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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반신자유주의 대안 논쟁 ③:
볼리비아의 투쟁, 연속성 그리고 모순

볼리비아 대통령 모랄레스는 코차밤바 세계민중회의에서 기후변화는 자본주의 때문이며 사회주의가 대안이라고 외쳤다. 아마 전 세계 정부 지도자 중에서 이런 말을 할 사람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도밖에 없을 것 — ‘시장사회주의’를 말하는 중국 정부의 사기꾼들은 제외 — 이다.

그러나 고작 10여 년 전만 해도 볼리비아는 IMF의 모델 국가였다. 1985년 민영화, 복지 삭감, 노동 유연화 등 재앙적 긴축 정책들을 물가 상승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한꺼번에 도입했다. 오늘날 유럽연합·IMF와 이명박이 그리스, 유럽, 한국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려는 정책들과 똑같은 정책을 말이다.

이런 ‘충격 요법’은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대재앙을 낳았다(경제가 성장하려면 빨리 긴축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은 볼리비아의 사례를 똑똑히 봐야 할 것이다).

경제 성장률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기업 도산과 민영화 과정에서 대량 해고가 발생하면서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1952년 혁명의 성과물인 소농들의 토지는 대지주의 수중으로 집중됐고 소농들은 자기 토지를 잃고 떠돌기 시작했다.

2000년대가 되면 정부 공식 통계로도 빈곤 인구가 총인구의 67퍼센트에 이르렀다. 옛 독재 정부 출신 대통령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래서 15년간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쌓인 울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 물 사유화에 반대하는 코차밤바의 ‘물 전쟁’, 2003년과 2005년 연거푸 우파 대통령을 몰아낸 투쟁까지 볼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대중 운동이 가장 급진화한 곳이었다.

코차밤바 투쟁은 2003년과 2005년에 반복될 투쟁 양상 — 거리 시위와 노동자 투쟁의 결합, 투쟁의 목표와 방향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기구의 등장 — 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볼리비아 정부가 코차밤바 주(州)의 물 공급을 벡텔 등 다국적기업에 넘긴 결과, 최저임금이 약 6만 원인 나라에서 가구당 월평균 수도요금이 1만 5천 원에 이르게 됐다.

분노한 지역 주민들, 다양한 시민단체와 조직 노동자가 힘을 모았다. 그들은 ‘물과 삶을 방어하기 위한 연합’을 결성했고, 공개 회의에서 민주적으로 투쟁 과제와 투쟁 방식을 논의하고 결정 사항을 함께 이행했다.

급진화한 주민 대중은 수도요금 인상 반대를 넘어 물자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요구했다. 그들은 주요 도로를 점거했고,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였다. 정부는 민영화 결정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민중의회

2003년 우파 정부를 몰아낸 투쟁의 직접적 원인은 볼리비아 천연가스를 미국과 멕시코에 수출한다는 정부 계획이었다. 이 과정에 석유 다국적기업들이 개입했기 때문에 사실상 천연자원 추가 민영화의 전초전이나 다름없었다.

대중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돈이 없어 가스를 사용하지도 못하는데 가스를 수출한단다. 가스를 수출한 돈은 다국적기업이 가져간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가스 수출인가?” 대중은 거리로 나섰다.

2003년 9월 19일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해 세 명이 사망했다.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고 코차밤바 ‘물 전쟁’에서 일어났던 일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수도 라파스에서는 ‘민중회의’가 열렸다. 각 지역에서 선출된 대의원 수천 명이 모여 공동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결정된 사항을 라디오를 통해 알리고 자기 지역에 돌아가 투쟁을 조직했다. 민중회의는 투쟁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볼리비아를 공정한 사회로 만드는 데 필요한 공통 요구를 작성했다. 민중회의는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 사회의 모습을 힐끗 보여 줬다.

시민들과 농민단체는 도로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화물운송 노동자들도 파업에 들어가 물류를 마비시켰다. 볼리비아 전략 산업 중 하나인 광업에서는 전투적인 볼리비아노총(COB)이 총파업을 선언했다. 모든 광물 채굴이 즉각 중단됐다.

구체제 인물인 메사는 민영화 중단, 재국유화, 복지 확대, 토지 재분배를 약속하면서 대통령에 당선했다. 메사는 “만약 내가 여러분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나를 쫓아내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메사가 약속을 어겼을 때 사람들은 그의 소원을 들어줬다.

메사 정부를 몰아낸 2005년 5~6월 투쟁은 볼리비아 민중 항쟁의 정점이었다. 민중회의가 훨씬 더 큰 규모로 등장했다. 6월 8일, 항쟁의 심장부인 엘알토에서 최초로 전국적 민중회의가 열렸다. 당시 민중회의는 사실상 대안 정부 구실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기존 국가 기구는 무기력해졌다. 평범한 사병과 말단 경찰 들은 시위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다.

이런 급진화 분위기에 힘입어 원주민 농민 운동 지도자이자 좌파 정당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의 지도자인 에보 모랄레스가 2005년 12월 볼리비아 선거 사상 최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모랄레스는 자신의 집권 동력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기층 투쟁이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운동은 MAS보다 훨씬 급진적인 좌파 조직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이 운동의 힘과 좌파들의 반자본주의적 사상을 의식했다.

그래서 2006년 5월 1일 천연가스 생산설비 재국유화, 무토지 농민을 위한 토지 개혁, 모든 농민을 상대로 노령연금 지급 등을 실행했다. 또 이번 코차밤바 세계민중회의에서 볼 수 있었듯이 원주민, 볼리비아와 남반구의 고통을 낳은 악이 바로 자본주의 그 자체임을 폭로하고 사회주의적 해결책을 주장했다.

모순

그러나 모랄레스와 MAS는 기층 운동과 좌파만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볼리비아의 기존 세력들 즉, 기업주·대지주·해외 자본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도 기존 국가 기구의 관료들을 의식한다.

이것은 MAS의 정치와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이 낳은 결과다. MAS는 선거를 통해 기존 국가 기구를 장악해 체제 내 개혁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 그래서 MAS는 개혁을 요구하는 기층 운동에 호의적이지만 이 운동이 2003년과 2005년처럼 체제를 뛰어넘으려 할 때는 거리를 뒀다.

그러나 기존 체제 내에서 국가 기구를 이용해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것은 엄청난 긴장과 모순을 낳을 수밖에 없다. 모랄레스 정부의 말과 행동 모두에서 모순을 볼 수 있다.

예컨대, 2007년 초 모랄레스는 “자본주의가 인류의 가장 큰 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직전에 부통령 가르시아 리네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수천 번이라도 강조할 것이다. 모랄레스 정부는 사유재산 … 건강한 기업 활동을 보장하며 민간의 교육·보건 분야 참여를 환영한다.”

불행히도 모랄레스 정부의 실천은 종종 전자의 발언보다는 후자에 가까웠다.

재정흑자 창출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한 결과로 복지 확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임금 인상이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제한됐다.

또, 사유재산권에 대한 도전을 뜻하는 모랄레스의 가장 급진적 정책인 자원 국유화 문제에서도 모순을 볼 수 있다. 그는 천연가스 자원을 국유화했지만 천연자원을 둘러싼 국내외 민간 기업의 합작과 투자를 고무하고 있다. 그 때문에 미국과 중국 기업뿐 아니라 한국 LG상사도 리튬 채굴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모랄레스와 MAS는 두 번의 혁명으로 창출된 유리한 세력균형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만신창이가 됐던 우익들은 천연자원이 집중 매장돼 있는 부유한 동부 ‘반(半)달’ 지역의 우파 주지사들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치권 확대를 내세워 볼리비아의 자원과 부를 독식한 기존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모랄레스를 좌절시키고 운동을 약화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컨대, 2008년 우파 청년 행동 대원들이 모랄레스 지지 농민들을 기습해 수십 명이 죽고 다쳤다.

볼리비아 노동자·민중은 우익의 도전에 끈질기게 맞서 싸웠고, 그 덕분에 지난해 12월 모랄레스는 우익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재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층 대중과 좌파는 우익에게 빌미를 준 모랄레스 정부의 모순에 때때로 불만을 표시했다.

예컨대, 올해 4월 지방선거에서 MAS는 전국 평균 51퍼센트를 득표했는데 예상보다 상당히 적은 표였다. 5월 초에는 볼리비아노총(COB)이 주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현재 볼리비아는 겉보기에는 2008년 시작된 세계적 경제 위기의 타격을 덜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높아 볼리비아산 천연자원 수입이 다시 늘고, 엄청난 유동 자금이 천연자원 투기에 몰리며 볼리비아 주요 수출물들의 가격이 빠르게 회복된 덕분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안정해 볼리비아의 모순과 갈등은 앞으로 더 첨예해질 가능성이 높다. 모랄레스의 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그리 되면 2003년이나 2005년처럼 기층 운동이 다시 새로운 수준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3년 10월과 2005년 6월 민중회의가 구성되고 노동자·농민의 힘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볼리비아 국가관료·기업주·대지주의 권력 기반 — 기존의 보수적 국가 관료 기구와 사회의 부 — 을 기층 대중이 통제하는 것으로 바꿨어야 했다. 그랬다면 민중이 요구하고 모랄레스가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던 것들을 실현하기 훨씬 더 수월한 조건이 마련됐을 것이다.

우익의 공격 앞에서 모랄레스 정부의 개혁 정책을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분출할 볼리비아의 새로운 변혁적 기층 투쟁은 2003년과 2005년에 힐끗 보여 주고 가지는 않았던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