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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인간이라는 신화: 인간 본성과 사회주의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는 최근의 경제·사회·정치 위기 속에서 거듭 재조명되고 있다. “인간은 본래 불평등하다”거나, “인간은 본성적으로 폭력적이다”, “경쟁은 자연의 법칙이다”와 같은 주장이 흔하고, 이런 주장을 과학적 외피로 포장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적잖은 사람들이 이기심과 탐욕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주장은 현실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이고, 지배적 사상들도 이런 생각을 부추긴다. 인간이 오직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며 그 성향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주장이 맞다면, 노동계급이 단결해 계급을 철폐하는 것도, 협동과 연대·신뢰에 기초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1 그래서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물음이 아니라 실천적 물음이다.

물론 오늘날 인간 사회를 관찰해 보면 분명 인간이 이기적 본성을 지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는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뉴스에선 매일같이 끔찍한 살인과 사기, 폭력 범죄를 다룬다. 전쟁과 점령이 벌어지는 현실을 보면 세계는 이기심에 기초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는 연대와 협동도 경험한다. 지진 피해나 수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모금에 수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지구 반대편의 굶어 죽는 아이들을 위한 기부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기름이 쏟아진 바다를 정화하기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봉사활동에 나서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혈에 동참한다. 2010년 칠레 산호세 광산 붕괴 사고 때 지하 깊은 곳에 두 달 넘게 갇힌 광원 33명은 비상식량을 엄격히 나눠 먹으며 버텼고, 구조될 때는 서로 맨 마지막에 나가겠다고 했다. 2 이런 사례들은 인간 행동이 단일한 이기적 본성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이는 인간이 ‘본래 착해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함께 생산해야만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사회의 근본적 변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타적 행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 의심한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첫째,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인간 사회에서 무엇이 가능했는지는 미래의 인간 사회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해 주기 때문이다. 둘째, 오늘날 과학적 외피를 쓴 고정된 인간 본성론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과학적’ 설명이 얼마나 타당한지 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인간의 진화 과정에 대해 다뤄야 한다. 인간의 진화 과정은 인간이 동물의 일부임을 보여 주면서도, 인간이 본질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진 동물인지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이 어떤 조건에 놓여 있고, 투쟁 속에서 그 의식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 글의 결론이 독자들에게 실천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길 바란다.

1장 인류의 역사와 인간 본성

서로 다른 ‘인간 본성’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인간 행동과 도덕 관념이 사회에 따라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계급 발생 이전 인간 사회와 계급 발생 이후 인간 사회의 특징은 무척 상반된다. 인류학자들은 유목적 수렵·채집 사회의 중심 가치가 호혜와 협동이라고 말한다.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선 경쟁 논리가 중심에 놓인다.

같은 계급사회여도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에서 본성이라고 여겨진 것들은 달랐다. 예컨대, 봉건제에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 부당한 탐욕이며 신의 뜻을 어기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된다. 이런 변화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인간들이 보이는 모습이 고정된 본성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양한 사회들과 다양한 ‘본성’들은 그 인간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자본주의와는 다른 과거의 인간 사회의 — 당시에는 본성으로 여겨졌던 — 모습들을 독자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서로 다른 사회의 모습들을 확인하면 우리는 ‘인간 사회는 어떻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는가’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답변은 이런 변화의 힘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변화, 즉, 생산 방식과 생산관계의 변화와 함께 사회 내부에서 등장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변화 과정은 인간 의식의 변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사람들의 의식은 어떻게 바뀔 수 있었는가?’란 질문과 연결돼 있다. 필자는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과 인간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이 연관돼 있다고 주장할 것인데, 사회 변화와 의식 변화가 동반되는 사례를 여럿 다룰 것이다. 이 사례들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변혁 과정과 계급 없는 사회에서 계급이 발생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특정 시대에 사는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는 문화와 제도가 인간 본성에 걸맞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을 항상 듣는다. 예컨대, “아메리카 선주민에게는 개인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이 ‘본성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반면 “18세기 지주는 토지 사유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여겼다.” 동성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주의를 쉽게 설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던 존 몰리뉴는 아래와 같은 예시들을 보여 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동성애를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여겼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남성들은 동성애를 차마 눈뜨고 못 볼 것으로 생각했다. 몇백 년 동안이나 정통 힌두교 신자들은 결혼 상대자는 으레 집안 어른들이 정해 주는 것이려니 했다. 서구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이 그것을 ‘본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3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제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다음과 같이 정당화했다.

“노예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 노예로 가는 것이 편하고 알맞은 사람이 있는가? … 이성과 사실로 판단하면 이 물음에 대답하기는 어렵지 않다. 누군가는 지배해야 하고 나머지는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적절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는 지배하게 돼 있고, 나머지는 복종하게 돼 있다. … 이런 이원성은 생물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4 ”

다양한 사회에서 서로 다른 ‘본성들’이 나타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 먹고사는 방법, 즉 생활 수단을 마련하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상당수 아메리카 선주민 공동체는 수렵과 채집, 또는 소규모 농경으로 생계를 꾸렸다. 이 중 수렵·채집 사회에선 수십 명 규모의 무리가 이동하며 먹을 것을 마련했고, 서로의 협동이 매우 중요했다. 이런 사회에선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필요성 자체가 없었으므로, 그런 소유 관념도 생겨나지 않았다. 집단의 권리조차도 사용권에 머물렀을 뿐 그들 스스로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고대 그리스의 경우 노예노동을 통해 사회가 유지됐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상층계급이 노예노동을 자연스럽게 여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수렵·채집 사회의 평등

그렇다고 인간이 본래 선하다는 말은 아니다. 인류학자 페니 하워드가 지적하듯,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거꾸로 인간 본성이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5 중요한 것은 선사시대 인류의 삶이 실제로 우리보다 훨씬 평등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평등이 어떤 물질적·사회적 조건에서 유지됐는가 하는 것이다. 돌봄과 협동의 역사는 고작 수백 년밖에 안 된 자본주의보다 훨씬 길다.

현생 인류는 등장한 이래 95퍼센트 이상의 기간을 계급 없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살았다. 수렵·채집 사회는 대체로 평등했고 호혜와 협동을 중심으로 작동했다. 이 사회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관습이나 문화는 잘 작동했다. 즉, 사회의 중심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수렵·채집 사회의 생산 방식이 사회의 토대를 형성했다. 채집으로 주변 자연에서 자원을 공급받았고, 수렵으로 다른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 굴을 채집하거나, 물고기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한 생계수단인 곳들도 있었다. 약 2만 5,000년 전 이전에 인간이 정착 생활을 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으므로, 수렵·채집민은 익숙한 영역 안에서 이동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과 인류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 무리는 평균적으로 30명 정도로 이뤄져 있다.

분업 과정에서는 협동이 중요했다. 개개인이 이기심을 부리는 것은 자신과 소속 집단, 모두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컨대 채집자가 따로 음식을 숨겨두거나, 수렵자가 사냥한 음식을 몰래 먹고 돌아오는 일이 생기면 분업자 사이에 다툼이 발생하고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회들은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상대를 속이거나 거짓말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협동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자라지 않도록 사회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크리스 하먼이 지적했듯이 “나눔에 대한 강조, 강한 협력 가치, 유연한 부족 구성은 수만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의 삶을 특징지었으며, 현대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의 주호안시 6 는 자신이 만든 화살 외에도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관계—‘흐사로(hxaro)’라고 부르는—에 있는 사람들끼리 주고받은 화살촉을 사용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사냥된 동물은 화살을 쏜 사람이 아니라 화살촉의 제작자에게 속한다는 개념이 있어, 화살촉 제작자가 고기를 받거나 분배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특정 인물이 사냥에 집중적으로 성공하더라도 그 기여를 사회적으로 분배하도록 하는 기능을 했다. ‘누가 사냥을 더 잘하냐’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화살을 만들고 사냥하는 과정에서의 협동을 더 중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호혜와 협력을 중심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사회의 필요에 따라 문화적·도덕적 방식으로 서로의 협동을 고무했기 때문이다. 즉, 인류학자 리처드 리가 말했듯이 남아프리카 주호안시의 엄격한 평등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본성 덕분이 아니라 험담, 조롱, 주술에 대한 두려움 같은 사회적 통제 장치로 지켜졌다. 국가가 권력과 이윤을 보호하는 자본주의와 달리, 이 장치들은 권력과 특권이 쌓이는 것을 막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7

크리스 하먼은 계급 없이 살았던 수렵·채집 사회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평등주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훨씬 더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나눔에 대한 강조, 강한 협동적 가치들, 군집의 유연한 구성은 현대 수렵·채집민 삶의 특징인 것과 마찬가지로, 수만 년 전 우리 선조들의 삶의 특징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가치는 유랑하는 수렵·채집민들의 삶에서 나온 욕구들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그것들은 계급사회들에서 볼 수 있는 가치들이 아니며, 따라서 현존하는 수렵·채집민들 사이에서 그것의 존재는 외부적 압력의 결과일 수 없다. 8

수렵·채집 사회에서 부부와 자녀 사이의 가족 관계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평생 제도적으로 지속되는 고정된 일부일처제는 없었고, 가족 관계가 독립적이고 폐쇄적인 경제·양육 단위를 이루지도 않았다. 한 시점에는 한 명의 배우자와 생활하는 일대일 결합이 가장 많았지만 이혼과 재혼이 흔했다. 예컨대 탄자니아 하드자의 경우 이혼과 재혼이 일반적인 수준이어서 연구자가 ‘연속적 일부일처제’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였고, ‘일부다처혼’도 4퍼센트 정도 관찰됐다고 한다. 파라과이의 아체에서도 일대일 결합이 가장 많았고, 빈도는 낮았지만 ‘일부다처혼’과 ‘일처다부혼’ 형태 모두 허용됐다. 아체는 혼인 자체가 매우 유동적이었고 한 아이에게 주된 아버지와 한 명 이상의 부차적 아버지가 있을 수 있었다.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 나오는 조에 사회는 수렵·채집과 원예농경을 병행하는 사회였는데, 한 여성이 남성 두 명과 짝을 이루는 경우가 있었다. 요컨대 수렵·채집민에게 짝 결합은 중요하지만 하나의 고정된 혼인 형태가 아니었고, 혼인·성관계·부모됨의 구체적인 제도에는 상당한 다양성과 유동성이 있었다.

성별 구분도 이분법적이지 않았다. 북아메리카 선주민을 연구한 인류학자 윌 로스코에 따르면 150개 이상의 사회가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인정했다. 어떤 사회들은 성별이 서너 개나 그 이상 있다고 여겼다. 인류학자 크리스토프 다르망제에 따르면, 북아메리카에서는 사냥꾼이 될 사내아이가 부족할 때 ‘일부 이누이트 여자아이를 남자아이로 길렀다.’ 이른바 ‘베르다슈’(오늘날에는 흔히 ‘투 스피릿’이라고 부른다)를 인정한 부족들 가운데 100곳은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전환을, 30곳은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전환을 허용했다. 9

육아에서는 특히 영아기에 어머니가 수유와 직접 돌봄의 중심적 역할을 했지만, 아버지뿐 아니라 조부모, 형제자매, 다른 친족, 때로는 비친족인 공동체 구성원도 아이를 돌보는 협력 양육이 널리 나타났다. 또한 식량과 노동을 공동체 안에서 폭넓게 공유했기 때문에 자녀를 부양하는 경제적 부담 역시 부모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담이 친족과 공동체의 넓은 관계망 속에 분산돼 있는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수렵·채집 사회들은 오늘날에 비하면 명백히 생산력이 낮았고 실제로 생존을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특정 환경에서 안정적인 생계수단을 마련하면 늘 굶주림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리처드 리의 연구를 보면, 주호안시는 풍부하고 균형 잡힌 식단을 즐겼으며 식량 획득을 위해 일주일에 평균 2.5일만을 일했다고 한다. 10 오스트레일리아 아넴 지역의 선주민도 식량 채집을 위해 하루에 평균 3.5~5시간을 썼는데, 이런 활동이 특별히 고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11

물론 한때 적절했던 생산 방식이 인간의 활동과 자연환경의 변화로 부적절한 것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자신의 활동이 자연에 어떤 변화를 만들지 전부 예측할 수 없었고,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게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닥치기도 했다. 이런 인간과 환경의 관계 변화는 인간이 기존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함을 의미했다. 그런 어려움이 발생하면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지 토론하고, 논쟁하고,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자연과 지속적으로 관계 맺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도를 했고, 그것이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인간의 역사는 이런 시도들의 연속이다.

농경의 확산과 계급의 발생

계급은 잉여 생산물이 생긴 뒤에야 발생했고, 약 1만 년 전 농경이 시작되고 난 뒤 국가를 갖춘 계급사회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약 5천 년 전이다. 계급 분화는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었다. 물질적 조건은 인간 사회가 특정 체제를 선택하도록 압력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 압력 아래에서 선택하는 건 결국 인간들이다. 투쟁의 결과는 물질적 조건 자체를 바꾸고, 그 변화 결과가 인간 사회의 새로운 물질적 조건이 된다.

농경이 확산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첫째, 기후 변화로 농작물 재배가 쉬워졌다. 약 1만 1,700년 전 마지막 빙기가 끝나고 기후가 안정적이고 따뜻해지면서 농경이 가능해졌다.

둘째, 식물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점점 늘어나고 길들이는 작물들이 생기면서 점차 생산에서 농경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즉, 의도적인 식물 관리와 재배가 반드시 의도하지는 않았던 작물화로 이어지고, 일부 사회에서 작물 의존도가 높아지며, 점차 인간과 작물이 서로 의존하게 됐다.

셋째,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경 정착 생활을 유지·발전시켜야만 하는 압력이 형성됐다. 이동 생활을 하는 집단에서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므로 출산 간격이 길 수밖에 없다. 반면 정착해서 농경을 하면 돌봄에 들어가는 노력이 줄어들고 출산을 더 자주 하게 돼 인구가 늘어나기 쉬워진다. 즉, 생산이 재생산을 결정하는 물질적 토대가 된다. 그런데 한번 인구가 늘어나면 다시 전처럼 이동하는 생활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높은 농경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하는 압력이 형성된다. 인간이 만든 사회가 새로운 인간의 존재 조건이 된 것이다. 변화된 재생산 방식이 생산 방식을 제약하는 조건이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넷째, 전파다. 농경은 특정 환경 조건이 갖춰진 여러 곳(서아시아, 중국, 뉴기니, 메소아메리카 등)에서 독립적으로 시작됐고, 그곳을 거점으로 새로운 생산 방식이 주변 사회로 점차 퍼져 나갔다.

마르크스주의 인류학자 엘리너 리콕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의 변화에 대한 엥겔스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수렵·채집 사회는 “인간이 자연 상태 그대로의 생산물을 전유하는 것이 지배적인 시기”였고, 농경 사회는 “인간이 가축을 기르고 농업을 행하는 법을 배우며, 인간의 활동을 통해 자연산물의 공급을 늘리는 방법을 획득하는 시기”였다. 오늘날 인류학자들은 이 구별을 흔히 식량채집과 식량생산의 구별로 표현한다. 12

다시 말해, 자연에서 식량을 채집하던 것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것으로 생산력이 발전한 것이다.

생산 방식을 농경으로 전환한 것은 재생산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계급 발생의 전제조건이 됐다. 그러나 농경이 시작된 곳 모두에서 계급이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원예 농경이라고 부르는 소도구를 다루는 초기 농업은 흔히 수렵·채집과 병행해서 존재했다. 농경이 처음 도입될 때 그 사회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비롯한 평등주의에 기초해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

차탈회위크 유적은 초기 농경하에서 사회가 평등주의적으로 조직된 방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다. 약 9,500년 전부터 형성된 차탈회위크는 거주 인구가 약 5,000~8,000명으로 추정되며, 흔히 세계 최초의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차탈회위크는 수렵과 채집을 병행하긴 했지만 정주 생활을 했고 점차 농업이 도입돼 갔다.

차탈회위크 유적엔 건축 양식, 무덤 부장품, 소비재의 분포 등이 매우 잘 보존돼 있는데, 1인당 거주 공간이 비슷했고, 무덤의 부장품도 질적인 차이가 없었으며, 소비재의 분포도 마찬가지였다. 유골에서 같은 노동을 한 흔적이 관찰되는 것도 계급이 발생하지 않은 증거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일한 부장품을 가져 성별에 따른 대우의 차이도 보이지 않았다. 차탈회위크는 이런 평등한 사회 구조를 1,000년 동안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

차탈회위크의 사례는 농경 초기에도 상당 기간 평등주의 사회가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차탈회위크는 여성 차별이 인류 역사에서 항상 존재했다는 통념도 반박한다. 계급사회에선 흔히 여성의 무덤에는 부장품으로 장신구가 같이 묻히고 남성의 무덤에는 직업을 알 수 있는 도구가 같이 묻힌다. 부유한 여성은 값비싼 장신구, 가난한 여성은 저렴한 장신구가 묻히는 식이다. 계급사회의 여성의 부장품엔 여성 노동의 사회적 기여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나 차탈회위크에선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게 직업적으로 사용한 도구를 부장품으로 받았다. 이는 생산을 둘러싸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았음을 뜻한다.

육아도 여성 개인에게만 맡겨지지 않았다. 처음엔 아이와 묻힌 성인이 다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남성도 아이들과 함께 묻혔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특정 성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성을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여성은 집단의 식량 공급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상당한 자율성을 누렸다(엘리너 리콕은 ‘평등’보다 ‘자율성’이라는 말을 선호했다 14 ). 체계적인 여성 차별은 계급사회와 함께 나타났다. 이 사실은 여성 차별과 인간 본성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뜻하고,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혁되면 여성이 해방될 수 있다는 함의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주장했던 여성해방의 전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15

농경이 발생했더라도 인류가 안정적으로 생산을 유지한 곳에서는 자동으로 계급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는 조건 아래에서 위계가 발생한 사례들이 있다. 예컨대, 원예 농경 사회에선 수렵·채집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빅맨이라는 좀 더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빅맨은 영향력이 더 크지만 그만큼 남들보다 헌신적으로 일해야 존경받을 수 있었고, 한편으론 친족 구성원들에게 잉여 생산물을 요구하거나 분배할 수 있는 권한도 일부 있었다. 빅맨 사회에선 빅맨이 사회에 대해 지는 의무와 사회에 대해 갖는 권한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고, 대개 빅맨이 등장하는 초기엔 의무가 강하지만 빅맨이 점점 더 성장할수록 권한이 강해진다. 이 빅맨의 의무와 권한 사이의 긴장은 계급투쟁의 맹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위계는 세습되지 않고 빅맨에게는 언제나 사회에 대해 벗어날 수 없는 실질적 의무가 뒤따르며 그 지위가 강제력보다는 동의에 크게 기초하기 때문에 계급과는 다르다. 16

계급 발생 없이 오랫동안 유지된 농경 사회의 사례로는 뉴기니를 들 수 있다. 1930년대 초 항공기 조종사들을 통해 발견된 뉴기니 고원에는 관개수로(주로 배수로)를 포함한 넓은 농경지에 70만 명에서 100만 명 사이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뉴기니는 농경이 자생적으로 발생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토양도 비옥하고 강우량도 많고 햇볕도 많아 농경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사회를 초민주주의 사회라고 불렀다. 17 좀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은 있었지만 모든 의사결정은 토론을 거친 합의로 이뤄졌다. 다만 뉴기니 사회는 유목적 수렵·채집 사회보다는 위계가 존재했고, 개인 간 영향력 격차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18

특정 물질적 조건 아래에서 위계와 계급이 발전하는 과정엔 사회집단 간 갈등이 동반된다. 저명한 고고학자들인 플래너리와 마커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구 성장, 집약 농업, 기후 개선 등이 불평등을 낳기에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는 해도 이러한 요인 자체의 필연적인 결과로 불평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핵심적인 과정은 인간 행위자 중 일부 집단이 더 큰 특권을 얻기 위해 싸운 반면 다른 이들은 가능한 한 모든 힘을 모아 특권에 저항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19

예를 들어, 평등한 사회에서는 우호적 관계를 확장하기 위해 선물을 주고받는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이 우호적 관계가 큰 선물을 주고 빚을 지게 만들어 그 대가로 노역을 하도록 만드는 강제적 관계로 변모한다.

통가 제도를 살펴보자. 통가 제도에는 위계만 존재하는 섬과 왕권, 즉, 계급이 존재하는 섬들이 공존했다. 크리스틴 워드 게일리는 해당 지역에서 위계가 계급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연구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추장 계층 사람들은 추장이 비추장 친족의 안녕을 보장해야 하는 책임 같은 오래된 친족 기반의 의무와 책임을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종종 “비추장 친족들에게 억압적이라고 여겨진 추장들에 대한 반란”을 낳았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억압적으로 변한 추장은 더는 추장답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

약 1만 2,000년 전에 형성된 차이외뉘 유적은 계급 발생과 투쟁에 관한 또 다른 고고학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유적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착, 농경, 목축의 단계가 확인되는데 이 과정에서 모종의 계급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쪽에는 특별한 사원과 대저택들이 있었고 부가 집중돼 있었다. 반면 서쪽에는 더 작고 설계도 제각각인 품질이 낮은 주거지가 있었는데 생활 필수 도구 몇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원에선 사람이나 동물의 피가 많이 흘렀는데, 피가 쌓여서 두꺼운 껍질을 이룰 정도였다. 아마도 종교적 의식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브로지우스는 이 사원에서 인신공양과 같은 억압적 기능이 있었을 것으로 봤다. 21

그런데 약 9,200년 전에 차이외뉘의 대저택들이 불에 탔다. 사원은 철거되고 바닥까지 파헤쳐졌으며, 1,000년 넘게 유지되던 이 사원은 그 후 공공 쓰레기장으로 바뀌었다. 그 뒤 기존 주택들은 모두 철거되고 서쪽 빈민가는 완전히 사라졌다. 불타 버린 대저택 자리에는 새로운 차이외뉘가 세워졌는데 새로운 주택들은 과거 대저택들과 비슷한 크기였지만, 전처럼 품질이 낮은 주택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주택에서 작업이 이뤄졌고 사회적 계급을 의미할 만한 흔적은 제거됐다. 차이외뉘 발굴 책임자 메흐메트 외즈도안은 이 변화의 원인이 외부 민족의 침략, 전쟁, 전염병, 자연재해 등이 아니고, 사회적 격변 때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차이외뉘에선 이 격변으로 계급이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계급을 발생시킬 수 있는 물질적 조건(잉여 생산물)은 계급투쟁의 과정을 따라서만 계급 형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계급을 발생시킬 방향으로 인간 분업의 조직(생산물의 관리자와 생산자의 분리), 그 분업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의 발생과 고착화(종교와 융합된 지배적 이데올로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력 동원(구성원에 대한 처벌과 외부와의 전쟁)과 같은 의식적 과정이 성공적일 때에만 계급은 발생하고 유지될 수 있다. 모든 과정에는 다양한 수준의 긴장과 투쟁이 존재할 수 있다.

농경 사회 중 계급 분화를 통해 생산력을 발전시킨 사회들은 주변으로 점차 확대될 수 있었다. 계급이 확대되는 과정, 즉, 불평등이 확대되는 과정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임의의 전제를 기반으로 하는 하나의 체계에서 수천 가지 다양한 사회가 나올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 사람을 조직하는 데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 대여섯 가지이기 때문에 각기 다른 여러 지역에서 놀라울 만큼 비슷한 사회가 등장했다.” 22 마찬가지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할 만한 논리적 전제도 수백 가지나 되지만 이 가운데 몇 가지만 효율적이어서 서로 아무 관련도 없는 수십 개 사회가 동일한 전제를 내세웠다.” 23

계급 발생 과정은 일반적으로 생산력의 발전을 동반했다. 계급 발생 과정에서 생산력 발전이 동반되지 않으면 피지배 계급의 동의를 장기적으로 구하기 어렵다. 계급의 분화는 최초로 노동에서 벗어나 별의 움직임이나 날씨의 변화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집단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강우량이 계절마다 또는 해마다 변하는 지역에서는 안정적으로 물을 대기 위해 관개수로를 파야 할 정도로 집약적인 노동이 필요했다. 때로는 풍년이 들어 인구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그 생산량이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만큼 풍요롭지 않은 지역에선 관개수로를 언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수학, 천문학, 토지 측량 등의 발전은 다시 사회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배계급 분화가 생산력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는 일관되지 않았다.

크리스 하먼은 《민중의 세계사》에서 여러 계급사회들이 등장했다가 붕괴하는 패턴을 분석했다. 계급사회의 지배계급은 처음에는 진정으로 사회 발전을 위한 조처들을 도입하다가 점차 그 생산 기반과 분리돼 사회에 기생하는 존재가 된다. 지배계급의 기생 상태에 맞선 투쟁이 벌어져 사회가 변혁되고 발전하거나, 그대로 붕괴하고 사회가 후퇴하기도 한다. 하먼은 인류 역사에서 이런 패턴이 반복적으로 관찰됐음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입증한다.

이렇게 계급은 인간 본성으로부터가 아니라 특정한 물질적 조건과 결합된 계급투쟁 과정으로부터 등장했다. 그리고 분업과 계급 분화는 생산력의 발전을 낳았지만, 동시에 불평등도 낳았다.

여성 차별의 기원

계급 발생 과정에서 여성 차별도 등장했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계급과 함께 여성 차별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크리스 하먼은 엥겔스의 설명을 이어받으면서, 특히 왜 새로운 경제적·정치적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됐는가를 생산 방식의 변화로 설명했다.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는 초기 신석기 시대에는 여성이 생산에서 주된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신석기 혁명의 핵심은

적당한 식물과 이것의 적절한 재배법을 발견하는 것, 땅을 갈고 곡물을 수확·저장하고 식량으로 가공하기 위한 특수한 도구들을 발명하는 것이었다. … 민속지적 증거로 판단해 볼 때, 이 모든 발명과 발견은 여성의 업적이었다. 토기 제작의 화학, 실잣기의 물리학, 베틀의 역학, 아마와 면화의 식물학도 여성의 공로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24

그렇지만 주요 농업 도구가 괭이와 뒤지개 같은 소도구에서 쟁기와 같은 큰 도구로 대체되면서 모든 것이 변화했다.

쟁기는 … 여성을 가장 고된 일에서 벗어나게 해 줬지만, 곡물에 대한 여성의 독점과 이로부터 나온 사회적 지위를 여성에게서 빼앗았다. 미개인들 사이에서 여성이 보통 괭이로 밭을 일구는 반면, 쟁기를 쓰는 건 남성이다. 심지어 가장 오래된 수메르와 이집트의 자료들에서도 쟁기꾼은 확실히 남성이다. 25

여성이 출산하고, 남성이 근력이 좀 더 강하다는 생물학적 특성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불평등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수렵과 채집의 분업이 생물학적 특징에 기초해 이뤄지긴 했지만, 둘 다 사회에 필수적 역할을 했다. 초기 농경 사회에서도 여성의 생산 참여는 출산, 즉 재생산 역할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농경이 발전하면서 ‘더욱 큰 생산 도구’가 도입되자 여성은 생산에서 주된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동시에 정주 생활과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구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자, 여성이 평생 ‘출산에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잉여 생산물이 쌓이자 이를 둘러싼 ‘전쟁’이 등장했고 여기서도 남성의 역할이 더 중요했다. ‘관개수로를 만드는 대규모 작업’에도 근력이 강한 남성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요컨대,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은 수렵·채집 사회라는 생산 방식과 결합했을 때는 생산 참여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는데, 쟁기와 가축을 사용하고, 인구가 늘어나고, 전쟁을 하고, 관개수로를 만드는 농경 사회에서는 생산 참여에 제약 요소가 됐다. 이렇게 여성 차별은 생산 방식이 변하는 과정에서 계급과 계급투쟁과 함께 등장했다.

인류 최초 문명 발생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강 유역, 황하 유역 등은 넓은 지역에 큰 강이 흐르는 곳들이었다. 넓은 지역에 많은 인구가 머무르며 농경을 시작하기에 좋지만 가뭄이나 홍수를 피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집단적 위계와 조직이 발전하고 더 나아가 계급과 국가가 발전하기 쉬운 조건이 형성된다. 반면 뉴기니 지역은 농경의 역사가 오래됐지만 계급이 발생하지 않았다. 풍요로운 조건 속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계급 발생과 불평등을 감내할 동기가 떨어진다.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기 전에는 소수가 그 잉여 생산물을 통제한다는 ‘발상’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다. 잉여 생산물이 생기더라도 풍요로우면 소수가 잉여 생산물을 통제할 ‘필요’가 생기지 않는다. 반면 잉여 생산물이 있지만 모두를 풍요롭게 만들 수 없다면 소수가 그 잉여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이룬 생산력 발전은 근본적으로 계급을 없앨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제공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이르러 이룬 생산력 발전이 바로 계급 없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라고 봤다. 모든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가가 인류에게 가차 없이 생산을 위한 생산을 강요함으로써, 모든 개인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을 기본 원리로 하는 더 높은 사회 형태의 현실적 토대”를 만들어 낸다고 썼다. 26

물론 이것이 자본주의적 성장을 그대로 이어 가자는 뜻은 아니다. 마르크스가 ‘물질대사의 균열’이라고 부른 자본주의의 자연 파괴는 이미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마틴 엠슨이 지적하듯, 마르크스주의적 전망은 ‘성장’이냐 ‘탈성장’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경제를 민주적으로 계획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지를 사회가 직접 결정하는 것이다. 27

앞서 봤듯이 생물학적 특징이 언제나 여성을 차별받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생산력 발전을 기초로 계급투쟁과 동반돼 변하는 생산 방식에 따라 여성의 지위는 변할 수 있고 계급을 철폐하는 과정에서 여성 차별을 끝장낼 수도 있다.

문제는 발전한 생산력의 결과물을 독차지하고 있는 지배계급이 결코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이전보다 올라갔지만 여전히 차별받는 이유는, 자본가 계급과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여성에 대한 임금 차별, 출산·육아·가사의 부담을 여성에게 지우는 것 등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계급을 없애는 데에도 여성 차별을 끝장내는 것에도 결정적인 것은 계급투쟁 과정이다. 우리가 이 계급투쟁 과정에서 승리해야 조상들이 수렵·채집 사회에서 이뤘던 최초의 평등을 더 높은 생산력 수준에서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변화와 ‘인간 본성’

오늘날 개인들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힘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 동학으로부터 나온다. 개별 자본과 국가들은 서로 분단돼 있다. 생산은 다수 자본으로 쪼개져서 하고, 분배는 시장을 통해 한다. 개별 국가들은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경제적·군사적 경쟁을 지속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 경쟁에 노동계급을 동원한다. 취업 과정에는 시장 경쟁 논리가 적용되고, 이 경쟁 논리가 교육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고기가 물이 없는 상황을 생각하기 어렵듯이,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경쟁이 없는 사회를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前)자본주의 시대에는 경쟁이 체제의 역학으로 자리 잡지 않았다. 예컨대 중세 유럽 봉건제 초기에는 사회가 대부분 자급자족하는 장원들로 구성돼 시장경제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봉건제 아래에서도 농업·수공업·상업이 발전하긴 했지만 자본주의처럼 시장 경쟁의 상황에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생산력 발전이 시장을 형성시켰고, 시장 경쟁이 확대되도록 만들었다. 태초에 경쟁이 아니라 생산력 발전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장이 전면화하기 전인 봉건제 시대까지는 지배계급을 정당화해 주는 사상이 경쟁과는 다른 것이었다. 경쟁과 시장이 체제의 핵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사상을 옹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해 주고 강화하기 위한 세계관을 설파했다. 위대한 왕(영웅)의 탄생 설화 같은 것 말이다. 중세 유럽에서 지배계급의 일부였던 그리스도교 교회의 인간관도 이처럼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바탕으로 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서로 사랑하도록 창조됐다. 하지만 최초의 타락(“원죄”) 이후 인류는 신으로부터 소외되고, 자기들끼리도 서로 소외됐다. 이제 신 대신 물신(物神: “우상”)을 숭배하고, 탐욕과 자기중심주의(이기심), 이에 따른 폭력이 인간관계들을 규정하는 특징이 됐다. 쉽게 말해,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원죄설로 알려진 이러한 인간론은, 마르크스의 소외론에 비춰 보면 그 나름으로 일말의 진실이 있다. 인간이 신으로부터는 아닐지라도 노동, 사회, 인간 본성으로부터 소외돼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외에 대해선 4장에서 더 다룰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원죄설을 통해 인간이 자력으로는 구원될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한다. 인간은 죄악을 내면화한 채로 태어나므로 오직 신만이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은혜로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의 실천적 의미는 지배계급의 일부인 교회 지도자들의 성경 해석과 그들이 베푸는 성례(세례와 성찬)를 제공받아야 원상회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구원을 원하면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을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교나 다른 종교적 인간론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나 한국 사회에서 위와 같은 종교적 학설이 청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전(前)자본주의 시대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라는 경제학적 인간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인간상은 바로 자본주의를 정당화해 줄 인간상이다.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시장이 확대됐고 교역이 발달했다. 경제 체제는 교역 중심지인 도시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도시가 발달하자 화폐와 금융업이 발달했고, 한 지역에서 평생 살아가던 사람들도 교역로를 따라 이동하며 직업도 변천하기 시작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신의 소명이나 예정에 따라 거룩한(“성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 근대 개신교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노동 또한 신의 소명이고 이에 충실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이데올로기는 근면을 강조하므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엄청나게 길었던 자본주의 태동기에 적합한 사상처럼 보였으나, 한편으론 탐욕을 금기시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축적에는 방해되는 요소도 갖고 있었다. 예컨대 이자에 대한 개신교의 주장이 그 사례다. 칼뱅은 ‘생산적 이자’는 허용된다고 봤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이자를 받으면 안 되고 그들이 돈을 꿔 달라는 것도 거절하면 안 된다고 봤다. 자본가들에게 근대 개신교의 이데올로기는 이자 자체를 금기시한 기존의 교회 사상보다 낫긴 했지만, 무제한적 이윤 추구를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하자 개신교 사상도 도전받기 시작했다. 신흥 상공업자 계층은 점점 더 최대 이윤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자본주의 원리에 지배됐고, 이를 뒷받침하는 인간상을 만들어 냈다. 손익계산을 정확히 따지고 이윤 추구를 최대의 가치로 삼는 인간상이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라는 말로 요약됐다.

이러한 경제적 개인주의 사상과 함께 정치적·사회적 개인주의 사상도 확대되기 시작했다. 무인도에 떨어진 개인을 주인공으로 한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이 소설은 영국에서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부상하던 시기에 쓰였다. 크루소는 무인도에서 노동을 통해 생산하고, 축적하며, 소비하는 개인이었다. 바로 자본주의적 인간 모델이었던 것이다. 이런 개인적 생산자, 소비자 모델은 ‘로빈슨 크루소 모델’이라고 불리며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 특히 미시경제학 기초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고립된 개인에서 출발하는 정치경제학자들의 이런 습관을 ‘로빈슨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말처럼 ‘개인은 사회적 존재’다.

이렇듯 근대 사회에서 상식처럼 받아들여진 인간상은 인간 본성을 진지하게 탐구한 결과였다기보다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에 맞아떨어지는 인간상을 정당화한 것뿐이다. 교회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인간관을 퍼뜨렸던 것처럼,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윤 추구를 정당화할 인간관을 퍼뜨렸다. 이 과정은 기존 지배계급인 교회와 봉건영주가 무너지고 중간계급에서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상인과 자본가의 계급투쟁 과정이었다. 계급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새로운 체제 — 이 경우엔 자본주의 — 가 다시 인간의 새로운 존재 조건이 됐다.

자본가들의 성장은 동시에 노동계급의 성장이기도 했다.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노동계급의 규모도 커졌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평등이 강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노동계급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계급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경쟁 동학을 기초로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켰지만 부의 집중과 불평등도 그만큼 심화시켰고, 이것이 노동계급이 투쟁에 나서게 만드는 동력이 됐다.

2장 과학적 외피를 쓴 인간 본성론

과학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려는 시도 중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주장들이 널리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적 형태의 사회생물학은 흔히 1975년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27개 장 가운데 인간을 직접 다룬 것은 마지막 장과 서문의 몇몇 도발적 문장뿐이었지만, 이 책은 인종차별·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큰 논란을 불렀다. 1980년대 중반에는 사회생물학을 변형한 진화심리학이 등장했다. 스티븐 핑커 같은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 정신을 생물학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빈 서판’으로 본다는 이른바 ‘표준 사회과학 모델’을 주된 적수로 상정한다. 사회생물학은 인간 행동을 유전자 중심의 선택 논리로 설명한다. 진화심리학은 이러한 설명을 심리 수준으로 확장하며, 인간에게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고정된 심리 모듈이 있다고 가정한다. 28

사회생물학은 먼저 여러 인간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행동적 특징들을 추출해 ‘인간 본성’의 목록을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 특성들이 유전적으로 형성된 성향 또는 생물학적 기반을 가진다고 가정한 뒤, 마지막으로 각각의 특성이 자연선택을 통해 형성된 이유를 적응적으로 설명한다. 예컨대 “인간은 경쟁적이다”, “인간은 폭력적이다”, “인간은 협력적이다”와 같은 명제가 이러한 인간 본성의 목록에 포함될 수 있다.

진화심리학은 보통 “인간은 공격적이다”처럼 행동 자체가 유전된다고 말하기보다,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동을 만들어 내는 진화된 심리 기제를 상정한다. 경쟁·공격·지위와 위계, 성·짝짓기·성적 질투와 성차, 친족·부모투자·근친회피, 협력·이타성·호혜성·사기꾼 탐지, 영역·집단·연합 행동, 종교·공포·혐오 등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성향이 이 목록에 들어간다. 이 성향은 ‘진화적 적응 환경’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플라이스토세 또는 홍적세라고 부르는 대략 258만 년 전부터 1만 1,700년 전까지의 지질시대가 여기 포함된다. 29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 비판

필자는 제2절에서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여러 문제를 다룰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 중 하나는 변증법적 생물학을 발전시킨 유전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 리처드 르원틴에게서 나왔다.

첫째, 고정된 본성 목록으로 인류가 경험한 다양한 사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수렵·채집 사회, 농경 사회, 자본주의 사회로 변하면서 인간의 행동과 사회관계는 역사적으로 크게 달라졌다. 사회의 중심 사상이나 가치가 서로 상반된 사회들이 있는 것이다.

본성이 작동하는 힘을 가장 약하게 설정한다면 사실 인간 사회에 등장하는 모든 행동을 본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경우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본성이 되므로 사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대로 본성이 작동하는 힘을 강하게 설정하면 본성에서 벗어난 행동을 예외로 취급해야 하므로 인간 행동과 사회관계가 역사적으로 크게 변화해 온 사실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고정된 본성의 목록으로 인간 사회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본성의 영향력을 약하게 설정하면 설명력을 잃고, 강하게 설정하면 현실의 다양성과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둘째, 어떤 행동이 여러 사회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그 특성이 유전자에 들어 있다는 뜻인가? 유전자는 생물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형질로 표현되지 않는다. 르원틴은 유전자가 형질의 설계도를 미리 완성해 두고, 개체가 그것을 그대로 펼쳐내는 식의 설명을 비판했다. 실제 형질은 유전자 하나의 직접적인 산물이 아니라 유전자, 발생 과정, 환경, 우연한 사건, 그리고 유기체 자신의 활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유전자가 어떤 행동이나 성향의 형성에 관여한다는 사실과, 그 행동이나 성향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르다. 인간의 행동 역시 고정된 유전적 프로그램의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생물학적 조건과 역사적·사회적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는다. 특정 능력이 다른 능력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거나 발달 과정의 산물일 가능성, 학습과 사회적 역사를 통해 형성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두 학문은 이런 다양한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고 쉽게 기각한다.

현실의 복잡한 인간 행동을 설명하려면 유전자 결정론은 금방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사회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는 유전자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서로 다른 수준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실제 설명에서 충분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주요 저자들은 여전히 유전자나 고정된 심리 모듈에 결정적이거나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예컨대 리처드 도킨스가 인간을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로 묘사한 사례를 들 수 있다. 30

셋째, 유전적 요소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적응’인가? 어떤 행동이나 형질에 유전적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자연선택에 의해 그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적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굴드와 르원틴은 적응주의가 현재 관찰되는 형질을 각각 독립된 적응으로 간주하고, 그것이 생존이나 번식 성공을 높였기 때문에 자연선택됐다는 설명을 쉽게 만들어 내는 경향을 비판했다. 31 그러나 진화의 결과에는 자연선택뿐 아니라 유전적 표류, 발생적·구조적 제약, 계통적 역사, 다른 형질이 선택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 등 다양한 요인이 관여한다. 따라서 어떤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적 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과거의 특정한 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된 형질이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넷째, 적응이라고 해도 그 진화적 이야기를 검증할 수 있는가? 설령 어떤 행동이나 심리적 성향이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된 적응일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어떤 선택압에 의해 진화했는지를 입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르원틴은 과거의 진화사를 설명하려면 당시 집단에 어떤 형질의 변이가 존재했는지, 그 변이가 유전됐는지, 그리고 특정한 변이를 가진 개체가 바로 그 형질 때문에 더 높은 생존과 번식 성공을 거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인간의 먼 진화적 과거, 특히 행동과 심리적 특성에 대해서는 이러한 정보를 직접 확인하기 매우 어렵다. 더구나 하나의 적응 가설이 증거와 맞지 않을 때마다 다른 적응적 설명을 덧붙여 기존의 전제를 보존한다면, 어떤 관찰 결과도 설명할 수 있게 돼 가설을 제대로 시험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적응적 설명은 그럴듯한 이야기로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쟁하는 다른 설명들과 비교하며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가설로 다뤄야 한다. 르원틴이 말했듯이 “그럴듯함은 과학이 아니다”. 32

예를 들어 “남성의 질투는 플라이스토세에 친자 불확실성을 줄여 번식 성공을 높였기 때문에 진화했다”는 가설을 생각해 보자. 이를 입증하려면 당시 인간 집단에 질투와 관련된 변이가 있었는지, 그 변이가 유전됐는지, 질투의 차이가 실제 번식 성공의 차이를 낳았는지, 그리고 당시의 짝짓기와 사회관계가 어떤 형태였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를 과거 인류에게서 확보하는 데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재의 행동에 대해 가능한 적응적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것과, 그 시나리오가 실제 진화의 역사였음을 입증하는 것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몇몇 저자들은 고정된 본성론이 변화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서로 다른 본성이 각각 진화해 경쟁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협력하면 협력 본성이 작동했다고 하고, 경쟁하면 경쟁 본성이 작동했다고 한다. 이 경우 모든 것은 본성들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있다. 33 그러나 역사적 관계 속에서 이 성향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달라지는지 설명하지 않으면 입증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섯째, 개인의 진화된 심리나 유전적 성향으로 사회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적 성향에 진화적·생물학적 기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사회 전체의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은 통합적 인간과 인간 사회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개별적인 행동과 심리 기제들의 집합으로 쪼갠다. 르원틴은 개인의 특성을 사회현상의 원인으로 직접 환원하는 설명을 비판했다. 개인의 공격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전쟁이 곧바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경쟁 성향만으로 계급·시장·국가와 같은 사회제도의 성격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는 개인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도와 관계, 권력 구조를 가진 독자적인 조직 수준이며, 이러한 사회적 조건은 다시 개인의 행동과 성향이 표현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인간 사회를 설명하려면 유전자나 개인의 심리에서 출발해 사회를 일방적으로 도출하기보다, 개인과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여러 수준의 관계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

예컨대 개인이 팔을 퍼덕여 날 수 없다는 생물학적 제약이 인간 사회의 비행을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조직이 비행기, 공항, 조종사, 기술을 만들어 개인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환원주의적인 방식으로는 이런 인간의 특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캐나다의 초등학교 산수 시간의 지극히 평범한 학생도 X, V, I와 같은 수학 기호와 씨름을 벌이던 고대 로마의 가장 뛰어난 수학자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34 이 두 사례에서 인간이 하늘을 날거나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생물학적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능력은 사회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기술, 기호 체계를 협업과 교육을 통해 활용함으로써 실현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자동차를 들 수 있다. 우리가 자동차에 대해 안다고 할 때 그것이 뜻하는 바는 자동차의 역사일 수도, 자동차가 작동하는 물리·화학적 원리일 수도, 운전하는 방법에 대한 것일 수도, 교통신호 체계에 대한 것일 수도, 자동차의 생산과 유통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자동차를 이루는 원자와 분자의 성질을 아무리 자세히 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자동차가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규칙 아래 운행되고,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각 수준의 현상은 그 아래 수준의 물질적 조건에 의존하지만, 그렇다고 상위 수준의 특성을 하위 수준의 특성으로 단순히 환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 역시 생물학적 존재이지만, 인간의 행동과 사회를 이해하려면 유전자나 신체의 특성만이 아니라 인간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와 역사,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수준의 특성을 함께 살펴야 하는 것이다.

유전자가 능력을 규정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사회적 조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르원틴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화적 환경의 측면에서 본다면, 환경 변화는 능력을 수십 배로 바꿀 수 있다. 게다가 개인들 사이의 차이는 문화적, 기계적 발명물들로 폐기될 수 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 집단 사이에 체격과 힘의 생물학적 평균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이 경우에도 그 차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처럼 크지 않다), 전자적으로 구동되는 승강기, 파워 스티어링(동력 조타장치), 전자식 제어 등으로 이뤄지는 세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실질적인 차이는 빠른 속도로 무마되며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유전자 변이의 결과로서의 한 집단 내에서의 변이의 비율은 고정된 특성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무엇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 중 어느 정도가 유전적 차이의 결과인지는, 매우 신기하게도,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35

여섯째, 생물은 이미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존재인가? 진화 과정에서 생물을 이미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존재로 보는 관점 역시 르원틴이 비판한 핵심 대상이다. 전통적인 적응주의적 설명에서는 환경이 먼저 존재하고, 자연선택이 그 환경에 더 잘 맞는 개체를 골라내는 것처럼 묘사되기 쉽다. 그러나 르원틴은 유기체가 단순히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활동을 통해 환경을 선택하고 변화시키며 새롭게 구성하는 존재라고 봤다. 36 기존의 도식이 환경 → 유기체라면, 르원틴의 도식은 유기체 ↔ 환경이다. 유기체가 변화시킨 환경은 다시 그 유기체의 발생과 생존, 번식, 나아가 진화에 영향을 미치므로, 유기체와 환경은 역사적 과정 속에서 서로를 끊임없이 형성한다.

생물과 환경이 상호작용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결정론과 환경 결정론의 대안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순한 상호작용론은 여전히 생물과 환경을 완전히 분리돼 섞일 수 없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르원틴은 상호작용론보다 더 강한 상호구성과 상호침투를 주장했다.

이러한 관계는 여러 생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비버는 댐을 만들어 물의 흐름과 주변 생태계를 바꾸고, 식물은 뿌리와 분비물을 통해 토양의 물리적·화학적 조건을 변화시키며, 초파리 유충은 과일에 굴을 파 효모가 번식할 공간을 늘려 자신의 먹이 환경을 만들어 낸다. 인간에게서는 이러한 환경 구성이 훨씬 더 큰 규모와 복잡성으로 나타난다. 농업, 도시, 주거, 의료, 교통, 교육, 기술과 사회조직은 인간이 살아가는 생활환경 자체를 변화시키고, 그 결과 어떤 형질과 행동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거나 불리한지를 결정하는 선택압도 달라진다. 따라서 진화를 단순히 환경이 문제를 제시하고 유기체가 그 문제에 맞춰 변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는 없다. 유기체는 자연선택의 대상인 동시에 자연선택이 일어나는 조건을 구성하는 존재이며, 인간은 집단적 활동과 사회적 조직을 통해 이 과정을 특히 강력하게 수행한다.

일곱째, 왜 이런 종류의 설명이 반복해서 등장하는가? 르원틴은 생물학적 설명이 단순한 과학적 오류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관계를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경쟁, 위계, 남성 지배, 불평등과 같은 현상을 인간의 유전적 본성이나 진화의 필연적 결과로 설명하면, 그것들이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 온 사회관계라는 사실이 가려진다. 그 결과 현재의 사회질서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상태처럼 제시되고, 다른 형태의 사회관계가 가능하다는 점은 과소평가된다. 따라서 르원틴의 비판은 단지 특정한 생물학적 설명의 정확성을 따지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설명이 어떤 사회적 현실을 자연화하고 정당화하는지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기적 본성론에 맞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방법론이 인간의 역사를 기계적으로 파악하고, 그 결과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듣는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것은 불가능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개인의 이기적 동기를 인정한다고 해서 반드시 단결을 부정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인간의 이기적 동기는 경쟁 속에선 타인을 배척하는 관계로 나타나지만, 집단적 실천 속에서 참여자 사이의 연대와 협동 관계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경험은 인간의 연대의식과 공동의 이해관계 인식으로 구체화돼, 처음 가졌던 이기적 동기와 의식 자체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계급은 단결해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이런 의식을 더 발전시킨다. 그런데 인간에게 이기적 본성이 자리 잡아 단결이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면, 노동계급이 투쟁에 나서 의식을 발전시키기 전부터 변화 가능성을 단정하게 된다. 단결의 가능성을 보고 그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제약하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수렵·채집 사회의 역사와 관련해 중요한 왜곡을 한 사례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스티븐 핑커는 폭력성이 인간에게 진화적으로 형성된 성향 가운데 하나이며, 문명의 발전과 함께 폭력 수준이 장기적으로 감소해 왔다고 주장했다. 37 그러나 인류학자 리처드 리는 핑커를 비롯해 자신이 ‘호전성 학파’라고 부르는 학자들이 수렵·채집 사회의 폭력성을 과장했다고 비판한다. 핑커는 서로 다른 생계 방식과 역사적 조건을 지닌 비국가 사회들을 한데 묶어 비교하고, 농경민이나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서 높은 폭력 수준을 보인 집단들을 인류의 원초적 상태를 보여 주는 사례처럼 제시했다. 또한 선사시대의 폭력 수준을 추정하면서 폭력의 흔적이 두드러지는 유적들을 선택해 전체를 대표하는 자료처럼 사용했다. 38 또한 리는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의 사망자를 반영한 폭력 수준과, 빈곤·차별·여성 억압 등 구조적 폭력의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사나운 사람들’로 알려진 아마존의 야노마모 사례도 마찬가지다. 인류학자 나폴리언 샤그넌은 이들이 석기시대 조상처럼 살고 있으며, 성 선택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을 빚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노마모는 실제로 원예 농경을 하던 사람들이었으며, 인류학자 브라이언 퍼거슨의 연구에 따르면 외부인들의 유입과 쇠도끼·산탄총 같은 물품의 확산은 이들의 전쟁을 격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샤그넌은 폭력적인 남성들이 더 많은 자녀를 남겼다고 주장하지만 “살인에 가담한다고 번식 성공도가 높아진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성공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 39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 가운데 높은 폭력 수준을 보인 집단들 역시 외부 세력의 침입과 특수한 역사적·사회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류 전체의 폭력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일반화할 수 없다. 40 이 사례들은 인간 본성에 관한 가설을 역사적 자료로 검증하는 대신, 기존의 본성론에 부합하도록 자료를 선택하고 서로 다른 사회적 조건을 무시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보여 준다.

한편, 모든 사회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가 인류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기존의 차별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세라 블래퍼 허디 같은 페미니스트 사회생물학자는 여성 차별에 반대하고, 수렵·채집 사회와 영장류에 대한 연구를 이용해 협력 양육이 인간 진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41 이는 사회생물학 또는 진화심리학이라는 동일한 이론적 틀 안에서도 어떤 자료에 주목하고 어떤 사회적 문제의식을 갖는가에 따라 인간 본성에 대해 상당히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르원틴이 지적했듯, 허디 역시 인간의 본성을 자연선택에 의해 유전자의 전달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이해하는 사회생물학의 이론적 틀을 받아들인다. 42 그런 점에서 허디의 연구가 기존 사회생물학의 성차별적 가정을 비판하고 인간의 협력성을 강조했다는 사실과 별개로, 그가 제시한 진화적 설명 역시 방법론적 검토의 대상이 돼야 한다. 협력 양육이 실제로 존재하고 인간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자연선택을 통해 인간의 협력성을 진화시킨 주요 원인이었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후자의 주장을 입증하려면 적응주의적 설명 이외의 가능한 진화적·역사적 설명들과 비교하고 경험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실라 맥그리거는 허디와 같은 저자들의 연구를 포함하는 새로운 연구 경향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때로 매우 흥미롭고, 인간도 그 일부인 자연세계에 관한 이해를 넓혀 준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새로운 접근법이 사실상 사회생물학의 ‘여성주의적’ 판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종에서 관찰된 행동을 인간에게 너무 자주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인간 진화를 이해하는 토대로서 도구 제작과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다른 측면들에 주목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43

또 다른 예로 진화심리학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인간의 주요한 특징으로 자기 가축화 과정에서 진화한 다정함을 꼽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들이 제시한 ‘자기 가축화 가설’ 자체는 흥미롭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의 협력성과 친화성뿐 아니라 전쟁과 인종차별 같은 폭력적 행동도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심리적 성향으로 설명하려 한다. 저자들은 특히 트럼프의 당선과 극우화 현상에 경각심을 느꼈으며, 인종차별과 외집단에 대한 폭력을 설명하기 위해 ‘내집단’과 ‘외집단’이라는 개념을 이용한다. 인간은 자연선택을 통해 내집단 구성원에게 친화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을 획득했지만, 그 부산물로 외집단을 위협으로 인식할 때 비인간화하고 공격할 수 있는 성향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성향이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관찰되는 집단 간 차별과 폭력이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성향의 결과라는 설명이 실제로 검증됐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또한 그러한 성향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인종차별과 파시즘이 등장하고 강화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진화된 심리적 성향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한다면,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조직의 문제를 개인의 심리적 특성으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자연선택은 경쟁과 이기심이 인간 본성임을 뜻하는가

진화 과정에서 경쟁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경쟁적 본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므로 별도로 다루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 진화를 가장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과정, 그것도 피라미드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사다리처럼 묘사하는 것은 틀렸다. 적합도는 가장 강하거나 우수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고, 특정 조건에서의 상대적 번식 성공과 관련된 것이다. 자연선택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선 생물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무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 여러 가지에서 잎을 피우듯 다양한 적응 형태가 있는 것이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명의 나무’라는 비유를 썼고, 그에 앞서 연구 노트(1837)에는 생명의 계통이 나무보다 산호에 가깝다고 적기도 했다. 진화는 많은 종의 멸종과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겉만 살아 있는 산호와 더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저명한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도 “인간도 진화의 한 가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둘째, 적응에는 협동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사례들도 많다. 개체들은 고립된 상태에서는 자연에 잘 적응하기 힘들다. 동물들이 무리를 짓는 이유는 협동으로 인한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미어캣은 소수가 망보기를 하며 주변을 경계하고, 그사이 나머지가 땅속을 뒤져 먹이를 찾는다. 망보는 개체는 몸을 꼿꼿이 세운 채 주변을 둘러보다가 포식자가 나타나면 경고음을 낸다. 흔히 보초가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보초는 대개 굴 가까이에 있어 가장 먼저 몸을 피할 수 있으므로 특별히 더 위험하지는 않다. 보초는 자기 안전을 지키면서 집단 전체도 지키는 셈이다. 협동이 반드시 자기희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흰동가리인 ‘니모’에게 보호 공간을 제공하는 말미잘은 흰동가리가 흘리는 먹이를 먹을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종 사이의 공생 관계도 자연에서 흔하게 관찰할 수 있다. 심지어 세포 단위의 공생도 있다. 진핵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독립생활을 하던 세균(알파프로테오박테리아의 조상)이 다른 세포 안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된 결과다. 이처럼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세포로 들어와 함께 살아가는 현상을 ‘내공생’이라고 한다. 진화 때문에 경쟁이 본성이라고 말할 거라면, 마찬가지로 협동도 본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진화 과정 자체는 경쟁과 협동 중 한 가지 성향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지 않는다.

셋째, 인류학자 아구스틴 푸엔테스가 말했듯이, 자연선택은 “삶의 현장에서 누가 더 크고 포악하고 ‘적합’한지를 가리며 전투를 벌이는, 목숨을 건 생존 경쟁을 뜻하는 게 아니다.” 44 오히려 “자연선택은 환경의 제약과 압력에 반응해 변이를 만들어 내는 여과 과정에 가깝다.” 여과기 모양에 잘 맞는 개체는 번식을 더 많이 하고, 잘 맞지 않는 개체는 번식하지 못한다.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 여과기를 더 잘 통과하게 되면 이 변종은 더 많이 번식하게 된다. “환경의 압력을 받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변이를 여과하는 이 과정이 바로 자연선택이다. 그러므로 진화에서 변이의 유형과 패턴, 그리고 환경의 압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리처드 르원틴의 관점에서 보면 ‘여과기’ 역시 환경이 고정돼 있다는 인상을 주는 한 불충분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르원틴식으로 보자면 생물은 여과기를 통과하는 동시에 그 여과기의 구멍 크기와 형태 자체를 계속 바꾸고 있는 셈이다.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도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관계를 다루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자연선택 개념을 다룬 적이 있다.

설사 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교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을 폭력으로 몰아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한 동물 집단이 다른 집단을 폭력 없이도 수천 년 안에 대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지 한 집단이 환경에서 더 잘 살아남고 번식하는 데 성공하면, 그 집단의 수는 증가하고, 다른 집단의 자원이 줄어들며, 결국 출생률이 사망률을 따라가지 못하게 돼 자연스럽게 소멸될 수 있다. 45

사실 진화의 이런 특징은 다윈 스스로도 밝힌 바 있다. 다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란 표현이 “넓고 은유적인 의미”이며, “이는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에 의존하는 관계를 포함할 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단지 개체의 생존만이 아니라 후손을 남기는 데 성공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46

르원틴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더 나아가 적응이나 자연선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기체를 수동적으로 보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47

3장 인간 진화의 역사

모든 생물은 그 생물을 구성하는 역사를 갖는다. 인간의 경우 그 역사에는 종의 진화사, 개체의 발달사, 사회적 역사가 포함된다. 이 역사는 인간과 환경이 서로를 구성하면서 만들어 온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활동을 통해 이후의 생존·발달 조건을 바꾼다. 무언가를 바꾸려면 과거의 어떤 조건이 어떤 제약과 어떤 가능성을 만드는지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것은 인간의 진화사·발달사·사회적 역사를 파악하는 일과 동떨어질 수 없으며, 무엇을 바꿀 수 있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관한 실천적 판단과 연결된다.

인간의 중요한 특징은 분명 진화 과정에서 획득된 것이고,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유전적 변이가 동반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유전적 기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의 직접적 발현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유전자와 인간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역사적 단계를 건너뛰는 것이다. 인간의 구체적 행동은 유전자에서 직접 비롯되지 않는다. 예컨대,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체 염기서열 차이는 약 2퍼센트에 불과하다. 유전자가 직접적으로 행동 패턴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침팬지와 인간 사이에서 약 2퍼센트의 행동 변화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2퍼센트의 유전적 차이는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 유전자들이 성장 속도를 조절하는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근연 관계에 있는 다른 동물들보다 성장 기간이 유독 길다. 임신 기간이 길 뿐 아니라 출산 후에도 약 20년간 더 자란다. 이런 장기간의 성장은 생존에 꼭 유리한 것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껑충껑충 뛰는 가젤이 인간의 아이보다 육식동물로부터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긴 성장 기간은 크고 유연한 뇌가 발달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인이다. 덕분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은 이룰 수 없는 지식의 축적을 이룰 수 있게 됐다. 큰 뇌와 의식의 발달은 인간이라는 종의 고유한 특징이다.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도 주로 개별 유전자의 차이가 아니라 뇌의 발달에서 비롯했다.

최근에는 뇌를 인체의 다른 부위와 떨어뜨려 탐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뇌의 발달은 다른 신체 부위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손의 복잡한 활동과 함께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손의 복잡한 활동은 직립보행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유인원이 직립보행을 먼저 하고 나서야 손의 사용 증가와 뇌의 발달이 함께 공진화하면서 오늘날의 인류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공진화 개념은 다윈이 처음 제안했고, 48 엥겔스가 더 발전시켰다. 49 언어의 발달도 이 과정에 포함된다. 다만 다윈은 《인간의 유래》(1871)에서 뇌를 인간 진화의 핵심 동력으로 봤다. 엥겔스는 이 관념론적 측면에 맞서, 뇌의 발달은 나중에 일어났고 유인원을 인간으로 진화하게 만든 출발점은 직립보행과 노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엥겔스의 설명은 시간의 검증을 견뎌 냈다. 오늘날에는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뒤에야 뇌가 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처럼 특정 유전자의 변화는 인간에게 분명 중요한 생물학적 특징을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하나의 행동이나 하나하나의 심리에 쪼개져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는 연관 성장의 법칙과 공진화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그것이 인간 진화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 줄 것이다.

연관 성장의 법칙

엥겔스는 1876년에 작성한 50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데서 노동이 한 구실〉에서 다윈의 ‘연관 성장의 법칙’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 법칙은 “유기체의 특수한 부위가 변화할 때, 겉보기엔 무관해 보이는 다른 부분이 함께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포유류의 갈라진 발굽은 대개 되새김질을 위한 여러 개의 위와 결부돼 있다.” 엥겔스는 이 ‘연관 성장의 법칙’을 인간 진화에 적용해 손과 뇌, 언어의 발전에 대해 설명했다. 엥겔스의 주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뒤에서 더 다룰 것이다.

연관 성장의 법칙은 동물의 가축화에서도 나타난다. 예컨대, 늑대와 여우를 가축화했을 때 동시에 나타난 특징들은 “펄럭이는 귀, 작은 주둥이, 동그랗게 말린 꼬리, 얼룩무늬 털, 작은 이빨”이었다. 51 사람에 대한 친화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두 종을 선택 교배하자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이 특징들이 함께 나타난 것이다.

즉, 한쪽의 변화가 동시에 다른 변화를 수반할 수 있으며 상호 영향을 미친다. 이 개념은 하나의 DNA 변화가 하나의 기능 변화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유전학적 발견과도 일치한다. 이런 변화는 발생 구조적 제약을 받고, 때로는 실용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유기체는 (개별 유전자가 아니라) 통합된 전체로 분석돼야 하며, 이는 계통적 유산, 발생 경로, 그리고 전반적 형태 구조에 의해 강하게 제약된다”. 52

공진화

엥겔스는 직립보행에 이어 손의 발달, 언어의 발달, 뇌의 발달, 사회적 협동의 발달이 함께 이뤄졌다고 봤다. 다시 말해, 노동의 도구인 인간의 손과 사회적 협력의 수단인 언어, 복잡한 손의 운동과 다양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뇌가 함께 진화(공진화)했다는 것이다. 53

“먼저 노동이 있었고, 그다음 말이 생겨났으며, 이후에는 노동과 말이 함께 발전해 나갔다. 이것들이 바로 유인원의 뇌가 점차 인간의 뇌로 변화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자극 두 가지였다. …

손, 언어 기관, 두뇌의 결합된 기능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도 더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들었고, 점점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할 수 있게 했다.” 54

그렇게 진화한 인간 노동은 다른 동물과는 구분되는 특성을 지녔는데, 바로 자연을 의식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엥겔스에 따르면 다른 동물은 단지 환경을 이용할 뿐이고, 존재만으로 환경에 변화를 일으킨다. 반면 인간은 변화시킨 환경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무엇을 만들지 먼저 머릿속에 그리고 나서 만든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가장 서투른 건축가가 가장 뛰어난 꿀벌보다 나은 점은 집을 실제로 짓기 전에 머릿속에서 먼저 짓는다는 것이다.

위의 문단에서 인간의 의식적 노동과 동물을 비교할 때 우리는 양적 차이가 질적 차이를 낳는다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예컨대 앞서 비버의 사례에서 봤듯이 다른 동물도 환경을 바꾼다. 침팬지는 긴 도구를 사용해 개미를 잡아먹기 때문에 제한된 수준의 계획과 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계획을 몇 주나, 몇 달 뒤까지 세울 수 있고 심지어 세대를 넘는 목표와 계획을 가질 수 있다.

언어의 사용이 인간의 특징으로 남는 한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생활하는 동물은 결코 언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팬지도 한 무리에서 협동해 사냥을 하지만, 사냥 성과를 주변의 다른 무리와 나누는 법은 없다. 그러나 수렵·채집 사회의 인간은 한 집단 내에서 협동할 뿐 아니라, 주변의 인간 집단과도 호혜적인 관계를 맺어 사회적 위기의 시기에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55

인간의 성장 기간이 유독 길다는 것도 인간이 특별히 사회적인 존재가 되도록 만든다. 20년 가까이 자라는 동안 인간은 주변의 다른 인간과 사회의 도움을 무척이나 받는다. 인간은 자신을 돕는 사회의 주된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유전병의 분석과 치료처럼, 유전자 연구가 실제로 큰 도움을 주는 분야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특정 유전병의 경우에도, 해당 유전자를 가진 모든 개인에게 똑같은 나이에 질병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질병의 발현 여부는 유전적 소인뿐만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는다.

더 나아가 인간을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유전자만으론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동물조차 그 동물의 자연환경과 함께 봐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바로 인간이 자연환경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노동이 조직되는 방식이 변한다는 것인데, 이는 인간 노동의 의식적, 사회적, 창조적 특성으로부터 비롯한다. 인류가 평등한 공동체에서 시작해 어떻게 계급사회로 이행했는지를 설명하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 유전자만으로 인간 사회의 복잡한 변화 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마치 현미경으로 숲 전체의 생태계를 파악하려는 것과 같다.

현생 인류가 출현한 이후, 인류는 성인기의 유당 분해 능력 유지, 피부색의 다양성, 고산 적응과 같은 사례들에서 유전적 변화를 겪어 왔다. 그러나 뇌의 크기는 현생 인류가 출현할 무렵 이미 오늘날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이후 인간의 인지 능력이 문명의 발전에 상응할 만큼 진화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인류가 이룩한 기술적·사회적 변화는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보다 훨씬 빠르고 극적이었다. 문화, 언어, 종교, 기술, 경제, 사회 구조의 변화는 의식적 학습과 집단적 경험을 통해 이뤄지며, 한 세대 안에서도 전파되고 변형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를 보인다. 이에 대해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56 고고학자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 또한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사회적 진화를 구분한다.

다만 우리는 문화적 진화가 인간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을 통해서 생물학적 진화에 다시 영향을 준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서 예를 들었던 유당 분해 능력 유지와 같은 사례가 바로 인간이 바꾼 환경, 즉, 낙농으로 인한 우유 섭취가 다시 유전자 변화에 영향을 준 것이다. 근본적으로 초기 인류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의 협력 과정과 언어의 발전이 포함됐기 때문에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가 함께 진행된 공진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57

유기체가 환경을 구성한다는 르원틴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독특한 점은 그 환경에 바로 문화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비버가 주변의 자연을 변형시켜 댐을 구성하듯이 인간은 문화를, 더 나아가 사회를 구성한다. 이런 변증법적 생물학의 관점을 통해서 보면 사회학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환경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환경에는 서로 다른 인간 사이의 관계와 역사적 변화도 포함된다. 생물학과 사회학의 통합은 인간 사회를 생물학으로 환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변증법적 접근을 통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탄소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성질을 밝혀낸다고 해서 둘 다 탄소로만 이뤄진 다이아몬드와 흑연이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니는 이유를 자동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물질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탄소 원자들이 어떤 구조로 배열되고 결합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유전자는 인간 사회와 연관이 있지만, 유전자만 들여다봐선 인간 사회의 역사와 변화를 알 수 없고 인간의 활동과 사회관계 자체를 분석해야 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문화적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밈’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밈은 유전자와 유사하게 복제되고 전파되는 문화적 정보의 단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를 유전자라는 복제자의 관점에서, 문화적 진화는 밈이라는 복제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공통된 방법론적 문제가 있다. 문화는 개별적인 관념들이 단순히 복제되고 확산하는 과정만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집단 활동과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문화적 정보를 작은 복제 단위로 나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그러한 사회관계의 형성과 변화, 더 나아가 문화적 활동이 다시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 조건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르원틴과 레빈스는 《변증법적 생물학자》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활동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지 보여 준다. 식량 부족에 대비하기 위한 저장과 재분배는 사회적 유대와 의무를 만들어 내고, 교환과 상품 생산의 발전은 축적과 시장가격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사회적 관계는 식량을 확보하려는 본래의 생물학적 필요에서 직접 도출할 수 없는 독자적인 속성을 갖게 되며, 다시 인간의 식량 생산과 소비를 규정한다. 이는 인간의 사회적 활동이 생물학적 필요에 기초하면서도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인간이 구성한 사회적 환경이 다시 인간의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 준다. 58

인류의 진화 과정

원인류는 아프리카의 삼림지대에서 나무에 기어올라 살던 영장류에서 기원했다. 환경의 변화로 아프리카의 삼림지대는 초원으로 변했고, 긴 팔로 나무 사이를 다니던 유인원보다 초원에서 직립보행을 하는 유인원이 더 생존하기 좋은 조건으로 변했다. 다만 오늘날에는 초기 직립보행이 탁 트인 초원보다 숲과 초원이 뒤섞인 모자이크 환경에서 시작됐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뒤에서 보듯 인류는 하나의 고정된 환경이 아니라 끝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 진화했다.

최초로 직립보행을 시작한 유인원은 300만~400만 년 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알려져 있었는데, 약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이보다 앞서 직립보행을 한 유인원이라는 주장도 새로 나왔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는 두개골이 척추와 연결되는 대후두공이 두개골 아래에 있어 이 해부학적 구조가 직립보행의 증거로 여겨진다. 59 한편 사헬란트로푸스가 완전한 직립보행보다는 고릴라나 침팬지가 하듯이 ‘주먹 보행’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후두공의 위치 변경이 완전한 직립보행보다 먼저 나타났다는 뜻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헬란트로푸스보다 완벽한 직립보행을 했을 것이고, 이는 두 손을 더 자유롭게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개골의 크기로 봤을 때 뇌의 용적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약 20퍼센트 크다.

200만~300만 년 전에는 호모 하빌리스가, 180만 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하고, 45만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이, 약 30만 년 전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다. 60 인류의 진화는 하나의 직선이 아니었다. 여러 종류의 초기 인류가 나타났다가 멸종했고, 그중 일부는 같은 시기에 함께 살기도 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 관계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일부 지역에선 호모 사피엔스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막스 플랑크 진화 인류학 연구소의 DNA 분석 이후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아프리카 바깥에 조상을 둔 현생 인류의 유전체에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1~2퍼센트가량 섞여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뇌의 용적이 3배가량 커졌는데, 이 과정은 도구(뗀석기) 사용 능력과 자연의 일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불의 사용)과 함께 발달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약 300만 년 전에 이미 죽은 동물의 사체에서 고기를 발라낸 흔적이 있고, 약 20만 년 전에는 반복적이고 계획적인 사냥이 이뤄졌다는 증거가 있다.

인간은 단단한 손톱이나 강력한 근육, 따뜻한 털 대신, 직립보행을 할 수 있는 두 다리,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손, 다양한 발음을 내고 개념을 전달할 수 있는 구강구조, 큰 뇌를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한 도구의 사용과 사회적 의사소통 및 협동 능력을 갖게 되는 방향으로, 자연에 대해 더 큰 작용을 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대략 7만 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은 4만 년 전에 사라졌고, 앞서 말했듯 일부는 호모 사피엔스와 혼혈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환경으로의 이동은 기존의 생산 방식을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했겠지만, 새로운 환경을 마주했을 땐 자연과 물질대사를 하는 새로운 방식을 마련해야 했으므로 더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인류는 덥고, 높고, 춥고, 건조한 지역에도 고고학적 증거를 남겼다. 예컨대 약 7만 년 전 동남아시아 적도 열대우림, 약 4만 년 전 해발 4,600미터의 티베트 고원, 약 3만 2,000년 전 북위 71도의 북동 시베리아, 약 1만 2,000년 전 남아메리카의 초건조한 사막이 그 사례들이다. 계통학적으로 인류와 가까운 유인원인 보노보가 콩고강 남쪽의 습윤한 중앙아프리카 숲에 강하게 제한된 종이고, 침팬지도 아프리카의 숲이나 숲-사바나 환경에 제한된 종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인간이 그토록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눈에 띈다.

호모속이 진화한 플라이스토세(약 258만 년 전부터 1만 1,700년 전) 아프리카에서는 장기적인 냉각과 건조화와 함께 숲과 초원, 호수와 건조지, 습윤기와 건조기가 여러 시간 규모에서 반복적으로 교체됐다. 인간은 하나의 고정된 환경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고고학 기록을 보면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의 이동 범위와 원재료 이용 범위가 확대되고, 다양한 석기 기술과 장거리 사회적 연결망이 등장했으며, 후기 호모 사피엔스는 열대림에서 사막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환경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인간의 진화를 특정한 ‘적응 환경’에 맞춰 빚어진 과정으로 보는 것보다, 서로 다른 환경으로 이동하고 행동을 바꾸며 기술과 사회관계를 통해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확대해 온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실제 기록에 더 잘 부합한다. 이것은 인간이 환경과 관계 맺는 능력, 즉, 환경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키워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의 본성과 노동의 개방성

인간이 환경과 관계 맺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인간 노동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노동의 구체적인 형태는 역사적으로 변화하며, 인간이 가진 사회적·의식적·창조적 노동의 잠재력이 언제나 충분히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61

다른 동물들도 그 동물의 수준에서 환경과 관계 맺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이러한 환경과의 관계가 집단적으로 조직되고, 사회적으로 학습되며, 세대를 넘어 축적된다는 점에서 질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인간은 생산수단과 지식, 협동 방식으로 이뤄진 생산력과 인간들 사이의 생산관계를 결합해 특정한 생산체제를 형성하고, 그 위에서 문화·규범·법·정치제도·국가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구조를 역사적으로 만들어 왔다. 62

그렇다면 인간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은 오늘날의 특정한 제도나 상부구조 자체라기보다, 그러한 복잡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 능력이었을 것이다. 상징적 의사소통, 사회적 학습, 협동, 규범 형성, 공동의 활동을 조직하는 능력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은 인간이 노동을 통해 환경뿐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관계까지 재구성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본성은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고정된 심리적 성향의 목록이기보다는, 인간이 사회적 노동을 통해 자신과 환경의 관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조직할 수 있는 열린 능력이다. 인간은 특정한 방식으로 노동하도록 고정된 종이 아니라, 노동의 방식 자체를 역사적으로 변화시키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활조건과 사회관계 또한 변화시켜 온 종이다. 인간 본성의 핵심을 말한다면, 바로 이러한 가능성의 개방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개방성은 역사적 조건에 제약되지만, 그 조건을 기초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잠재력도 품고 있다. 또한 노동이 사회적으로 조직되는 특징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개별 인간 수준의 분석이 아니라, 사회적 수준으로 분석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마르크스가 발전시킨 역사유물론이 이 분석 도구가 될 수 있으며 필자는 이 글의 전반에서 역사유물론의 적용 방식을 여러 사례로 보여 줬다.

이는 마르크스 자신의 인간관과도 통한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1845)에서 “인간의 본질은 각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며, 그 현실성에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라고 썼다. 이 구절은 흔히 마르크스가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버렸다는 증거로 읽혔다. 그러나 정치철학자 노먼 제라스가 《마르크스와 인간 본성》에서 보여 줬듯이, 마르크스는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기본적 필요와 능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것들이 언제나 주변 사회에 의해 철저하게 형성된다는 것을 이해한 인간 본성론을 갖고 있었다. 음식과 옷, 주거에 대한 필요는 모든 시대의 인간에게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 필요와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집단적 노동은 언제나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그에 맞는 형태로 표현된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배고픔은 배고픔이다. 그러나 나이프와 포크로 익힌 고기를 먹어서 채우는 배고픔은 손과 손톱과 이빨로 날고기를 삼켜서 채우는 배고픔과는 다른 배고픔이다.’ 63 르원틴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이어받아 다음과 같이 썼다.

생물학적으로 ‘먹기’와 ‘마시기’는 영양을 섭취하는 물리적 행위다. 실제로는 먹고 마시는 일이 그러한 생물학적 필요와 맺는 관계가 매우 다양하다. 식사는 가족의 유대를 굳히고, 상업적 거래를 계속할 구실을 제공하며, 상호적인 사회적 의무를 형성할 기회를 만드는 사회적 행사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으며, 그들의 전해질 균형을 유지해 주려고 “술 한잔하러 오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 인간 문화에는 먹고 마시는 행위의 의미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물리적 행위가 엄청나게 다양한 사회적·개인적 의미로 질적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64

요컨대 마르크스에게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집단적이고 계획적인 노동으로 자연을 변화시키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욕구와 능력까지 발전시키는 본성을 가진 동물이다. 노동은 세계를 바꾸고, 동시에 노동하는 사람 자신도 바꾼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외부 세계에 작용해 그것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키고’, 자기 안에 잠자던 힘을 일깨운다고 썼다. 바로 이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노동 능력을 발전시키면서도 그 능력을 자유롭게 실현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많은 사람의 기본적 필요조차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집단적이고 의식적으로 생산하는 인간의 능력을 단조롭고 부분적인 작업으로 제한하고, 그들의 노동을 자본의 이윤 추구와 축적에 종속시킨다. 이것이 4장에서 다룰 소외의 문제다. 65

4장 노동계급 투쟁과 인간 행동·의식의 변화

자본가 계급은 인간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므로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지배계급의 사상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다(1장 참조).

자본주의는 경쟁에 기초해 작동하는 것과 동시에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협력하는 집단, 즉 노동계급도 만들어 낸다. 노동계급은 직장에서 일할 때 일상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고 경험한다. 노동계급 협동의 규모는 국제적인 수준이다. 비슷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서로의 고통을 잘 이해한다.

자본주의와 소외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에 대한 경쟁과 착취로 인간을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소외는 인간이 자기 노동과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원래 ‘소외’는 소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뜻의 법률 용어였다. 마르크스는 1844년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소외되는 방식을 처음 분석했다. 첫째, 노동자는 자신이 만든 생산물로부터 소외된다. 생산물은 자본가의 소유가 돼 ‘낯선 존재로서, 독립된 힘으로서’ 노동자와 맞선다. 둘째, 노동자는 노동 과정으로부터 소외된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만들지를 노동자가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일 속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느낀다.’ 셋째, 노동자는 자신의 ‘유적 존재’, 즉 의식적이고 집단적으로 자연에 작용하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소외된다. 넷째, 그 결과 노동자는 다른 인간으로부터 소외된다. 우리는 일자리와 지위, 돈을 두고 서로 경쟁하고, 서로를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사고파는 관계 속에서만 만난다. 세계가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는데도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66 인간이 지닌 본성은 억압받고, 기계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평상시 통제력을 상실한 많은 인간은 지배계급의 사상을 받아들이기 쉽고 동시에 정신적 고통도 경험한다.

자본주의와 정신적 고통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의식적인 활동을 통해 세계와 자신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능력이 노동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자본의 이윤을 늘리는 데 종속된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활동이 생계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강제적 활동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들고, 무력감과 좌절을 낳는다.

노동자는 업무량과 성과 평가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실직을 두려워하고, 장시간 노동으로 휴식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볼 시간을 빼앗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조차 일자리와 성과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대가 되곤 한다. 낮은 임금과 부채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복지 삭감은 생존과 돌봄의 부담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긴다. 인간에게 필요한 안정과 휴식, 관계와 자기 활동의 여지가 이윤 축적의 요구에 밀려나는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 고용 불안, 부채와 복지 축소가 겹치면서 우울과 불안이 커진다. 정신적 고통의 증가는 인간의 필요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사이의 충돌이 드러나는 한 방식이다. 67

이러한 충돌은 사람들을 실제로 병들게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뇌와 신체, 사회적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며, 빈곤과 차별, 지속적인 위협과 고립은 정신질환의 발생과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정신적 고통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뇌 내부의 문제만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살아가며 무엇을 박탈당했는지가 가려진다. 수전 로젠탈이 말했듯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할 때 그 고통을 낳는 사회적 관계가 보존된다. 68 정신질환마다 원인과 경과가 다르고 필요한 치료도 있지만, 치료와 함께 고통을 낳고 악화시키는 생활조건을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인간 본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고통은 인간의 필요와 능력을 지속적으로 억누르는 사회가 치르는 인간적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누적된 불안과 좌절은 극우가 성장하는 토양이 될 수 있다. 극우는 경제 위기가 낳은 고통,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을 이용해 왔다. 극우는 삶이 나빠졌다는 사람들의 감각을 붙잡으면서도 그 책임을 이민자와 난민 같은 집단에 떠넘긴다. 이 과정에서 불안과 분노는 배타적 소속감과 결합하고,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은 약자를 공격하고 권위주의적 지도자에게 의존하는 방향으로 조직될 수 있다. 69 보수 또는 중도주의 정치인들은 흔히 경제 위기나 복지 삭감의 책임을 이주민에게 돌리며, 결과적으로 극우 정치를 강화하는 데 책임이 있다.

그러나 고통이 어떤 정치적 방향으로 이어지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강조하듯, 극우의 성장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과도 관련돼 있다. 따라서 극우를 인간에게 본래 잠재한 공격성의 단순한 표출로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어떤 조직이 불만의 원인을 설명하고, 누구를 책임자로 지목하며, 어떤 행동과 대안을 제시하는지가 중요하다.

이에 맞서려면 노동조건과 생계, 복지와 정신건강 지원을 개선하는 투쟁을 차별과 극우에 반대하는 공동행동과 연결해야 한다. 노동자들과 피억압자들이 아래로부터 조직하는 대중운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집단적 실천은 사람들이 고통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고립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바꿀 힘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공동의 저항이 무력감을 줄이고 행위 주체라는 감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간의 필요를 이윤에 종속시키는 사회관계를 바꾸는 과정은, 인간이 자신의 관계와 능력을 발전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의 객관적 이해관계

노동계급은 평상시에는 자본주의에 적응하지만 그럴 때조차 자본가들과 계급적 이해관계 충돌을 경험한다. 직접 투쟁하지 않을 때에도 연봉 협상, 사내 복지 증감, 노동강도의 변화, 승진, 이직 등으로 객관적으로 자본가들과 상반된 이해관계를 갖는다. 국가 정책으로 사회복지가 늘어나는 일에도 노동계급은 긍정적 이해관계를 갖지만, 자본가 계급은 부정적 이해관계를 갖는다. 전쟁이 벌어지면 노동계급은 그 전쟁에 동원돼 죽어 가지만, 지배계급은 전쟁의 전리품을 얻는다.

노동계급은 평상시에는 개별 기업이나 국가의 경쟁에 동원돼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이 담당한 업무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키운다. 노동계급이 가진 사회적 책임감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근본적 힘일 것이다. 동시에 노동계급은 사회 부조리에 맞서거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선 단결해서 싸우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임을 알게 된다. 이 단결은 흔히 거리에서 대중 행동으로 일어나지만, 또한 직장 내에서 조직되는 항의의 형태로 일어나기도 한다. 노동계급은 다양한 방법으로 싸울 수 있지만 파업은 노동계급의 고유한 힘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방법이다. 노동계급은 파업으로 사회를 멈추게 되는데, 이것은 반대로 평상시 그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이 처한 물질적 조건 때문에 노동계급이 다수인 자본주의 사회에선 전(前)자본주의 시대보다 대중운동이 더 자주 일어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대한 진보를 이룬 힘은 대부분 노동계급에 기초한 대중운동에서 나왔다. 한국의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그런 사례 중 하나였고, 2024년 12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즉 친위 쿠데타 기도를 막아 낸 것도 노동계급 사람들이 대거 참가한 대중운동의 힘이었다.

후자의 경우 진보를 이뤘다기보다는 후퇴를 막은 것이고 노동계급의 파업이라는 고유의 힘이 발휘된 사례는 아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인정했듯이 대중운동이 없었다면 윤석열의 쿠데타를 막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투쟁이 보여 준 대중운동의 힘과 파업과 같은 노동계급의 고유한 힘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한계를 둘 다 봐야 한다. 그래야 성과에 기반해 과제를 확인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노동계급은 물질적으로 단결하기 쉬운 조건에 놓여 있지만 지배계급의 경쟁에 동원되고 시장 경쟁에 노출되기도 한다. 따라서 단결은 자동적인 것이 아니며, 단결을 일궈 내야 할 과제가 있다. 특히 사회적 위기 시기엔 지배계급도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한층 더 노동계급을 이간질하고 분열시키려 노력한다. 따라서 이에 맞서 노동계급의 단결을 도모하는 활동이 중요하다.

결론: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가?

노동계급은 궁극적으로 생산과 사회 전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다른 체제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70 1871년 파리 코뮌과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이 노동계급의 잠재력이 가장 높게 발휘된 사례들을 보면, 선출된 대표들은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만을 받았고 대표는 자신을 선출한 대중들에게 언제든 소환될 수 있었다. 노동계급이 단지 4~5년에 한 번 투표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치, 경제를 포함해 사회 전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든 것이다. 이 밖에도 독일의 레테(평의회, 1918~1919년), 칠레의 코르돈(산업벨트, 1972~1973년), 이란의 쇼라(공장 위원회, 1979년) 등은 노동계급이 갖고 있는 혁명적 잠재력을 보여 준 사례들이다.

이 시도들 가운데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 지켜 낸 것은 1917년 러시아뿐이었다(파리 코뮌은 72일 만에 학살로 끝났다). 러시아마저도 1924년 스탈린이 ‘일국 사회주의’론을 내세우며 반혁명이 본격화했고, 1928년 무렵 반혁명이 완료되면서 결국 러시아 혁명은 패배했다. 이 쓰라린 패배의 교훈을 자세히 다루는 것은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러시아 혁명의 타락은 ‘인간 본성’ 때문이 아니라 물질적 조건 때문이었다. 혁명 전 러시아는 유럽 강대국 가운데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한 나라였고, 노동계급은 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됐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과 내전으로 경제가 파탄 나 1921년 공업 생산은 1913년의 31퍼센트로 떨어졌다. 기근과 전염병까지 겹치면서 혁명을 일으킨 도시 노동계급 자체가 와해됐고, 레닌의 말처럼 ‘계급적 지위에서 밀려나 더는 프롤레타리아트로 존재하지 않게’ 됐다. 그 결과 국가와 당의 관리들은 통제받지 않는 특권 관료층으로 변해 갔다. 이 고립을 깨뜨릴 유일한 길은 혁명이 더 발전한 나라로 확산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혁명은 독일과 이탈리아로 번졌지만 주로 혁명적 지도력이 부족해 패배했다. 인간은 지난 역사가 만든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 패배의 경험들로부터 잘 배워야 할 과제가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주요 나라 가운데 1917년 러시아보다 생산력이 덜 발전하고 노동계급이 약한 나라는 없다는 점에서 이 교훈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다. 71

또한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는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론이나 그 뒤 ‘사회주의’를 자처한 국가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겠다.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는 혁명의 구호가 아니라 반혁명의 구호였다. 마르크스는 국제주의자였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지, “우리나라 노동자만 단결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갖고 있는 사회를 뜻하는데, 소위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노동계급은 오히려 지배당했다. 이 나라들은 계급사회일 뿐 아니라 세계시장의 압력에 종속된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 72 더 깊이 탐구해 볼 질문들도 남아 있다. 권력을 장악했던 러시아 노동계급은 어떻게 스탈린에게 권력을 다시 빼앗기게 됐나? 그리고 러시아 혁명은 승리했는데, 왜 이어서 벌어진 독일 혁명은 패배했나? 노동계급이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73

르원틴이 말한 변증법적 생물학을 사회 변혁 전략에 적용한다면,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환경을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74 물론 개인들도 개인적 주장과 실천으로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 SNS에 정치적 주장과 개인적 실천들을 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좌파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이런 활동에 포함되며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 전체를 변혁시키려고 하면 개인적 실천만으론 부족하다. 자본가 계급은 언론, 기업, 경제단체, 정치적 제도 등을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 하며, 국가의 강제력 또한 기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노동계급 또한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혁명적 사상을 가진 개인들에게 혁명 조직은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집단적 사회 변혁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이 조직의 활동가들은 개인적 수준, 조직적 수준, 계급적 수준에서 사회적 환경을 분석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한다. 그리고 그 활동의 결과는 다시 활동가들의 인식과 능력, 조직의 활동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계급의 투쟁과 정치적 조건의 변화는 혁명 조직이 활동하는 환경을 변화시키며, 혁명 조직의 활동 또한 이러한 환경에 영향을 준다. 이처럼 혁명 조직은 자신이 놓인 정치적 환경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그 환경에 의해 변화하며, 이러한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라 성장하거나 후퇴한다.

팔레스타인계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자생성과 다른 한편의 지도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혁명 조직과 노동계급 운동 사이의 변증법적이고 살아 있는 관계를 강조했다. 클리프가 1960년 〈대리주의에 관한 트로츠키의 견해〉라는 글에서 썼듯이, 진정한 혁명적 지도력은 ‘투쟁의 동반자 관계’에 관한 것이며, 따라서 “파업위원회와 파업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 … 혁명정당은 당 밖의 노동자들과 대화해야 한다. 따라서 당은 아무 근거도 없이 전술을 만들어 내서는 안 되며, 대중운동의 경험에서 배우고 거기서 일반화를 이끌어 내는 것을 첫째 의무로 삼아야 한다.” 75

미국의 트럼프에 맞선 ‘핸즈 오프(Hands Off!)’ 시위, 국제적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인종차별과 난민 혐오에 반대하는 운동, 낙태권을 옹호하는 운동, 트랜스젠더를 포함해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 극우에 맞선 운동,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 등 우리가 확대하고 더 발전시켜야 할 많은 운동들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우리를 경쟁으로 내몰았지만, 동시에 그에 맞선 저항 세력과 운동 또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운동들은 사회를 바꿀 힘이 어디에 있는지 잠재력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한계들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런 운동들의 성과와 한계로부터 잘 배워 투쟁을 조직하고 전진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유물론적 조건, 즉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사회를 변화시키려 스스로 애쓰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의식도 변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표현을 빌리면, 혁명이 필요한 것은 지배계급을 다른 방법으로는 타도할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계급이 오직 혁명 속에서만 ‘낡은 오물’을 떨쳐 내고 사회를 새롭게 건설할 능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페니 하워드의 말처럼, 인간 본성에 대한 고정되고 비관적인 관념은 파업이나 정의를 요구하는 운동 과정에서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 76 경쟁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사회에서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투쟁은 단결을 이뤄야만 성공적이다. 노동계급이 여성 차별, 성소수자 차별, 인종차별과 같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면 단결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은 실업의 책임을 기업과 자본주의 체제에 돌릴 수도 있지만, 이주노동자에게 돌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극우 정치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들이 이런 차별적 정치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지배계급과 체제의 문제들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리고, 이들을 희생양 삼아서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가 노동계급의 단결을 대안으로 내세운다면, 극우 정치의 대안은 노동계급이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더 여러 개로 쪼개 버리자는 것이다. 극우 정치는 국가의 경계를 더 강화하고 이민에 반대하며 이주민을 공격한다. 트럼프처럼 이웃 나라들에 기꺼이 경제적 피해를 끼치는 것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이 하는 것처럼 전쟁과 인종학살을 벌이는 것을 지지한다. 윤석열처럼 의회 민주주의조차 파괴하는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을 지지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단결을 촉구하는 운동은, 극우 정치에 맞선 운동과 함께 전진할 수밖에 없다.

다만 노동계급은 결코 사상이 완성된 후에 투쟁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기초해서 투쟁에 나서며, 온갖 잡다한 사상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투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투쟁 과정에서 낡은 의식을 벗어던질 수 있다. 필자는 영국 파업 광원들과 성소수자들의 연대를 그린 영화 〈런던 프라이드〉(2014)를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이 연대의 가능성을 실제 현실로 구현하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혁명에 의한 사회의 전면적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현실에서 우린 경쟁에 동원되고 참가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단결하고 투쟁에 참가할 것이다. 평상시에는 개악을 막거나, 개혁을 위해서 일어나는 이런 투쟁들에 참가해야 한다. 개혁을 얻는 투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더 큰 변화를 요구할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투쟁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혁명 과정에서 새 시대의 가치관이 탄생할 것이다. 예컨대, 아내 구타가 만연했던 제정 러시아에서 1917년 혁명은 즉각 여성들의 권리를 신장시키고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 여성 참정권이 실현됐고, 이혼이 자유로워졌으며, 유급 출산휴가가 도입됐다. 동성애와 간통도 더는 범죄로 다루지 않게 됐고, 1920년에는 세계 최초로 낙태가 합법화됐다.

크리스 하먼은 그의 책 《21세기의 혁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대한 시위는 연대감을 자아내고, 이러한 연대감 때문에 일상적 삶의 원자화나 이기심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면 연대감은 며칠이나 몇 주, 몇 개월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은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그래서 거의 모든 설명에서 반복되는 혁명의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다. 혁명기에는 경찰력이 와해되는데도 범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193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혁명적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웨이터와 점원들은 손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동등한 관계로 대했다. 굽신거리거나 의례적인 말투는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 무엇보다 혁명과 미래에 대한 확신, 갑자기 자유와 평등의 시대가 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자본주의라는 기계의 톱니바퀴가 아니라 인간답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노동계급을 고통에 빠뜨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성 정치도 위기에 빠지고 사회와 정치는 양극화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혁명적 위기는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투쟁의 결과는 미리 결정돼 있지 않다. 독일 혁명의 실패가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계급투쟁의 패배는 파시즘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문제는 점점 우리 시대의 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독자들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이 결정적 투쟁에 함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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