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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업무 시작, 이주노동자 유입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들의 열악한 처우는?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100명이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이주노동자 유입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한국에서는 고령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돌봄 서비스 필요가 증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돌봄 서비스의 공급은 필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대체로 시장에 내맡겨져 있습니다. 개별 가정은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서비스를 비싼 비용으로 이용해야 하고, 돌봄 노동자의 임금과 처우는 열악합니다.

정부가 마땅히 지출을 대폭 확대해 양질의 돌봄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해야 하는데요. 그러나 윤석열은 이런 필요에 부응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돌봄 서비스에 대한 지원 책임을 회피하며 저렴한 노동력 투입으로 때우려고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처우는 열악할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와 서울시장 오세훈 등 여권 인사들, 보수 언론은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말자는 주장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와 사용자들이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모는 것을 규탄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고 고용되는 것은 환영해야 합니다. 비록 임금과 노동조건이 열악한 부문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야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단결과 연대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서 단연 가장 필수적인 요인입니다.

8월 6일 한국에 온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중 한 명은 취재진과 인터뷰하면서, 한국에서 버는 돈으로 가족을 돕고 필리핀에서 대학원 다니고 나중에 사업도 하고 싶다며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이들에게 다가가고 단결을 도모하려면 이들이 한국에 오는 것을 무조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한국에 오는 것을 마뜩잖게 여기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일부 노조 지도자와 좌파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차별을 겪을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데요.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습니다.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을 한국에 오지 못하게 하면 그들이 열악한 일자리에서 고통받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은 중동이나 다른 아시아 나라보다 이주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조금은 나은 편입니다. 홍콩은 가사노동자 시급이 겨우 2797원입니다. 이번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필리핀인 100명이 들어왔는데, 재한 필리핀인 공동체 활동가에 따르면 필리핀 현지에서 무려 1만 명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으로 오기를 바라는 필리핀인이 많다는 것이죠.

그들은 한국행이 막히면 조건이 더 열악한 나라로 가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또는 자국에서 훨씬 더 열악한 일자리에 취업하거나 아예 일자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미등록 신분이 되는 것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오려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이주노동자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그들의 절박한 필요를 외면하고 그들의 소망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너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안다’는 오만한 태도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주민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고, 실제 그렇게 합니다. 이주에 위험과 고통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향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주하는 것입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 봅시다. 1960~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한국 노동자들을 서독에 광원과 간호사로 보냈습니다. 당시 서독의 광원과 간호사는 열악하고 위험한 일자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서독 좌파와 노동조합은 한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을 반대해야 했을까요?

현재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반대하는 노동조합과 진보 정당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가사·돌봄 부문의 노동력이 부족한 이유가 해당 일자리의 임금이 낮고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라며,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면 인력난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가사·돌봄 부문의 임금과 조건을 개선하라는 요구는 옳지만, 가사·돌봄 부문에 한국인의 고용을 먼저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오는 요구입니다.

그러므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반대하는 주장은 실은 내국인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자는 보수적 요구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겪을 열악한 처우 얘기는 그 보수적 요구를 가리는 포장지밖에 안 됩니다.

이런 견해에는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면 그 부문의 임금이 떨어지고 내국인 고용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외국인 가사노동자 유입으로 내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떨어지고 고용이 줄어든다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런 주장이 전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나눌 파이의 크기가 고정돼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을 제로섬 게임처럼 보는 것인데요.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고용과 임금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2017년 미국 국립과학원(NAS)은 이민자 유입이 미국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 방대한 증거를 정리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요. 이민자 유입이 고용과 임금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작다는 것이 보고서의 중요한 결론이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통계에서도 확인됩니다. IMF 위기나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이주민 수는 감소하거나 거의 변동이 없었지만 한국 노동자들은 고용 위기와 실질임금 감소를 겪었습니다. 이런 일부 기간 외에는 한국의 이주민 수가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실업률은 큰 변동이 없었고 실질임금도 대체로 올랐습니다.

반면 총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인 노동소득분배율은 1990년대 이래로 하락하는 추세가 뚜렷합니다.

이런 사실들은 일자리 감소나 임금 인상 억제가, 경제 상황이 악화되거나 지배자들이 노동자 몫을 점점 줄여 온 탓이지 이주노동자 증가 때문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즉, 고용과 임금 총량은 미리 정해져 있고 이를 노동자들끼리 나눠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 몫을 줄이려는 사용자에 맞서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 상황이 나빠도 노동자들이 효과적으로 투쟁하면 일자리를 지키고 복지를 얻어 낼 수 있습니다. 1930년대 대불황기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런 사례입니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 유입을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국에서도 정부의 주기적 단속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미등록 이주민은 꾸준히 늘어, 올해 6월 기준 41만 명이 넘습니다. 전체 이주민의 약 16퍼센트입니다.

올해 4월 정부는 결혼 이주민의 본국 가족과 이미 한국에 와 있는 유학생들에게 가사·돌봄 업종 취업을 허용하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정부가 그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물론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이주민의 본국 가족에게 한국에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또, 유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취업하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따라서 그들을 환영하고 함께 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조직하는 것만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지금 이주민 배척 문제가 많은 나라에서 심각한데, 한국에서도 앞으로 이주민을 방어하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최근 전 세계적으로 극우·파시스트들이 인종차별과 이주민 배척을 내세워 활개를 치고, 각국 정부들은 이민 규제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 속에서 좌파가 이주민을 방어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해졌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발전의 지역적 불균등, 자본주의가 낳는 세계적 불평등과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외국으로 이주해 일하려는 사람들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려는 것은 정당하고 당연한 욕구입니다. 이런 움직임을 옥죄고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이주노동자들이 차별받고 고통받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어떤 그럴싸한 명분과 조건을 달든지 노조와 좌파가 이주노동자 고용·유입 제한 입장을 펴면, 이주민을 둘러싼 정치 지형이 우파에게 유리하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과 임금 인상의 장애물로 여기는 정서를 부추길 수 있고, 그러면 지배계급은 필요에 따라 때로는 이주민 유입을 늘리면서도 이를 빌미로 더한층 통제적인 정책을 펼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 정부는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한을 이른바 ‘일자리 잠식을 우려하는 국민 정서’를 명분으로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각의 이주노동자 배척 입장은 이주노동자들이 국내 노동조합과 좌파를 불신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의존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정부와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더 열악하게 만드는 압력이 커질 것입니다.

요컨대, 내국인 노동자들을 우선 보호하자며 이주노동자 유입을 제한해서 얻을 ‘이득’은 기껏해야 매우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입니다. 지금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그런 ‘이득’조차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계급도 다인종 노동계급이 됐습니다. 예컨대 조선업 전체 노동자의 약 13퍼센트가 이주노동자이고, 대부분 조선업 빅3 기업의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건설업의 이주노동자는 양대 노총의 건설노조 조합원을 합한 수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을 경쟁자로 여기며 배척하고서 내국인 노동자들이 힘을 발휘하는 데는 절대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노동자들이 그들을 국제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환영하고 단결해 함께 싸울 수 있도록 계급의식이 향상돼야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과 차별에 반대한다면 이주노동자 유입 통제 정책을 지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주민 유입을 무조건 환영하며 국경 통제를 반대해 싸워야 합니다. 내국인과 이주민의 단결을 추구하는 국제주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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