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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불신 자초한 문재인 정부

이 기사는 365호에 실린 ‘백신 불신 자초한 문재인 정부’와 364호에 실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작용 논란: 문제는 시장 논리에 있다’를 통합하고 일부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달라진 측면도 있지만 핵심적 내용들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머릿말을 붙여 재게재한다.

5월 12일 현재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한 차례 이상 접종한 사람은 370만 명으로 국내 인구의 7.2퍼센트를 차지한다. 2월 27일에 첫 백신 접종이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라 할 만하다. 5월에는 백신 재고가 크게 줄어 접종 속도는 더 느려졌다.

문재인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1인당 GDP가 G7 국가 중 하나를 “제쳤다”고 자랑했지만, 백신 접종으로 보면 대부분의 선진국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개발도상국들보다도 크게 뒤처져 있다. 하루 수십만 명씩 확진자가 늘고 있는 인도(9.8퍼센트)나 그에 버금가는 브라질(15퍼센트)의 백신 접종률도 한국보다는 높다. 오로지 일본(2.7퍼센트) 정도만 문재인 정부의 체면을 살려 주고 있다.

정부는 5월 27일부터 60~74세 인구에도 백신을 접종할 계획으로 예약을 받고 있는데, 백신 공급 속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이 계획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세계적 백신 공급 부족 상황에서 기업주들이 자신들의 우선순위에 따라 백신 생산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므로,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못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백신이 개발된 지 반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백신 구경도 못 하고 있는 현 상황은 이 체제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보여 준다. 백신 특허를 보유한 기업주들은 이윤을 지키려고 지적재산권 면제(유예) 논의에도 저항하고 있다. 그렇다고 생산을 크게 늘리지도 않는다. 생산 증대를 위한 투자가 나중에 손실이 될까 봐 우려하기 때문이다. 기업 간, 국가 간 경쟁은 원료 생산부터 완제품을 거쳐 공급으로 이뤄지는 세계적 연결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기업주들을 강제하려는 정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들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보다 기업주들의 이윤과 생산에 대한 개별 자본의 통제권을 우선시한다. 문재인 정부도 그 일부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안동에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반기에는 이 공장에서 노바백스 백신도 생산될 예정이다. 그동안 화이자, 모더나 백신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 국내 생산이 어렵다고 했지만, 삼성바이오로지스나 GC녹십자 등 국내 위탁생산에 대한 소문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복제할 수 없는 기술로 보이지도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데 쓰여야 할 이 백신들을 왜 개별 기업주들의 통제 하에 내버려 둬야 하는가.

물론 백신 접종만으로 팬데믹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백신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기업주들에게 맡겨 둔 현 상황은 ‘바이러스 변이와의 경쟁’을 갈수록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도에서 유행하는 이중변이(B.1.617) 바이러스를 ‘우려스러운 변이’(VOC) 목록에 포함시켰다. 영국, 남아공, 브라질 변이에 이어 네 번째다.

이 변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사용되는 백신의 효과를 조금씩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백신 접종 속도가 느린 곳에서는 언제든 대규모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 ‘우려스러운 변이’들은 감염력과 치명률이 모두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백신 접종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모든 국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돼야 한다. 이스라엘, 영국, 미국 등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에서 정부가 거리두기를 완전히 해제하려 하는 시도는 우려스럽다. 이들은 경제 활동 ‘정상화’와 패권 강화라는 목표를 위해 불과 몇 미터 앞에 놓인 위험을 무시하고 있다. 지난해 팬데믹 초입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요양병원 등 고위험 시설과 고령층에 대한 백신 접종으로 전체 치명률이 낮아지고 있다고 보고는 경제 활성화와 방역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덧 하루 확진자 600여 명이 일상이 됐지만 “경제 성장률 4퍼센트” 달성을 위해 거리두기를 더 완화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백신을 맞은 사람이 10퍼센트도 안 되는데 말이다.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평범한 사람들을 탓하는 책임 떠넘기기도 계속되고 있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집권 말기가 다가올수록 문재인 정부는 한층 더 기업주들의 우선순위를 앞세우려 한다. 그럴수록 평범한 노동자·서민의 삶은 위험과 생계난에 내몰릴 것이다. 이 정부의 말만 믿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백신 불신 자초한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갈수록 나빠지는 여론에 전전긍긍하면서도, 몇 달째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백신 공급은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백신 공급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계획 자체가 너무 안일했던 데다가 그것조차 거듭 지연되고 난항을 겪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제약사와의 계약을 핑계로 백신 공급과 관련된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드러난 사실로만 보면 정부가 ‘확보’했다는 물량의 절반 이상은 공급 일정도 명시하지 못한 사실상 구두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2000만 명분에 해당하는 노바백스 백신은 아직 사용 승인도 나지 않았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공급받고 있는 미국 정부는 후발 제약사 백신의 사용 승인을 서두를 생각이 없다. 미국 정부가 백신 재료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어서, 사용 승인이 나도 국내에서 얼마나 빨리 생산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최근 노바백스 사는 아예 긴급사용 승인 신청을 3분기에나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모더나 백신 2000만 명분도 미국 정부가 독점하고 있어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다. 문재인이 모더나 사장과 통화해서 올해 2분기부터 들어올 것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4월 20일 부총리 홍남기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2분기에는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600만 명분을 차지하는 얀센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처럼 희귀 혈전 부작용 가능성이 제기돼 접종 대상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4600만 명분을 제외하고 대략적인 공급 일정이라도 제시된 것은 3300만 명분인데, 지금까지 들어온 것은 그 10퍼센트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코백스에 가장 많은 백신을 공급하는 인도의 세럼 인스티튜트도 자국 내 사용을 우선해 수출을 중단했기 때문에, 코백스를 통한 백신 수급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화이자 백신 1300만 명분은 1~2주 간격으로 25만 개(12만 5000명분)씩 찔끔찔끔 들어오고 있다.

정부는 구할 수 있는 최대치를 계약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 홍익표는 화이자 측이 초기에 무리한 요구를 해 와 계약을 미뤘다고 밝혔다. ‘무리한 요구’가 뭔지는 밝히지 않은 채 말이다.

결국, 홍남기는 11월까지 3600만 회 접종을 완료해 집단면역에 도달하겠다고 했는데, ‘11월’은 기존 목표고 ‘3600만 회’는 달라진 목표다. 방역 담당자들이 “9월까지 3600만 명 접종”으로 수정했지만, 홍남기의 단순한 말실수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정부는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은 채 위험보다 이익이 크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접종 결과를 보면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해외에서도 그런 부작용을 거의 일으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유리한 일부 사실만 발표한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백신에 대한 신뢰도는 더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시작한 돌봄종사자들과 비행기 승무원들의 경우 백신 접종 동의율이 58.6퍼센트까지 낮아졌다.

“왜 안동에서 생산하는 아스트라제네카도 확보를 못 하나”(심상정 정의당 의원) 하는 지적에 부총리 홍남기는 고장 난 녹음기처럼 “11월 집단면역”만 되뇌었다. 같은 공장에서 시제품까지 만들어 봤다는 노바백스의 백신은 스스로 검증하지도 않고 미국 정부의 결정만 바라보고 있다.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호하는 지적재산권 협정을 따르느라 국내 제약사들은 알엔에이 백신 제조 방법을 처음부터 새로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정신 나간 일이 또 있을까?

이 정부가 기업주들의 이윤을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보다 앞세우는 한, 팬데믹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변이 바이러스는 늘어나는데 백신 공급은 오히려 늦어지고 있다 ⓒ출처 청와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혈전 부작용 논란

문재인 정부는 백신 접종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부작용 위험보다 훨씬 크다며 4월 12일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재개했다.

정부는 지난해 가을 백신 확보 실패로 비난을 받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 불신을 핑계로 댔었다. 그러고는 막상 다른 회사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다. 정부 스스로 백신의 신뢰를 떨어뜨린 셈이라 정부는 백신 접종 문제로 계속해서 곤란을 겪고 있다.

정부는 30세 미만 청년들은 다른 백신을 맞는 게 좋겠다며 사실상 접종을 미뤘다. 그러나 30세 미만 청년들에게 위험도가 더 커서 그렇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는 60세 이상인 사람들에게서 중증으로 진행하거나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80대의 경우 치명률이 20퍼센트에 이른다. 반면 30세 미만은 감염돼도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작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20대 청년들은 백신 접종으로 얻을 이익이 작아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조금 앞서 영국 보수당 정부도 같은 이유를 들어 같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한편, 독일 등 일부 나라 정부들은 훨씬 광범한 층을(60세 미만 등)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 아예 접종을 금지시킨 나라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러나 4월 7일 유럽 의약품청과 영국 ‘의약품 및 보건의료 제품 규제청’이 각각 조사한 결과를 보면, 독일 정부 등이 아스트라제네카의 부작용 위험성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백신의 유용성 대신 부작용에만 주목함으로써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두 기관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혈전과 관련된 심각한 부작용을 “매우 드물게” 일으키는 듯하다고 발표했다. 그 빈도가 매우 낮으므로 백신 접종을 계속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유럽 의약품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극히 일부 사람들에게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뿐 아니라 인간 혈소판에 대한 항체도 만들어 낸 결과로 혈전이 발생한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혈소판은 출혈이 생기면 혈액을 응고시켜 추가 출혈을 방지하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백신이 만들어 낸 항체가 혈소판에 결합되면 혈액 응고 기능이 혈관 내에서 활성화되면서 혈액이 굳고(혈전), 이 혈전이 혈관을 막으면 각종 장기의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또, 혈소판이 급속히 소모되므로 혈소판이 부족해진다(혈소판 감소증).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든 출혈이 시작되면 과다 출혈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다만, 이런 부작용이 어떤 사람들에게, 왜 생기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세계보건기구가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 “타당성이 있지만 증거는 없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한 이유다.

혈전 부작용 발생 빈도는 실제로 “매우 드물다.” 유럽 의약품청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4월 4일 현재 유럽경제지역(EEA)과 영국에서 총 3400만 명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받았는데 이 중 222명에게서 ‘혈소판 감소증을 동반한 혈전증’이 발견됐다. 100만 명당 6.5명꼴이다. 영국에서는 100만 명당 4명꼴로 나타났다. 사망자는 이들의 10~20퍼센트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의약품청은 이것이 자연발생률(100만 명당 1명 정도)보다는 높은 수치이지만,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고 발생 확률도 여전히 희박해서 접종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다만, 같은 기간 영국에서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1100만 명 중 두 명에게서만 비슷한 증상이 발견된 점을 고려하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과 혈전 발생 사이에 연관성은 없지 않은 듯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전문가들이 예측한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 전 국민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할 경우 170명에게서 혈전 부작용이 나타나고 이 중 25명가량은 생명에 지장이 올 수도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실제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예정자는 1000만 명 정도이니 그 수는 더 적을 듯하다.

이런 부작용은 아무리 소수여도 피해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간단히 무시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백신을 접종하지 않을 경우 감염병 유행을 막기 어렵고, 치명적 위험에 놓일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는 불가피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으로 60대 이상 노인 10만 명당 중환자 발생을 410건이나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접종자 중 중환자와 사망자 발생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감염자 수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감염이 지금 수준으로 확산된다고 가정하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는 중환자·사망자 규모가 적어도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주요국들이나 미국, 브라질처럼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을 가정하면 백신 접종으로 얻는 이익은 더 클 것이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전 세계적으로 매일 1만여 명이 사망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 나은 백신이 있다면 효과는 더 좋을 수 있다.

문제는 거대 제약회사들과 주요 선진국 정부들이 지적재산권을 고수하며 생산과 관련된 결정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혈전 부작용 발생 보고가 거의 없는 백신을 충분히 보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도 원활한 백신 공급에 실패해 선택지를 줄이는 데 일조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생산을 쉽게 늘릴 수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다른 거대 제약회사들과 경쟁국 정부들은 큰 이익을 볼 것이다. 화이자, 모더나 등의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보다 10배 이상 비싸다. 새로운 백신 후보 물질들의 임상 시험 승인과 출시는 갈수록 미뤄지고 있다.

선진국 정부들은 백신 가격 등 제약회사들과의 협상 내용을 비밀에 부쳐 제약회사들의 시장 지배력을 지켜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만큼 빈국들은 거대 제약회사들과 불리한 조건에서 가격 협상을 해야 할 것이다.

이번 논란은 효과적인 백신 개발에도 불구하고 이윤 논리가 어떻게 팬데믹 탈출을 가로막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다. 지난 몇 주 사이에 세계적으로 확진자는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백신 생산은 이윤 논리에 가로막혀 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변이 바이러스가 늘어나면 인류는 새 백신이 나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할 수 있다. 전체 인구의 60퍼센트에 대한 접종을 마친 이스라엘에서는 최근 접종자들에게서 남아공 변이에 대한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는 보고가 제출된 바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다른 거대 제약회사들과 경쟁국 정부들은 큰 이익을 볼 것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자본주의 정부들의 발표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코로나 팬데믹은 자본 축적과 시장 경쟁으로 작동하는 이 체제가 어떻게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그에 결부된 대중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연구도 충분치 않다. 그래서 주요 기구들의 발표조차 예전만큼 신뢰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하물며 백신의 효과와 부작용에 관해서라면 각국 정부들과 거대 제약회사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이들의 발표만으로는 진실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해관계는 종종 연구의 목적과 수단을 뒤틀어 놓고 심지어 분석과 결과 조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금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동료평가를 거친 연구 결과들을 참고하는 게 상대적으로 나은 선택일 것이다. 동료평가도 거치지 않았거나 너무 소수의 사례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은 그 신뢰성이 낮다.

자본가들도 안정적 이윤 획득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있으므로 경쟁 상대보다 객관적인 사실들을 잘 알 필요는 있다. 상상이나 희망에 의존해 공장을 가동했다가는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아예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연구·개발에 투자를 하는 이유이다.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도 지배자들 다수는 안정적 이윤 획득을 위해 팬데믹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지배자들 중 일부는 황당한 믿음을 전파하려 하지만).

그런데 그 과학적 견해나 일치된 의견이 합리적인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은 경쟁적 축적의 압력 때문이다. 당장의 경쟁 압력은 과학으로 가까스로 얻은 통찰조차 종종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감염이 확산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경제 활동을 재개하려고 방역을 완화하거나 빈국에 백신을 공급하지 않는 것이 그런 사례라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즉각적으로, 후자의 경우 변이 바이러스의 발생을 방치함으로써 팬데믹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자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 하지만, 근시안적 개별 조처들이 결국 전체로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는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전한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적 분석 기술들은 팬데믹의 원인이 자본주의적 농·축산업과 토지 이용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유용한 도구였다.

또, 대기과학은 지구 역사상 최초로 인류라는 종이 지구 전체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의 성과와 기술들은 인류가 역사상 최악의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데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 수단과 결정권이 상호 경쟁과 자본 축적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본가들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다.

인류를 구하려면 통제권을 이들의 수중에서 뺏어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