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특파원에게서 듣는다:
LA 항쟁과 확산되는 반(反) 트럼프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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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6월 19일 노동자연대 서울지역 모임들이 주최한 같은 제목의 공개 토론회에서 토머스 포스터가 한 발제와 토론 정리(온라인 생중계)를 기사화한 것이다(노동자연대TV에서 영상을 볼 수 있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한 것이다.
토머스 포스터는 〈소셜리스트 워커〉 기자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서 활동하는 25세 청년 혁명적 사회주의자이다.
포스터는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이던 시절 그의 활동에 영감을 받아 정치에 입문했고, 대학에서 정치학·철학·경제학(PPE)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바라며 SWP에 입당했다. 자신은 사회주의 신문 기자 활동 덕분에 “정치의 최전선에 있다”고 본지에 전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LA)의 상황을 전하겠습니다.
도시의 모든 거리에 저항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를 규탄하는 그래피티가 곳곳에 그려져 있고, 시위가 자생적으로 벌어지고 경찰에 맞서 전투를 벌입니다.
LA 사람들은 6월 초 트럼프가 이민세관단속국(이하 ICE)을 투입해 감행한 대규모 이민자 단속에 맞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 후 1주일 넘도록 사람들은 트럼프 정권과, 국가의 무장 기구인 군경에 맞서 항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항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6월 14일에는 “왕 노릇 말라”는 슬로건 하에 미국 전역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약 1300만 명이 행진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여러 날에 걸쳐 LA에서 현지 취재하며, 항쟁하는 민중의 어마어마한 힘과 창발성을 목격했습니다.

시위대는 수백에서 수천 규모로 제각기 무리를 짓고 거리를 누빕니다. 사람들은 행진하다 멈춰 도로를 봉쇄하고, 다시 행진하다 시청과 연방정부 건물 앞에 멈춰 경찰에 욕설을 퍼붓고, 다시 행진을 이어갑니다.
하나의 큰 대열이 꾸려지는 것이 아니라 무정형의 여러 대오가 이곳저곳으로 쉬지 않고 행진합니다.
시위는 젊고 분노에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정치에 관심 두지 않던 사람들을 시위에 참여시키며 급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저항의 세 가지 형태
저항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형태는 연방정부 건물들이 모여 있는 LA 도심에서 벌어지는 시위입니다.
둘째 형태는 ICE 요원들이 거리에서 이민자들을 잡아가려 할 때 그에 맞서 즉각 대항하는 행동입니다.
셋째 형태는 ICE 요원들이 머무는 호텔을 찾아내 그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된 시위와 자생적 시위의 관계는 매우 유동적입니다.
시위 첫째 날인 6일 밤, ICE가 사람들을 가둬 놓은 구금 시설을 수많은 사람들이 포위했습니다. 이 시위는 ‘인도적 이민자 권리 협회’라는 NGO와 ‘지역사회 정당방위 연합’이라는 두 단체가 조직한 행동이었습니다. 두 단체 모두 사람들을 조직하고 동원할 수 있는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는 자생적 동원이 훨씬 더 늘었습니다. 6일 행동의 경험이 사람들에게 자신들도 조직화해야겠다고 영감을 준 것입니다.

이런 자기 조직화에 미국 지배계급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바로 그래서 트럼프가 그토록 기를 쓰고 저항을 진압하려 하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수많은 이민자를 잡아가고 시위를 혹독하게 탄압해 LA를 본보기 삼으려 합니다.
이는 하나의 시험대입니다. 트럼프가 LA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면 미국 다른 도시들에서도 똑같은 일을 하려 들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 동원으로 트럼프를 꺾을 수 있고, 더 많은 이들이 들고일어나도록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민주당에 대해 아무 환상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민주당은 트럼프가 집권할 길을 닦았고 지금도 항쟁의 ‘폭력’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좌파의 일차적 과제는 항쟁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국가의 무력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이 영감 가득한 항쟁이 전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집단적 힘을 특히 파업을 통해 발휘하는 것으로 항쟁을 전진시킬 수 있습니다. 거리의 전투성 및 자기 조직화와 노동자들의 힘이 결합된다면 트럼프의 계획을 꺾을 수 있습니다.
또 그런 결합은, 미국 국가와 그 국가가 수호하는 인종차별적 시스템을 산산조각 낼 혁명적 투쟁의 가능성을 열어젖힐 수 있습니다.
LA 전체에서 항쟁이 심화되면서, 상호부조 네트워크가 가동돼 ICE의 단속 때문에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통학버스 정류장에서 단속 저지 행동을 합니다. 의사·간호사들은 단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 밖을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방문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거리 시위, 노동운동, 민주당
지금부터는 제가 LA에서 거듭 겪은 몇 가지 점들을 개괄적으로 다뤄 보겠습니다.
첫째는 항쟁과 노동운동 사이의 관계입니다.
LA의 조직 노동운동은 5:5로 양분돼 있습니다. 첫째 부문은 공식 노동조합이고, 둘째 부문은 ‘노동 센터’의 네트워크입니다. 노동 센터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 예컨대 의류 산업이나 세차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곳입니다.
공식 노동조합은 매우 굼뜨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속에 항의하는 네트워크를 지지하고 항쟁 초기에 벌어진 몇몇 시위에 동원하기도 했지만, 그 후에는 딱히 한 것이 없습니다.
반면 노동 센터들은 항쟁에서 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 센터들은 도시 전역의 사람들에게 식료품·생필품을 공급하는 상호부조 네트워크의 핵심입니다.
노동조합들은 사람들을 매일 거리로 동원하고 일터에서의 행동을 호소해야 마땅한데도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는 항쟁과 민주당의 관계입니다.
시위대는 민주당에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과거 민주당이 운동들을 포섭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그러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LA에서 대화를 나눈 사람들 사이에서는 민주당의 위선에 대한 분노가 팽배했습니다. 민주당은 한편으로는 트럼프에게 주방위군을 LA에서 물리라고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을 투입해 시위대를 폭행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이 이민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바를 하지 않는다며 격분을 토로했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에 팽배한 또 다른 감정은 긴박감입니다. ‘선거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대신 나서 주기를 기다릴 수 없다,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다급함 말입니다.
항쟁 참가자들의 투지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시위대의 전투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에 대해 자신감이 넘쳤고,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진합니다. 경찰 통제선을 향해 똑바로 전진하기도 하고, 경찰을 밀어내기도 합니다. 통행금지라는 경찰의 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행진하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연좌를 합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행진에 나섭니다. 경찰의 통제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는 또 다른 중요한 점과 연결됩니다. 바로 시위의 자생성입니다.
매일 열리는 시위는 정식으로 선포되는 것도 아니고, 공식 집결 시간·장소가 공지되지도 않습니다. 그날 어디서 시위가 열리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늘에서 경찰 헬리콥터가 어디 떠 있는지 찾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LA 도심의 특정 구역으로 무작정 나갑니다. 하루 중 언제든 그곳에서는 시위가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구역에서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벌어집니다.
6월 14일 토요일에 LA에서는 “왕 노릇 말라” 시위가 수십만 명 규모로 열렸는데, 이 시위에는 통솔자도, 공식적으로 지정된 행진 경로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로든 마음대로 행진했습니다. 행진 경로를 조율하는 공식적 논의 기구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본집회를 열 집결지가 공지된 것이 전부였습니다.
노동계급이 살아 움직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운동이 매우 파편화돼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백, 어쩌면 수천 개의 동네 모임들이 제각기 사람들을 거리 시위로 불러 모읍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ICE 요원들의 숙소라고 밝혀진 어느 호텔 앞에서 열린 한 항의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하지는 못했습니다. 공지된 바로는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시위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청중 웃음].
시위의 목표는 ICE 요원들이 밤새 한숨도 잘 수 없도록 최대한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차를 몰고 호텔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시위 장면을 보고는 차를 세우고 바로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이런 자생성 덕분에, 소규모로 시작된 시위가 수백 명 규모로 불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공동체가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격한 분노와 적개심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들은 국가를 향해 ‘NO(안 돼)’ 하고 맞서고 있습니다. ‘내 이웃을, 가족을, 친구를 잡아가지 마라, 우리가 들고일어나 맞서 싸울 거다’ 하고 말이죠.
도시 전체가 분노를 터뜨리고 있어서, 앞서 묘사한 것 같은 시위가 LA 거의 모든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폭력을 휘두른 것은 국가다
이는 제가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바와 연결됩니다. 바로 우리가 목도한 엄청난 탄압입니다. 이 탄압은 거리에서 항쟁이 분출한 데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수십만 규모의 시위가 열린 6월 14일 아침부터 이른 오후까지 경찰은 거의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후 4시경에 경찰은 갑자기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 시위 운운하는 언론 보도들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경찰이 먼저 시위대를 공격하며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경찰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기마 경찰을 시위대를 향해 돌격시켰습니다. 그런 뒤 경찰은 최루 가스, 섬광탄, 고무탄 등 가진 수단을 총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하고 위협했습니다.
매번 국가가 먼저 평화적인 시위대를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14일 시위 후 LA 시경은 시위대가 먼저 경찰을 공격했다는 투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시위대를 악마화해서 그들을 약화시키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LA 시위를 통틀어 제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그 국가 탄압에 맞서 사람들이 보인 연대입니다.
곳곳에서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부상자를 응급 처치할 수 있도록 구급 상자를 돌리고, 최루 가스를 맞은 사람들에게 물을 주고,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마스크를 나눠 주었습니다. 매 순간 노동계급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고 돕고 서로의 안전을 확인했습니다.
사람들은 탄압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밀려날 때조차 시위대의 투지는 조금치도 줄지 않았고, 이내 시위대는 경찰을 밀어내고 대열이 원래 있던 자리를 탈환했습니다. 저항과 탄압 사이의 공방이 거듭됐습니다.
시위대가 사용한 전술 하나는 대열 맨 앞줄에 선 사람들이 일제히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평화 시위”를 연호하며 경찰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조차 경찰은, 손을 들고 평화롭게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향해 고무탄을 쏘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국가가 자신에 대한 위협을 꺾기 위해 얼마나 폭력적으로 굴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화를 나눈 어느 시위 참가자는 방금 전에 고무탄을 맞고도 바로 벌떡 일어나 경찰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대열이 경찰의 최루 가스 공격에 심하게 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대열 주변에서 사람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소금과 물이 섞인 용액으로 우리가 최루 가스를 씻어 내게 도와줬습니다.
사람들은 혼연일체가 돼 경찰의 위협에 맞섰습니다.
항쟁은 확대되고 있다
이어서 시위대가 제기하고 있는 요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구호는 ‘ICE는 LA를 떠나라’입니다. 시위대는 ICE 요원들을 LA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그자들이 LA에서 전혀 활동할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결의에 차 있습니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그보다 더 나아간 요구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ICE를 LA에서 몰아낼 뿐 아니라 트럼프 정권 자체를 타도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했다는 사람들이 제게 지금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시스템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운동 참가자 일부가 주요 요구에서 더 나아가며 급진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운동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을까요? 백인·흑인·아시아인 등 LA에 거주하는 모든 인종·공동체의 사람들이 시위에 나오고 있습니다.
집단 간 반목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시위 참가자들이 팔레스타인 깃발, 멕시코 깃발, 미국 깃발 등 각양각색의 깃발을 나부끼며 함께 행진하는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이민 2세대 사람들입니다. 부모 세대 때 미국으로 이주했고 본인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죠. 이들은 자기 가족·친구·이웃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대단하고, 시위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자 합니다.
LA는 이주 배경 사람들이 놀랍도록 많은 곳으로, 전체 가구 중 약 5분의 1이 가족 중에 미등록 이민자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항쟁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뻐할 일입니다. 예컨대 지난 주말에 시애틀에서는 ICE의 단속에 맞서 7만 명이 거리 시위를 벌였습니다.
LA는 노동계급 저항과 반격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 영감을 주는 다인종적 항쟁으로 말입니다.
발제자의 토론 정리
매우 흥미로운 질문 감사합니다. 그중 몇 가지를 순서대로 답해 보겠습니다.
먼저, 시위에서 미국 좌파가 하는 구실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민주당에 속하지 않은 미국 좌파들은 규모가 매우 작습니다. 시위대에서 조직 좌파의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최대의 사회주의 조직이라는 미국민주사회당(DSA)도 시위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이는 미국 좌파 전반의 취약성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운동과 이번 항쟁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먼저, BLM 운동이 벌어진 시점을 보죠. 그 운동은 트럼프 임기가 끝나 가고 대선을 몇 달 앞둔 2020년 초여름에 시작됐습니다.
2020년 6~8월에 BLM이 분출하자 민주당은 몇 달 후 있을 11월 대선에서 자신들에게 투표하면 된다고, 그때까지만 기다리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민주당은 거리 운동의 에너지를 민주당 선거 운동으로 길들일 수 있었습니다.
반면 이번 LA 항쟁은 민주당 정부 4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4년 동안 사람들은 민주당이 노동계급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민주당 정부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혹독하게 탄압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인종 학살을 지원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런 점들이 결합돼 지금 시위 참가자들은 민주당을 적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그 적대감은 매우 뿌리 깊습니다.
이 점에서 두 운동은 다르고 그래서 저는 민주당이 이번에는 운동을 납치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는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입니다.
자생성
또, 거리 시위의 전투성이 노동계급의 힘과 결합될 전망에 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질문은 자생적인 시위의 한계를 지적한 다른 발언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지금의 전투성이 노동계급의 힘과 결합되려면 모종의 상설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단기간 안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LA에서 느낀 것은 운동이 매우 파편화돼 있다는 것이었고, 그런 상설 조직이 꾸려질 조짐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예단할 수 없습니다. 향후 몇 주 정도는 변화를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극우 부상에 맞서
다음으로, 극우 부상의 위험을 지적하신 발언이 있었습니다.
극우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전진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극우 정당들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전망 속에서 좌파는 어떻게 대응할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A 항쟁은 극우 정권과 그 정권의 공격을 물리칠 최선의 전략을 보여 줬습니다. 노동자들이 단결된 행동으로 저항하고 거리 시위를 벌이는 것 말입니다. LA 항쟁이 보여 주는 노동계급의 단결은 우리가 세계 모든 곳에서 본받아야 할 전략입니다.
한 분도 지적했듯, 인종차별의 목적은 우리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래서 연대, 여러분이 접하시고 제가 LA 거리에서 목격한 연대가 중요한 것입니다. 연대는 사람들이 출신과 인종 등 각종 차이를 뛰어넘어 어깨 걸고 함께 싸우는 것입니다.
또, 소요에 관한 토론도 있었는데요. 저도 한 발언자께서 인용하신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 “소요는 무시당하던 사람들의 언어다”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노동계급 저항
발언을 정리하겠습니다.
지금 LA에서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흠뻑 바라고 헌신해야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상의 형태의 노동계급 저항 말입니다.
잔혹한 정권은 그들을 짓밟으려 하지만 노동계급 사람들은 들고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전횡을 용인하지도 방관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이 더 전진하려면 저항이 일터로 확대돼야 합니다. 일시적이지 않을 변화를 쟁취하려면 운동이 확산되고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저항해야 합니다. 즉 파업 투쟁을 벌여야 하고, 그것이 바로 이 항쟁의 다음 단계가 돼야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역사에는 노동계급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보여 주는 순간들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