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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영화평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이민자 사냥과 추방에 맞서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트럼프가 다시 반란법 발동을 겁박한다. 2020년에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겨냥했고 그때도 운동 참가자들을 ‘테러분자’라 불렀다. 이번에는 이민자 방어 운동을 겨냥하지만 이번에도 ‘안티파’이자 ‘테러분자’라고 공격한다.

핵무기를 자랑하고 인종청소를 후원하는 성범죄자가 대중운동에 ‘폭력’과 ‘테러’ 운운하는 것은 최악의 위선이자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저항과 저항 가능성까지 차단하려는 수작이다.

앞으로 상황이 영화 〈시빌 워〉(2024)처럼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영화는 예측 분석 보고서가 아니며, 우리에게 경고등을 켜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개봉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역시 시의적절한 영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인데도 투쟁으로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를 “급진 좌파 테러리즘에 대한 옹호”라고 혹평하는 벤 샤피로는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를 자칭 “찬양”하는 자다.(뉴라이트 출판사인 기파랑출판사는 이런 자의 해로운 책들을 국내에 출판했다.)

폭스 뉴스도 분노와 저주를 퍼붓는다. “이 반미 영화를 보는 건 ‘사랑스러운’ 나치를 응원하는 것과 같다.” “영화 전체가 약간 화나게 했지만, 트럼프 정부가 안티파 즉 테러분자들을 쓸어버릴 거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 그들 모두 감옥에 쳐넣고 나면 이 영화가 재밌어질 것이다.”

“급진 테러리즘의 찬가,” “피에 대한 갈망,” “변태적 성향,” “1960년대 정치적 폭력을 낭만화,” “올해 가장 무책임한 영화” 등 다른 우익 언론 반응 역시 비슷하다.

그럴 만하다.

우익의 저주

이 영화는 시작부터 주인공들이 이민자 구금 시설을 습격하고 이민자들을 구출한다. ‘혁명조직’ 프렌치 75 소속 퍼프디아 베버리힐스(테야나 테일러 분)와 게토 팻(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은 함께 이민자 구금 시설을 습격하거나 낙태 반대 정치인의 사무실과 법원 등을 폭파한다.

하지만 배신과 파괴 공작으로 조직원 상당수가 체포되거나 사살된다. 팻은 갓난 딸을 데리고 외딴 도시로 가서 숨어 지내게 된다. 그렇게 16년이 지나고, ICE(이민세관단속국)의 스티븐 록죠 대령(숀 펜 분)이 그들을 다시 뒤쫓는다.

영화는 블랙코미디와 액션, 실시간 뉴스와 같은 이미지들을 넘나든다. 짐승처럼 우리에 갇힌 이민자들, 이민자 방어 시위대, 진압 경찰과 감시 헬리콥터, ICE의 군용 SUV 행렬.

ICE 작전 브리핑 장면에선 대원들에게 “우리가 목표로 삼는 범죄 조직[이민자들을 가리킨다]에게 지역 주민들이 동정심을 보일 것이라 예상하라”는 현실적인 주의사항이 전달된다.

비밀 인사말(“성 니콜라스 만세”)을 나누는 백인 인종주의 기독교 극우들도 나온다. 현실의 마가(MAGA) 진영 안팎에 있음직한 끔찍한 파시스트들이거나, 부자들이 결성한 백인우월주의 조직 쿠 클럭스 클랜(KKK) 같다.

폴 토마스 앤더슨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매그놀리아〉(1999), 〈펀치 드렁크 러브〉(2002),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등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아주 재능 있고 독창적인 감독이다.

그간 정치색 강한 영화는 만들지 않았다. 다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미국 석유 산업의 태동기를 다뤘고, 미국 좌파 정치인이자 소설가인 업튼 싱클레어의 사회 소설 《오일!》(1927)을 각색했다. 하지만 영화는 정치를 배제하고 인물에 집중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역시 원래는 토마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1990)를 각색하려 했다. 하지만 20년간 쓰고 고치길 반복하다 보니 영화는 핀천의 소설과 많이 달라졌다. 이번엔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낫다.

그래도 여전히 이 영화에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한다. 핀천의 것도 남아 있다. 핀천의 소설들은 포스트모던 소설의 대표작들로 여겨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968~1976년 계급 투쟁의 고양기에 치솟았던 혁명의 희망이 실현되지 못한 데 대한 패배적 반응이다. (한국에선 더 늦게, 소련 붕괴 후 1990년대에 본격화됐다).

반면, 체 게바라의 전기 영화 2편을 제작하고 주연해서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베네시오 델 토로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다른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는 이민자들의 라티노판 ‘해리엇 터브먼’으로 나온다. 해리엇 터브먼은 “지하 철도”라는 이름의 비밀 조직을 통해 많은 흑인 노예들을 구출해 냈고 남북전쟁에도 북군 소속으로 참전했던 실존 흑인 여성 투사다.

델 토로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보여 주는 이민자 공동체의 활력은 델 토로의 제안을 폴 감독이 수용한 것이라고 한다. 토마스 핀천의 소설에선 전혀 느낄 수 없는 저항과 연대의 에너지다.

이 영화는 배경 시기를 특정 연도로 확정할 수 있는 명확한 힌트를 주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 시기가 현재라고 치면, 16년 전으로 묘사되는 영화 속 조직 ‘프랜치 75’의 전성기는 사실상 오바마 정부 초반부다.

그런데 영화가 주는 기시감을 따르면, 1968년 이후 1970대 중반까지 존재했던 급진 조직들이 연상된다. 폴 감독 자신이 말했듯이, 특히 ‘웨더 언더그라운드’ 또는 ‘웨더 맨’이라 불렸던 작은 조직이다.

이 조직에게 “노동계급”은 순전한 수식어였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결의된 소수가 권력의 상징들에 가하는 테러 활동이 전부였다. 기업과 법원의 건물 등에 폭탄을 설치해서 제3세계를 지지하는 그들만의 게릴라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이는 당시 운동이 지닌 약점이 극단적으로 강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주요 운동 세력들은 노동자 계급이 아닌 다른 변혁 주체를 발전시키려는 정치를 채택했다. 스탈린주의의 대안으로 여겼으나, 사실은 스탈린주의의 변형인 마오주의의 영향도 컸다.

실제로 경찰에게 사살되고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은 (웨더 맨이 아니라) 테러와 무관했던 흑표범당 당원들이었다.

대중 운동과 혁명적 정치

마르크스주의자는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이 억압자들에 맞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폭력은 불가피하다. 격렬한 투쟁이 없다면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특권을 순순히 내려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대체할 사회는 노동자들 자신의 대중 행동을 통해서만 건설될 수 있다. 폭탄이든, 선거로 선출된 이들이든 어떤 소수의 행동을 통해 위로부터 건설될 수는 없다.

비결은 영화의 엔딩처럼 우선 대중 행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크고 단결된 대중 운동과 노동자들의 힘을 고무하고 연결하기 위한 정치와 그것을 체계적으로 구현하는 혁명적 조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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