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년:
이윤 시스템과 대중 안전을 도외시한 국가가 참사의 진정한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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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오늘(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세계 최악의 지하철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된 화재 참사가 벌어졌다. 192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151명에 이르렀다.
일차적인 원인은 한 개인의 방화였다. 그런데 단 2리터의 휘발유에서 시작된 불이 3시간여 만에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던 열차 두 대(객차 12량)를 전소시켰다. 전동차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불쏘시개처럼 타오르며 유독가스를 미친듯이 내뿜었다.
이 참사를 ‘살인마 기관사’의 탓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승객들이 열차 안에 갇혀 있는데도 기관사가 ‘마스터콘트롤키’(시동을 켜고 끌 때 전력을 공급하거나 차단하는 열쇠)를 뽑아 달아나는 바람에 사람들이 전동차 안에 갇혀 사망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사 직후 (방화범과 함께) 기관사 노동자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마스터콘트롤키를 뽑기도 전에 이미 화재로 인해 열차가 멈춰 버렸던 것이다. 출입문 개폐를 담당하는 공기 호스가 불에 잘 타는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설비가 타 버리니 출입문이 저절로 닫힌 상태가 됐다.
비용 절감
핵심은 어떻게 화재와 유독가스가 이토록 급속하게 방출됐는가 하는 점이었다. 조사 결과, 전동차 내부 설비에 돈을 덜 투자한 대구지하철공사의 책임이 드러났다.
당시 한진중공업, 대우중공업, 현대정공이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였다.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한진중공업이 낙찰됐는데, 그 가격이 객차 한 량당 6억 2000만 원이었다. 2003년 당시 국내에 납품되는 객차 한 량 가격이 12억 원이고 홍콩 등에 수출되는 가격이 18~20억 원이었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다.(대구시백서, 2005년)
그런 탓에 대구지하철 내장재는 불이 잘 붙는 값싼 소재로 채택됐다. 2003년 감사원이 참사 당시 대구지하철과 동일한 전동차 의자와 바닥을 설치해서 화재 시험을 한 결과 내장재는 7~10분 만에 전소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지하철뿐 아니라 부산, 인천 등 다른 지역 지하철 6곳도 표본 조사한 결과 모두 불량 내장재와 단열재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그중에서도 대구지하철의 불량률이 특히 더 높았다.
비용 절감은 인력 감축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대구지하철 개통 시점은 IMF 위기 국면이었고 도처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참사 당시 대구지하철공사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이원준 씨는 1인 승무제가 참사 당시 위험을 증폭시켰다고 말했다.
“승강장에도 안전요원이 없는 것이고, 또 역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그 당시에는 4~5명 정도뿐이어서 평소 승객을 대피시키는 것이 훈련되어 있지 않았어요.”(《재난을 묻다》(2017) 중에서)
유가족단체인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윤석기 위원장도 이렇게 말했다.
“안전 교육은 ‘전파교육’이라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모두가 받아야 하는 건데, 대표 한 명만 뽑아서 받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대구시장과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의 책임입니다. 현장 종사자들에게는 자의적인 판단을 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시명령 위반입니다.”
책임 전가
그럼에도 처벌은 방화범과 기관사 노동자, 전동차 운행 사령실의 노동자, 화재 감지기 감시를 담당한 노동자, 역무 노동자 등 현장 근무자들에게 집중됐다.
1인 승무 도입, 불쏘시개 전동차 구입 등에 대한 의사 결정 권한이 있었던, 즉 참사의 진정한 원인을 제공한 고위 책임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대구지하철공사 사장 윤진태는 산업안전법 위반으로 기소됐지만 고작 벌금 300만 원만 내고 책임을 털었다.
공사 사장과 대구시장은 참사 다음 날 군병력까지 동원해 사고 현장을 물청소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항의하던 유가족들은 현장 청소 후 버려져 있던 쓰레기 더미에서 14명분의 사체와 146명의 유품을 직접 골라내는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이 일로 공사 사장과 대구시장은 증거 인멸 혐의로 고발당했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자기 당 소속 대구시장이 고발당하자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정치세력”의 짓으로 몰면서, 이태원 참사나 세월호 참사 때처럼 유가족들을 비난했다.
이 참사를 겪은 뒤 대구지하철 노동조합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파업에 나섰다. 이를 통해 1, 2호선의 안전요원 확충, 전동차 내장재 교체, 안전방재시설 확충 등의 성과를 얻었다.
당시 노조 위원장이었던 이원준 씨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이 지하철 안전을 제대로 지키기 않고서는 시민의 안전도 지킬 수 없고, 조합원의 안전도 지킬 수 없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아닌 안전 문제로 노동조합이 파업한 것은 ‘불법 파업’이라며 노조 위원장을 형사처벌했다.
참사 당시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은 취임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의에서 “하늘을 우러러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집권 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인재형 참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참사의 고위 책임자들이 아닌 말단 개인들만 처벌받는 패턴도 계속되고 있다.
이윤 경쟁 속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을 내팽개치는 기업들, 그들 편에서 안전 규제와 공공 지출을 줄이고 노동자 등 서민을 통제·감시하기에만 급급한 국가 시스템이 항상 그 배경에 있다.
이태원 참사라는 또 다른 비극을 겪고 있는 지금, 억울한 희생들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참사에 대한 항의와 사회 전체의 우선순위를 바꾸기 위한 투쟁, 윤석열의 책임을 묻는 투쟁들이 연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