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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탄소중립·탈핵 포기 시나리오

문재인 정부 탄소중립위원회가 8월 5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했다. 8월 7일에는 정부가 500명을 선정해 ‘탄소중립시민회의’를 출범시켰다. 정부는 탄소중립시민회의를 중심으로 두 달 동안 각계의 ‘의견 수렴’을 거쳐 10월 말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뜻이다. 배출량 자체를 제로로 만들지 못하면, 나무 같은 흡수원을 늘려서 대기에 추가되는 온실가스가 없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물론 흡수 능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배출량 자체를 대폭 줄이는 조처가 핵심이 돼야 한다.

2015년에 체결된 파리 협약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평균 기온 상승폭을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가능한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에는 이를 위해 2070년까지 순배출량 제로에 도달하면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할 경우 너무 심각한 재난이 벌어질 것이라며 1.5도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순배출량 제로, 2030년까지 순배출량 45퍼센트 감축(2010년 대비)을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 목표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기후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기후 위기가 심화하는 속도를 너무 보수적으로 예측한다는 비판이다. 최근에도 과학자 1400여 명이 과학 저널에 ‘시급한 대응’을 촉구하는 공개 성명을 게재한 바 있다. 8월 9일 IPCC가 일부 공개한 6차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평균 기온이 1.5도 오르는 시점이 기존 예측(2030~2052년)에 비해 10년이나(2021~2040년으로) 앞당겨졌다.

ⓒ출처 IPCC AR6 WGI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취임 직후 파리 협약 복귀를 선언하고 2050년 순배출량 제로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한 만큼, 11월에 열릴 26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6)에도 이런 내용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순배출량을 55퍼센트 감축하는 입법안 패키지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흐름에 맞춰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이를 총괄할 기구인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들었다. 11월까지는 2030년 배출 목표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가장 상위의 계획이 될 것이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일부 내용은 6월 말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두 개의 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 공식 발표한 초안에는 당시에는 없던 3안이 추가됐다. 1, 2안이 사실상 탄소중립 ‘실패’ 시나리오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1·2안, 탄소중립 ‘포기’ 시나리오

실제로 1, 2안은 2050년 순배출량 목표를 제로로 맞추지 못했다. 2050년에도 여전히 화석 연료를 대량으로 태울 계획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대신 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추가로 짓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천연가스는 석탄에 비해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지만, 그 배출량이 결코 적진 않다.

현재 기술로는 전기 1기가와트시를 생산할 때 석탄은 888톤, 석유는 733톤, 천연가스는 499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김화년, 2017) 두 안 모두 2050년에도 이 천연가스 발전소를 계속 운영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정부는 폐쇄되는 석탄화력발전소보다 용량이 훨씬 큰 석탄화력발전소 7기도 짓고 있다. 1안은 2050년이 돼도 이 발전소들이 계속 운영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이런 황당한 계획을 1안으로 제시한 데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자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은 “정상가동 중인 발전기의 조기 중단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 정당한 보상방안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고 변명했다.

수십 년 동안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 위기를 낳은 기업주들에게 보상을 해 주는 게 ‘정당’한지도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어디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겠는가. 정상가동 중인 내연기관 자동차, 정상가동 중인 정유공장, 정상가동 중인 용광로 모두 보상 방안이 마련돼야 할 테니 말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영업 중단 조처로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생계난을 겪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보상도 안 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기업들의 미래 이윤까지 보호해야 한다니 이 정부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 준다.

1, 2안은 사실상 탄소중립을 포기하려고 제시한 시나리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계획에는 ‘탄소포집 기술’ 등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거나 심지어 개발조차 안 된 기술을 사용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겠다는 계획까지 포함됐다. 마찬가지로 아직 연구 단계에 지나지 않는 ‘무탄소 신전원’을 도입해 전체 전력 공급의 13~14퍼센트를 담당하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엉터리에 허황된 약속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수치를 모두 반영하고도 굳이 96.3~97.3퍼센트 감축이라는 결과를 내놓은 이유가 뭘까? 얼마든지 100퍼센트에 맞출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비용 문제다.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필요 재정 규모나 조달 방식 등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탄소중립위원회는 “30년 후 미래 시점의 비용 추산을 현재의 시각으로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댔다. 이를 두고 내용이 부실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더한층의 후퇴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큰소리 뻥뻥 치다가 재정 마련의 어려움을 내세워 공약을 어기거나 백지화하는 일은 너무 흔하다. 당장은 국내외 여론의 눈치를 살펴 그럴듯한 그림을 내놓지만 실제 이행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다.

정부는 1, 2안이 탄소중립이 아니라는 비판에 대해 “잔여 순배출량은 해외조림이나 국제 탄소시장을 통해 감축”하겠다고 답했다. 국제적 논의에 따라 그 규모를 늘릴 수 있다면 배출량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속셈으로 보인다. 주요 선진국들이 대체로 이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배출량을 ‘상쇄’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3안, 탈핵은 모르쇠

유일한 탄소중립 안인 3안의 경우 화석연료 발전을 완전히 없애고 전체 전력 생산의 71퍼센트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 그러나 이 안도 엉터리 계획들을 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무탄소 신전원’으로 전체 전력 생산의 21.4퍼센트를 대체한다. 핵발전도 전체 전력 생산의 6.1퍼센트를 담당하는데, 2050년에는 전력 생산량이 지금의 갑절로 늘어갈 것이므로 30년 뒤에도 핵발전소는 상당한 규모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탈핵’ 약속은 마치 없었던 일 취급하는 것인데, ‘탄소중립’ 약속은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전력 부문에서는 “탄소비용을 가격에 반영”하고 “시장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가격 신호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전국민적 참여를 통해 전력수요”를 줄이겠다고 한다. 가정용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겠다는 얘기다.

산업 부문에서는 에너지원을 석탄(21.5퍼센트)과 석유(50.1퍼센트)에서 전기(52.3퍼센트), 수소(36퍼센트)로 대체하는 계획이 핵심인데, 전력 생산은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안고 있고, 수소를 활용하는 기술은 대부분 아직 개발이 안 된 기술이다. 수소를 어디서 얻을 것인지도 미지수다. 정부 내에서는 이를 위해서라도 핵발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을 법하다. “배출권 거래제, 녹색금융 등 시장 주도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 유도” 등 말만 많고 그 효과를 믿기 어려운 시장 정책들이 강조돼 있기도 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정한 노동 전환’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보여 주듯 이번 시나리오에는 탄소중립을 위해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일자리에 관한 대책이 딱 세 줄로 언급돼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와 탄소중립

정부는 탄소중립시민회의를 만들어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거둔 효과를 이번에도 누리고 싶어한다. ‘숙의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취해 정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효과가 예전만치는 못할 듯하다. 정의당·진보당, 민주노총 등 노동계 단체들뿐 아니라 주요 엔지오들도 (옳게도) 탄소중립위원회와 탄소중립시민회의를 비판하며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대해서도 대부분 혹평을 내놨다.

‘각계’ 의견을 반영한다며 만든 탄소중립위원회는 민간 위원만 100명가량 되는데 그중에는 SK, 현대차, 포스코 등 화석연료 연관 대기업 임원진과 시멘트·석탄 등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화석연료를 다량 배출하는 기업주들도 포함돼 있다. 애초부터 ‘기후 위기 대응’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이들이 포함된 만큼 잘해 봐야 말잔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문재인 정부는 이런 일이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용해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양적인 차이는 있지만 바이든과 유럽 지배자들의 계획도 허점투성이다.(관련 기사: ‘권력자들은 정말로 기후 위기를 해결할까?’ 371호) 약속은 무성하지만 이행을 위한 강제나 규제, 정부 투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예전과 사뭇 달라보이는 목표들도 실제로 기후 위기 해결에 필요한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고 그 목표들조차 이뤄지리라 믿기 어렵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체제의 핵심 논리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 정부들의 ‘탄소중립’ 선언과 재생에너지 설비 증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석탄 발전량은 2021년에 팬데믹 이전보다 5퍼센트 늘어날 전망이다. 2022년에도 3퍼센트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가스 발전도 각각 1~2퍼센트 늘어날 전망이다.(IEA, 2021년 7월) 즉,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겠지만 전력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화석연료 발전도 늘고 온실가스 배출도 늘고 있다.

저개발국들은 재생에너지를 설치할 자본과 기술이 없지만 주요 선진국들은 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한국 기업들처럼 해외에 석탄화력 발전소를 건설하거나 영국 정부처럼 석탄을 해외에 수출해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손쉽게 회피하려 한다. 프랑스 상원은 기후 변화 대응 수준을 높이는 개헌안을 부결시켰다.

이처럼 경쟁하는 국가와 기업들로 나뉜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후 위기 해결은 요원하다.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를”이라는 구호가 전 세계 기후 운동에서 인기를 얻은 까닭이다.

이런 구호를 현실로 만들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전략을 둘러싼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산불에 휩싸인 터키 산지, 기후 재난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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