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은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용어만 이어받은 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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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졌다. 세계경제 침체가 10년째 지속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고민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사회주의’ 하면 북한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핵무기로 남한을 위협하는 북한 말이다.
그런데 북한은 옛 소련의 시스템이 이식된 사회다. 그러니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소련과 북한의 악랄한 독재 체제와 연관시키게 된다. 이 시스템은 1920년대 말부터 1991년 소련 몰락 때까지 존속했는데, 국제적 라벨로 부르면 스탈린주의라고 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토론은 우리 나라에서는 여전히 북한 문제, 즉 스탈린주의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다. 소련과 북한이 사회주의 사회를 자처해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련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구현한 사회를 자처했다.
하지만 말과 행동을 구분해야 한다.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뭐라고 말했든 소련은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 없는 시스템이었다. 진보·좌파의 아무도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민주주의로 보지 않는다. 박정희-전두환이 자기네 정권을 민주주의라고 수없이 떠들어 댔어도 말이다. 언사가 아니라 실제 현실로 판단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각한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 스탈린은 노동자 민주주의 국가 체제를 잔인한 관료 국가 체제로 변모시켰다. 그 국가는 인민을 체계적이면서도 혹독하게 착취하고 억압하는 국가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운영됐다.
국가의 성격이 일변하면서 사회의 성격도 곧 완전히 달라졌다. 일종의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10월 러시아 혁명
그러나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빈곤층들, 그리고 천대받는 민족들을 고무했다. 러시아 혁명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사상에 고취돼 일어난 최초의 혁명으로, 낡은 절대주의 국가가 혁명으로 폐지됐고, 옛 지배계급은 (혁명 직후의) 내전에서 패배했다. 옛 지배계급은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으로, 군장성이자 경찰 간부들이었다. 새 지배계급으로 발돋움하길 원했던 민간 자본가 계급도 패배했다.
옛 전제정 대신에 노동자 국가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노동자 국가는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로 조직됐고, 진정으로 민주적이었다. 공무원들이 노동자 평균임금만을 받았고, 잘못했을 경우 즉시 소환됐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자 평의회를 통해 노동자 계급에 이익이 되도록 사회를 운영했다. 그래서 이윤이 아니라 필요에 근거해 생산을 조직하려 애썼다.
일터에서의 업무는 3자 위원회라는 기구에 의해 조정됐는데, 3자 위원회는 그 직장의 노동자 위원회, 노동자들의 감독을 받는 기술관리자, 현지 공산당 조직으로 이뤄져 있었다.
러시아 혁명은 또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평화 운동이었다. 동부 전선에서 제1차세계대전을 끝냈던 것이다.(서부전선에서의 전쟁은 1년 뒤 독일 혁명이 끝냈다.) 러시아 혁명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끝장내는 대안이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줬다.
그러나 서방 제국주의 열강과 러시아 국내의 우익 집단들이 혁명 정부에 대적해 협공을 펴, 처참한 내전이 일어났다. 노동자 정부는 내전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노동자 계급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고, 나머지는 식량을 구하러 귀농하거나, 아니면 국가 관료가 됐다.
노동자 없는 노동자 권력은 껍데기에 불과했고, 급속히 관료화했다.
설상가상으로 1923년 10월 독일 혁명 패배, 1926년 영국 총파업 패배, 1927년 중국 혁명 패배라는 불행한 상황이 전개됐다. 국제 혁명들이 잇달아 패배하면서 소련은 정치적·경제적으로 고립됐다.
그러자 스탈린은 관료를 대표해 국제 혁명이라는 꿈을 버리자고 주장했다. 소련 한 나라에서도 계급 없는 사회, 사회주의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사상을 그는 ‘일국사회주의’라고 했다. 신흥 관료층은 스탈린의 이런 민족주의와 실용주의에 찬동하며 그 주위에 결집했다.
‘일국사회주의’는 국제주의의 완전한 포기였다. 그래서 다른 나라 혁명 운동은 소련의 국익을 위해 노동자 혁명을 포기하고 자국 지배계급 일부나 중간계급과 동맹해야 했다.
‘일국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러시아 농민은 강제로 토지를 빼앗기고 집단농장에 들어가야 했다. 저항하면 고문을 당하고 피살됐다.
도시의 노동자는 공장에 대한 노동자 관리권을 몽땅 빼앗겼다. 뿐만 아니라 노조 결성권, 단체교섭권, 쟁의권 등 노동기본권도 모두 빼앗겼다. 일인 경영자가 모든 결정권을 독점했다. 임금 억제와 노동 통제를 위해서였다.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지닌 단체는 국가에 완전 예속된 채 생산할당량 채우는 데 동원되는 기구 구실을 했다.
이 모든 일들은 혁명을 뒤집어 버리는 일, 즉 반혁명이었다. 반혁명은 국가 관료가 지도했고, 국가 관료는 신흥 자본가 계급 구실을 했다.
이런 일들이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국가에 의해 자행됐다. 이런 모델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동유럽 및 북한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중국 등 제3세계 나라들에서 복제됐다. 이를 두고 국가자본주의라고 한다. 국가자본주의에서는 민간 자본가들이 아니라 국가가 자본을 축적하고 세계 시장에서 다른 경제단위들과 경쟁한다.
스탈린 체제는 러시아 혁명이 이룩한 성취를 모조리 파괴했다. 심지어 러시아 혁명을 이끈 인물들도 파괴했다. 스탈린은 동료 볼셰비키 간부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 버렸던 것이다.
러시아 혁명은 패배했다. 분쇄됐다. 전 세계 수억 노동자들이 품고 있던 희망은 절망으로, 혼동으로 바뀌었다.
각국의 공산당들은 가장 헌신적인 투사들을 끌어들였었는데, 이제 이 투사들은 소련의 민간 외교관 구실을 해야 했다. 이를 거부하면 당에서 축출당해야 했다.
1930년대부터 세계 곳곳의 공산당들은 노동자 혁명이라는 전망을 배신하기에 급급하며 노동자 계급의 염원을 배신했다.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좌파 정부가 등장한 것에 고무돼 노동자들이 혁명적 또는 혁명에 조금 못 미치는 행동을 했을 때 등등의 경우에 그랬다.
중국 공산당은 아예 활동 근거지를 농촌으로 옮겼다.
스탈린 체제는 1991년 소련 몰락 때까지 60년 남짓 존속됐다. 스탈린 자신은 1953년에 죽었지만 말이다. 그 뒤로도 자본주의는 형태를 바꿔, 그러니까 민간 자본주의로 변신해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 물론 지배계급은 더는 자기 체제를 마르크스주의 운운하는 용어로 치장하지 않는다.
소련의 국가자본주의는 미국과 서유럽의 자본주의와 형태가 달랐다. 소위 ‘5개년 경제 계획’이라는 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른바 ‘계획’은 서방, 특히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따라 거듭 재조정됐다.(박정희 정권도 5개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세계 시장의 조건에 반응해 거듭 생산 목표가 조정됐다.)
소련의 계획에서는 군비 증강이 가장 중요했다. 영국·독일·미국 등 서구 강대국들로부터 잇달아 군사적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신형 무기를 만들면 소련도 그에 준하는 수준의 무기를 만들어야 했다. M16 대(對) AK소총, 퍼싱Ⅱ 미사일 대(對) SS-20 미사일 식이었다.
군비 경쟁을 위해서는 중공업이 중요했고, 중공업 생산 증대를 위해서는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착취해야 했다. 서방과 마찬가지로 생산성과 능률이 지고의 가치였다. 마르크스는 이를 착취율 또는 잉여가치율이라고 불렀다.
소련은 소유가 거의 다 국유였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민간 자본가 계급, 즉 부르주아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였다.
엉망진창
러시아 혁명과 옛 소련 블록 사회에 대해 명료해야 한다. 그 흥망성쇠에 대해 명료하지 않으면 사회주의자의 사상과 활동은 엉망진창으로 혼란스러워진다. 특히, 노동자 계급의 자체 행동 없이도 소련군 탱크가 사회주의를 갖다 줄 수 있다는(북한) 생각, 또는 지식인 출신 농민 게릴라가 노동자 계급에 해방을 안겨 줄 수 있다는(중국) 생각 따위는 사회주의라는 원칙 자체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스탈린주의는 그 체제나 사상이나 예전만 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유산 또는 잔재는 여전히 영향을 크게 미친다. 특히, 한국에선 그렇다. 북한이 존재하고 있고, 중국이 미국과 각축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제 좌파 측에서 러시아 혁명 흥성기에 고취된 것과 같은 인간 해방의 이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주의에 관한 토론은 기껏해야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미국을 견제할 능력 따위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전락했다.
아니면, 쿠바나 베네수엘라의 사례가 21세기 사회주의의 모델로 거론돼 왔다. 베네수엘라는 지속되는 위기 속에서 최근 총선에서 패배했으니, 이제 쿠바를 살사 댄스나 클래식 카와 연관시키며 사회주의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수준이 됐다.
물론 쿠바나 베네수엘라는 대담하게 미국 제국주의와 맞서 왔다. 두 국가가 세계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제공한 영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두 국가를 사회주의, 즉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권력으로까지 채색하는 건 사회주의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에게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자력 해방이었고, 두 국가는 노동자 계급 정치권력이 아니다. 또한 전 세계의 수십억 노동자들은 여전히 착취당하고 있고, 카스트로와 차베스는 이들에게 노동자 혁명을 촉구한 적이 없다.
더구나 제국주의의 위협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제국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한은 쿠바와 베네수엘라 민중의 고통은 지속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이 생각한 사회주의는 미국 등 서구의 노동자 계급이 쿠바와 베네수엘라 등 제3세계 민중과 연대해 제국주의적 지배계급들을 타도하고 세계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구축하는 것이다.
부의 재분배는 좋은 일이지만 사회주의는 그 이상의 것이다. 사회주의는 착취 자체를 없애고, 인간에 의한 인간 차별과 천대를 없애는 것이다. 특히 사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대해 노동자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러시아 혁명과 혁명기 볼셰비즘의 이상이었다. 서구 혁명 패배로 러시아가 고립되고 고립 탈피의 그릇된 대안으로 스탈린 체제가 지배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탈린주의는 국제적 사회주의 운동으로부터 이런 원대한 이상을 앗아가 버렸다. 이제 좌파들은 자본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다는 듯이 그때그때의 전투들과 전술들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그조차 투쟁적이고 좌파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이 한창이던 동안에 진보·좌파 진영의 대부분은 노동자들 고유의 계급적 투쟁을 고무하기보다는 주로 대선 대응에 관심을 기울였다. 정권의 부패에 반대하는 투쟁은 민주주의 투쟁인데, 그 투쟁 참가자의 다수인 노동자들이 민주주의 투쟁을 하면서 계급투쟁을 겸해야 사회주의 운동 건설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 레닌과 러시아 혁명의 교훈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노조 조직 확대 정도의 성과에 머무르게 된다. 이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거기에 만족할 일은 아니다. 경제 위기 시대에 거듭되는 사용자들과 정부의 공격에 직면해 결국 한계를 드러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1백 년 전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혁명 러시아의 노동자 계급이 품었던 이상과 이념, 전망을 회복해야 한다. 회복을 위한 노력은 지금 여기에서 사회주의 조직 건설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 글은 필자가 얼마 전에 한 어떤 강연의 원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