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부품물류:
파업으로 부당 해고를 철회시키다
〈노동자 연대〉 구독
새해 첫날 부당 해고됐던 전국금속노조 한국GM부품물류지회 노동자 100여 명이 투쟁으로 해고를 철회시키고, 전원 고용 승계됐다.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사용자 측의 공격을 막아 냈다는 뿌듯함과 다행스런 마음으로 작업장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노조와 한국GM 간 합의에 따르면, 해고된 노동자들은 한국GM의 1차 하청업체인 정수유통이 새로운 업체(경륜로지스틱)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경륜로지스틱을 통해 노동조건 저하 없이 고용 승계된다. 또, 원청인 한국GM은 앞으로 노동자들의 계약 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승계와 노동조건이 이어질 수 있도록 역할을 하기로 했다”.
이번 잠정 합의안은 2월 6일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77.89퍼센트로 가결됐다.
이번 한국GM부품물류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오는 3월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2,3조) 시행을 앞두고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전초전이었다.
한국GM은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원청 교섭과 투쟁에 나서기 전에 대비하려고 했다. 노조를 만든 하청 노동자들이 소속된 계약 업체를 변경(우진물류→정수유통)하고, 새해 첫날 전원 해고했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한국GM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까지 제기하자 저들의 우려는 더 커졌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원청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한국GM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이며 만만치 않게 투쟁에 나섰다. 세종물류센터에서 철야 농성을 벌이고, 사측의 부품 반출을 저지하고(블래킹), 대체 인력 투입 시도를 좌절시켰다(피케팅).
노동자들의 단호한 투쟁은 GM차량 부품 수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만들었다. 친사용자 언론들은 ‘한국GM의 애프터서비스(AS) 전면 중단’을 우려했다. 수출에도 빨간등이 켜지면서 미국 GM본사에서도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미국 GM 본사는 올해 한국GM 생산 목표를 크게 늘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한국 부평과 창원 공장을 풀가동해야 가능한 50만 대 생산을 한국GM 측에 요청했다. 한국GM 생산 차량의 90퍼센트가량이 미국으로 수출되는데, 높은 관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서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회자되는 한국GM 철수설과는 다른 방향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품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지속되는 것은 큰 압력이었을 것이다. 하청 업체의 고용 승계 여부에 관여할 수 없다며 책임을 회피해 온 한국GM이 네 차례 직접 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노동자들은 블래킹과 피케팅으로 사용자들의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파업을 벌였다. 이번 투쟁은 경제 침체 상황에서 사용자들을 물러서게 하려면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파업 전술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 줬다.
이재명 정부는 시행 전이지만 개정된 노조법(노란봉투법)을 대놓고 무시하는 한국GM을 방치했다. 노동자들은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등 비판과 항의를 했다.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부품 수급이 심각해지고, 원청 한국GM에 대한 사회적 지탄의 목소리가 커지자 그제서야 중재에 나서는 모양새였다.
이번 투쟁은 노란봉투법을 후퇴시킨 데 이어서,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이재명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고, 싸웠을 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연대의 초점
다른 한편, 노동자들의 파업은 연대의 초점이 됐다.
엿새 만에 7,000만 원 가까운 후원금이 모금됐고, 연대의 발걸음이 세종물류센터로 이어졌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매일 돌아가며 농성장에 연대했다.
오는 3월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노동자들의 관심과 지지가 커졌다.
한국GM부품물류지회 노형주 부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종물류센터가 외지에 있어요. 고립되지 않을까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속노조 동지들을 포함해서 연대가 많아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12월 31일에 80~90여 명이 연대 와서 주차장에서, 아스팔트에서 주무시고 같이 새해 아침을 맞았어요. 새해 아침을 회사에서 보낼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분들은 자신들이 원해서 하는 거라고 하셨지만, 너무나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일이었어요”
노동자들은 처음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다섯 달 만에 집단 해고 당했지만, 투지 있게 파업을 벌이면서 의식이 성장하고 조직도 더 단단해졌다.
노형주 부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측이 인수인계한다고 대체 인력 투입하려고 했을 때, 간부들도 그렇지만 조합원들이 더 많이 분노했어요. 마치 자기 집에 뭐 훔쳐가는 사람들 대하는 것처럼요. 여기서 단 하나라도 (부품) 나가면 안 된다, 우리 허락 없이는 안 된다, 분노가 컸습니다. 우리는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당했다고 생각했어요.
“GM 임원이라는 사람이 부품을 몰래 챙겨서 나가려고 하다가 잡힌 경우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저에게 ‘이거 GM 물건인데 니가 왜 막냐’ 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저는 오히려 당신이 도둑질하는 거라고 말했어요. 이것은 GM 물건이 아니고, 우리를 통해서만 반출될 수 있는 부품이다. 정 급하면 우리에게 미리 얘기하고 요청해라, 저는 당당하게 얘기했고, 결국 놓고 가더라고요.
“우리는 이제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장 크게 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그 누가 오던 이제 우리는 부당함이나 위험한 작업 부분에 대해 다들 당당하게 얘기를 하게 됐습니다”
노형주 부지회장은 투쟁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조합원들과 소통이 중요하고, 그것이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지내면서 간담회를 자주했어요. 그리고 간부들이 한 회의 결과는 (일방)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설명을 잘 하려고 계속 노력했습니다. 이번에 교섭하면서는 매일매일 상황을 전달했고요. 왜냐하면 조합원들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조합원들이 모든 걸 결정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소통이 참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사실 조합원들이 시키니까 한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더 분노하고 간부들보다 더 앞장서서 부당함을 얘기하고 그러더라고요.”
한국GM부품물류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조법 2, 3조가 개정된 후 집단 해고된 첫 사례였다.
노동자들은 투지 있게 싸워서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나 투쟁으로 해고는 철회됐지만, 하청의 하청으로 고용되는 것 때문에 아쉬워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사용자 측은 이런 고용 형태를 악용해 향후 노란봉투법 적용과 정규직화를 회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릴 수 있다. 이에 맞서는 것은 앞으로 싸워야 할 과제로 남았다.
다가올 투쟁에서도 승리하기를 적극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