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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팔레스타인·이란전쟁 내란 청산과 극우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긴 글 알렉스 캘리니코스 강연:
트럼프, 제국주의의 위기, 좌파의 과제

다음은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5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같은 제목으로 한 원격 강연과 토론 정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여러분과 토론하게 돼 기쁩니다. 직접 가지 못해서 아쉽네요.

여기 런던에서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나크바의 날’ 집회를 크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 런던에서 극우가 조직한 이슬람 혐오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행진이 열릴 텐데, 우리는 그 행진과 대결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종차별, 제국주의, 이스라엘 국가에 맞선 투쟁에서 매우 중요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토론의 제목은 ‘트럼프, 제국주의의 위기, 좌파의 과제’입니다. 그런데 자칫 트럼프라는 인물 자체에만 몰두하기 쉬운데, 그가 그만큼 기괴하고 역겨운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의 행동과 발언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합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아무리 역겨운 인물일지라도, 그는 하나의 증상에 불과합니다. 트럼프는 제국주의 시스템 전반이 처한 심대한 위기의 증상입니다.

5월 16일 포럼 ‘전쟁, 혼돈의 세계, 저항’에서 원격 강의하는 알렉스 캘리니코스 ⓒ이미진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제국주의가 무엇인지를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흔히 제국주의를 강대국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로마 제국이나 중국 제국 등 과거의 여러 제국도 여기에 해당하죠.

물론 강대국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것은 근대적 제국주의의 한 요소입니다. 올해 초 미국이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침공해 그 나라의 대통령을 납치하고, 쿠바를 기아로 내몰고 있는 것이 그런 사례죠.

그러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는 어떤 면에서 옛 제국보다 더 고약합니다. 깡패 같은 국가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개 있어서, 세계 지배와 착취를 위해 서로 경쟁하며 다투기 때문이죠.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는 시스템입니다. 그 시스템은 자본 축적 과정의 발전에서 비롯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 축적을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 중 하나로 꼽았죠.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는 두 형태의 경쟁이 결합되면서 생겨납니다.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죠.

다들 아시다시피 경제적 경쟁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입니다. 여러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경쟁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비용을 절감하고 이윤을 늘리려 하죠.

지정학적 경쟁은 힘 있는 국가들이 영토와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근대적 제국주의는 이 두 형태의 경쟁이 융합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융합이 일어나는 이유는 자본주의 기업들의 활동 영역이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그런 기업들이 경쟁에서 자신을 지켜 줄 국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미중정상회담 일론 머스크, 잰슨 황, 팀 쿡 등 기업주들울 대동한 트럼프 ⓒ출처 백악관

이는 이번 미·중 정상 회담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트럼프는 일론 머스크와 팀 쿡 같은 기업주들을 대동했습니다. 중국 정부에게서 그들의 영업 기회를 더 많이 얻어 내려는 것이었죠.

물론 중국에도 대기업들이 있습니다. 시진핑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자국 기업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인류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둘러싼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경쟁이 오늘날 제국주의의 핵심입니다.

미국 패권의 쇠락과 트럼프의 포식성 제국주의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헤게모니를 거머쥔 제국주의 강대국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배하고 조율했죠.

그러나 이제 미국은 두드러지게 쇠락하고 있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중국의 부상 때문이죠.

통계를 보면 1945년 미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 그 비중은 10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퍼센트에 달합니다.

미국의 경제적 쇠락이라는 장기적 추세는 특정 사건들로 인해 더 강화됐습니다. 두 사건이 중요한데, 하나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패배입니다. 다른 하나는 2007~2009년의 세계 금융 위기죠. 이 사건들은 미국의 상대적 쇠락을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미군 ⓒ출처 미 군

트럼프의 야심은 그 쇠락을 되돌리는 데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의 슬로건은 마가(MAGA)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뜻이죠.

그런데 여기에는 미국 제국주의 전략의 변화가 수반됐습니다.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이전 미국 정부들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블록으로 결집시키려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흔히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질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최근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는 그 질서가 위선적이었다고 시인했죠.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 그 규칙을 어겼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내세운 이데올로기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공동의 이익이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특히 2기 정부는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질서’를 포기하고 나토 등 그 질서를 주도하던 기구들을 공격했습니다.

트럼프는 포식성 제국주의로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트럼프는 특히 미국의 동맹국들을 겨냥해 관세를 대폭 올리려고 했습니다. 그 나라들이 미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였기 때문이죠.

결국 그 나라들은 트럼프가 처음에 부과한 것보다는 낮은 관세를 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갱단이 보호세를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관세를 낮춘 대가로 각국 정부들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해야 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관세를 낮추는 대신 미국에 3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죠.

이러한 깡패짓과 함께 트럼프 정부는 갈수록 군사력 행사에 더 의존했습니다. 트럼프는 미국이 해외에서 벌이는 ‘끝없는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제 그 약속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트럼프가 가장 눈여겨본 군사력 행사의 본보기는 지난 1월 초 카라카스를 공격해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를 납치한 것입니다. 매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수행된 작전이었죠.

이란 전쟁에서 역사적 패배에 직면한 미국

트럼프는 거기에 고무되어 있다가 최악의 실책을 범했습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미국을 이란과의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을 허용한 것입니다.

네타냐후가 2023년 10월 7일 이래 추구해 온 정책은 단순합니다. 이스라엘의 제공권과 정보 우위에 기초해 무지막지한 무력을 행사해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중동의 더 넓은 지역에 이스라엘의 지배를 관철하는 것이죠.

여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이 이란 이슬람공화국 정권이었습니다. 비록 이란 정권이 구축한 ‘저항의 축’이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수십 년에 걸친 시도 끝에 네타냐후는 이란과의 전쟁에 가세하도록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트럼프가 네타냐후의 시도에 응한 이유 하나는 카라카스 습격 이후 기고만장해졌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이란 정권도 베네수엘라 정권처럼 손쉽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아울러 세계 석유·가스 흐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 또한 그의 주요 목표였습니다.

트럼프는 이란의 석유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 제국주의의 역사적 패배에 직면했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미국의 쇠락은 단지 중국의 부상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광범한 세계 경제력 분포의 변화를 반영합니다.

이란은 산업이 발전한 나라입니다. 사실 이란은 매해 미국보다 더 많은 엔지니어를 양성합니다. 위험하고 불안정한 중동에서 이란이 처한 위태로운 처지 때문에 이란 정권은 첨단 미사일·드론 생산 능력을 발전시켰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군사 기술을 중요한 문제로 여깁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고받은 서신을 보면, 특히 엥겔스가 19세기 후반에 개발되던 새 군사 기술을 자세히 분석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정교한 드론이 갈수록 널리 쓰이면서 전장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요성은 서방 제국주의와 러시아의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점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양측 모두 드론을 사용함으로써 전장의 변화를 보여 준 전쟁이기도 합니다.

이란은 이러한 군사 기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란 정권이 사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을 만한 진보적 정권이란 뜻은 결코 아닙니다. 지난 1월 이란 정권은 대중 항쟁을 잔혹하게 짓밟았습니다. 이란 이슬람공화국 정권은 1977~1979년에 샤(군주)를 타도한 대중 혁명을 교살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그 혁명의 계승자를 자처합니다. 그래서 이란 정권은 상당히 이데올로기적으로 추동되고 수십 년간의 전쟁으로 단련된 정권입니다.

이번 전쟁이 시작될 때 이란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 그 외에 여러 주요 사령관들을 잃었지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스라엘의 폭격을 견뎌 냈죠. 반격에 나선 이란은 중동의 거의 모든 미군 기지를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석유·가스의 20퍼센트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습니다.

이란 정권은 베트남 전쟁 때의 베트콩, 이라크 전쟁 때의 이라크 저항 세력과 마찬가지로,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에서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임을 압니다.

이렇게 미국 제국주의는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이어 세 번째 역사적 패배에 직면해 있습니다.

트럼프는 진퇴양난의 처지입니다. 트럼프는 이란에 의해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계속 감당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세계 핵심 에너지 수송로가 무한정 마비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미·중 정상 회담에서 시진핑이 자신을 곤경에서 구출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시진핑이 뭐하러 트럼프를 돕겠습니까? 시진핑은 공짜로 트럼프를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가는 대만 문제임을 시진핑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이처럼 미국 패권의 약화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포식성 제국주의에는 커다란 이데올로기적 대가가 따랐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물리적 강제력과 도덕적·정치적 지도력의 결합으로 정의했습니다. 트럼프는 세계 지배계급에 대한 미국의 도덕적·정치적 지도력을 실추시켰습니다.

미국이 이번 전쟁 동안 걸프 연안국들을 방어하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지도자들 사이에는 모종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에너지를 공급하면 그 대가로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그 보호막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국가들은 미군 기지를 영토에 들여 놓은 탓에 표적이 됐습니다. UAE는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탓에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보다도 많은 공격을 받았죠.

그래서 온갖 책략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UAE는 산유국 카르텔인 오펙(OPEC)에서 탈퇴하고 이스라엘과 관계를 더 좁히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파키스탄과 긴밀한 동맹을 맺었습니다. 파키스탄도 이스라엘처럼 핵무기 보유국이기 때문이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집트나 튀르키예 등의 중동 국가들과도 동맹을 강화했습니다. 이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진정한 위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세계적 파장을 낳습니다.

중국은 이란보다 군사력이 훨씬 강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런 물음이 제기됩니다. 미국이 걸프 연안국들을 방어하지 못한다면, 일본과 한국은? 예컨대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미국은 대만을 방어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란 전쟁은 세계사적 사건인 것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그다지 잘 풀리지 않고 있기에 전쟁은 재개될 듯합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미국 패권의 붕괴 과정은 대부분 돌이킬 수 없을 듯합니다.

계급적 관점의 반제국주의가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좌파의 과제를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제국주의는 시스템이고, 저는 그 시스템 안에서 벌어지는 세력 균형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미국 제국주의의 약화는 제국주의 시스템의 종말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세력 균형이 중국 쪽으로 더 기우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트럼프의 베이징 방문에서도 드러났습니다. 트럼프는 마치 시진핑에게 청원을 하러 간 듯했습니다. 보통 트럼프는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 상전처럼 굽니다. 그들을 위협하고 우쭐거리죠.

그러나 베이징에서 트럼프는 매우 얌전하고 공손했습니다. 중국의 힘이 커졌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중국은 여러 미래 산업에서 앞서 있습니다. 특히 전기차 분야에서 앞서 있죠.

최첨단 반도체와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중국이 미국보다 뒤처져 있지만, 그 분야에서도 중국은 분명 격차를 좁히고 있습니다.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러한 변화를 인식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찬양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진영론을 거부합니다. 진영론은 오늘날 좌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미국의 적성국·경쟁국을 편드는 것이 진보적이라는 이데올로기이죠.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근간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계급 갈등을 기초로 사회 전반과 세계 경제의 구조를 이해합니다.

진영론은 세계를 반동적 국가군과, 그들이 말하는 진보적 국가군으로 나눕니다. 계급 대 계급이 아닌 국가 대 국가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미국의 경쟁국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그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착취를 무시합니다.

반면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을 중심에 놓습니다.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과 아류 제국주의 강국들의 모든 지배계급에 맞서, 세계의 노동자들과 천대받는 사람들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에 의해 패배하는 것을 환영합니다. 이란 정권을 지지해서가 아닙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가 세계의 착취받고 천대받는 대중의 투쟁을 강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란인들의 민주주의 투쟁은 가령, 가증스러운 샤의 아들이 이끄는 친서방 꼭두각시 정부가 수립되는 것에 의해 진전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에서 열린 '나크바의 날' 기념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행진. 약 10만 명이 참가했다. ⓒ출처 Guy Smallman

이러한 계급적 관점에서 볼 때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매우 중요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제국주의 시스템의 어마어마한 잔혹성을 들춰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인종학살이 전개되는 가운데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서방 강대국들이 거기에 공모하고 있고, 소위 ‘진보적’ 대안이라는 중국과 러시아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손가락 하나 까닥 않고 있습니다.

한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벌어져 왔습니다. 이곳 영국에서도 거대한 시위가 거듭 일어났습니다. 오늘 ‘나크바의 날’ 시위도 매우 클 것입니다.

지난가을 유럽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대규모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이 벌어진 것이죠.

그 파업들은 극좌파 세력들이 주도한 것입니다. 자랑스럽게도 우리와 같이 국제사회주의경향(IST)에 속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도 그리스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을 주도하는 데 함께했습니다. 극좌파들이 발의한 그 파업들은 그 나라의 계급 투쟁을 반영하는 동시에 고통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지지를 보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반제국주의 운동이 무엇인지를 힐끗 보여 줍니다. 특정 쟁점이나 특정 정권만이 아니라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반제국주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이제 발제를 마치면서, 사회자가 저를 소개하면서 언급한 EBS 〈위대한 수업〉 시리즈 강연에서 못 다한 마무리를 하고 싶습니다. 강연 녹화 경험은 매우 좋았습니다. 제작진은 저를 잘 대해 줬습니다. 그러나 강연이 방영됐을 때 그들은 제 강연의 마지막 문단을 삭제했더군요.

거기서 저는 뛰어난 독일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인 발터 벤야민을 인용했습니다.

벤야민은 혁명이란 폭주하는 열차의 승객들이 비상 브레이크를 당기는 것과 같다고 했죠. 팬데믹, 기후변화, 걷잡을 수 없는 전쟁 등 오늘날의 온갖 재난을 고려할 때 우리는 비상 브레이크를 당겨야 합니다. 즉,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청중 토론

발언 1. 혁명은 자동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폭주하는 기차에 비상 브레이크를 당기는 것’이 정말 시급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비상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당겨질 것이다’, 즉 사회주의 혁명이 자동으로 도래할 것이라는 식으로 마르크스가 주장했다고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상 브레이크’를 당기려면 당기는 사람의 손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명확한 의식과 목적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그것이 마르크스가 애초에 얘기했던 바이기도 하고요.

저는 루카치에 관한 발제자의 강연록을 본 적이 있는데, 루카치가 노동계급이 생산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체제 자체에 도전할 수 있는 총체적 관점을 갖출 잠재력이 있는 세력이라고 지적한 것을 설명한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운동을 조직하고 이끌려고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질문이 하나 있는데, 최근 영국 지방 선거에서 좌파적 대안으로 꽤 기대받던 ‘당신의 당’이 굉장히 꾀죄죄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계급적 관점에서 조직하는 당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당신의 당’이라는 선거적 도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여기서 좌파가 이끌어내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발언 2. 혁명적 좌파의 반제국주의에 관한 여러 의문들

발제자는 제국주의를 세계적 생산·교환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필연적 결과물로 정의하고, 그것이 전쟁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갱단이 갈취하는 보호세 같은 관세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제국주의를 세계의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내용이 아니라 형태로 정의하는 관점은, 다른 강연에서 다른 분이 제기한 주장과 배치됩니다. 그녀는 제국주의를 두 깡패 우두머리인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종족-민족주의적 시온주의를 위해 “선택한 전쟁”이라고 묘사했죠. 그러한 정의에 따라 그녀는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의 폭력적 저항을 불가피하고 반제국주의적인 것으로 옹호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많은 미국 대학생들은 유대인들이 미국 정부를 탈취했다고 생각하면서 전쟁에 반대합니다. 유대인과 유대인 로비의 영향력을 미국 정부에서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죠.

레닌은 제국주의를 ‘노동자 혁명의 전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러한 예측은 설득력 없어 보입니다. 레닌이 자신의 제국주의론을 통해 보이려 한 것은,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변혁시킬 때에만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혁의 전망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제 질문은, 사회주의적 반제국주의와, 이슬람주의적 반제국주의 또는 우익적 반제국주의의 차이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냐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좌파—예컨대 발제자가 언급한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파업 노동자들—는 우익적 반제국주의, 이슬람주의적 반제국주의에 얼마나 타협했나요?

이란과 그외 나라들의 사회주의 좌파는 1979년 이란에서 호메이니의 분파를 반제국주의적이라고 여기면서 지지했던 실책에서 교훈을 배웠나요?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사회주의 좌파가 오늘날 노동계급을 사회주의를 위해 조직하는 데서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요?

발언 3.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외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저는 반전 운동과 반제국주의 운동이 이재명 정부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말하고 싶습니다.

국힘 등 극우는 색깔론을 펴면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외교’를 공격합니다. 한미 동맹이 무너지고 있다고 과장하죠. 사실 국힘이 한미동맹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좌파 일각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미국과 약간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에 굉장히 큰 의의를 부여하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단 한 번도 친제국주의적 노선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말로는 이스라엘을 비판했지만 — 그것도 매우 뒤늦게 — 실천이 뒤따르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있는 탄약과 전차를 이스라엘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한국산 천궁-2가 UAE로 수출돼 이란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세계 무기 수출 점유율이 세계 4위로 올랐죠. 이재명 정부의 공식 국정 과제였습니다. 세계 4대 방산 강국을 만들자는 것이었죠.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또 다른 국정 과제인 여성의 임신 중지권에 관해서는 추진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방산 강국 목표는 굉장히 빨리 이룬 것이죠.

나무호 피격 이후 이재명 정부는 ‘해양 자유 구상’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구상은 호르무즈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전략의 일부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핵잠수함을 승인받고는 이것을 어떻게든 추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핵잠수함은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훨씬 고조시킬 무기입니다.

지난해 이재명 정부가 처음 일본을 방문할 때 한 배신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에 관해 박근혜와 윤석열 정부가 체결한 합의를 뒤집지 않겠다고 했죠.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라 한미일 경제 안보 협력을 우선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미국 제국주의 패권의 균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가끔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떤 대단한 도전이거나 반대도 아닐 뿐더러, 미국과 협력하든 갈등적 모습을 보이든 이재명 정부가 하려는 것은 제국주의 체제 안에서 자국의 지배 계급의 독자적인 이익과 하위 제국주의를 추구하는 것뿐임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재명 정부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반전 운동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발언 4. 여러 의문들에 대한 답변

앞서 한 분이 여러 물음을 던졌는데 1) 지금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이 일어날 어떤 조짐이라도 보이느냐, 2) 극우의 반제국주의에 대한 질문, 3)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이란의 혁명을 낚아채서 노동자들이 권력을 못 잡은 상황의 교훈에 관한 질문, 4) 제국주의에서 행위 주체와 체제·구조의 관계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 물음들에 모두 답할 수는 없는데, 일단 첫째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전쟁에 반대한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은 딱 두 개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볼셰비키당이고, 다른 하나는 불가리아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는데, 불가리아의 당은 볼셰비키에 비해서 굉장히 약했죠. 얼마 후 스위스 치머발트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의 회의가 열렸는데 그 회의에 참석한 사회주의자들이 3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고립됐었던 거예요.

그러나 전쟁이 낳은 참상이 깊어지자 1916년 하반기부터는 분위기가 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7년 초 레닌은 스위스에서 열린 청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에서 자기 생전에 혁명을 볼지 잘 모르겠다는 회의적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두 달도 안 돼서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몇 달 뒤 그 혁명은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는 사회주의적 혁명으로 나타났고, 정확히 1년 뒤에는 독일과 중부 유럽의 국가들에서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실패한 것은 혁명이 안 일어나서가 아니라 일어난 혁명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던 당시 미숙한 사회주의자들의 문제였고 그래서 그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어쨌든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혁명을 향한 동학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죠.

이란 혁명의 교훈에 관해서는 호메이니에 관해서만 얘기하겠습니다. 당시 이란의 공산당이 호메이니를 지지했는데, 호메이니는 반제국주의 포퓰리스트 데마고기를 구사했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민주적 기구까지 만들고 권력을 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란의 공산당이 그 노동자들을 호메이니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정확히 발제자가 얘기한 것과 같이 현재의 사회와 현재의 운동을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몰고 가는 스탈린주의의 문제를 전형적으로 보여 준 사례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극우는 반제국주의가 아닙니다. 극우 역시 데마고기를 해서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인 척하지만 사실은 극우 나름의 제국주의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의지와 지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틀러를 보십시오.

발언 5. 유럽 국가들의 행보에 관한 질문

미국이 자기보다 약한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마다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커다란 패배를 겪었는데, 서구 유럽 나라들은 어리석게도 거기에 껴서 한몫 잡으려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란 전쟁에는 유럽 국가들이 참여를 거부하거나, 적어도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국제적 지지를 이끌어 내어 자신의 전쟁을 조금이라도 정당화하기를 바라는데 이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죠.

미국의 이러한 정치적 패배는 유럽에서 좌파가 부상한 결과일까요? 사실, 최근 자료를 보면 유럽에서 좌파는 특히 선거에서 갈수록 약해진 것 같습니다만, 어쩌면 선거가 좌파의 강화나 약화를 가늠하는 데서 그다지 좋은 지표가 아닌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언 6. 아시아에서도 증폭되는 위험

발제자가 호르무즈해협 위기와 미국이 걸프 연안국들의 안보를 지켜 주지 못한 것이 중동에서 어떤 이합집산을 낳고 있는지 설명했는데, 비슷한 현상이 아시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란 전쟁 때문에 아시아에 배치돼 있는 미국의 주요 전력이 중동으로 가는 판국이었으니까요. 한국에 배치돼 있던 사드도 중동으로 이동했죠.

한편에서는 미국이 아시아의 동맹국들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서 강하게 압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맹국들에 깡패처럼 구는 미국이 ‘안보를 지켜 줄 수는 있는 거야?’ 하는 의문이 동맹국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것이 현재 아시아 질서의 딜레마이자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군사비를 엄청나게 늘리고 있습니다. 또, 올해 남중국해에서의 발리카탄 군사 훈련에 자위대를 파병했는데, 이는 이란에 발목이 묶인 미군을 대신하는 성격이 있었습니다. 미군이 이란에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남중국해에 전력을 대신 댐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재진출의 발판을 닦은 것이죠.

얼마 전 〈조선일보〉에 아주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는데 제목이 매우 도전적이었어요. “미국은 답해야 한다.” 사설 격의 글이었는데, 대만 유사 사태 시 한반도의 안보를 지켜 줄 수 있는지 미국이 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필자가 그것을 문의했더니 순차적으로 지킬 수 있다는 답변이 왔지만, 상황은 동시적일 텐데 순차적이면 지킬 수 있냐고 다시 반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한미동맹이 안보를 지켜 줄 수 있냐는 의문이 좌우 모두에서 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결론 하나는 자체 핵무장입니다. 미국의 국무차관 엘브리지 콜비도 일본과 한국의 제한적인 핵무장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죠. 그래서 한국 우파들은 독자적 핵무장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민주당의 국정원장 이종석 역시 한국이 핵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 질서의 변화에 대처하는 자강 논리, 자주 국방 논리 같은 것이 한층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으로부터 독자적 국익을 추구하는 것을 자주라는 기치 하에 지지한다면, 노동계급이 자국 정부를 지지하도록 이끄는 정치적 문제를 낳을 것입니다.

발언 7. 중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

진영 논리를 받아들이는 좌파의 주장 중에서, 중국은 제국주의가 아니고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대안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비판하려 합니다.

중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중국이 모종의 사회주의라는 것인데, 인도 출신의 비제이 프라샤드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중국 공산당과 중국 당국을 정말 열렬히 찬양합니다. 중국 공산당이 빈곤을 퇴치하고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찬양하는데, 노동계급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시진핑이 2015년 이후로 노동자들을 극심하게 탄압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 티베트, 네이멍구를 장악해 정착자 식민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라샤드는 신장 위구르 무슬림들의 삶의 처지가 호주나 미국의 무슬림보다 더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대외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시진핑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을 개발도상국들과의 공동 번영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른바 ‘부채 함정’ 외교, 예컨대 중국이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를 99년간 조차하고, 우간다 엔테베 공항의 이권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중국 지도자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영국 제국주의가 홍콩이나 신계를 조차했던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의 또 다른 유형은, 제국주의 국가가 핵심 기술이나 금융 패권을 통해 중국을 수탈하거나 지배하기 때문에 중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마이클 로버츠나, 중국 좌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리밍치 등이 이런 주장을 합니다.

그 주장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중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일부가 부등가 교환을 통해 미국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클 로버츠는 중국이 결코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죠. 지난해 어떤 강연에서는 러시아나 중국 같은 국가가 제국주의는 고사하고 아류제국주의, 즉 지역 패권 국가조차 못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좀 더 세련되게 한 사람이 리밍치인데, 그는 교역 조건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미국의 노동 1단위가 중국의 노동 5단위와 교환된다는 거예요. 중국의 노동 4단위가 무상으로 미국으로 이전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근본적으로 보면, 미국의 노동 1단위를 생산하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중국 5단위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과 똑같기 때문에 그런 교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등가 교환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죠.

지금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이고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최상층에 있으면서 미국과 첨단 기술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입니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토론 정리

좋은 질문과 의견 감사합니다.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조와 행위자

먼저, 여러 질문을 던지신 분에게 답하자면, 저는 제국주의를 어떤 특정 형태나 효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가 “문제의 형태가 아니라 내용”이라는 게 무슨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레닌이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일컬은 것은 기본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란 19세기 후반에 시작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구조적 변화인 것이죠.

이란 전쟁은 물론 행위자의 선택에 의해 벌어진 전쟁입니다. 그런데 모든 전쟁이 선택에 의해 벌어집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러저러한 사건이 제국주의의 본성 때문에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역사가들이 여전히 갑론을박하고 있는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이든, 이번 이란 전쟁의 기원이든 그것을 이해하려면 상이한 지배계급이 처한 구조적 제약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제약 안에서 지배계급의 지도자들이 선택을 하는 것이죠.

트럼프도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하메네이는 트럼프에게 합의안을 제시했습니다. 아이러니이게도 그것은 현재 트럼프가 이란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어떠한 협상안보다 더 나은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중동 정책

미국의 중동 정책을 이스라엘 로비의 산물로 보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견해입니다.(“유대인 로비”라는 표현은 위험할 정도로 유대인 혐오적인 표현이기에 쓰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트럼프는 네타냐후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행보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한 것이 한 요인이죠. 또, 발제에서 언급했듯이 세계 석유·가스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확장한다는 트럼프 정부의 전반적 정책이라는 요인도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미국이 그 목표를 달성했죠.

혁명적 좌파의 반제국주의

반제국주의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혁명적 좌파의 반제국주의는 민족주의적이지 않고, 결코 유대인 혐오적이지도 않습니다. 혁명적 좌파의 반제국주의는 국제주의적이고 시스템 자체를 겨냥합니다. 그리고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간 쟁투를 노동계급과 지배계급의 계급 간의 투쟁으로 전화시키고자 합니다.

청중 토론 때 최일붕 동지가 제1차세계대전에 맞선 투쟁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명심해야 할 것 하나는 러시아 혁명으로 등장한 코민테른이 국제 사회주의 운동을 제국주의에 맞선 운동이자, 인종차별에 맞선 운동, 식민 지배에 맞선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결연하게 분투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형태의 반제국주의도 있습니다. 가령, 이란 정권이 나타내는 종류의 반제국주의도 있죠. 그러나 이란 정권의 이데올로기는 특정한 유형의 이슬람주의와 이란 민족주의가 결합된 것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이란 자본주의의 이익을 대표합니다. 이란 정권은 언제나 미국과 협상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달 동안 이란이 벌인 일은 이란의 협상력을 높였습니다.

국제 사회주의는 체제 내에서의 협상을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체제를 끝장낼 수 있는 운동을 건설하려 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일부인 유대인들

한편 영국, 이탈리아 등지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유대인 혐오적이라는 것은 시온주의자들의 중상입니다. 오늘 런던에서 열릴 ‘나크바의 날’ 행진에서도 유대인들이 큰 대열을 이루고 당당하게 행진할 것입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배경으로, 착취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의 국제주의가 부활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의 이란 전쟁 불참에 관해

유럽과 유럽 좌파에 관한 질문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유럽 지배계급이 유럽 좌파 때문에 이란 전쟁 동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전쟁에 불참하는 이유 하나는 트럼프가 그들의 반감을 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트럼프에게 빚진 게 없다고 느낍니다. 그들이 전쟁에 불참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전쟁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선적입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이란이 문제라는 입장을 계속해서 발표해 왔습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을 돕고 있죠. 영국과 독일이 미군에 주요 기지를 제공하는 것이 그런 사례입니다.

정치적 양극화와 좌파

마지막으로 좌파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영국을 포함에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공식 정치를 주름잡던 부르주아 정당들이 몰락하고 있습니다. 영국 노동당도 그중 하나죠. 현재까지 그 정당들의 몰락에서 가장 득을 본 것은 극우였습니다. 그러나 왼쪽으로의 중요한 단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발언자의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지난주 영국은 지방 선거를 치렀습니다. 극우인 영국개혁당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한때 새로운 좌파적 대안으로 여겨진 ‘당신의 당’이 형편없는 성적을 거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 당의 지배적 인물인 제러미 코빈이 자멸적인 정책을 추구한 탓입니다.

그러나 좌경화한 녹색당이 노동당을 앞질러 선거에서 2위를 했습니다. 녹색당은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채택하고 훨씬 계급적인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어떻게 진정한 좌파의 부흥을 위한 조건을 닦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이제 발언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통역에 애써주신 통역자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주장에 동의하신다면 노동자연대에 가입하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한 국제적 투쟁에 함께해 주십시오.

녹취·번역: 이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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