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스탈린주의에 맞선 레닌의 투쟁: 레닌 저작선》:
날조된 신화를 반박하는 역사적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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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와 관련된 진실을 얼핏 드러낸 흥미로운 일화가 지난 몇 년 사이에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중인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발언이다. 푸틴은 전쟁 초기에 회의 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전쟁을 정당화했다. “과거 레닌과 스탈린이 민족자결권 문제로 대립한 적이 있는데 레닌이 틀렸고 스탈린이 옳았다. 레닌이 민족자결권을 인정한 것이 시한폭탄처럼 러시아를 괴롭혀 왔다.” 이는 레닌-스탈린의 불연속성과 스탈린-푸틴의 연속성을 언뜻 보여 주는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둘째 일화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당시 있었던 일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소련공산당 입당 사실을 문제 삼자 한 방송국 기자가 다음과 같은 ‘팩트 폭행’으로 국방부 대변인을 진땀나게 했다. “홍범도 장군이 활약했던 1920년대는 레닌의 공산당이고, 북한군을 사주해 6·25 남침을 한 것은 스탈린의 공산당이다. 레닌의 공산당과 스탈린의 공산당은 아주 다르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레닌이 스탈린주의를 낳았다?
이런 일화들은 사실 매우 드문 것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과 볼셰비키를, 옛 소련(과 오늘날 중국·북한 등)을 지배한 관료 집단이 계승했다는 견해가 여전히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옛 소련 등 동구권에서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이것이 공식 이데올로기다.
양 진영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그 견해를 고수하고 널리 퍼뜨린다. 소련·중국·북한의 지배계급은 최초의 승리한 사회주의 혁명의 영광에 기대어 자신들의 지배와 악행을 정당화하려 했고 지금도 그런다. 다른 한편, 서방 지배계급은 러시아 혁명과 자본주의 타도가 필연적으로 관료 집단의 독재를 가져왔다며, 자본주의가 온갖 불의를 낳는다지만 그에 대한 혁명적 대안도 별 볼 일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레닌이 스탈린주의를 낳았다’는 이 지배적 견해는 날조된 신화일 뿐이다.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은 레닌 자신이 스탈린과 관료 집단의 부상에 맞서 필사적으로 투쟁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책은 그 은폐된 역사를 증명하는 문헌들을 모은 것이다. 1922~1923년 레닌이 뇌졸중으로 죽어 가면서 병석에서 구술한 여러 글과 편지와 호소문이 이 책에 실려 있다(레닌과 연대하며 의견을 주고받은 트로츠키의 글들도 포함돼 있다).
레닌은, 관료 집단이라는 괴물의 화신이 된 스탈린에 맞서 싸우며 스탈린을 서기장 직위에서 밀어내려 했다. 레닌은 관료의 요새들을 청소하기 위해 국가 기구를 재편하려 했을 뿐 아니라, 원칙을 저버린 스탈린과 관료들의 보수적 노선(사적 경제 부문을 강화하려고 대외 무역의 국가 독점을 훼손한 것, 차르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제국주의적 민족 정책을 편 것)에도 맞서 싸웠다. 옮긴이가 머리말에 썼듯, “레닌 사후 전개된 당내 갈등을 개인들 간의 권력투쟁 정도로 축소해 이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나태한 일인지 이 책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토니 클리프가 《레닌 평전 4 - 볼셰비키와 세계혁명》(책갈피)에 썼듯이 레닌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더듬더듬 찾고 있었다. 병으로 쓰러졌다가 잠시 회복될 때마다 병상에 누워 당과 국가 기구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그의 놀라움과 두려움은 커져 갔고, 안간힘을 다해 떨리는 손으로 배의 키를 움켜잡으려고 발버둥쳤다.” 레닌의 투쟁은 그가 세 번째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고 언어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바람에 결국 실패했다.
레닌의 마지막 투쟁
레닌의 마지막 투쟁을 보여 주는 이 책은 한국에서 1989년에 《레닌의 반스딸린 투쟁》(신평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바 있다. 1989~1991년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자 그 사회 체제를 합리화하고 지지하던 전 세계의 스탈린주의 운동은 급속히 쇠퇴·해산하면서 소멸하는 듯했다. 그러나 옮긴이가 머리말에 썼듯, 격화하는 미·중 갈등을 배경으로 “오늘날 중국과 북한 바깥에서 스탈린주의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와 경쟁하며 좌파적 개혁 운동 구실을 하고 있다. … 그러나 이 전략은 민중주의라는 한계가 설정돼 있다. 그래서 노동자 투쟁이 정치적 항의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 특히, 이윤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계획이 포함되지 않는다.”
35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출판된 이 책은 스탈린주의의 진짜 기원과, 혁명의 변질에 맞서 싸우고 차별과 천대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한 레닌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