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기본소득 공약을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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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와 함께 ‘기본소득 – 복지국가의 21세기 대안이 될 수 있을까?’를 읽으시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12월 5일 전북 유세에서 ‘농촌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의지도 확인했다.
“기본소득은 논쟁이 많아서 당장 시행하진 못할지라도 미래사회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이재명 후보의 대표 공약이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경기도지사 시절까지 청년배당 등 이른바 부분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해 왔고, 대통령이 되면 전 국민 보편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가 올여름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가장 먼저 발표한 공약도 기본소득 지급이었다.
월 2만 원 정도에서 시작해, 대통령 임기 내 월 8만 원 수준(1년 100만 원, 25만 원씩 4회 지급)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여기에 만 19~29세 청년들에게는 2023년부터 연 100만 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이다. 최종목표는 1인당 월 50만 원을 제시했다.
이 돈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면, 밑바닥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연 100만 원 지급을 위한 재원으로는 국토보유세, 탄소세, 조세 감면 폐지 등을 제시했다.
국토보유세는 토지 보유에 따른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세금으로 부자 증세에 해당한다. 탄소세는 배출 감축을 위해 도입해 그 일부를(나머지는 산업 전환에 사용) 기본소득 배당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증세로 걷은 돈을 모든 국민에게 “균등 지급”(배당)하면 조세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와 기본소득 지급을 연계시킨 것은 이재명 표 기본소득 공약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억강부약(강한 쪽을 억눌러 약한 쪽은 돕는다)” 슬로건과 부합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재명은 민주당 주류가 가하는 온건화 압력을 일부 수용해 친기업 발언을 대폭 늘리고 노동공약 발표도 미루고 있다. 그 여파로 최근 이재명이 기본소득에서 후퇴할 조짐을 보인다며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가 독자 출마했다.
우파의 반대
국민의힘을 비롯한 우파들은 이재명의 기본소득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부자 증세에 반대한다. 이재명의 국토보유세는 종합부동산세를 더 확대해 그동안의 기업 소유 비과세 대상 토지 등까지도 세금을 부과한다. 기본소득 지급으로 국가 부채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할 것이다.
또, 기본소득의 보편성 원리가 국가 복지와 소득 보장을 개인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려울 것이다. 우파들은 가난하다는 낙인 효과를 내는 잔여적 복지를 (마지못해) 지지해 왔다.
사실은 국민의힘도 총선 참패 후 김종인에게 당권을 맡겼을 때 정강에 기본소득을 포함시켰었다. 이재명도 이번에 이 점을 꼬집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도 동의한 일이고, 국민의힘 정강 정책 1조 1항에도 있다.”
심지어 우파는 이재명 기본소득 공약이 액수가 적다고도 비판한다. 예컨대 친박 실세였고 지금은 윤석열의 국민의힘 내 초기 후견자 구실을 했던 김재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후보가 내놓은 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월 5만 원 주면 지하철 정기권 요금 수준인데, 그게 무슨 소득인가.”
그러나 우파들이 기본소득을 정강 정책에 포함시키고, 기본소득의 액수를 문제 삼는 게 복지 전반을 늘리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정반대다.
우파가 오세훈의 안심소득처럼 기본소득 비슷한 걸 얘기할 때는 그 반대급부로 다른 복지를 대폭 삭감하는 조건부 방안이다. 복지 총액이 늘지 않으니 증세할 필요도 없다. 정부가 직접 맡는 복지를 줄이고 일종의 바우처처럼 복지 시장화를 뒷받침하는 제도로 이용할 수도 있다.
게다가 기존 복지를 삭감하고 기본소득으로 통폐합하자는 발상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킨다. 더 형편이 어려워 복지 혜택을 받고 있는 서민들에게는 손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필요할 땐 언제든’이라면, 필요에 따른 선별성은 정의로울 수 있다.
무엇보다 우파들은 “억강부약” 정신에 입각한 이재명의 기본소득 공약이 경제 침체 등 위기에 직면한 대중의 사기를 고무할까 봐 우려한다. 그리고 이재명의 대표 공약을 흠집내어 대선에서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파의 비판은 똑같은 재원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쓸 것이냐는 좌파 내의 이른바 ‘가성비’ 논쟁과는 다르다.
전 국민에게 월 50만 원을 지급하려면 GDP의 15퍼센트 정도인 300조 원가량이 든다. 이 액수면 의료·교육·교통 등을 무상화해 보편 서비스로 만들고,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서민에게 무이자 대출 지원 같은 것을 실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노후 기초연금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재명의 기본소득은 지급액수가 너무 적다. 월 8만 원이면 딱 출퇴근 교통비 수준이다.
결국 좌우파 모두의 비판에 직면해 좌파적 기본소득론자들 스스로 기본소득의 요건 가운데 충분성 요건을 삭제했다.
그래서 당장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충분히”라는 기본소득 정신에 충실하기보다는 그것의 변형으로 청년기본소득, 노인 기본소득(기초연금 확대), 농민기본소득(경기도에서 실행 직전이다) 등을 동시에 제안하고 있다.
전환
이재명은 자신의 기본소득 공약이 계급 이해 절충 방안이라고 강조한다.
“기본소득은 증세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조세부담률을 올리고, 복지지출을 늘리면서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정책[이며] … 시장경제를 살리는 가장 유효한 핵심 정책입니다.”(기본소득 공약 발표)
이는 노동자·서민 대중, 부자, 기업주 등 화해하기 힘든 이해관계들을 절충시키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장기 경제 침체의 시대에 자본의 이윤을 최우선순위로 하는 시스템과 충돌하지 않고도 “모두에게 유리하다”고 설득해 개혁 조처를 시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공상에 가깝다.
이재명 자신도 최근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1회성 25만 원)을 요구했다가 결국 철회했다. 정부 관료들이 꿈쩍도 안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청와대도 이재명의 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최근 경제 침체로 일자리와 소득 위기가 깊어지면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데다 기후 위기 대응 등 때문에 산업 전환의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 폭등은 시장에 강력히 도전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정의당·진보당 등 개혁주의 진영 안에서 최근 기본소득뿐 아니라 일자리보장제, 주4일제, 대규모 공공주택 공급 등 노동·복지 관련 제도들의 전면적 ‘전환’이 강조되는 배경이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보편적 복지의 대폭 확대를 뜻할 것이다.
지난 2년간 1인당 20여 만원 수준의 일회성 재난지원금 지급에도 벌벌 떠는 기업주와 우파, 정부 관료들의 반응을 생각해도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대중 투쟁이 필요불가결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좌파적 기본소득론자들은 현실의 계급투쟁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심할 경우는 그것에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4차산업혁명
이는 4차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감소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 담론이 현실에 별로 부합하지도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투지와 사기를 낮추는 데 이용되는 과장된 논의일 뿐인데도 말이다.
이재명도 전북 유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일자리가 대폭 줄어든다. 노동으로 삶을 책임지는 시대가 가고 있다.”
좌파적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이 노동하지 않을 자유(자본에게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을 자유)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기본소득론은 정작 그런 압력을 창출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진정으로 도전하기보다, “모두에게 유리한” 정책으로 체제를 우회하려 한다는 약점을 보인다. 최저임금에도 모자라는 기본소득이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려는 투쟁을 대체할 수는 없다.
참고로, 좌파적 기본소득 운동 안에서 녹색당이 월 80만 원을 내놓은 것이 가장 높은 목표액수고, 이재명도 최종 목표가 월 50만 원이다.(오준호 기본소득당 대선 후보는 월 65만 원을 공약으로 내놨다.)
사실 기존 복지 삭감 없이 월 50만 원 기본소득 지급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폭넓고 지속적인 대중운동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좌파적 기본소득론자들은 선거와 득표를 통한 정책의 현실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재명은 최근 국토보유세와 탄소세의 명칭을 각각 토지불로소득 배당, 탄소 배당 식으로 바꾸려고 한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기본소득 슬로건에 맞게 재포장해 보겠다는 것이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공유부 배당)”는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나 승자독식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담론으로 유용할 수 있지만, 현실의 엄연한 계급 갈등을 헛되이 무마하려는 계급타협적 성격도 짙다.
결국 좌파적 기본소득론자들은 폭넓은 반자본주의적 대중 운동의 건설·결합을 강조하기보다 체제나 부자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계급타협적 주류적 개혁)으로 나아가고 있다. 입법에 초점을 두면, 우파도 받아들일 ‘합리적 제도 논의’에 매몰되고 말 것이다. 잡담 장소가 따로 없을 것이다.
이재명의 기본소득 공약이 갖는 모순과 약점은 기본소득 운동의 태생적 약점과 무관치 않다. 당장의 개혁 염원에 충분히 부합하지도 않고 대중 투쟁에도 기여하지 않는 기본소득을 좌파가 굳이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의료·교육·교통 등의 무상 제공과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라는 요구와 운동이 필요하고 또 계급투쟁과 잘 결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