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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기술 혁신만으로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빌 게이츠는 자신의 새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김영사)에서 경쟁이 기후 위기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소피 스콰이어가 빌 게이츠의 주장을 반박한다.

빌 게이츠의 새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은 억만장자가 제시하는 기후 재앙 관리 계획이다.

게이츠는 각국이 탄소 배출량을 0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게이츠는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매년 온실가스 510억 톤을 대기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추산한다.

게이츠는 (억만장자가 다 그렇듯)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해 체제 안에서 노력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이것의 문제는 애초에 기후 재앙을 우리 눈앞에 닥치게 한 것이 바로 이 체제(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지구를 구할 수는 없다.

이어서 게이츠는 운송, 농업, 에너지 산업을 예로 들며 주요 산업을 친환경적으로 바꿀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다룬 장들은 기후·녹색 기술 혁신에 대한 온갖 세부 사항에 게이츠 자신의 통찰을 많이 곁들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게이츠는 자신이 투자한 프로젝트 모두에 관심을 유도하고, 다른 기업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프로젝트들에 투자하도록 독려한다.

빌 게이츠가 제시한 시장, 경쟁, 지구공학, 핵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다. 사진은 빌 게이츠가 제안하는 테라파워 사의 신형 핵 발전소 개념도

하지만 그런 벤처 사업들 중에는 게이츠 자신조차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예컨대 게이츠는 ‘직접공기포집’(DAC) 기술의 실현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이 공정에는 비용이 어처구니없이 많이 든다.

게이츠는 지구공학도 언급한다. 지구공학은 지구의 환경 변화를 뜻대로 조작하려 하는 학문이다.

이것도 기술에 의존하는 또 다른 값비싼 벤처 사업이다. 이런 사업들 중 몇몇은 아직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

이런 신기술이 성과를 내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당장 절박한 기후 위기의 대응책이 아니다.

게이츠는 (성공할 경우)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효과를 미칠 기술을 더 선호한다. 더 오래 지속될 기술들이 아니라 말이다. 효과가 미지수일지라도 빨리 사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또, 게이츠는 책에서 신기술을 옹호하지만 오랫동안 존재했던 기술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한 구절에서 게이츠는 태양광 발전은 충분히 효율적이지 않고 풍력 발전은 “너무 많은 땅”을 차지한다고 불평한다.

2019년에 게이츠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새로운 것”에 돌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잠재력

풍력·태양광·조력 발전은 이미 존재하는 기술로, 제대로 적용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풍력·태양광 산업은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제 과거보다 훨씬 싼 값에 더 널리 활용할 수 있다.

억만장자들에게 문제는 이 산업들이 충분한 수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흔히 각국 정부들은 풍력·태양광 발전은 엄격하게 규제한다. 민간 기업이 두 산업에서 거두는 수익은 여러 해에 걸쳐 감소했다.

설령 에너지 기업들이 재생 에너지에 투자하더라도, 이들이 막대한 돈이 묶여 있는 화석 연료 산업을 포기하지는 못할 듯하다.

게이츠는 풍력·태양광 발전의 가능성을 일축하는 반면 핵에너지를 적극 옹호한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게이츠는 핵발전 기업 테라파워의 창립자다. 게이츠는 핵발전을 혁신하면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근거 없이 장담한다.

이 책은 기후 위기를 해결할 기술을 콕 집어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혁신”이 핵심 해법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기술 발전만으로는 기후 위기의 해법을 내놓을 수 없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게이츠 같은 자본가들이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게이츠는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으로 새로운 기후 기술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경쟁은 기술 혁신을 제약한다.

게이츠는 각국 정부들이 “투자 격차를 염두에 둬야” 하며, 에너지 시장에서 경쟁이 더 많이 벌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게이츠는 기업이 기후 연구에 투자할 때 “위험을 더 감수”하라고 부추기고, 기업들이 위험을 감수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경쟁 심화 역시 기후 위기의 해법이 아니다.

이윤

이윤을 위해 운영되는 체제에서 자본가들은 남보다 앞서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경쟁하지 않으면 경쟁자에게 추월당할 것이다.

이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더 많이 착취할 뿐 아니라 지구의 천연 자원 또한 갈취해야 한다.

자본가들은 단기적 이윤 증대에만 골몰할 뿐 장기적인 해법에는 관심이 없다.

이 때문에 삼림이 파괴되고, 동물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지구 온난화가 벌어졌다.

예컨대 재생 에너지 산업에서 경쟁이 심화되면, 가뜩이나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는 무질서한 체제가 더 무질서해질 뿐이다.

재생 에너지가 화석 연료에 대한 실현 가능한 대안이 되려면, 재생 에너지 산업을 대기업 소유가 아니라 공적 소유 하에 둬야 한다.

물론 게이츠 같은 억만장자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핵심 구실 중 하나는 게이츠와 대기업에 체제 혼란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외려 기후 문제 해결의 주축으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이다.

또한 게이츠는 환경에 관해 이래저래 떠들지만, 아직 화석 연료 산업과 완전히 단절하지 않았다.

게이츠는 2019년 말까지는 화석 연료 산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게이츠 재단이 공개한 기록을 보면, 2019년 말에도 게이츠 재단은 7100만 파운드[약 820억 원] 이상을 석유·천연가스 기업들에 투자하고 있었다. 석유 기업 엑슨모빌·셰브론·BP도 투자 대상이었다.

게이츠는 세계 최대 개인 제트기 운영사 시그니처 애비에이션의 지분 19퍼센트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게이츠가 내세우는 (기후 재앙을 피하려 애쓰는 자선가라는) 이미지와 실제로 하는 일 사이에는 명백한 모순이 있다.

이 책이 분명히 보여 주는 사실 하나는 기후에 대한 논의가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가다.

과거에는 석유 기업 쉘 같은 대기업들은 기후 변화를 아예 부정했다.

이제 세계에서 손꼽히게 부유한 사람이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우자는 책을 썼다.

기업들은 친환경적으로 보이려 태세를 바꿨다. 여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후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다수는 비극적인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후 변화를 초래한 체제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책은 그런 급진적 관점에 반론을 제시하려 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해법을 자유 시장에서 찾을 수 있고, 어쩌면 정치인들과 세계 지도자들도 거기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게이츠는 틀렸다. 기후 위기는 애초에 이를 초래한 지배자들에게서 체제에 대한 통제력을 빼앗아야만 해결할 수 있다.

왜 언론은 부자들을 띄워 줄까?

게이츠의 책은 언론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언론은 게이츠를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을 우리에게 하사하고 막대한 돈을 자선 사업에 쏟아부은 친근한 억만장자라고 묘사한다.

이제 게이츠는 기후 위기와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에 대처하는 데에 자신의 부와 지혜를 선사하는 선구자 행세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언론 일각에서 게이츠를 호의적으로 보는 데에는, 게이츠의 막대한 기부금 덕도 있음이 분명하다.

지난해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이하 게이츠 재단)은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 200만 파운드[약 31억 원] 넘게 기부했다. 사실, 지난 9년 동안 게이츠 재단은 언론사 ‘가디언 미디어 그룹’의 여러 부서에 600만 파운드[약 95억 원] 넘는 보조금을 제공했다.

2월 17일자 〈가디언〉이 게이츠의 새 책을 극찬하는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의 서평을 게재한 것도 전혀 놀랍지 않다.

게이츠 재단은 2019년 〈BBC〉의 자선 사업 ‘미디어 액션’에 145만 5485파운드[약 23억 원]를, 프랑스 신문 〈르몽드〉에 152만 1292파운드[약 24억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 정보는 숨겨져 있지도 않다. 게이츠 재단 웹사이트에서 기부 목록을 검색하기만 해도 나온다.

게이츠 재단은 심지어 기부가 언론의 논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도 자금을 지원했다.

게이츠에게는 만족스럽게도, 연구 결과 “기부자들이 언론에 특정 논조를 요구했다는 증거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이제 게이츠는 자신의 기후 변화 대응 계획에 대한 지지를 바란다. 많은 언론은 자신들이 받은 돈의 대가로 게이츠를 지원할 태세가 돼 있다.

게이츠에 관한 기사들을 읽다 보면, 억만장자가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리기 쉬울 것이다.

억만장자들의 혁신과 자선이 사람들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실 억만장자들이 하는 자선 사업은 사람들을 돕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으며, 전적으로 수익 창출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