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다.]”
북한 당국은 친시장적 ‘개혁’ 조처들을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국유기업들의 자율 경영을 강화하고 기업 간 경쟁을 촉진했다. 무역에 대한 개별 기업들의 자율도 확대했다. 그리고 (공식·비공식) 무역 확대로 번 외화와 물자로 국내 생산 활동을 자극하고자 했다.
농업 분야에서는 농민들이 실적에 따라 분배를 받도록 제도화했고, “개별 농장들은 정부에서 시달된 농업생산 계획을 달성한다는 전제 하에 … 자체적으로 수익성 높은 작물 생산[이] 가능”하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이런 부분적인 시장적 개혁 조처는 대외 개방 확대 시도와 밀접히 연관돼 있었다. 북한 당국은 외국 자본들이 투자할 수 있는 특수경제지대들을 대거 지정하는 등 자본과 선진 기술을 유치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투자 과정에 선진적인 기술과 외국 자본이 국내에로 들어오고 국내의 유리한 요소들과 결합되어 국제적인 경쟁력 있는 제품의 생산이 증대된다. … 해당 개발구들에서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들에서 산업 발전이 촉진되며 인민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게 된다.”(2015년 북한의 경제학술지 《경제연구》에 실린 한 논문에서)
그러나 대외 개방이 순탄한 성과를 제공할지는 의문이다. 옛 소련과 동유럽에서 시장 개방은 평범한 인민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자력갱생
당면한 문제는 시장 개방이 낳을 효과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시장 개방에도 한계가 있다는 데 있다.
북한 당국도 이 점을 인정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경제 건설에 유리한 대외적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는 경제 성장에 필요한 자원과 외화를 끌어들이려는 북한의 시도를 계속 방해하고 있다. 김정은이 야심 차게 추진한 특수경제지대들은 제재 때문에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2016년 이후 대북 제재가 특히 강화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의 대외 무역이 크게 줄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도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해 버렸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공단은 여태껏 재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트럼프와의 협상을 통해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테니 2016년 이후의 유엔 대북 제재에서 민생 관련 부분만은 꼭 해제해 달라’고 트럼프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김정은은 조선로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이렇게 시인했다. “국가 경제의 발전 동력이 회복되지 못하여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우게 좋아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내핍과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해야 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붕괴된 국내 생산 기반을 복구하려고 애쓰는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세계화된 생산 네트워크 속에 포함돼 필요한 첨단 기술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므로 “자력갱생”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북한은 제철 산업에 필수적인 코크스 수입이 어려워지자 이를 대체하고자 무연탄과 갈탄을 사용하는 공법을 개발했지만 비용이 더 들고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북한 주민들의 식생활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조사들이 나왔다. 하지만 식량 부족이라는 고질적 문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공동으로 낸 보고서에서 2016∼2019년 122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만성적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핵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만드는 북한이 기본적인 의료 인프라가 취약해서 국경까지 막아야 했다.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데도 쉽사리 국경 차단을 해제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북한 체제의 우선순위가 남한이나 서방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삶과 동떨어진 결과인 것이다.
북한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대외 무역 등으로 세계 자본주의와 연결돼 있고, 이를 통해 세계경제 등락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까지 또 겪지 않을지 몰라도 남한이나 서방의 시장자본주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세계경제 위기와 코로나19 같은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