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인터뷰:
“계속되는 산재 사망, 대통령 말만 믿고 기다려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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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산재 사망 사고 근절을 최우선 노동정책으로 제시했고 김영훈 노동부장관은 "직을 걸겠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바로 엊그제에도 울산 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최소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를 만나 이재명 정부의 산재 대책과 전망에 관해 들었다.
이재명 정부가 취임 당시부터 노동 정책에서 제일 강조하는 게 산재 문제였습니다. 동시에 산재에 대한 언론 보도도 크게 는 것 같은데요. 실제 현황은 어떤가요?
산재 건수에서 큰 변화는 없는데요. 사망 사고가 아닌 산재는 산재보험 신청 건수로 집계되니까 좀 부정확하고요. 사망 사고는 비교적 객관적인 수치가 나오는데, 이 수치도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산재 사망 중에서도 질병 사망 등은 제외하고 사고 사망만 보면 연간 800명 정도인데요. 사고 사망이 가장 많이 생기는 부문은 건설과 제조업, 유통과 플랫폼 산업 쪽이고요. 그런데 건설업 불황 때문에 사고 사망은 조금 줄어드는 추세예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당시 그 효과에 관해서는 논란이 조금 있었는데, 수치상으로 사망은 약간 줄어든 걸로 나오지만 눈에 띄게 줄어들지는 않았어요.
이재명 정부는 근로감독관 등을 늘려 감시를 강화하고 처벌도 엄하게 하겠다고 하는데요.
아주 조금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사실 중대재해처벌법도 사회적으로 산재 문제를 환기시키는 효과는 있었고요. 노동자들이 건강이나 안전 문제 관련해서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만드는 것 같아요.
다만 처벌 강화나 법률 개선에만 에너지를 쏟는 건 좋지 않다고 봐요.
예컨대 사망 사고가 나면 근로감독관이랑 경찰이 같이 수사하고 기소는 검찰 공안부에서 하는데요. 여기서 산재 사망 사고 같은 건 항상 우선순위가 밀려서 지지부진 끄는 게 문제였거든요.
그러니까 법이 만들어져도 국가기구들의 우선순위 때문에 제대로 집행이 안 되는 문제가 있고요. 이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봐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고 법 개정도 필요하지만, 결국 산재 사망이 얼마나 줄어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잘 싸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요.
노동자 투쟁은 비교적 뜸하지만, 산재 사망은 적은 나라들도 있지 않나요?
북유럽 쪽이 그런데요. 사실 노동자 사망이나 산재 문제는 자본주의 국가의 정당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와 국가기관들도 뭔가 대처를 하긴 해야 하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국가가 무능해 보이거나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보이니까요.
그럼에도 북유럽 나라들에서도 산재 대책 제도들은 예전에 잘 싸워서 만들어 놓은 것들이에요.
제도로 보자면 크게 두 축인데요. 하나는 우리나라에도 형식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라는 게 있어요. 작업장에 있는 안전 문제 등을 노사가 협의해서 예방하는 제도예요. 이런 제도의 틀은 비슷해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어떤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느냐 하는 거죠.
사실 노동자의 안전이나 건강에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들은 결정적으로 경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가령 인력이나 노동 시간, 노동 속도(강도) 같은 것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게 핵심적이죠. 뭐 마스크나 귀마개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훨씬 부차적이죠.
그런데 이렇게 경영과 관련된 것들 중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나요. 한국의 경우 거의 하나도 손대지 못하죠. 북유럽의 경우라고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적인 차이는 있어요.
다른 하나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발언력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문제인데요.
이 나라들에서는 노조 조직률도 높지만, 노동자 대표라는 제도가 있어요. 노동자 10명 당 한 명 하는 식으로 대표를 뽑아서 적어도 안전 문제 같은 데에서는 상당히 강한 발언력을 보장받거든요.
한국에서도 작업중지권에 관한 논의가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 작업중지권은 노동자 개인의 권리로 접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봐요. 정작 현장에서는 사용자 측과 노동자 개인의 힘이 압도적인 차이가 나니까요.
따라서 멀리 있는 노조가 아니라 개별 작업장 수준에서 대표성을 가진 노동조합이나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들이 그런 권리를 집단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해요.
한국에서는 사용자 측이 격렬히 반대하니까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은 곳에서는 꿈도 못 꾸고요. 노동조합이 잘 조직된 곳에서도 이 문제 때문에 다른 협상에 차질을 빚으면 안 된다는 ‘현실론’을 내세워 대체로는 노동자 개인의 작업중지권 문제로만 접근하고 있죠.
법이나 제도만으로는 어렵다고 하셨는데요. 그럼 좀 더 광범한 노동자들이 산재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실 산재 문제는 엄청 휘발성이 큰 이슈고 역사적으로 한 번 불타오르면 아주 비타협적으로 싸우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거든요. 심지어 노조 상층 지도부의 통제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게 보면 개별 작업장 수준이나 개별 사건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잘 싸우면 다른 작업장이나 다른 부문의 투쟁도 자극해서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어요.
거꾸로 사회적으로 안전이나 생명과 관련된 것들을 강화해야 된다는 분위기가 강할 때에도 현장 투쟁을 제대로 못 하면, 오히려 자본이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명분과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아요.
대표적인 사례가 지금 언론에 가끔 나오기도 하는데 현대제철 같은 경우인데요. 사용자 측이 ‘사고 줄여야 된다, 안 그러면 우리 계속 때려 맞는다’ 하면서 노동자들을 옥죄고 감시만 강화한 거예요. 최근에는 로봇 개까지 사업장에 풀어서 노동자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려 한다고 해요.
건설 현장에서도 실질적인 안전 조처는 없이, 가장 흔한 게 그냥 문서가 많아진다는 거예요. 내 책임입니다 하는 식으로 사인하고 들어가는 게 많아진다는 거죠.
사실 조금 추상적으로 얘기하자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지속되는 한 산재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겁니다.
선진국들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지만 사실 해결한 게 아니고 딴 데로 떠넘긴 거죠. 위험한 산업이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축적된 자본의 일부를 투자해 효율을 높이는 식으로요. 그조차 눈에 크게 보이는 사망 사고만 조금 줄였지 질병이나 다치는 문제는 별로 줄지 않았거든요. 정신적 스트레스도 크게 늘었고요.
그래서 이게 문제의 성격은 계속 말씀드리지만 노동자들의 힘 문제거든요.
그렇게 보면 희망도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잘 싸우느냐 하는 건 아직 열려 있는 결말이니까요. 정부가 지금처럼 분위기를 띄울 때 그런 걸 지렛대로 삼아서 싸움을 잘하면 개선도 이룰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