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추천 《엥겔스와 인간 사회의 기원》(크리스 하먼):
엥겔스가 파헤친 인간 사회 기원에 대한 중요한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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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세계사》, 《좀비 자본주의》의 저자로 잘 알려진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2009년 작고)이 쓴 《엥겔스와 인간 사회의 기원》(황정규 옮김, 책갈피, 원서 1994)이 최근 번역 출판됐다.

하먼의 《엥겔스와 인간 사회의 기원》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두 저작, ‘유인원에서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노동이 한 구실’(1876)과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을 깊이 분석하고 그 의의를 조명하는 책이다.
하먼은 엥겔스 사후 100년 동안 진척된 인류학과 고고학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며, 낡은 것과 오류들을 가려내고 엥겔스가 제시한 통찰의 핵심을 더욱 밝혔다.
또, 엥겔스의 설명 가운데 논리적으로 취약한 일부 지점에 대해서는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중요한 보완을 가했다. 특히, 계급사회에서 지배자로 부상한 것이 왜 남성이었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보완했다.
엥겔스의 두 저작은 역사유물론의 방법으로 인간의 진화와 인간 사회, 여성 차별의 기원을 설명한 최초의 시도이자 오늘날에도 큰 영감을 주는 고전이다.
‘유인원에서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노동이 한 구실’은 다윈의 선행 연구에 기초해 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진화를 설명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유물론적 세계관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여전히 관념론적 지배 관념(두뇌와 지능의 발전 우선성)에 묶여 있었다. 엥겔스는 유물론적 방법에 기초해 다윈 설명의 순서를 크게 바꿨다. 즉, 직립 보행과 손을 사용한 도구 사용(노동)이 두뇌 크기 증가와 지능보다 먼저였다고 주장하며 관념론의 남은 족쇄를 풀었다.
놀랍게도 1970년대 중반 유인원 크기의 두뇌에 직립 자세를 취한 350만 년 전의 완전한 골격이 발견되면서 엥겔스가 다윈보다 더 옳았음이 증명됐다고 하먼은 설명한다.
또한 엥겔스는 최초의 인간 사회(수렵·채집 사회)에는 계급과 여성 차별이 없었다고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밝혔다(“원시 공산주의”). 이후 농업이 발전해 잉여가 생겨난 반면 생산력의 한계 때문에 위기에 봉착한 여러 사회에서 평등주의가 깨지고 계급이 분화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 차별도 시작됐다(“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엥겔스의 이런 통찰의 핵심은 후대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대표적으로 고든 차일드, 엘리너 리콕, 리처드 리 등)의 더 발전된 연구로 뒷받침됐다.
자연사와 인간사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제 갓 태동했던 당시에 몇 가지 연구를 바탕으로 엥겔스가 이런 통찰을 제시한 것은 대단히 선구적인 일이었다. 당시가 도덕주의와 엄격한 성 규범이 강요되던 빅토리아 시대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혁명적 함의
엥겔스의 두 저작은 지금까지 학계에서 체계적으로 무시당하거나 매도당했다. 특히, 초기 인류 선조들이 살던 사회인 “원시 공산주의” 개념은 한낱 동화에 불과한 얘기로 취급받으며 공격을 받았다. (물론 1960년대 말에는 당시의 광범한 격변의 영향으로 일부 학자들이 엥겔스의 두 저작에 다시 주목하며 연구를 이어 갔다. 엘리너 리콕, 리처드 리도 그런 학자들이었다.)
주류 학계의 공격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더 큰 공격의 일부였다. 인류 역사 대부분 동안 호혜와 평등주의가 특징인 사회가 존재했다면, 또 계급 분단과 여성 차별이 인간 본성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 원인을 가진다면, 차별과 착취가 없는 사회주의 비전을 실현할 가능성이 활짝 열리기 때문이다. 이런 혁명적 함축은 오늘날에는 더욱 유효하다.
이런 함의는 엥겔스가 두 저작에 적용한 역사유물론적 방법에서 도출된 것이었다. 이 점이 엥겔스의 두 저작이 지닌 또 다른 탁월함이다. 하먼은 이렇게 지적한다. 두 저작은 “엥겔스가 마르스크스와 함께 1840년대 중엽에 발전시킨 방법론[역사유물론]의 커다란 공로다.”
이 방법은 수많은 실증적 증거와 자료의 파편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진실을 향해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잡이가 돼 준다. 하먼이 이 책을 통해 한 작업도 바로 엥겔스가 사용한 방법을 더 일관되고 철저하게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해방의 전망을 더욱 밝히는 것이었다.
이 책의 원서가 나온 지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또 새롭게 밝혀진 고고학적·인류학적 자료들이 쌓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엥겔스의 두 저작과 마찬가지로 하먼의 이 책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 이유다.
하먼이 엥겔스의 두 저작을 두고 했던 칭찬은 하먼 자신의 책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겠다.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거의 매일 쏟아 내는 수많은 실증적 자료를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귀중한 출발점 구실을 한다.” 하먼의 책도 차별과 착취를 근절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출발점 구실을 할 것이다.
한편, 하먼은 이 책에서 엥겔스를 따라 인간에 대한 두 지배적 관점인 관념론과 기계적 유물론을 거부한다.
특히, 이 책이 쓰인 1990년대는 인간 행동을 생물학(유전자)으로 환원하는 사회생물학과 그 사촌격인 진화심리학이 영향력을 확산시키던 시기였으므로(둘은 상호 보완 관계이며 오늘날에는 ‘정상 과학’ 대접을 받는다), 그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거듭 등장한다.
현재에도 그 외양은 약간씩 달리하지만 “과학”을 위장한 인간에 대한 통속적 설명들이 기계적 유물론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상 내에서도 이런 관점이 널리 퍼져 있다. 예컨대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의 원인을 생물학으로 환원시키며 트랜스젠더 권리를 부정한다.
엥겔스의 두 저작과 함께 하먼의 이 책은 오늘에도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