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경제·정치 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므로 운동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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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동안에 윤석열 정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급증했고(더구나 청년층에서 정부 지지가 급감했다), 이에 대응해 윤석열 정부도 법질서를 앞세운 강경 조처를 취하면서 급속히 우경화해 왔다.
대중의 반감은 생계 악화라는 경제적 곤경이 주요인이다. 그러므로 먼저 경제 위기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실리콘밸리뱅크 파산과 크레디스위스 은행 파산 일보직전 사태에서 봤듯이 지금 글로벌 금융 위기 가능성은 실질적이다. 실리콘밸리뱅크와 크레디스위스 은행 사태 수습에서 봤듯이 지난 몇 달 동안은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의 급격한 악화 가능성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하지만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커져서 돌아올 수 있다.
기업들이 임금 인상도, 이윤 감소도 극도로 기피하고 있으므로 정부와 금융기관들은 금융 긴축을 시행해 왔다. 이는 소비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고, 이는 경기후퇴를 촉진할 공산이 크다.
금융 위기는 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번지고 실물 경제로 번지며, 이는 금융 위기를 더 악화시키며 실물 경제의 위기와 맞물려 악순환을 빚는다.
한국의 5대 은행이 떠안고 있는 시한폭탄인 잠재적 부실 대출금 37조 원이 가을에 터질 수 있다는 금융권의 걱정이 태산 같다. 보험사와 증권사, 저축은행, 곧 제2금융권의 위기가 진행 중인데, 5대 은행이 비상 체계를 가동한 것을 보면 금융 위기는 제2금융권을 넘어 닥칠 수도 있는 듯하다.
특히, 생계비 압박을 받아 온 수많은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가계 빚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평균적인 가계 부채는 가처분소득의 2배가 넘어 OECD 6위나 된다. 전세 대출을 포함하면 OECD 1위라고 한다.
1930년대 대불황이든 2010년대 이후 경기침체든 유사성이 있다. 그것은, 일단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신용이 경제 위기를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에서 신용이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한다. “신용 체계는 생산력 증대와 세계 시장 확장을 가속시키면서도, 위기를 난폭하게 분출시키고 그럼으로써 구래의 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킨다.”
정치 상황 급변 가능
경제 위기가 급속히 악화되면 전반적인 정치 상황이 확 바뀔 수 있다. 1997~98년의 소위 IMF 위기와 2008~09년의 월스트리트발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 말이 뭘 뜻하는지 알 것이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이 당선돼 1961년 이후 역사상 최초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당시에 한국 지배계급이 IMF를 불러들인 심각한 경제 공황으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일시 잃었기 때문이다.
물론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김대중의 집권으로 지배자들은 상황 통제력을 되찾았다.
2008~09년 월스트리트발 경제 공황은 월스트리트와 이후 그리스와 스페인 등지에서 광장 점거 운동을 촉발했다. 그리고 광장 점거 운동은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 DSA와 시리자와 포데모스 등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의 등장을 촉진했다.
이런 흐름에 타흐리르 광장 점거와 이집트 혁명이 포함됐던 일을 놓쳐선 안 된다. 즉, 2008~09년 경제 공황은 이집트와 아랍 나라들에서는 좌파적 개혁주의 정치가 아니라 혁명을 촉발했던 것이다.
위기의 정치적 효과
아랍 혁명이든 유럽의 좌파적 개혁주의든 결국 다 실패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 공황이 닥친다면 새로운 정치적 격변이 전개될 것이다.
그 격변은 어쩌면 파시즘이나 극우가 오른쪽 중심을 차지하는 그림이 될지도 모른다. 그림의 왼쪽 중심을 차지할 세력이 또다시 좌파적 개혁주의일지, 그보다 더 좌파적인 급진 좌파일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2019년경부터는 시리자와 포데모스, 제러미 코빈의 실패로 그림 전체로 보아 오른쪽에 무게중심이 있어 왔고, 혁명적 또는 급진적 좌파가 그림의 왼쪽 중심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2008~09년 경제 공황의 여파 속에서 전개된 한국의 노동자 운동은 4년 뒤 우파 정당을 정부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대신에 그 4년 뒤인 2016~17년 초에 박근혜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중도계 문재인의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고, 기층에서는 민주노총과 정의당, 진보당 등 좌파 세력이 득세했다.
그러나 문재인의 배신과 좌파의 포퓰리즘 전략 실패로 계급간 세력균형은 지배계급에 유리하게 기울었고, 그 덕분에 윤석열이 집권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1년도 채 안 돼 급속히 우경화하기 시작했다. 윤석열은 2주 전쯤 전임 문재인 정부에 “반국가 세력” 낙인을 찍는 극우적 발언을 했고, 뉴라이트 출신 극우 인사를 통일부 장관에 임명했다. 이밖에도 많은 반동과 억압 강화를 윤석열 정부와 국힘은 꾀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국가 기구들 안에서의 세력 균형이 자신들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아서 여권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은 듯하다.
대중의 반감과 정치적 표현의 격차
윤석열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윤석열 퇴진 집회의 규모 증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광범한 대중에게는 대통령 퇴진이 급박하게 다가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9개월 뒤면 총선인데 굳이 대통령을 퇴진시키려 해 봤자 국회의 탄핵 소추다 헌재의 탄핵 인용이다 하면 그 시간 다 가지 않겠느냐’ 하고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또는, ‘윤석열을 퇴진시켜 봤자 또 민주당 정부일 텐데 1년여 전에 경험한 바로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국힘과 민주당 외에 다른 신통한 대안이 있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금태섭 신당이 만들 ‘제3지대’는 기회주의적으로 국힘과 민주당 사이에서 찾는 여백이 될 것임이 뻔하기 때문이다. 류호정·장혜영·조성주 같은 정의당의 매우 온건한 청년 정치인들이 거기에 가세할 것 같다지만 말이다.
정의당은 확고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어수선하고 술렁이느라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신당 설립식 재창당으로 왼쪽 날개를 약간 보강하겠지만 그걸로 충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중에게서 소원해지고 있는 공직자들의 세계
공식 정치의 우경화가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다. 공식 정치라는 말은 공직자들의 정치를 말한다. 공식 정치 우경화는 서구에서는 인종차별과 난민 공격 강화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며칠 전 미국 대법원이 소수인종 우대 대입정책을 위헌으로 결정한 일이나, 프랑스에서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10대 소년 하나가 경찰의 공격으로 피살당한 일은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일 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가 된 데서 보듯이 파시스트들이 집권 가능한 정치 세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공식 정치 전체라기보다는 그 우파인 여권이 우경화하고 있고 민주당은 그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은 특히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문제를 놓고 장외 투쟁도 불사하고 있다. 그 쟁점뿐 아니라 사사건건 여권과 민주당은 언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공식 정치가 여권의 급격한 우경화 때문에 내부적으로 양극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소위 제3지대론이 일부 온건한 개혁주의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반면 덜 온건한 개혁주의자들로부터는 큰 반향을 못 얻고 있다.
분노를 운동으로
그러나 공식 정치와 대중 정서 사이에서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훨씬 중요하다.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얼마 전 연금 개혁 추진 때 우리가 보았고, 지금 경찰 만행 규탄 빈민가 청년 소요에서 보듯이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영국 보수당 정부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표현을 빌리면 “난장판”이다. 한국의 윤석열도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도 설득하지 못했고, 사실 MZ노조라는 곳도 포섭하지 못했다. 더구나 민주노총은 윤석열 퇴진을 요구의 일부로 내놓기까지 했다. 최저임금 문제를 놓고도 노사 양쪽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 연대〉 신문 독자들 중에는 2년 전 넷플릭스에서 스트림 된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건 대중의 정서가 기성 질서에 대한 반감으로 차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메타포이자 한국 사회에 대한 메타포임은 잘 알려져 있다. 제1화만 보더라도 막대한 가계 부채에 짓눌려 있거나 기타 절망적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그 무시무시한 게임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주류 정당들에 불만이 많음은 지난 4월 재·보선 결과에도 일부 반영돼 있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20여 년 전부터 노동조합 운동과 대출금리인하운동의 전북지역 기층 활동가여서 지역의 광범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천창수 신임 울산교육감도 현대중전기 노동자 운동 출신이자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출신이고 교사 운동 출신이다.
공직자들의 일부(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등)는 대중이 선거로 뽑는다. 그러나 기층 대중의 정서가 공식 정치로부터 멀어지고 있거니와, 자본주의 선거 참여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비해 부차적이다. 그러므로 혁명적 좌파는 아래로부터의 운동 수위가 상승하고 좌파가 그 운동을 키울 때, 즉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이 서로 맞물리는 그때 일정한 선거적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가령 볼셰비키 당이 국회의원 여섯 명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1912년부터 제1차세계대전 개전 때인 1914년까지 일간 〈프라우다〉 신문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면서 주요 도시들에 수많은 〈프라우다〉 지지자 모임들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노동운동 속에서 보는 급진적 전망
그런데 어떤 혁명적 좌파는 지금 현장 조합원 신문과 현장 조합원 운동을 구축하려고 하는데, 그건 그전에 필요한 전술을 건너뛰는 것이다. 먼저 기업이나 업종이나 산업의 공식적인 노조 집행부가 파업을 지시하도록 아래로부터 압박을 가하고, 그게 절반만 성공한다든가 실패한다면 그때야 비로소 독자적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일반 조합원들 네트워크는 지금부터 구축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 그런 활동과 조직에 착수하려다가는 노조 집행부 선거 승리에 관심 있는 자들만 결집시키게 될 것이다. 현장 조합원 운동은 집행부 선거나 정책 회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집단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왜냐하면 파업 참가자들의 역할이 그저 투표나 하고 사태 추이를 방관하는 것에 국한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기존 집행부가 그런 운동을 일으키기를 회피할 때 그런 운동을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 그런 조직은 아마도 파업위원회의 형태를 취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 노조 집행부는 자기들이 그런 역할을 하므로 그런 기구가 필요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남아공이나 브라질,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민주노총 같은 좌파적 노동조합의 위신이 대단해서 조합원들이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투쟁 수위가 한껏 올라가고 민주노총 소속 조직(연맹이나 기업)의 좌파 지도자들이 그런 높은 수위를 감당하기 어려워할 때, 기존 집행부의 의지와 능력을 넘어서는 그런 기구(파업위원회 같은 기구)의 필요성이 파업 참가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이다.
그런 기구에 기존 집행부 성원의 일부가 포함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파업 노동자들의 정서와 염려 사항에 둔감한 자들이 포함돼선 안 될 것이다.
투쟁의 전면화를 향해
파업 수위를 올리려면 파업을 하루짜리 이틀짜리로, 또 부분 파업, 순환 파업 따위로 제한하려는 노조 지도자들에 맞서 무기한 파업, 전면 파업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게 먼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 파업은 시기 집중으로 조율되고 있지도 못하다. 징검다리 파업 같은 느낌이다. 윤석열 퇴진 요구를 내걸고도 다양한 사회운동들을 위한 뜀틀을 마련해 줄 생각은 아예 말할 것도 없고, 비조합원이나 비취업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조차 언감생심인 듯하다.
민주노총 총연맹은 각 연맹이 파업 일정을 하나로 맞출 수 없다는 이유를 들고, 또 각 연맹은 각 대기업이 일정을 조율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런 실천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지도층 둘 다에게 부문주의와 경제주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부문주의/경제주의 문제를 극복하려면 상이한 쟁의 집단들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 특히, 연대 파업이 가장 효과적인 형태의 노동자 연대이다. 적어도 파업 일정 조율을 실천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층이 우리에게 제재를 가하는 핵심 목적이 바로 이런 주장과 활동에 제약을 부과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지금 연대 파업을 벌인다거나 파업 시점 동시화를 이뤄 낼 여건은 못 된다. 하지만 피케팅에 동참할 수 있고, 지지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파업 지지 모금을 조직할 수 있고, 파업 참가자들에게 생수병과 샌드위치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파업을 옹호하는 주장을 잘 펴서 광범하게 전파하는 것도 효과적인 연대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연대 활동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현 상황에서 가장 커다란 이슈는 첫째, 정부·여당의 법질서주의 우경화이다. 서구에선 이민과 난민 억압, 그리고 파시즘 등 극우의 부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의 권위주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적 권리 등 인권 그리고 자유주의 등에 관해 새로 살펴봐야 하고, 사회주의적 전략에 관해서도 그렇다. 물론 계속 윤석열 퇴진 집회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제국주의와 미중 갈등 문제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걸로 수천, 수만 명이 동원될 것 같지는 않다. 혹시 윤석열 정부가 한국군을 파병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한’ 집회는 지금까지처럼 가끔 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 주변 제국주의 열강과 관련된 주장과 (어쩌면) 행동이다.
셋째, 노동자 운동에 관여할 태세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