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은 왜 이란을 두려워하고 몹시 싫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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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정권의 본질은 무엇인가?
현재의 이란 국가는 1979년 혁명 이후에 등장했다. 이 혁명은 증오의 대상이었던 샤[이란어로 ‘왕’이라는 뜻]를 날려 버리며 서방의 지원을 받았던 그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란은 자본주의 국가로, 시아파 이슬람을 따르는 보수적인 이슬람 성직자들이 지배계급 내 가장 강력한 세력이다. 이란은 아류 제국주의 국가이지만 중동 지역의 주요 세력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이란을 지배하는 성직자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적 법을 갖고 있으며, 국가는 이를 엄격히 집행한다. 이란 국가는 여성의 권리와 성소수자에 대한 반동적인 사상과 정책을 구현하고 있다.
이란 국가는 경제의 많은 부분을 통제하며, 대공업·미디어·통신·운송 등 여러 부문을 지배한다. 그리고 국가 총수입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석유 산업을 소유하고 있다.
이란 지배계급은 다른 모든 자본가 계급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즉, 자신들의 기존 특권을 유지하면서 경제·정치적 권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이란 지배계급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를 비롯한 이 지역의 다른 국가들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이란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란은 자신들의 시아파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저항 단체들을 지원한다. 예멘의 후티도 그런 단체의 하나인데, 어느 정도는 이란이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적대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지원하는데, 어느 정도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란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데, 아사드 정권은 사우디가 지원하는 아이시스 그룹 그리고 2011년 시리아 혁명의 잔존 세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와 중국 둘 다와 친구가 됨으로써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항하려 해 왔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이란 석유의 약 90퍼센트를 구매한다.
이란은 독재국가인가?
이란은 성직자들이 민주주의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통치하는 권위주의 정권이다.
그러나 이란은 서방 언론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획일적 국가는 아니다. 이란 국가기구 내에는 경쟁하는 정치 파벌들이 존재한다.
때로는 이러한 파벌들이 지배계급 내부의 분열을 반영하며 여러 정치적 위기를 초래해, 다른 형태의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더 많은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들이 자주 등장하고, 때로는 운동이 노동조합, 여성운동, 민족적·종교적 권리를 요구하는 단체들과 섞여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가는 이러한 모든 운동을 탄압할 수 있었다.
성직자들의 권력은 이란의 최고지도자와 헌법수호위원회(종교 전문가와 변호사로 구성된 12인 기구)를 통해 보장돼 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는 종교적 권위에 기초해 정치 권력을 갖고 있다. 그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며, 이란 군대를 지휘하고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
최고지도자로서 그는 모든 군대 및 경찰 수장, 법원장, 국영 매체의 책임자를 임명하고 해임한다.
최고지도자는 이란군 중 이란 방어 임무를 맡고 있는 이슬람혁명수비대에 대해서도 통제권을 갖고 있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지방선거, 총선,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를 승인하고 또 자격을 박탈할 수 있으며, 의회에서 통과된 어떤 법안이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헌법수호위원회 구성원의 절반은 최고지도자가 임명하며, 최고지도자는 헌법수호위원회의 구성원 누구든 해임할 수 있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존속해 온 내내 선거에서 개혁파 후보자들의 자격을 박탈하고 개혁적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보수파들을 도왔다.
이러한 기구들 아래에 대통령과 의회가 있는데, 대통령은 선출직으로 정부 수반이며 장관을 임명하고, 의회는 290명의 선출직 의원으로 구성된다.
의회에서는 법안에 대한 토론과 표결이 실제로 이뤄진다. 그리고 개혁파, 온건파, 보수파로 나뉘어 경쟁하는 파벌이 있으며, 각 파벌 내에도 여러 그룹이 있다.
개혁파는 사회적 제약을 완화할 것을 요구하며 정치 개혁을 원한다. 그들은 더 온건한 버전의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서방 제국주의와 더 긴밀한 관계를 맺자고 제안한다.
보수파는 더욱더 엄격한 버전의 이슬람을 원하며 이란 국가가 서방에 계속 적대적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1979년 이래로 보수파가 권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 추세다. 개혁파가 서방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것과 전쟁 발발 가능성이 생긴 것 때문에 개혁파는 심각하게 약화됐다.
최근 이란의 시위 운동은 무엇인가?
이란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의 대중적 반란에 직면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2022~2023년 ‘여성, 생명, 자유’ 운동과 2019년 및 2017~2018년의 시위 물결이 있었다.
최근의 여성운동은 종교 경찰이,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며 마흐사 아미니라는 젊은 여성을 살해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로 시작됐다.
2022년 9월부터 2023년 봄까지 200만 명이 대규모 시위들에 참여했고, 젊은이들은 국가의 탄압 위협에 굴하지 않고 거리와 캠퍼스로 나왔다.
이 시위들은 근본적 변화, 즉 현재 이란 국가의 전복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2019년에는 정부가 연료 보조금을 폐지하려고 시도하면서 또 다른 시위 물결이 일어났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수십 개 도시에서 시위, 연좌 농성, 파업 등의 반란이 벌어졌다.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에는 물가 급등에 항의하는 전국적 시위가 솟구쳤다.
이러한 시위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가 주된 동력이었지만, 최고지도자에 대한 정치적 반대로 흘러갔다.
그러나 이 모든 시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국가는 이들을 진압할 수 있었다. 이 시위들이 (몇몇에는 노동자 집단들이 일부 참가했지만) 다수를 획득하지 못한 것이 그런 까닭의 하나였다.
게다가 시위대는 서방 국가들이 자신들의 목적에 맞춰 시위를 조종하려고 “지지”를 보내는 문제와도 씨름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왜 이란을 싫어하는가?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 전역에 걸쳐 군사·정치·경제적 권력을 놓고 이란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을 무너뜨리려 필사적이다.
이스라엘은 서방이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중단하고, 이란의 핵무기 보유 야심을 제한하려고 협상에 나서는 것도 중단하길 원한다. 대신 이스라엘은 서방이 이란을 폐허로 만들 전쟁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반대로 이란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불량배들에 맞설 수 있는 세력으로 자신을 내세운다.
이란은 자신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한다는 것을 명예로운 훈장처럼 여기며, 팔레스타인 해방 문제를 시온주의에 맞선 이슬람의 싸움인 것처럼 규정한다.
1979년 혁명 이후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점령된 팔레스타인에 있는 불법 국가라고 말했다. 이란은 이스라엘 시민들의 이란 입국을 금지하고, 모든 이란인의 이스라엘 여행을 막았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대사관으로 변모했다.
이스라엘이 느끼는 두려움의 중심에는 이란이 이스라엘 자신의 핵무기와 경쟁할 수 있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사실이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한 지역 강국으로, 이 덕분에 이스라엘은 엄청난 군사적 우위를 누리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경쟁 때문에 그들은 오랫동안 “그림자 전쟁” 형태로 서로의 이익을 공격하는 데에 골몰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발전 및 군사시설에 대해 파괴 공작과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 왔으며, 이란은 이스라엘 유조선에 대해 드론 공격을 감행하며 역시 사이버 공격을 전개해 왔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해야 할까?
이란은 시리아 내 자국 대사관 폭격과 그 이후 자국 영토 폭격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보복할 마땅한 권리를 갖고 있다.
심지어 영국 외무장관 데이비드 캐머런도 만약 영국 대사관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면 영국도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공격과 반격이 오가다 보면 넓은 지역을 집어삼키는 대규모 전쟁이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수억 명의 사람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전쟁은 팔레스타인 해방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진정으로 쟁취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의 논리와 단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동 전역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아래로부터 시온주의와 독재 정권에 맞서 반기를 들어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집단적 힘은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다. 노동자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다면 이스라엘은 제국주의의 경비견으로서 더 이상 역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지역 전체의 지배계급들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란의 현 정권은 어떻게 등장했는가?
1979년 이란 국민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잔혹한 군주정을 전복시켰고, 중동 지역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이란 혁명에는 노동조합, 민족주의자, 좌파 등 많은 세력이 참여했지만, 결국 이슬람 성직자들을 이끈 루홀라 호메이니에 의해 왜곡됐다.
그는 이슬람 운동의 더 온건한 부류 그리고 노동자 권력에 반대했고, 반대파들을 투옥하고 고문했다
혁명 이전에 이란은 샤가 통치했는데, 샤는 1953년 미국과 영국이 지원한 쿠데타 세력이 1954년 권력에 앉힌 왕이다. 이 쿠데타로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려 했던, 대중의 지지를 받던 정부가 전복됐다.
샤는 일부 전통적 종교 기관과 수백만 명의 빈민층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 발전 프로그램을 밀어붙였다. 엄청난 불평등과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이 있었다.
1977년 여름부터 샤에 반대하는 상당한 규모의 시위와 파업이 벌어졌으며, 그 규모와 빈도가 점점 더 늘어났다.
1978년 10월 노동자들은 전국적 총파업에 돌입했다. ‘쇼라’라고 불렸던 파업위원회가 설립돼 활동을 조직하고 조율했는데, 이는 운동이 혁명적으로 변했다는 신호였다.
12월에는 당시 3700만 명의 인구 중 600만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대가 시위를 벌여 샤의 타도를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전국에 쇼라를 세우며 도시와 마을을 장악했다.
1979년 1월 16일, 샤는 망명길에 올랐다. 가장 저명한 종교 지도자였으며 샤를 거침없이 비판했던 루홀라 호메이니가 혁명 기간 내내 자신의 지지 기반을 엄청나게 키워 왔다. 2월 1일, 그는 자신을 국가 원수로 선언했다.
그러나 샤의 독재를 대신할 사회가 어떤 사회일지 결정하기 위한 격렬한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 성직자들이 혁명을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했다.
자본가 계급의 많은 이들은 좌파에 함께 맞서기 위해 성직자 기관들과 힘을 합쳤다. 호메이니는 쇼라가 성직자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국가 통제력을 재확립하기 위해 움직였다.
성직자들은 탄압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했고, 좌파를 공격하고 베일 착용을 거부하는 여성들에게 “도덕성”을 강요하기 위해 폭력단을 조직했다. 호메이니는 이란의 최고지도자로 옹립됐고, 그 결과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자본주의 신정 국가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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