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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팔레스타인·이란전쟁 내란 청산과 극우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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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류제국주의 국가인가? ─ 잠재태와 현실태

1. 세 가지 입장 플러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두고 국내 좌파에는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첫째, 한국을 여전히 미국에 종속된 국가로 규정하는 시각이다. 진보당을 포함한 상당수 좌파 세력이 이 입장을 견지한다. 둘째, 일부 개혁주의자와 일부 급진 좌파는 한국이 제국주의적 국가가 됐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셋째, 한국을 ‘하위’ 또는 ‘아류’(sub-) 제국주의 국가로 보는 관점이다.

필자는 세 번째 관점과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관점에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특히, 아류제국주의의 함의를 명확히 하고, 이것이 완성된 결과물인지 아니면 특정 정세에 따른 경향성인지를 분석해야 실효성 있는 고찰이 가능하다.

우선, 명확히 짚고 넘어갈 지점이 있다. 한국의 아류제국주의 전망은 결코 ‘미국의 충실한 하위 파트너’로 전락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미국 패권에 기대면서도, 패권의 균열과 다극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자국 자본과 국가 이익(“국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중간 제국주의적 행위자’로 변모함을 뜻한다. 따라서 한국의 아류제국주의 전망은 단순한 ‘친미 종속’의 심화나 ‘반미 자주’의 발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정확히는 ‘비대칭적 관계 속의 자율’이 확대되고, 나아가 ‘미국 패권 위기 속의 자율적 확장’이 강화되는 과정이다.

2. 제국주의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의

아류제국주의를 논하려면 제국주의의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흔히 제국주의를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행위로 이해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제국주의는 이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다. 제국주의는 특정 강대국의 단편적인 ‘정책’이 아니라, 상호 경쟁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얽힌 국제적 ‘체제’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자본 축적의 산물로 봤다. 자본은 축적 과정에서 규모와 힘을 키우며 국가와 융합(국가화)하고, 동시에 세계로 뻗어 나가 시장·원료·투자처를 놓고 경쟁(국제화)한다. 그 결과 자본 간 경제적 경쟁과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이 융합하는 경향을 보인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정리했듯, 현대 제국주의는 바로 이 두 경쟁, 즉 시장을 둘러싼 기업 간 경제적 경쟁과 영토·영향력을 둘러싼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이 융합하는 현상이다. 자본주의 기업의 활동 영역이 국제적으로 확대되면서, 기업이 경쟁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국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가지 함의가 도출된다. 첫째, 제국주의는 미국의 패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미국 제국주의의 약화는 제국주의 시스템의 종말이 아니라 시스템 내 세력 균형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국 쪽으로 기우는 것을 뜻할 뿐이다. 둘째, 레닌이 강조한 불균등 발전 법칙에 따라 경제적 강대국의 순위가 바뀌고, 그에 맞춰 정치·군사 강대국의 순위도 재편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 사이에는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협력이 유지될 수 없다.

이 정의는 곧바로 ‘진영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제국주의를 미국 패권으로 축소해 중국·러시아·이란 등을 그에 맞선 ‘진보적’ 균형추로 보는 진영론은 세계를 계급 대 계급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로 이해하며 미국의 경쟁국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그 나라들의 노동자 착취·억압을 외면한다. 중국은 스스로 반식민지 경험을 강하게 상기시키나, 지금은 미국과 경쟁하는 제국주의 강대국이다. ‘채무 함정’ 외교, 신장·티베트 지배, 자국 노동자 탄압이 이를 보여 준다. 따라서 아류제국주의 분석의 핵심 잣대도 ‘어느 편인가’가 아니라 ‘어느 계급의 이익인가’여야 한다.

3. 아류제국주의의 이중성

아류제국주의도 제국주의의 한 형태다. 제국주의와 아류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 축적을 위해 해외로 경제적·군사적·외교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현상이다. 두 개념은 다음 요소를 공유한다. 우선, 국가와 대자본의 긴밀한 결합이 나타난다. 반도체, 배터리, 군수산업(“방산”), 조선, 핵발전소(“원전”) 같은 산업과 국가 전략의 융합이 대표적이다. 상품 수출을 넘어 자본을 수출하고 해외 생산기지, 자원, 항로, 기술 표준을 확보한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뒷받침하는 군사력과 이를 정당화하는 ‘자주국방’, ‘글로벌 중추국가’, ‘경제안보’ 같은 이데올로기도 표방한다. 이 점에서 아류제국주의는 약소국의 방어적 행동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확장의 한 형태다.

그러나 둘은 같지 않다. 제국주의(적) 국가는 세계 질서의 규칙을 만들거나 크게 좌우할 능력이 있다. 미국이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미국은 달러 체제, 세계적 군사기지망, 해군력, 금융제재, 핵전력, 국제기구 영향력으로 세계 질서를 편제하려 한다. 중국도 이제 세계적 경쟁자로 떠올랐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러시아도 다른 등급의 제국주의 국가들이다.

반면 아류제국주의 국가는 세계 질서를 독자적으로 기획하거나 구상하지 못한다. 더 강력한 제국주의 질서에 의존한다. 동시에, 흔히 지역적 수준에서 자본 수출, 무기 판매, 군사 훈련, 개발 원조, 인프라 투자, 기술 이전, 항만·에너지·물류 장악 등을 통해 지배적 역할을 한다. 즉, 아류제국주의 국가는 상위 체제에 비해 부차적인 동시에, 나머지 체제에서 우세를 누리려 한다. 이러한 이중성이 핵심이다. 한국이 미국에 의존적이라고 해서 제국주의적 성격이 완전히 결여됐다고 볼 수 없으며, 그 성격을 강화한다고 해서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바로 그 중간 지대에 놓여 있다.

4. 단서: 잠재태와 현실태의 구분

그러나 “한국은 아류제국주의다”라고 단언하기 전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매우 중요한 구분을 해야 한다. 자본주의 발전 수준을 고려하면 한국은 분명 아류제국주의 국가가 될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잠재태가 곧 현실태를 뜻하지는 않는다.(고전적 존재론의 용어로 진술해서 죄송하다. ‘태’는 상태나 존재 양식을 뜻하는 말이다. 즉, 어떤 사물이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을 예로 들어 보자.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본격적인 제국주의 강국이 될 잠재력을 갖췄다. 하지만 필요한 역량을 실제로 발전시키고 ‘근육’을 과시하기 시작한 시점은 18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초기에는 서반구에서 영국을 상대하는 수준이었다. 잠재태와 현실태 사이에는 수십 년의 간격이 존재할 수 있다. 그 간격을 메우는 동력은 ‘역량의 축적’과 ‘발휘할 의지 및 기회’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한국은 미국·중국·일본 등 주변국에 가로막혀 아류제국주의 국가로 행동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 특히 이란 전쟁 실패가 촉발한 정세 변화는 한국 지배계급이 더 독자적으로 행동하도록 해 이들을 변화의 길로 떠밀 수 있다. 한국의 아류제국주의 전망은 ‘이미 완성된 상태’라기보다, 충분히 무르익은 ‘구조적 잠재태’가 미국 패권 약화라는 현재 정세에 의해 ‘현실로 활성화되는 경향’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5. 한국의 아류제국주의적 전망의 물질적 토대

잠재태가 빈말이 아닌 이유는 물질적 토대가 두텁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미국·중국·일본·독일·프랑스·러시아 같은 제국주의 국가와 같은 급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아류제국주의적 특징을 상당히 축적했다.

한국 대기업은 세계 곳곳에 생산 기지와 투자망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현대차·SK·LG·포스코·한화 등은 국내 생산과 수출의 단계를 넘어 해외 노동력과 시장, 자원, 기술, 물류망을 직접 조직한다. 군수산업(“방산”)은 이제 국가 전략 산업으로 떠올랐다.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잠수함, 미사일, 군함, 방공체계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이는 훈련과 정비, 부품 공급, 기술 이전, 금융 지원, 현지 생산, 군사 협정을 동반하는 장기적 군사·외교 관계의 매개체다.

군사력도 한반도 방위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 청해부대와 UAE 파병,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 해상교통로 보호, 호르무즈·인도양·남중국해·대만해협 관련 논의가 그 증거다. 핵추진잠수함 도입 추진과 장거리 미사일, 우주 정찰, 드론, AI 군사기술은 한국의 전략적 시야가 확장됐음을 보여 준다. 외교적으로도 인도·태평양 전략, 무기와 핵발전소 수출, 공급망 동맹, 중동·동유럽·동남아 진출은 한국이 세계 질서 속에서 더 큰 영향력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미국에 종속된 국가’라는 기존의 틀로는 현재의 위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6. 한쪽에 올인하지 않고 강대국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며 위험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모호성

아류제국주의 국가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제국주의와 협력하면서도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거래하고, 흔들리고, 거부하며, 때로는 충돌한다. 한국도 미국의 핵우산, 정보망, 군사기술, 금융질서, 해양질서, 동맹망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자본은 중국 시장, 동남아 생산망, 중동 에너지, 유럽 무기 시장, 중앙아시아 자원, 아프리카 인프라, 글로벌 해운·조선 질서에도 이해관계가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늘 미국의 전략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아류제국주의로 나아가려는 한국은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미국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이번 이란 전쟁에 대해 그랬듯이 미국의 전쟁에 무조건 참전하지 않을 수 있고, 호르무즈해협에 대해 그랬듯이 위험 부담이 큰 작전은 회피하거나 유럽 주도의 다자 틀, 혹은 유엔·해상안보 같은 명분을 택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은 반미가 아니다. 그렇다고 종래의 친미도 아니다. 이는 한국 지배계급의 독자적 이해를 관철하려는 계산된 ‘헤징’(위험 분산 전략)이다.

7. 미국의 이란 전쟁 실패

이란 전쟁의 결과는 이 전망에 무게를 실어 주고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에 따르면, 미국은 베트남과 이라크에 이어 세 번째 역사적 패배에 직면했다. 이란은 붕괴하지 않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을 견뎌 냈으며, 세계 석유·가스의 20퍼센트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더 중요한 정치적 함의는 미국이 걸프 연안국들을 방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에너지 공급의 대가로 군사적 보호를 받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제구실을 못 했다.

이 실패는 미국의 동맹국과 하위 파트너 국가에 한 가지 교훈을 남기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무조건적 추종은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전통적 친미 국가가 중국과 경제·외교·안보 관계를 확대하며 미국을 견제하고 협상력을 높이는 배경도 이와 같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는 중시하되 반미는 아닌’ 노선이다. 한국도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대중 경제 관계를 지속하고, 대중 봉쇄에 일부 협력하되 속도와 범위를 조절하며 미국의 전쟁 요구를 사안별로 검토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란 전쟁 실패 이후 한국의 아류제국주의 전망을 단순한 ‘친미 군사하청 국가’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미국 패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과정에서 더 자기중심적이고 거래적이며 자율적인 ‘하위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지정학적으로 ‘둘러싸인’ 상태가 완화되는 계기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국이 가까운 장래에 명확한 친중 블록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핵우산, 미국 시장, 첨단기술, 금융질서, 반도체 동맹은 한국 지배계급에게 여전히 결정적인 요소다. 그러나 ‘친중 블록으로의 이동’과 ‘친중적 헤징의 강화’는 별개 문제다. 후자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중국은 여전히 거대한 시장이자 공급망의 핵심이다. 중간재와 원자재, 배터리, 반도체 장비, 소재, 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자본주의와 깊숙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 지배계급은 다음과 같은 노선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안보는 상당히 미국에 의존하되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단절하지 않는 방식이다. 미국에는 더 많은 군사적 부담과 군수산업 협력을 약속하면서도, 중국에는 한국이 일본처럼 노골적인 대중국 전초기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대만해협 문제에서는 미국을 지지하지만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피한다. 중국 제재에 일부 협력하더라도 국내 기업의 피해가 큰 분야는 예외를 요구한다. 이는 반미나 친중이 아니다. 미·중 사이에서 실익을 극대화하려는 아류제국주의적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미래의 아류제국주의 한국은 일본과도 대립할 수 있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협력을 지향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단순한 동맹을 넘어선 경쟁 관계다. 군수산업·조선·핵발전소·반도체 등 전략 산업과 동남아·중동·동유럽 시장 전반에서 양국의 경쟁은 치열하다.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일본의 재무장 및 자위대 역할 확대 등은 상존하는 갈등 요인이다. 미국 패권이 공고할 때는 한일 갈등의 관리와 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로 동맹국의 자율성이 커지면, 역내 영향력을 놓고 양국 간 경쟁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8. 정세적 시험대: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와 호르무즈해협

이러한 분석은 추상적 전망을 넘어 현재의 정세 속에서 실증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를 둘러싼 논쟁이 그 가늠자다. 일부 진보 계열은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과 호르무즈 자유항행 이니셔티브 참여 의사를 ‘획기적 변화’라고 평가하며 환영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의 척도는 수사가 아닌 실천이다.

이스라엘 비판은 가자 학살 30개월 만에, 그것도 이란에 특사를 파견하는 날 나온 ‘꼴찌 탑승’이었다. 그 뒤에도 팔레스타인인을 살상하는 데 쓰이는 탄약과 전차의 대이스라엘 수출은 계속됐다. ‘세계 4대 방산 강국’은 이 정부의 공식 국정 과제다. 이는 임신 중지권 같은 다른 과제와 달리 매우 빠르게 추진됐다.

특히 호르무즈 자유항행 이니셔티브의 사례는 결정적이다. 이를 ‘미국 제국주의와는 다른 대안’으로 평가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핵심국은 중견국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같은 전통적 서방 제국주의다. 기뢰 제거를 핵심 작전으로 삼는 개입은 타국의 영해 인근에서 벌이는 선제적 군사작전이다. 즉, ‘중견국 중심’ 다자 연대는 미국과는 다른 대안이 아니다. 국익을 위해 미국과 갈등하면서도 협력하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적 개입일 뿐이다.

요컨대 미국과 협력하든 갈등하든, 이재명 정부가 하려는 것은 제국주의 체제 안에서 자국 지배계급의 독자적 이익과 아류제국주의를 추구하는 일이다.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라는 미사여구는 이러한 추구를 가려 준다. 이 정세적 사실은 ‘잠재태의 현실화’가 이미 눈앞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9. 국제주의의 핵심 구분: 누구의 자율성(독립성)인가?

한국이 아류제국주의 국가가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군사 정책의 범위가 한반도 방위를 넘어 대만해협, 남중국해, 인도양,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장된다. 외교·정치적 영향력 확대가 외교의 핵심이 돼 해당 지역의 전쟁, 억압, 국경분쟁, 민중 탄압에 한국 자본과 국가가 더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자주국방’ 담론은 이중적 성격을 띤다. 미국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측면도 있는 동시에, 한국 자본과 국가가 독자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하려는 확장주의적 성격도 포함한다. 따라서 ‘자주국방’이라는 구호만으로 이를 진보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국내적으로는 전략 산업(가령 삼성전자)의 파업과 임금 요구가 ‘국익, 안보, 수출 경쟁력’이라는 명분 아래 공격받는다. ‘K-방산’과 ‘글로벌 중추 국가’ 담론은 노동자가 한국 자본의 해외 확장을 자신의 이익인 양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율성’의 성격을 구분하는 일이다. 한국이 미국과 거리를 둔다고 해서 곧 반제국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특정 전쟁에 불참하는 것이 곧 평화주의를 뜻하지도 않으며, 중국과 가까워진다고 해서 제국주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일본과 대립한다고 해서 식민 지배 청산이나 ‘자주’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자율성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노동계급의 독자성인가, 아니면 한국 대기업·군수산업·군부·관료·국가의 자율성인가? 피압박 민중과 연대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 자본이 그 지역의 시장·자원·노동력·군사 수요를 장악하려는 것인가? 아류제국주의 한국의 ‘자율성’은 후자를 지향하는 것이다.

여기서 ‘국익론(내셔널리즘)에는 좌우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미국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당과 그 진보 계열뿐 아니라 보수 논평가들에게서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김하영이 강조하듯, 이는 미국 패권의 약화와 한국 자체의 성장, 그에 따른 애국주의 강화가 맞물린 결과다. 제국주의 열강과 그 틈새에서 책략을 부리는 중견국 사이에는 갈등과 협력이 늘 공존한다. 인도나 튀르키예 같은 중견국들이 흔히 지역 긴장을 증폭시키는 당사자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자국 정부를 지지한다면 제국주의 체제에 맞서기는커녕 그 일부를 떠받치는 꼴이 된다.

10. 결론: 아류제국주의화에 맞선 계급적·국제주의적 반제국주의

진정한 좌파적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한국은 아직 진정한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아류제국주의로 나아갈 잠재태를 이미 갖췄다. 현재의 정세는 그 잠재태를 현실로 끌어내고 있다. 이는 미국 패권에 의존하면서도 군수산업·자본수출, 첨단제조업, 해양군사력, 인도·태평양 전략, 중동·동유럽·동남아 진출을 통해 약소국과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순히 미국의 하청군사 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미국의 이란 전쟁 실패와 중동 친미 국가들의 친중적 보험 외교에서 보듯, 미국 패권이 흔들릴수록 중간 강국들은 더 자율적이고 실리적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미래의 아류제국주의 한국을 ‘친미냐 반미냐’라는 단순 구도로 파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국은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흥정하고,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거래하며, 일본과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더 위험하고 자율적인 하위(아류)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할 수 있다.

좌파에게 이 점은 결정적이다. 김하영이 강조하듯, 한국 국가의 자율성 확대를 곧바로 반제국주의적 진전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동시에 한국 지배계급의 확장주의, 무기 수출, 군비 증강, 해외 개입, 약소국 압박에도 맞서야 한다. 국제주의적 좌파인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과 아류제국주의 강국의 모든 지배계급들에 맞서 세계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을 지지한다. 한국의 아류제국주의 전망이 아닌 진정한 대안은 국가 차원의 자주국방 강화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국제주의와 모든 제국주의적 경쟁에 대한 거부다. 계급 정치는 협조가 아닌 투쟁의 정치여야 하며, 그 투쟁이야말로 반제국주의의 핵심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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