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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정부와 기업의 이윤 우선이 피해 규모 키웠다

참혹한 참사 현장 콘크리트 둔덕으로 돌진해 폭발한 사고 비행기 ⓒ출처 무안소방서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경위가 불완전하나마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1월 1일 국토부는 관제탑-조종사 간 교신 내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조종사는 8시 58분 첫 착륙 시도가 실패한 직후(사고 발생 4분 전) 새떼와의 충돌을 뜻하는 “버드 스트라이크”와 긴급 조난 신호 “메이데이”를 여러 차례 외쳤다.

1~2분 뒤 조종사는 관제탑의 2차 착륙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1차 착륙 시도 때와 달리 랜딩기어(착륙 바퀴)가 내려오지 않은 상태에서 동체를 바닥에 끌며 착륙을 시도해야 했다. 그러나 비행기는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결국 9시 3분 활주로 끝 콘크리트 둔덕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전문가들은 랜딩기어 외에도 작동해야 했던 다른 여러 제동 장치들(날개가 들리면서 속도를 줄이는 등)도 작동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2월 30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여러 전문가들을 인용해 버드 스트라이크만으로 각종 안전 장치가 모두 멈출 가능성은 낮다며,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조류 충돌과 배제할 수 없는 기체 결함 가능성

버드 스트라이크 이후 모종의 연쇄 작용으로 주력 엔진 두 개가 모두 손상되고 그에 따라 전원 공급 자체가 끊겼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조종사의 운행 실수가 있지 않은 한, 엔진 두 개 중 하나만 손상된 경우에는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난 신호 이후 관제탑과의 교신에 장애가 발생하고 관제탑 레이더상에서 사고 비행기가 사라진 사실도 이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다. 이는 관련 장치의 손상 때문일 수 있지만 전원 공급 중단 때문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기체 자체의 결함이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제주항공 측은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비행기 자체에는 결함이 없었다고 발표했다. 유가족들은 분노했다.

버드 스트라이크가 사고의 시작이었다고 해도, 기체 결함이 상황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새떼와 충돌한 엔진이 아닌 나머지 엔진에 왜 문제가 생겼는지(엔진이 여러 개인 이유 자체가 엔진 사고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랜딩기어가 왜 작동되지 않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기체 결함 규명의 핵심 자료는 블랙박스의 비행기록장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장치는 엔진 상태를 포함해 주요 비행 데이터를 초당 여러 번 기록한다.

국토부는 국내 기술·설비로는 분석하기가 어렵다며 미국으로 보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 미국의 항공기 제조사 보잉의 문제점은 충분하게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 현재 구성된 한·미 합동 조사팀에는 미국연방항공청(FAA) 외에 보잉사 관계자 4명도 포함돼 있다.

김인규 항공대학교 비행교육원장 등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촘촘한 운행으로 인한 기체 피로도와 부족한 정비 시간이 사고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제주항공 비행기들이 한 대당 월평균 418시간을 운행해 타 항공사에 비해 최대 78시간이나 많고, 사고 비행기의 경우 사고 직전 이틀 동안 공항 8곳을 13차례나 운행했음이 알려졌다.

참사 다음 날 오전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같은 기종의 제주행 제주항공 7C101편이 이륙 직후 랜딩기어 이상이 발견돼 급히 회항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2월 31일 윤석열 체포 촉구 촛불행동 집회에 수천 명이 모여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이미진

콘크리트 둔덕, 짧은 활주로, 부족한 안전 인력

사고 피해의 규모를 키운 결정적 요인인 무안국제공항의 시설 구조와 운영상의 문제가 하나둘 조명되고 있다.

특히, 활주로 끝에 있었던 콘크리트 둔덕 문제다. 이 둔덕은 항공기의 착륙을 돕는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의 고정 받침대였다.

2미터 높이의 이 둔덕은 겉보기에는 그저 흙더미처럼 보인다. 정말 흙더미에 불과했다면 비행기는 ‘오버런’(초과 질주)해서라도 속도를 점차 줄여 인명 피해를 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흙더미 안에 널찍하고 두꺼운 콘크리트 기둥 19개와 상판이 숨어 있었다.

영국 항공 전문가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활주로 끝에 단단한 구조물이 있다는 것은 사실상 범죄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주무기관인 국토부는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 국토부는 처음에 이 콘크리트 둔덕이 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관료적으로 답했다. 그러나 국토부가 시행하는 공항시설법 세부 지침이나 국토부 고시 기준에 따르면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함이 드러났다. 이러한 반박이 제기되자 국토부는 “규정을 확인해 보겠다”며 말을 바꿨다.

설령 국토부 주장대로 현행 규정 위반이 아니라 해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이번 참사가 그 규정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활주로 끝에 콘크리트 둔덕이 있는 국내 공항이 여럿이라는 게 드러났다. 개선하지 않으면 비슷한 사고가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안전 구역

짧은 활주로와 종단안전구역의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종단안전구역은 비행기의 활주로 이탈에 대비해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확보해 두는 안전 구역이다. 최소 90미터, 권고 기준 240미터를 확보해야 한다.

활주로와 안전 구역의 길이가 짧으면 비행기 동체가 지면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속도를 줄일 여지가 제한된다.

무안공항은 2007년 개항 직후부터 지난해 5월까지도 활주로와 로컬라이저(즉, 둔덕) 사이의 안전 구역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아 안전 규정을 위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문제를 방치한 것이다.

공항 측은 공항이 흑자를 내어 향후 부지를 확장할 필요가 생기면 안전 구역도 그때 연장하겠다며 미뤘다.

그런데 실제로 부지 확장 계획이 있었다. 2015년부터 국토부는 대형 항공기 취항을 위해 무안공항 활주로를 400미터 확장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2023년 완공이 목표였던 계획과 달리 공사는 2025년으로 미뤄졌다. 예산 부족 때문이었다. 그중에는 1만 2700평 규모의 사유지 편입 보상 문제도 있었다.

안전보다 비용 절감 문제가 앞섰던 것이다.

조류 사고 대비

버드 스트라이크 사고에 대비하는 안전 투자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새는 크기가 작아서 일반 관제 레이더(넓은 범위에서 주로 크기가 큰 금속성 물체를 탐지)로는 놓치기 쉽다. 그래서 특수한 조류 탐지 레이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레이더를 설치한 공항이 국내에는 한 군데도 없다.

무엇보다 새떼가 갑자기 움직이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하려면 인력이 직접 공항과 주변 부지 곳곳을 24시간 누비며 관찰하고, 음파나 사격 등 각종 방법을 사용해 퇴치 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모든 공항은 필수적으로 조류 등 야생동물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인력이 있다. 소방과 함께 “생명안전업무”로 분류된다.

문제는 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는 인천국제공항의 경우에도 단 46명이 4조 2교대로 1700만 평의 공항 부지를 관리한다.

무안공항은 버드 스트라이크 발생률이 전국 공항 중 가장 높다. 그런데도 조류 퇴치 인력은 단 4명에 불과하다. 그마저 3조 2교대로 근무하는데, 사고 당일은 주말이어서 단 한 명이 바깥에서 퇴치 활동을 하고 있었다. 78만 평 규모 부지를 혼자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 열흘 전 무안공항 내 사무실에서는 조류 충돌 우려를 논의하는 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이때 조류 퇴치 실적이 지난해보다 14퍼센트 줄어서 걱정이라는 제기가 나왔다. 대응할 인력과 차량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취해진 조처는 없었다.

안전 사고 대비에 철저하지 못했던 정부와 공기업이 이번 사고의 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애경그룹과 윤석열 정부 고위 관료들의 유착

유가족들은 잃어버린 부모 형제의 시신을 인도받기 위해 여전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가족에게 인도된 시신은 아직 40여 구에 불과하다.

유가족들은 국토부의 늑장 대응에 분노해 성토하기도 했다. 신원 확인이 늦어졌을 뿐 아니라 오락가락했고, 시신 부패를 막을 냉동 컨테이너는 약속보다 늦어 며칠이나 “시신들이 격납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박한신 유가족협의회 대표)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이런 울분 터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대형 참사의 시작과 끝은 정부와 기업들의 우선순위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안전에 있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은 참사도 사법 기관들이 거듭 책임자들을(특히 고위직) 솜방망이 처벌하거나 무죄로 풀어 주기 일쑤이고, 그로 인해 인재형 참사는 반복되기 일쑤다.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애경 그룹은 이를 보여 주는 사례다.

애경은 사망자만 무려 1만 4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가습기 살균제 책임자 중 하나이다. 피해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는데 책임자인 애경은 아직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지난 12월 26일 대법원은 항소심의 유죄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윤석열 정부에는 이윤에 눈먼 이런 기업이라도 두 팔 걷어붙이고 지원해 줄 고위 관리들로 넘쳐난다. 윤석열 정부의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자 윤석열과 함께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인 이상민은 애경 그룹의 사외이사를 장관 임명 전까지 지냈고, 민정수석 김주현은 김앤장 변호사 시절에 제주항공의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을 올해까지 지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연관된 몇몇 인물뿐 아니라 정부의 국정 우선순위와 방향 자체가 기업주의 이익에 호의적이었다. 예를 들어, 사고 비행기가 사고 전 이틀 동안 쉬지 않고 운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해당 기종에 지정한 최소 정비 시간이 불과 28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종단안전구역의 길이 규정도 ‘최소’와 ‘권고’ 기준만 둬 후자의 의미를 무색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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