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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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 시작 시기가 조금씩 미뤄지고 있다.
지난달에 정부는 이르면 설 연휴 전에 접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2월 2일 서울시는 이르면 이달 안에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첫 백신을 공급할 것으로 발표한 코백스 측이 1월 말까지도 언제 백신을 공급할지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코백스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민간 공동 백신 연구 기관인 가비(GAVI), 세피(CEPI)가 함께 결성한 기구로 전 세계적으로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각국 정부의 자발적 기여금을 재원으로 백신을 공동으로 구매한 뒤 부국과 빈국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분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코백스 측은 제약기업들과 백신 20억 개 구매 계약을 체결했고 2월부터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백신이 언제 얼마나 공급될지는 미지수다. 전 세계적으로 1억 개 이상의 백신이 접종된(2월 1일 기준) 지금까지도 코백스 측이 분배한 백신은 한 개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진국들이 코백스에 재정을 턱없이 부족하게 지원한데다 각국이 백신을 개발한 제약기업들과 경쟁적으로 계약을 체결해 백신 공급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은 주요 백신 기업들과 자국 인구의 서너 갑절 되는 분량의 백신 공급을 계약해 세계적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만큼의 백신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 사실상 제약기업들이 제시한 백신 값의 서너 배를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시장 논리에 따라 제약기업들은 생산량의 대부분을 선진국들에 보내고 있다. 지금 생산 속도대로라면 가장 가난한 나라들은 2년 뒤에야 백신을 구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백신 개발 단계에서 이미 주요 선진국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재정 지원을 받은 제약기업들은 백신 개발 소식으로 주가가 크게 오른 바 있고, 이제 백신 판매 과정에서 또다시 어마어마한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다.
미국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 영국 옥스퍼드 대학 등 공공기관들이 백신 개발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이제 백신의 핵심 제조법은 제약기업들의 지적 ‘재산’이 됐다. 백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기술 공개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주요 선진국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지적재산권을 무시하고 약품 등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자는 빈국 정부의 제안을 거부해 왔다.
백신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 속에서 제약기업들의 이윤을 우선시하는 선진국 정부들의 정책은 백신 공급에 엄청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노인들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이하 AZ) 백신 접종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아스트라제네카(AZ)
1월 29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AZ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인정하며 사용을 승인했다.
AZ 백신을 포함해 현재 생산되는 백신은 감염 자체를 막기보다는 병의 진행을 막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망자를 줄일 수는 있지만, 백신을 맞은 뒤에도 감염될 수 있고 증상은 없거나 약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위험도 여전하다는 뜻이다.
이는 백신 접종의 순서를 정하는 데에도 적용돼야 한다. 단기간에 팬데믹을 끝내겠다는 헛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사망자 감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따라서 감염을 퍼뜨릴 위험이 큰 집단(경제활동연령층)에게 집중하기보다는, 고위험군(감염될 경우 죽을 위험이 큰 사람들)에게 우선 접종해야 한다. 고위험군에게 감염시킬 위험이 큰 집단(의료진 등)이 다음 순서일 것이다.
그런데 유럽연합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의 승인이 내려진 날 노인들에게 AZ 백신을 접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임상시험 참가자 중 노인의 수가 너무 적어,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이탈리아도 노인에게 접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며칠 뒤 입장을 번복했다.
백신 공급이 충분하다면 별 문제가 안 됐겠지만 지금처럼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생산 속도가 빠른 백신을 노인들에게 접종할 수 없다고 하니 불안이 커졌다. 유럽에서 벌어진 논란은 전 세계로 확산됐고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식약처 자문단은 최근 AZ 백신을 노인에게 접종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AZ 백신의 경우 임상시험 참가자 중 노인의 수가 특히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실 고위험군 중 상당수는 백신 접종으로 부작용이 생기기 쉽거나 부작용이 치명적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인, 아동, 이미 다른 병을 앓고 있는 환자, 면역기능저하자(HIV 감염인 등), 임산부 등은 임상시험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그 수를 최소화하는 경우가 많다. 백신의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인되면 접종 대상을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을 거친다. 코로나 백신의 경우 팬데믹의 긴급성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치기 전에 사용을 시작했다.
다만 백신의 작동 방식이나 인간의 면역반응 등을 고려하면 젊은 사람에게서 효과를 보인 백신이 노인에게서만 아예 효과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백신이 승인된 영국과 인도 등에서 지금까지 심각한 단기 부작용이 보고되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AZ 백신을 당장 노인들에게 접종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체의 복잡성을 고려하면 충분한 통계결과가 축적되기 전에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노인 목숨을 진정으로 걱정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기존에 사용한 적이 없는 기술로 만든 백신이라 장기적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이 점은 화이자, 모더나 백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제약기업들과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더 중요한 셈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자국 기업인 사노피 사의 백신 개발이 진행중이라는 점을 고려해 유럽연합이 다른 기업들로부터 구입하려던 백신 계약 물량을 줄인 바 있다. 미국 FDA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경쟁 상대인 AZ 백신 승인을 미루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받고 있다. 독일 메르켈 정부도 모더나 백신을 개발한 자국의 바이오엔테크 사의 이윤을 보호하는 한편, 유럽 연합을 탈퇴한 영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다.(AZ 백신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개발에 참여하고 영국과 먼저 공급 계약을 맺었다.)
노인사망자 감소보다 경제 활동 재개를 우선 순위에 두고 경제활동 인구에 백신 접종을 집중하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면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겠지만, 팬데믹 초기에 일부 지배자들이 취한 태도를 보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백신을 출시한 제약기업들은 자사 백신의 효과를 과장하고 후발 주자들의 진입을 견제하고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실험실 연구 결과만을 갖고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발표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 언론과 ‘전문가’들의 주장도 혼란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럴수록 백신에 대한 신뢰도 점차 낮아질 것이다.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기 시작하면 팬데믹의 종식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스푸트니크V(러시아), 코로나백(중국), 코백신(인도)은?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경쟁도 팬데믹 종식에 걸림돌이 돼 왔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자국 기업의 이익을 앞세워 백신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려 시도하는 것은 물론 경쟁자들의 앞길을 가로막으려는 시도도 계속돼 왔다.
유명 의학 저널인 〈랜싯〉은 2월 2일 러시아 가말레야 연구소가 개발한 ‘스푸트니크V’ 백신의 임상시험(3상) 중간 평가 논문을 공개했다. 그 효과는 91.6퍼센트로 지금까지 개발된 백신들에 견줘 크게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푸트니크V는 아스트라제네카 사의 백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물론 러시아 측이 임상시험을 마치기도 전에 일반인들에게 백신 접종을 시작한 것은 문제다.
화이자·모더나·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이 미국계 의학 저널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논문을 실어 공신력을 얻은 반면, 러시아 측의 논문이 NEJM에 실리지 않고 유럽계 의학 저널인 〈랜싯〉에만 실린 것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경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노백 사가 개발한 백신 ‘코로나백’도 비슷한 상황이다. 〈랜싯〉이 지난 11월에 공개한 논문을 보면 임상 2상에서 안전성과 효과가 어느정도 증명돼 임상 3상 시험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임상 3상 시험 중간결과는 혼란을 낳고 있다. 시노백 측은 임상시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임상시험이 이뤄진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 정부가 발표한 임상시험 결과는 차이가 너무 커서 일반화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인도 정부도 임상시험을 건너뛰고 자체 개발한 백신 ‘코백신’을 접종하고 있는데, 인도가 제약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알려진 것이 너무 없어 그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