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나오미 클라인, 열린책들, 2021):
지속가능한 세계를 쟁취하려면 어떤 운동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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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 활동가이자 《노 로고》, 《쇼크 독트린》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나오미 클라인의 2019년작이 최근 번역 출판됐다. 그녀가 2014년에 기후변화 문제에 관해 쓴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도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나오미 클라인이 쓴 여러 편의 글과 이 책을 위해 새로 쓴 서문과 결말이 포함돼 있다. 이 글들은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이 기후 운동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운동의 좌경화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수의 주류 환경운동 지도자들은 그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려 왔지만 그 대안은 주요 선진국 지배자들의 점진적 해법에 타협하는 것이었다. 개인적 실천(절약 등)을 강조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논리를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엔 기후협약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었던 미국의 탈퇴로 거듭 무력화됐고, 이제 미국의 갑절 수준에 이르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중국은 그에 걸맞은 부담을 거부해 왔다.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독일 등 유럽 일부 나라들의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적 제도들을 활용해서 기후 변화를 멈출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된다.
그러나 나오미 클라인은 이런 주장도 비판한다. “부분적으로 오염을 내뿜는 생산 시설을 중국 같은 지역으로 옮긴 결과다. 연구자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 후 선진국에서 소비되는 상품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량이 선진국들에서 이뤄진 배출 감소량의 ‘여섯 배’에 이른다고 결론지었다.”
개인적 실천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생산 방식을 선택하고 그로부터 이윤을 얻어 온 기업주들의 책임을 덜어 주는 반면 생산 계획에 참여할 수도 없고 생산 과정에서 착취당하며 기후 변화로 고통을 받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운동 내 좌파로부터 거듭 비판을 받아 왔다. 나오미 클라인도 그 비판자 중 하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원자화한 개인의 입장에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거나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데 막중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객관적으로 볼 때 생판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그레타 툰베리
2019년 멸종반란 운동 등에서 이런 비판적 인식은 큰 지지를 받았다. 그레타 툰베리 등 이 운동의 대변자들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걸맞은 일관된 대안 즉, 급진적이고 신속한 체제 변화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나오미 클라인의 책은 당시 운동의 분위기를 흠뻑 담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면 자유 시장주의 각본에 있는 모든 규칙을 분쇄해야 한다. 그것도 시급하게 분쇄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우리가 겪는 중첩되는 위기들이 실제로는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따라서 사회적·경제적 변혁을 지향하는 총체적인 비전을 가져야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기후 변화를 막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자는 그린뉴딜이 그의 관심을 끈 이유일 것이다.
그린뉴딜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1930년대 미국 루스벨트 정부가 추진한 것에 맞먹는 뉴딜(정부의 공공투자) 정책을 재현하자는 것이다. 가족 임금을 지급하는 녹색 일자리 창출, 재생 에너지로 100퍼센트 전환, 양질의 의료보험, 공공주택 보급, 이를 위한 급진적 조세 개혁 등 일련의 급진적 요구들이 담겨 있다.
다만 책이 나온 지 2년이 지난 지금에서 보자면 그의 기대와 바람은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나오미 클라인은 “승산이 낮기는 하지만” 당시 청년층의 선풍적인 지지를 받은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하고 상원과 하원까지 민주당이 장악하면 “새 행정부는 구성 첫날에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 시나리오 중 비관적인 전망이 현실이 됐다.
트럼프의 재선은 막았지만, “고작해야 전면적인 변혁을 추진하려는 용기도 없고 민주적인 사명감도 없는 소심한 민주당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하[면] 우리는 소중한 시간을 고스란히 날려 버리게 될 것이다 … [새] 정부의 4년 임기가 끝나는 해는 벌써 2026년이다. 그때 가서 전환을 시작하자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바이든은 ‘용기’나 ‘사명감’은커녕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 대자본과 권력층의 이익을 수호해 온 미국 민주당의 주류를 대표한다. 바이든은 민주당 내 경선 당시 그린뉴딜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그린뉴딜을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실행하리라는 기대는 거의 없다. 바이든이 백악관 공보수석에 임명한 세드릭 리치먼드는 하원 의원 중 석유·천연가스 기업에게서 후원금을 다섯 번째로 많이 받은 인물이다.
신자유주의
나오미 클라인은 자본주의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하면서도 그중 한 형태인 신자유주의 비판에 압도적인 강조점을 둔다. “가장 큰 훼방꾼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일체의 제약을 뿌리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맹렬한 활동을 개시한 자본주의, 일명 신자유주의다.” 그는 국가가 시장을 좀더 통제하고 일부 국유화가 이뤄진 자본주의(예컨대 복지국가)에서는 정부가 그린뉴딜 같은 정책을 통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사실 그린뉴딜은 그 이름에서 보듯 일종의 케인스주의적 국가 개입 정책을 통해 기후 변화를 막고 일자리와 빈곤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샌더스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등의 그린뉴딜을 단순히 지배자들의 계략이나 음모로 치부하는 일부 좌파의 입장은 지나치게 종파적인 것이지만, 기존 국가를 활용해 “석유 산업과 국가 간의 확실한 분리”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공상적이다.
순전히 법적인 소유 형태를 잠시 제쳐두고 보면 어느 국가나 ‘전략 물자’인 석유 산업에 엄청난 지원을 제공하고 동시에 커다란 통제력을 행사한다. 석유, 석탄 같은 화석연료가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열강은 지난 세기에만 여러 차례 중동 지역에서 전쟁을 벌일 정도로 석유 확보와 이를 통한 패권 유지에 진지하다.
국가 기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이 결국 자본 축적에 의존할 뿐 아니라 세계 체제 속에서 국가의 위상과 군사력도 경제력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도 자본 축적에 이해관계가 있다. 요컨대 국가는 계급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가장 효과적인 자본가 계급의 지배 수단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개별 기업뿐 아니라 이런 국가들이 더 빠른 이윤 획득을 위해 경쟁하는 체제이기도 하다.
시장이 국가를 제압했다는 식의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분야를 좌지우지해 온 자유시장 근본주의”를 추구해 온 것은 다름아닌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이었다. 심지어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대거 집권한 1990년대에도 각국 정부는 같은 정책을 밀어붙여 왔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비판적인 문제 의식을 갖고 출범한 그리스의 좌파 개혁주의 정당 시리자조차 결국 같은 길을 걸었다. 거듭 확인된 것은 개혁주의적 정당이나 인물이 국가의 성격을 바꾸기는커녕 국가가 그들을 굴복시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 자체를 완전히 다른 민주적 노동자 국가로 대체하기 전에는 자본주의의 심장부에 있는 석유 자본가들의 영향력을 제압할 수 없다.
하물며 노골적인 친자본가 정당인 미국 민주당을 통해 그린뉴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은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사실 샌더스 열풍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노골적인 친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이 그를 대선 후보로 선택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었다. 만의 하나 샌더스가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으로 당선했을지라도 지금 같은 경제 불황 시기에 미국의 계급 세력 균형을 고려하면, 미국 정부가 그린뉴딜 같은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민주당은 자신이 기반을 두고 있는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근본에서 거스를 수 없다.
기후 위기는 진행 중이고 10년 안에 온실가스를 필요한 만큼 감축하는 것은 나오미 클라인의 예측대로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자본주의와 근본에서 다른 원리로 운영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려면 일차적으로 자본주의 지배자들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운동이 건설돼야 한다. 이 운동은 신자유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는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또한 기층의 독립적인 운동도 성장시키고 정부 참여 등으로 국가도 활용하자는 식의 모호한 정식화를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이런 생각은 국가가 때로는 탄압을 통해, 때로는 그 지도자들을 흡수(운동 입장에서는 배신)함으로써 기층 운동을 좌절시킬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게 만든다.
혁명적 좌파는 기후 운동 내에서 이런 논쟁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운동이 전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동시에 이런 과제를 수행해 나갈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을 건설·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