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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그리스와 위기의 이집트 혁명

 다음은 지난 6월 23일에 있었던 국제사회주의경향(IST) 주요 단체 대변자들 사이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지금 국제 정치에서 핵심 쟁점들에 대해 의견을 나눈 이 대담이 독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녹취와 번역에는 고맙게도 다함께 회원인 박준규, 천경록이 수고해 줬다.

1. 그리스 총선 이후

파노스 가르가나스(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SEK): 6월 17일 재선거 결과로 탄생한 정부는 매우 취약하다. 5월 6일 선거와 6월 17일 선거에서 그리스 지배자들은 긴축 반대 운동에 정치적 패배를 안겨주려 했지만 실패했다. 파판드레우의 유로존 탈퇴 찬반 국민투표 제안부터 시작해 사회당과 신민주당의 연립정부까지 이어져 온 이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이번에 수립된 신민주당-사회당-민주좌파당 연립정부는 역대 최고로 허약한 정부다. 사회당은 규모도 축소됐고 분열해 있다. 한편에는 신민주당과 더 장기적 연합을 추구하는 우세한 분파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거리두기를 원하는 분파가 있다. 민주좌파당도 기존 입장에서 유턴해서 연정에 참여해, 내분에 빠졌다.

한마디로 그리스 정부는 지난 3년간 얻어맞은 펀치로 그로기 상태에 빠진 권투선수와 같다. 홀로 서 있기도 벅차 서로 기대야 하는 처지다.

신민주당이 근소한 차이로 시리자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연합과 양해각서 조건 개선 협상을 벌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로이카’는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향후 전망을 말하자면, 연립정부 참여 정당들의 위기는 심화될 것이고, 노동자들을 계속 공격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선거 직후라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노동자 운동 일반에 대해 말하자면, 상황이 좀더 유리해졌다. 저변의 급진화가 전면화됐다. 그리스 내전 이후 역사상 좌파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아졌다. 좌파 일각에서는 시리자가 우경화했다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시리자의 가장 우파적인 지도부가 선거 기간에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시리자에 투표한 수많은 사람들은 지도부보다 왼쪽에 있다.

좌파의 상황을 살펴보면, 공산당은 위기에 빠졌다. 공산당 득표는 두 차례 선거를 치르며 잇따라 하락했다. 공산당 지도부는 너무 왼쪽으로 나간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하는데, 자기 기만이다. 좌경적 선거 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종파주의가 문제였다.

한편 5월 6일 선거에서 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 연합 안타르시아에 투표했던 사람 중 다수가 6월 17일 선거에서는 시리자에 투표했다. 전술적으로 그렇게 투표한 듯하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강령을 지지하지만 보수정당 집권을 막기 위해 시리자에 투표했다. 결국 그들은 보수정당을 패퇴시키지 못해 사기 저하되기는 했지만, 일시적 현상일 것이다.

우리[안타르시아]는 훌륭한 선거 운동을 치렀다. 안타르시아 내부에서는 득표율이 저조한 것을 두고 2009년 대비 패배인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다. 그러나 득표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선거 이후 투쟁을 다시 건설할 때 우리에 대한 지지와 연대는 세력이 확대될 것이다. 이 투쟁은 안타르시아가 주도하고, 시리자에 투표했던 사람들과 함께 싸울 것이다.

[안타르시아를 주도하는] 사회주의노동자당 SEK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존재감이 높아졌고, 성장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주장을 높이 평가하게 됐다.

안 좋은 소식 한 가지는 나치가 7퍼센트나 득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항해 반격을 조직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반나치 투쟁을 벌이기 위한 상황은 좋아졌다. 이전에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게 나치의 위험을 경고했고, 다른 좌파들은 위험을 과소평가했는데, 이제는 모든 좌파들이 반나치 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어떻게 운동을 벌일지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될 것이다.

슈테판 보르노스트(독일 마르크스21): 그리스 선거 결과를 놓고 사람들의 실망이 매우 크다. 좌파 정부 집권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리자가 유로존 탈퇴를 표방하지 않은 것이 정말로 패인일까? 유로존 탈퇴가 올바른 입장이긴 하겠지만, 그것이 선거 승리를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80~90퍼센트는 유럽 지배계급의 협박 때문에 패배한 것이 아닐까?

존 몰리뉴(아일랜드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유럽 전역에서 시리자의 승리 가능성에 대한 엄청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시리자에 대한 환상과 좌파 정부에 대한 환상이 결합된 결과다.

이와 관련해 ‘노동자 정부’[편집자 주 ─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노동자 정당이 집권해서 정부를 구성하는 경우]에 대한 태도 문제를 논의해야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동지들에게 [독자 출마하지 말고 시리자를 지지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이 있었을 텐데, 환상에 빠지지 않고 행동한 것에 경의를 표한다. 이와 관련해 확인차 질문해 보자면, 안타르시아의 출마가 반드시 필요했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는가?

알렉스 켈리니코스(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노동자 정부’ 구호는 1920년대 초 코민테른에서 제기된 쟁점이기도 한데, 그런 구호가 적절한 상황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자.

시리자의 핵심 문제는 모순된 공약들이다. 한편으로는 긴축 정책을 중단시키거나 역전시키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EU와의 합의를 강조한 것은 모순이다. 스타티스 쿠벨라키스와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같은 내 [런던대학교] 동료들도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면서도 시리자에 열광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시리자의 모순된 정치를 간과하고 있다.

각국의 급진좌파들이 처한 상황은 제각각이다.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는데, 먼저 프랑스 반자본주의 신당 NPA 같은 강경 반자본주의 세력들이 있고, 디링케[독일 좌파당], 시리자 등 광범한 온건 급진좌파 세력들이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달 사이에 NPA가 사실상 붕괴하면서 강경 좌파 진영은 큰 타격을 입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시리자에 편승하는 거대한 움직임이 있다. 유럽 전체가 시리자에 열광하다시피 했다. 여기에는 심지어 개혁주의에 대한 환상이 없는 강경 좌파들도 합류했다. 브라질의 사회주의 해방당P-SoL, 호주의 제4인터내셔널 조직 후신 등이 그랬다. 그러면서 이들은 안타르시아에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스 상황을 우리가 잘 알고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독일의 크리스티네 부흐홀츠 동지[독일 좌파당 디링케의 사회주의자 국회의원]가 그리스 SEK 행사에 참가하고 그쪽 상황을 숙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잘한 일이다. 또, 각국 급진좌파가 처한 상황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각국의 급진좌파 진영에서 우리가 점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야 할 것이다.

슈테판: 시리자가 이겼다면 좌파 정부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활성화됐을 것이다. 우리는 메르켈 정부에 반대하면서 시리자 정부를 지지해야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차베스 정부를 비난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런데 디링케는 좌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커다란 환상을 갖고 있다.

몰리뉴: 시리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레닌-트로츠키와 그들 지도 하의 초기 코민테른이 추구했던 프로젝트 일체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좌파 정부의 한계부터 지적하는 것은 종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보다는 그런 정부가 직면하게 될 엄청난 경제적 공포를 감안하면 ‘좌파 정부가 제 구실을 하게 만들기 위해 치열한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 낫지 않나?

파노스: 유로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추상적인 ‘유로존 반대’ 구호가 인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추상적으로 제기할 수 없는 문제다. 사실, 사회당이 유로존에 찬성하는 “침묵하는 다수”를 거론하면서 이 문제를 추상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이것은 좌파를 공격하려는 무기였다. 2월에 전문 관료들이 주도하던 정부가 “양해각서가 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유로존을 탈퇴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운동을 협박했지만 사람들은 속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와 선거 공간은 다르다.

시리자의 패인에 대해 말하자면, 시리자를 제외한 좌파들은 모두 유로존을 반대했다. 우리와 공산당, 그리고 시리자의 중추인 시나스피스모스의 일부분도 반대했다. 만약 시리자가 유로존 반대를 내걸었다면 좌파를 모두 단결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선거 구도가 크게 달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리자는 유로 방어를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좌파들을 사실상 공격했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시리자 내의 우파가 강화됐고, 좌파 그룹들은 완전히 주변화됐다. 시나스피스모스의 지도적인 좌파 의원이 좌파적 성명을 내자 선거 운동 중에 시리자는 “우리 입장 아니다”며 그를 장래 연립정부에서 미리 배제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몰리뉴 동지의 질문에 답하자면, 안타르시아 출마는 옳았다. 이것을 판단하려면 출마함으로써 다른 좌파 대비 우리의 입지가 강화됐는지 여부를 봐야 하는데, 실제로 시리자 내의 좌파나 공산당과 비교해 우리의 입지는 향상됐다. 사람들은 우리의 주장에 동의했고, 우리가 실수했다고 보지 않는다.

좌파 정부가 집권한다면 분명 기존의 부르주아 정부와는 다르게 대해야 할 것이다. ‘다 똑같다’고 보는 종파적 입장도 물론 존재한다. 안타르시아의 공식 입장은 “정부의 행동에 따라 지지 또는 반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유럽에 중남미식 정부가 집권할 가능성에 대비해 좌파 정부에 대한 전술을 논의해 봐야 한다.

안타르시아에 쏟아진 극좌파들의 비판은 그리스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한다. 시리자를 지지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타르시아를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다. 타리크 알리가 그런 경우다.

2. 위기에 처한 이집트 혁명

알렉스: 이집트 대선의 2차 결선 결과 발표를 앞둔 시점이다. [이 인터뷰는 무르시 당선 발표 이전에 진행됐다.] 지난 열흘 동안 군부가 일종의 ‘연성 쿠데타’를 시도해 왔는데, 앞으로 더 강성 쿠데타로 전환할 위험이 크다. 군부는 한동안 무슬림형제단과의 협력을 통해 이집트를 통치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무슬림형제단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이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군부의 자신감은 혁명 운동 내부의 혼란에서 일정 부분 기인한다. 이집트 혁명 운동 진영에는 자유주의, 세속적 좌파, 이슬람주의 좌파 세력 등이 혼재해 있다. 지금까지 혁명 운동에서는 작업장보다 거리 운동이 비교적 더 중요했다. 독립노조 운동이 있긴 하지만, 소수의 노동자들만 포괄한다. 지난 2월에 ‘정치 총파업’을 호소했지만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말하자면 거리 청년들이 혁명 운동의 중심이다.

거리 청년들은 온갖 초좌파적 사상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혁명 운동은 선거에서 보이코트 전술을 구사했다. 이는 노동계급을 혁명 운동에 참여시키는 계기로 선거 운동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처사다. 예컨대 함딘 사바히는 혁명 운동과 노동조합의 요구를 훌륭히 대변하는 계급적 선거 운동을 펼쳤고, 그 결과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서 크게 선전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무슬림형제단 후보를 크게 제치기도 했다. 비록 북부와 농촌 지역에서는 득표가 저조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IST 경향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 RS는 함딘 사바히의 선거 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는 RS가 공개 활동도 많이 하고 회원 가입도 늘었지만 새로 가입한 청년들의 초좌파적 성향을 반영하는 듯하다. RS의 성명서를 보면 혼란이 존재한다. 지난해 말 의회 선거 때는 보이코트를 호소했다가, 대선 1차 투표에는 출마를 선언했고, 그러다가 다시 보이코트를 주장했다가, [결국 사바히를 지지했고 대선 2차 투표에서는] 무르시를 지지했다. 우리는 이 문제를 RS와 논의해 보려 한다. 물론 반혁명의 위협이라는 더 큰 그림도 함께 다룰 것이다.

몰리뉴: 좌파들의 비판과 논의에는 연성 이슬람 공포증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RS가 주도하는] 민주노동자당에 대한 태도와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태도가 매우 다르다. RS 동지들의 최근 활동을 보면 초좌파적 성향과 선거에 대한 환상이 결합돼 있다. 투쟁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계급의 동원이 앞으로 핵심이다.

슈테판: 지난해 독일 맑시즘에서는 “이제 아랍 혁명이 곧 유럽으로 상륙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이 무척 들떠 있었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다소 어둡다.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디링케의 태도는 디링케 내 터키 출신자들 견해의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 똑같다고 본다. 시리아 혁명에 대해서는 아랍 바트주의적 사회주의를 전복하려는 음모라고 본다.

알렉스: 두 가지 요점만 덧붙이자. 현재 CIA가 터키 국경지역에서 시리아 반군 세력 중 입맛에 맞는 세력에게 무기를 지원하려 한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리아 혁명이 포섭당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항쟁이 더 많은 도시로 확대돼 있다.

향후 이집트 정세를 예측해 보자면, 군부가 무슬림형제단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시나리오에서부터 형제단이 배신적 타협을 하는 시나리오 사이에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