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인들이 징집 반대 운동을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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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민방위전’의 실상이 드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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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많은 언론은 줄지어 자원 입대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조명하며 그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국민 방위전임을 부각하려 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수많은 병사들의 무단 이탈과 탈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2년 2월 이래 병사들의 무단 이탈과 탈영에 대한 수사가 29만 건에 달한다고 발표한 뒤로 그 수치를 기밀에 부쳤다.
또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징집에 대한 광범한 반감, 나아가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러시아지만, 이 전쟁은 그 전부터 이어져 온 서방과 러시아 간 제국주의적 경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서방은 러시아를 약화시킨다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수많은 우크라이나인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 갈수록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원 입대한 18~24세 남성에게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고 1년만 복무하면 출국을 허용하는 유인책을 도입했으나, 자원병은 수백 명에 그쳤다.
우크라이나 좌파 사회학자 볼로디미르 이슈첸코는 7월 22일 미국 좌파 웹사이트 ‘브레이크스루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단지 군대에서의 처우 문제가 아니라 국가를 향한 근본적 불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2022년 말부터 입대자 대부분은 자원병이 아닌 징집병이었습니다. 이미 2022년부터 징집을 피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징집관들의 동선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채널들이 등장했습니다.”
징집 기피와 저항은 전면전 개시 이래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23년 대대적으로 홍보된 우크라이나의 ‘봄철 대반격’이 실패하고 우크라이나군이 병력 부족에 직면하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징병 대상을 확대하고자 병역법을 개정했다. 징집 대상인 25~60세 남성은 당국에 등록된 정보를 2024년 7월 16일까지 갱신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동으로 병역 기피자로 간주됐다.
그러나 2026년 초까지도 정보를 갱신하지 않아 수배자 명단에 오른 사람이 200만 명에 이른다.
2024년부터 우크라이나인 사이에서는 ‘부시피카치유’(busification)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축자적으로 옮기면 ‘승합차화(化)’라는 뜻으로, 징집관들이 길거리에서 징집 기피 남성을 기습해 승합차에 태워서 납치하듯이 군사 시설로 끌고 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2025년 초부터는 ‘승합차화’를 강행하려는 징집관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민간인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친서방 우크라이나 언론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2025년 초부터 2026년 중반까지 우크라이나 북부에서만 징집관 대상 공격이 167건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전면전 개시 이래 그전까지 그런 사건은 총 3건에 불과했는데 말이다(전국 통계는 당국이 제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징집관은 이렇게 불평했다. “‘로빈 후드’ 같은 사람들이 자주 나타난다. 이들은 많은 경우 여성인데, 믿을 수 없을 만큼 공세적으로 징집 대상 남성들을 빼내려 한다. 그러면 다른 ‘우려하는 시민들’이 가세한다. ⋯ 그들은 우리에게 개를 풀고 공무 집행 차량의 창문을 박살 냈다. ⋯ 거리 근무는 현재 매우 위험한 일이다.”
우크라이나 역사학자 마르타 하우리슈코 또한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여성들이 ‘승합차화’에 맞선 저항에 갈수록 앞장서고 있다.
“여성들은 징집 대상 남성들에 비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승합차화’가 상징하게 된 우크라이나 사회의 불의에 대한 분노라는 요소도 있다. 강제 징집은 가난하고 힘없는 남성들에게 가장 큰 부담을 지우는 시스템으로 갈수록 인식되고 있다.”
하우리슈코의 지적처럼 징집에 맞선 저항에는 계급 차별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징집관들은 가난한 지역에 훨씬 더 집중하고, 부자들은 거액의 뇌물을 써서 다양한 방법으로 징집을 피한다.
징집에 맞선 저항은 대체로 자생적이지만 최근 들어 질적인 변화도 있다. 7월 초 리비우에서는 징집관들을 상대로 소요에 가까운 충돌이 벌어졌다. 몇몇 무단 이탈한 병사까지 민간인들 편에서 그 충돌에 가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두드러진 가담자들을 기소했지만, 얼마 후 8월 25일 우크라이나 서부 테르노필 시에서도 비슷한 충돌이 벌어졌다.
한편, 우크라이나 남서부 빈니차에서는 57세의 민영 버스 기사가 징집관들에게 끌려간 것에 항의해 동료 기사들이 버스 운행을 거부하기도 했다. 노동계급이 징집에 맞서 조직적 행동을 벌인 작지만 중요한 사례다.
이런 반발과 저항은 단지 전쟁이 장기화된 탓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이 전쟁이 다수의 동의와 능동성에 기초한 ‘인민 전쟁’ 방식으로 결코 수행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제국주의 대리전이라는 이 전쟁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좌파는 이 문제를 전쟁의 성격과 분리시키면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부패를 일소하고 징집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패 역시 전쟁의 성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동안 서방과 러시아 모두 우크라이나에서 부패한 권력자들을 대리자로 삼아 힘겨루기를 해 왔기 때문이다.(그리고 전면전 개시 이래 계엄을 유지해 온 젤렌스키는 이제 대통령 임기도 무단으로 연장하려 하고 있다.)
서방의 승리든 러시아의 승리든 어느 한 제국주의 진영의 승리는 진보일 수 없다. 반제국주의 좌파는 징집에 맞선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이나 전면전 초기 러시아에서 일어난 반전 시위처럼, 자국 정부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저항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