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금호타이어 노조 지도부 ‘고통전담’ 합의:
“노예 계약서 합의에 조합원들 불만 커지고 있다”

금호타이어 노조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고통분담에 합의했다.

금호타이어 노사는 기본급 10퍼센트 삭감 및 워크아웃 기간 중 5퍼센트 추가 반납, 상여금 2백 퍼센트 반납, 5백97개 직무 도급화(아웃소싱) 등에 합의했다.

특히, 이번 합의에는 해고 대상자 1백93명이 ‘취업규칙 준수와 성실근무’를 이행한다는 확약이 포함됐다. 불만을 표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사측의 압력을 수용한 것이다.

자신들의 부실경영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사측은 역겹게도 “공멸과 파국만은 피하자는 공감대가 의견일치를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겐 대폭적인 임금 삭감과 도급화가 바로 공멸이고 파국이 아니던가!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쌍용차 점거파업 사태가 노사 양측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선례가 ‘학습효과’로 작용했다”고 평했다.

하지만 ‘쌍용차처럼 싸워 보지도 못하고 굴욕적으로 당했다’는 아쉬움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한 대의원은 이번 합의를 두고 “노예 계약서에 합의한 것”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는 “잠정합의는 무조건 부결될 것”이라며 분개했다.

금호타이어 노조 지도부는 오늘 아침을 기해 파업을 선언했지만, 하루 종일 공장 안은 적막하기만 했다. 노조 지도부는 양보 교섭에만 매달리고 있었고, 파업 결의대회조차 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조합원들은 공장 안과 주변을 서성이며 협상만 지켜봤다. 노조 사무실 주변에선 한숨과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광주 공장 휴게실에 모인 조합원 수십 명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2년 전부터 회사가 적자라고 임단협에서 엄청 양보했어요. 4백 명, 7백 명씩 자른다는데 어쩝니까. 근데 지금 또 해고와 임금 삭감을 한답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지 답답합니다. 내년에는 1천5백 명을 자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워크아웃 기간도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 누가 안답니까.”

“체불임금이 2천만 원이 넘었어요. 적금 깨고, 보험 깨고, 이제는 애들 저금도 깨서 학원비를 대고 있다니까요. 답답합니다. 정말 회사에 정나미가 떨어집니다.”

“고광석 지회장이 저렇게 굽히고 가는데 사측이야 얼씨구나 싶지 않겠어요. 노조가 기 싸움에서 지고 있는 거예요. 조합원들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잖아요. 벌써 파업 지침을 때리고 사람들을 모았어야지!”

“노조가 이 모양이니, 회사도 갈 때까지 가는 것 아닙니까.”

공장 앞에 설치된 민주노동당 천막에서도 불만에 찬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집행부가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숨만 나와요.”

“집행부는 그동안 양보안이 어느 정도인지 속 시원하게 조합원들에게 알려 주질 않았어요. 오늘 ‘현장공대위’가 소식지를 내고, 임금 삭감액이 40퍼센트 가까이 된다고 설명했죠. 조합원들도 많이 화가 나 있습니다.”

‘협상의 늪’

한 지역단체 활동가도 노조 지도부를 비판했다.

“엊그제 한 토론회에서 전남대 이채언 교수가 이번 협상이 사기극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측이 너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불공정 협상이라는 뜻에서 말입니다. 이 교수는 아예 협상 파트너가 없으면 사측도 워크아웃 동의서를 강요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지회장 불신임 얘기도 꺼냈습니다. 민감한 표현이기는 했지만, 학자적 관점에서 워크아웃 동의서 강요를 피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죠. 그런데 고광석 지도부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릇이 작은 거죠.”

인근 편의점에서도 조합원들의 불만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파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게 뭐냐고! 야간 근무조부터 라인 잡고 해야지. 대체 뭐하는 거야?”

술집에서 만난 조합원들도 원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확약서는 항복 문서예요. 대체 어떻게 사측이 이런 것까지 요구할 수 있는 지경이 됐는지 답답합니다. 이 집행부가 금호타이어 노조의 역사를 무너뜨리고 있어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시킨] 2003년에는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데요.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확약서는 우리가 움직이지 못하게 코를 걸어놓겠다는 겁니다. 1백93명은 조금만 잘못하면 또다시 해고 대상이 될 거예요. 절대 확약서를 써서는 안 됩니다.”

한 조합원은 노조 지도부가 ‘협상의 늪’에 걸려 있다고 꼬집었다.

“협상에 기대서 한 발을 담그면, 다른 발도 담그고 양쪽 팔도 다 담그게 마련입니다. 투쟁에서 대안을 찾지 않고 협상에만 매달리니까 대폭 양보하는 똑같은 안을 갖고 몇 시간 동안 조율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일부 조합원들은 아래로부터의 불만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현장에 불만이 높습니다. 대기발령이 떨어졌을 때, 대의원들이 노조 사무실로 가서 항의를 하고 있었어요. 집회라도 하라고. 근데 뒤를 돌아보니까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엄청 모였다는 거 아닙니까. 집행부도 놀랐겠죠.

“근데도 집행부는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조합원들 앞에 일렬로 서서 큰 소리만 칩디다. 한 간부는 ‘내가 대기발령 냈냐’며 화를 내고 말입니다.”

“양보 교섭 내용이 점점 드러나면서 조합원들도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잠정합의가 나오면 아마 부결될 것 같습니다.”

노조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희생을 수용하고 투쟁을 포기한 지금, 현장의 불만을 조직할 세력이 필요하다.

‘금호타이어정리해고철폐투쟁위원회’(이하 금해투) 소속의 전 노조위원장·임원들로 구성된 ‘현장공동대책위원회’는 어제 리플릿을 내고 “용기있게 투쟁한다면 반드시 이긴다”며 “끝까지 투쟁을 조직하자”고 파업을 선동했다.

이제 이런 말을 실천으로 조직할 때다.

지금 당장 부결 선동을 시작하고, 조합원들에게 투쟁을 호소해야 한다. 이것은 대기발령 통보를 받은 1백93명을 위해서라도, 대규모 비정규직화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회사에 성실할 의무’를 부여받게 된 1백93명은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진정으로 이들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잠정합의를 부결시키고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금해투 활동가들의 몫이 중요하다. 금해투는 지도를 자임하기를 주저하지 말고 투쟁의 중심에 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