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공동성명, 미 상원의 ‘전작권 환수’ 견제구 ...: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를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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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면서, 6월 10일 한-EU(유럽연합)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나왔다. 이 성명을 두고 평소 한국 외교의 “숭미” 성향을 비판해 온 많은 진보 인사들이 개탄했다.
이경렬 전 대사는 6월 18일 〈민플러스〉 칼럼에서 공동성명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유엔 대북 제재 이행 등 대북 압박 입장을 밝힌 데 이어,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 규탄, 중국을 겨냥한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 반대’ 등이 담겼음을 지적했다. 즉, “우리의 언어는 간데없고 EU와 미국의 강경 담론만 남았다”는 비판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한-EU 공동성명에서 평화공존은 뒤로 밀린 채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대결적 프레임이 앞세워졌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이 진보 인사들은 미국의 전략에 협력하는 한국의 외교 전통을 폭로하고, 옳게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또한 한국이 미국에 “종속”된 처지에서 벗어나 자주화(또는 전략적 자율성)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해 왔다.
이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에 기대를 걸었고, 이재명 정부가 자주화로 나아가도록 독려했다. 아마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시절에 일본의 핵폐수 방류에 반대해 거리 시위에서 선동하는 등 민주당의 많은 보수적 정치인들과는 다른 행보를 했다는 점에 주목했을 것이다.
지난 4월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이스라엘 비판 글을 올리자, 이경렬 전 대사는 “이 대통령의 자주적 언어”가 “지금까지 우리의 외교 문법을 명백히 넘어서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한-EU 공동성명을 보고 많은 진보 인사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던 평화공존과 자주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들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가 실천적으로는 “대미 추종”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개탄하며, 비판의 주된 초점을 다시 숭미파에 맞추고 있다. “정부 내 숭미파의 준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이경렬). 숭미파 인사들(아마 위성락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이 이재명 대통령의 자주 외교가 실현되지 않게 정부 내부에서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 자신은 한-EU 공동성명과 달리 여전히 “전략적 자율성의 언어”를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요한 외교적 결정을 대통령의 의지가 아닌 숭미파의 농간으로 주되게 설명하거나, 또는 심사숙고 없이 벌인 “외교 사고”로 치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렇듯 ‘종속이냐, 자주냐?’ 하는 프레임으로는 이재명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가 안고 있는 진정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는 기본적으로 ‘한미동맹 현대화’에 협력하는 데 강조점이 있다. 지난해 한미 협상을 합의하며, 이재명 정부는 마스가 프로젝트 등 주요 제조업 분야들에서 거액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재명 정부가 단지 미국의 압박을 거스르지 못해 “조공”을 바친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분야들에서 전략적 투자를 단행해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한국 대기업들이 한미 합의 결과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 추적”을 위해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고 트럼프를 직접 설득했다. 핵추진 잠수함 등 자체의 군사력 강화(“자주 국방”)를 미국 전략에 대한 협력과 연계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류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고 싶어 하는 한국의 이해관계가 미국의 전략과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한국은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미국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가끔 미국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6월 11일 미국 상원 군사위는 내년도 국방수권법안에 한국의 전작권 환수 과정에 대해 감독을 강화하는 조항을 넣었다. 관련 보고서에는 한국 내에서 중국 공산당이 행하는 “악의적 영향력 행사”가 우려된다며 전쟁부 장관에게 내년 5월까지 상세히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미국 권력자들이 이재명 정부에 불만을 갖고 견제구를 날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마도 이재명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에 호응하지 않는 등 미국의 중요한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지 않은 데서 나온 불만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갈등에만 주목하며, 이재명 정부가 몇몇 사안에서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진보로 보고 환영한다면, 이재명 정부가 선택한 독자적 “국익”이라는 더 상위 지향성을 놓치게 된다. 이재명은 한국 국가의 이익(국익, 즉 한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나름의 방식으로 지켜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재명 정부가 이처럼 한국 지배계급과 국가의 이익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일부 갈등을 빚는 맥락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1960~1970년대에 아류 제국주의를 연구한 브라질의 마르크스주의자 후이 마우루 마리니는 아류 제국주의 국가들이 단순히 미국의 대리인이 아니라 미국 같은 우세한 제국주의 국가와 “대립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아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보호한다는 계획을 미국과 공유하면서도, 때때로 미국과 갈등을 빚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갈등과 협력 사이의 균형은 고정돼 있지 않고 가변적이다. 그럼에도 아류 제국주의 국가들은 제국주의 시스템 안에서 자국의 위상을 높이려고 애쓰며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협상하거나 종종 그들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비록 한국은 아직 아류 제국주의의 반열에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 잠재력과 지향성을 고려하면 이 갈등과 협력의 프레임은 지금 이재명 정부의 외교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관련 글: 최일붕, ‘한국은 아류제국주의 국가인가? ─ 잠재태와 현실태’, 〈노동자 연대〉 586호)
한국 지배계급은 아류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 기회의 창도 열리고 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세력 균형이 이전보다 중국에 유리하게 변하고 있고, 다른 자본주의 주요국들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 틈바구니에서 나름으로 책략을 부려서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잠재력도 있다. 한국의 국력은 극적으로 성장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상당히 강해졌다. 미국의 무상 원조나 일본의 차관에 의존하던 약소국에서 반도체와 조선 등 강력한 제조업과 4.5세대 전투기를 독자 개발하는 군사력을 가진 “중견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런 고속 성장과 기존 국제 질서의 변동에 힘입어, 한국의 고위 국가관료와 자본가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는 이런 변화를 의식한 선택이다. 즉, 한국 지배계급이 제국주의 시스템 안에서 더 큰 영향력을 얻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따라서 좌파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를 평가할 때 던지는 물음부터 바꿔야 한다. 이경렬 전 대사는 〈민플러스〉 칼럼에서 이런 물음을 던졌다. “미국이 묻는 충성에 답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길을 갈 것인가?” 그러나 한국 국가의 독자적 이익 추구를 지지한다는 전제를 공유한다면, “중견국” 한국이 미국 제국주의와 협력하고 갈등하면서도 자체의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하는 노력이 일으킬 위험을 간과하게 된다.
좌파는 “누구를 위한 자주(자율성)인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 국가와 자본의 이익을 위한 자율성인지, 아니면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자유와 연대를 위한 것인지 말이다. 제국주의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려면 좌파는 ‘우리’ 정부의 아류 제국주의 지향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