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해투 총회 현장을 가다:
“투쟁이라는 원칙이 그 중심에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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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나는 ‘금호타이어 정리해고 철폐 투쟁위원회’(이하 금해투) 노동자들을 만나러 광주로 향했다. 이들은 노조 지도부의 양보 교섭에 반대해 투쟁을 촉구하고 있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양형근 대협실장과 기아차 화성지회 ‘금속노동자의 힘’ 김우용 의장이 동행했다. 양형근 대협실장은 이날 금해투 결성 총회에서 연설할 예정이었다.
사측은 이번 총회를 방해하기 위해 온갖 탄압을 가했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이 연·월차를 쓰는 것까지 막았다. 금해투 활동가들 대부분이 ‘허가되지 않은 홍보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몇 차례씩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바로 전날에는 노조 지도부까지 금해투 총회를 비난했다. 금해투 총회는 “노동조합의 단결력을 저해하는 행동”이며 “책임성 없는 말과 행동은 현장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투쟁의 구심
우리가 도착했을 때 총회는 이미 끝나 있었고, 오후 근무자들은 부랴부랴 공장으로 돌아간 직후였다. 그런데도 80여 명의 노동자들이 양형근 대협실장의 발언을 듣기 위해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양형근 대협실장은 숨을 헐떡거리며 연단 위에 올랐다. 노동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그를 맞았다.
“저는 쌍용차 해고자입니다”라고 말을 꺼낸 양형근 대협실장은 “투쟁만이 살 길”이라며 금해투를 응원했다. 그는 쌍용차 파업의 교훈을 곱씹으며, 양보로는 일자리를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자는 “기아차 화성공장에서도 우리를 지지하러 왔다”며 김우용 의장도 소개했다. 김우용 의장은 전날 밤에 만든 ‘금속노동자의 힘’ 소식지를 반포했다. 금호타이어 투쟁을 지지하고 양보 교섭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한 노동자는 총회에 2백여 명이 참가했다고 전해줬다. 온갖 탄압 속에서도 2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동안 노조 지도부가 투쟁을 회피하고 조합원들의 사기를 꺾어 온 것을 떠올려 보면 더 그랬다.
총회 장소에 남아 있던 노동자들은 모두 공장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공장 안 길목 한 가운데 플래카드를 들고 대열을 지었다.
“굴욕적 양보교섭 반대한다!”
“아웃소싱 반대한다!”
“임금삭감 반대한다!”
조용하던 공장 안에 투쟁 구호가 울려 퍼졌다. 선동전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힘이 느껴졌다.
금해투는 확실히 투쟁의 구심이었다.
지나가던 노동자들은 금해투 동지들과 악수를 나누고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금해투 소속의 한 노동자는 자신의 동료에게 “이리 와! 같이 하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일부 노조 간부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금해투의 선동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우용 의장은 소식지를 들고 이들에게 다가갔다.
‘금속노동자의 힘’ 소식지를 건네 받은 한 노조 간부는 김우용 의장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누가 공장 안으로 들여보내 줬냐? 출입증은 있냐”며 김우용 의장을 공장 밖으로 내보냈다. 아마도 양보 교섭을 비판한 내용이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연차를 쓰고 무려 4시간 넘게 달려 온 김우용 의장은 공장 밖으로 쫓겨나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소식지를 반포했다.
30여 분이 흘러 선동전을 마무리할 즈음, 덩치가 좋은 노무 관리자들이 금해투 대열 앞에 뒷짐을 지고 섰다. 별다른 마찰은 없었지만, 사측이 금해투를 엄청 경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동전이 끝나고 열린 뒤풀이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거침없이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들은 투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노동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집행부가 싸우지 않으니까, 모두들 금해투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은 금해투가 뭐라고 말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금해투의 대자보는 조합원들의 관심사입니다. 집행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회사는 3년 동안 세 번이나 정리해고를 시도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이제 해고 시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금해투)가 사태를 결정할 것입니다. 사측도, 집행부도, 조합원들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내가 투쟁의 맨 앞에 서겠다”
〈레프트21〉 독자인 한 노동자는 자신의 조원들이 있는 장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작은 술집에 노동자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 자리에는 해고 대상자가 아닌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이 조의 대의원은 우리를 환영한다며, 인사와 발언을 청했다.
양형근 대협실장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지 않고 이렇게 함께 모여 있는 걸 보니까 너무 보기 좋다”며 “쌍용차 투쟁 때 우리는 동료들끼리 전쟁을 치러야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단결해서 싸워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얘기를 듣고 있던 노동자들은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2003년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연세가 지긋한 노동자가 먼저 일어섰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습니다. 집행부가 멀리서 오신 동지들을 환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가 대신 환영합니다. 쌍용차 동지 말처럼, 우리는 흩어지지 않고 함께 싸울 겁니다.”
곧이어 다른 노동자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형님들과 아우들이 다 같이 모이니 정말 뿌듯하고 든든합니다!
“저는 기아차 광주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1999년에 해고를 당했어요. 이때는 비정규직이라 해고가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냥 그게 당연한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01년에도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금, 정규직이 됐는데 또 해고당하게 생겼습니다. 내 나이 마흔이 다 돼서, 이제서야 ‘해고는 살인이다’는 말을 절감하게 됐죠. 하나뿐인 인생인데, 이렇게 처참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결국 싸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대의원은 내게 조합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으라고 조언했다.
“금호타이어 소식은 죄다 집행부 입장으로만 대변되니까, 그게 답답합니다. 이렇게 싸우려는 조합원들이 있는데, 이런 얘기는 아무도 보도를 안 합니다.”
그는 조합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여기가 기자여. 우리가 언론도 꽉 잡은 거니까, 하고 싶은 얘기들 모두 다해!” 좌파 언론의 임무가 이런 데 있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임금 체불에 분통을 터뜨렸다.
“벌써 세 달째 임금이 체불됐어요. 보통 1천만 원에서 1천5백만 원 정도를 못 받았을 겁니다. 생활이 정말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딸 아이가 부반장에 나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나는 그거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반장을 하면 그만큼 돈이 들잖아요. 감당할 수가 없죠.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거 아닙니까. 돈이 없으면 부반장도 할 수가 없으니까요. 딸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회사가 어렵다면서, 이사들은 수억 원씩 가져간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우리는 해고되면 살 길이 막막한데….”
노동자들은 노조 지도부에 대해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고광석 (지회장)은 패잔병이여. 장수가 다 내주고 항복하면 백성들은 어쩌라는 것인지. 전쟁터에서 싸움도 안 하는 장수가 도대체 어디 있냐고!”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얘기도 안 들으려고 해요. 금해투 총회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걸 봐요. 이게 정말 문제인 거죠.”
강력하게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당당하게 가자 이겁니다. 내 동료들이, 내 식구들이 죽는데 그냥 내보내자고 하면 이건 인간이 아닌 거지요. 이성이 있는 인간이면 그러면 안 됩니다. 열 받아서 그냥은 안 됩니다. 다 같이 뭐라도 해봐야 합니다.”
“더 강하게 나갑시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렇게 가자! 이렇게 하자!’고 해야 합니다. 대의원도 더 강하게 가자고 해야 합니다. 고참들도 그래야 합니다.”
이런 노동자들의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며 대의원이 말했다.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우리 조합원들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막 자랑하고 싶습니다.
“얘기하는 걸 보세요. 발언들이 구구절절 대단하죠? 다들 대의원감이라니까요.
“잘 보십쇼. 조합원들은 누군가가 중심에 서길 바랍니다. 투쟁이라는 원칙이 바로 그 중심이길 바랍니다. 집행부는 지금 그런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로 그 투쟁의 맨 앞에 설 겁니다.”
그는 곧바로 동료들을 바라보며 반복해 말했다. “○○야! 그래, 가자. 형이 맨 앞에 설께! 우리 조합원들이 싸우자는데, 내가 할께. 내가 맨 앞에 설께!”
노동자 연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투쟁을 결의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희망이 느껴졌다. 노조 지도부가 이런 조합원들의 열망을 억누르고 있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정말이지, 고광석 지회장이 투쟁의 맨 앞에 서야 하는게 아닌가!
대의원에 따르면, 곡성공장을 통 털어서 이 노동자들이 속한 작업조만 유일하게 사측에 항의해 태업을 하고 있었다. 생산량을 15퍼센트, 20퍼센트씩 덜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관리자들이 협박하는데도 이들은 굴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대의원은 연신 웃으며 또 자랑을 했다.
“내가 조합원들에게 생산을 하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알아서 생산을 안 합니다. 형님이 먼저 그렇게 하고, 아우들이 또 그렇게 합니다.”
대의원은 양보 교섭을 권고하는 금속노조 지도부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조합원들이 이렇게 모였고 힘을 주고 있는데, 솔직히 힘들기도 합니다. 차마 조합원들에게 말은 못 했지만, 금속노조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쌍용차 투쟁 때 금속노조 지도부의 무기력을 떠올리면 난감합니다. 쌍용차 동지들이 그렇게 싸웠는데, 고립됐습니다. 물론, 나는 쌍용차 투쟁이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남긴 게 많고 소중한 걸 가르쳐 줬습니다.
“그렇지만, 금속노조의 현실을 조합원들에게 차마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매일 술을 먹습니다. 나는 몰랐는데, 며칠 전에 아내가 말하더군요. 술을 먹고 들어오면 내가 그렇게 운다고 합니다. 요즘 제 심정이 그런가 봅니다.”
아마 투쟁에 나서고 있는 노동자들이 모두 이런 고민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노동자 연대를 통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게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의 과제이리라.
나는 또 다른 현장 활동가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노조의 양보가 포함된 잠정 합의안이 나올 경우, 부결 선동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금해투는 부결 입장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다만, 부결 운동을 벌이면 1백93명을 해고하자는 것이냐는 비난이 있을 수 있어, 그게 걱정입니다. 어느 정도 수위에서 부결 운동을 벌일지가 고민입니다.”
다른 활동가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 줬다.
“금해투는 부결 운동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혹시 가결이 되더라도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겁니다.
“집행부는 이미 신뢰를 잃었습니다. 이번에 대량해고가 잠시 봉합되더라도 이후에 또 구조조정 공격이 있을 겁니다. 이후를 도모하려면 투쟁을 조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어떻게 대중적 힘을 키울 것인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