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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주일 담화’ 논란:
염수정 추기경의 동성애와 가족에 대한 편협한 인식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이 ‘생명주일(5월 2일)’을 맞아 발표한 담화문(“가정과 혼인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염 추기경은 이 담화문에서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며, 혼인과 가족에 대한 편협하고 보수적인 주류 가톨릭 견해를 다시금 표명했다. 또, 차별금지법의 성소수자 관련 조항과 여성가족부의 ‘법적 가족 범위 확대 정책’에 대해서도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윤리관과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보수적인 가족 개념을 설파하며 성소수자 차별을 부추긴 염수정 추기경 ⓒ출처 코리아넷

이 담화문은 주교회의가 2011년부터 지정·기념하는 ‘생명주일’을 맞아 발표한 것이지만, 최근 여성가족부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 추진과 민주당 이상민 의원의 평등법(차별금지법) 발의 임박을 겨냥한 것이다.

그간 개신교 우파들은 이 둘을 모두 “가족 해체”, “동성결혼 합법화 시도”라고 과장·왜곡하며 극성스럽게 반대해 왔다. 보수 가톨릭도 이번 담화문을 통해서 여기에 힘을 보탠 것이다.

담화문 발표 뒤인 4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통과됐다. 보수 종교계가 반발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가족 개념 확대와 비혼 출산 지원과 관련한 것이다. 여가부는 건강가정기본법·민법에서 가족의 범위를 “혼인, 혈연, 입양”으로 협소하게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고, 비혼 인공 출산에 대해 사회적 논의·연구를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법이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괄해야 한다는 것으로, 진일보한 방향이다. 하지만 우파들의 왜곡과는 달리 여가부의 계획에 동성혼 인정은 포함돼 있지 않다. 가족의 범위 확대나 비혼 출산에 따른 법과 제도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개신교 우파들과 보수 가톨릭이 이에 반발하는 것은 자신들의 보수적인 성 관념 수호에 방해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성애 혐오, 낙태 반대 등의 주장을 계속 펼치며 보수적인 가족 개념을 고수하려 한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도 성소수자들이 겪는 지독한 차별을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정말 최소한의 장치라 할 수 있다.

가톨릭이 이런 작은 개혁조차도 이렇게 야멸차게 반대하는 것은, 정말이지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못 될망정, 차별과 혐오로 인한 소수자들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일’(정의당 장혜영 의원)이고, 차별·혐오에 힘을 보태는 일이다.

보수적

염 추기경은 담화문에서 동성애를 비난하며 보수적인 성 관념을 설파했다. 동성애 성향이 “객관적인 무질서”이고, 동성애 성향이 타고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동성 간 성관계는 몸을 “단지 이기적으로 이용되는 도구”에 불과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비난했다.

그는 동성애 성향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폭력적인 언사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담화문 전체가 동성애 차별적이다. ‘동성애 성향은 존중하지만 성행위는 하지 말라’는 건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향을 죄악시하며 억누르라는 것이다. 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젠더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며 허상인 것처럼 호도하는데, 이는 동성에 끌리거나 출생시 성별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해 왔다는 진실을 무시한다.

같은 맥락에서 염 추기경은 혼인과 가족의 의미를 “평생을 건 [남녀] 부부의 일치와 사랑, 그리고 자녀 출산과 양육”으로 협소하게 규정하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관계를 폄하하거나 부정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남녀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은 전체 가구의 30퍼센트도 안 된다(1~2인 가구가 60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 혼인과 출산이 감소해 왔는데, 특히 젊은층에서는 결혼을 선택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다. 비혼 동거,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지원책이 전무한 것에도 불만이 높다.

유럽 등지에서는 결혼하는 커플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혼외 출산도 많다. 오늘날 EU 국가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43퍼센트는 혼외 출산이다. 이런 변화를 반영해 동거 커플에도 법률혼과 유사한 혜택을 주는 입법이 해외의 여러 나라들에 도입돼 있다.(관련 기사: 본지 356호, ‘자본주의와 변화하는 가족: 왜 지배자들은 결혼·출산에 이래라저래라 할까?’)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들도 있다. 가톨릭의 영향력이 큰 아일랜드에서는 국민투표로 동성혼이 합법화됐는데, 많은 가톨릭 신자들도 이에 찬성했다.

보수주의자들이 떠받드는 가족 개념은 인간 본성을 나타내는 게 아니다. 계급사회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가족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양한 성적 관계가 인정됐다. 핵가족이 자연스럽다는 관념은 불과 1~2백여 년 전에 생겨났을 뿐이고, 이조차 계속 변하고 있다.(관련 기사: 본지 183호, ‘가족은 변치 않는 인간 본성의 산물이 아니다’)

변화하는 현실 때문에 혼인과 가정에 대한 보수 가톨릭의 견해는 오늘날 신도들 사이에서도 모두 수용되지는 않는다.

가톨릭 내에서도 소수지만 성소수자를 방어하는 목소리도 있어 왔다. 예컨대 가톨릭 내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속 단체이고 성소수자를 방어한다. 최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성서와함께’는 성소수자를 앞장서 방어하는 미국의 제임스 마틴 신부의 책, 《다리놓기》를 번역 출간했다.

염 추기경의 ‘생명주일 담화’는 성소수자 차별적일 뿐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을 역행하려는 매우 편협하고 보수적인 견해일 뿐이다. 이런 견해에 대한 가톨릭 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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