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란 혁명은 어떻게 팔레비 독재를 타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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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월 16일 이란의 샤(군주)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가 안와르 사다트 치하의 이집트로 도망쳤다. 그로부터 4주도 채 지나지 않아 이란 왕정은 막을 내렸다.
실로 놀라운 전개였다. 팔레비는 1953년 서방이 기획한 쿠데타로 좌파 민족주의자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축출된 이래 약 25년간 무자비한 독재 정권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팔레비는 이란 국가와 석유 수입을 동원해 경제 근대화 자금을 조달하고, 군비를 증강해 당시 세계 5위 규모로 추산되던 군사력을 구축했다. 당시 이란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중동 우방이었고, 1973년부터 수도 테헤란은 미국 CIA의 중동 작전 본부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샤는 이란 사회의 광범위한 계층으로부터 반감을 샀다. 정권은 부패했고 자본주의 발전의 이득은 압도적으로 부유층, 특히 팔레비 가문에 집중됐다.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권위주의 독재 정권이 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반대했다. 보수 성직자들의 정치적 기반인 바자르(전통 시장)의 소상인들은 대기업에 밀려 갈수록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로 내몰렸다.
석유 산업 등의 노동자들은 정부가 심어 놓은 경영자들과, 샤의 잔혹한 비밀경찰 사바크(SAVAK)가 장악한 노조를 증오했다. 쿠르드족과 발루치족 같은 소수민족은 민족적 권리가 부정당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1977년 6월, 테헤란 빈민촌 주민들의 평화 행진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샤의 군대는 잔혹하게 시위를 진압하며 수많은 시위자를 학살했다.
그러나 독재자 샤는 양보안도 내놓기 시작했는데, 특히 종교적 반정부 세력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이런 양보 시도는 반정부 세력을 회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정권이 얼마나 유약하고 우유부단한지 여실히 보여 줌으로써 그들의 기세만 북돋우는 꼴이 됐다.
결정적 계기는 1978년 가을 테헤란 석유 노동자들의 파업이었다. 정권은 9월 8일 ‘검은 금요일’에 수십 명의 노동자를 학살했고, 이는 파업이 다른 도시들과 석유 생산 거점들로 확산되는 도화선이 됐다. 석유 수입에 의존하던 팔레비 정권에게 이 파업은 치명타였다.
이런 파업 물결 속에서 ‘쇼라’라고 불리는 공장 평의회가 등장했다. 이들은 작업장을 장악하고 샤가 임명한 경영자들을 몰아내고자 했다. 쇼라는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유례가 없었던, 진정한 노동자 민주적 기구의 맹아가 될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주요 좌파 조직인 투데당은 쇼라가 이란 자본주의 체제에 제기하기 시작한 도전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일종의 공산당인 투데당은 소련의 노선을 따랐다. 그리고 1979년 2월 1일 망명지에서 귀국한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지지했다.
당시 이란 좌파 사이에서 우세한 견해는 이란의 경제가 너무 낙후한 데다 이슬람의 영향력이 막강해서 이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란은 1917년 혁명 당시의 러시아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해 있었으며, 이란 노동계급은 권력에 도전할 자신감을 갈수록 키우고 있었다.
게다가 이란의 대표적 지식인 알리 샤리아티가 주창한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정치는 그가 혁명 2년 전에 사망했음에도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실제로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샤리아티의 수사를 일부 가져다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호메이니가 1979년 3월 국민투표를 통해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진보적 정치의 외양은 즉시 폐기됐다.
갈수록 반동적이 된 호메이니의 통치가 아무런 도전에 부딪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히잡 착용 강제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다. 그러나 호메이니 정권은 샤 시절의 사바크와 같은 구실을 하는 이른바 ‘혁명수비대’를 동원해 모든 형태의 저항을 끝내 잔혹하게 짓밟았다.
좌파 정당이 금지됐고 그 지도자들이 체포됐다. 일부는 이후 반혁명에 해당하는 과정 속에서 처형됐다. 서방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이 이란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좌파를 숙청하는 데 도움이 됐다. 1980년 시작된 8년간의 전쟁에서 이란과 이라크 양측 군인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이란 혁명은 겉보기에 아무리 잔혹한 독재 정권이라도 대중 봉기가 일어난다면 무너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또, 그 혁명은 오늘날 이란 민중이 이스라엘과 미국 제국주의의 사주에 의한 정권 교체를 바라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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