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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정치 양극화 ─ 중도가 흔들린다

유럽 정치가 어지럽다. 9월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9월 24일 영국 노동당 당대표 경선에서 좌파인 제러미 코빈이 재선출됐다. 이번 경선은 노동당 우파가 코빈을 밀어내려 하는 바람에 1년 만에 다시 치러진 것이다. 그러나 코빈은 가는 곳마다 수천 명이 운집한 가운데 유세를 펼치며 압승을 거뒀다. 노동당 당원도 부쩍 늘어 이제는 55만 명이다. 1980년대 이래 최고치다. 올해에만 16만 명이 증가했다.

10월 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인종차별에 맞서자' 총회에서 연설하는 제러미 코빈. ⓒ사진 출처 〈소셜리스트워커〉

반면 해협 너머 독일에서는 우익이 성장했다. 9월 4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州), 18일 베를린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창당한 지 3년밖에 안 된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이 큰 성공을 거뒀다.

독일을위한대안당은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시작했지만 파시스트들이 주도권을 발휘해 가고 있는 정당이다. 독일을위한대안당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에서 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기독교민주연합(CDU)을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 베를린에서는 14퍼센트를 득표하며 지방의원 25석(전체 1백60석)을 확보했다. 내년에 치러지는 총선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거둘 듯하다.

주류 언론은 거의 다루지 않았지만, 베를린에서는 급진좌파인 디링케(좌파당)의 선전도 봐야 한다. 베를린에서 디링케는 15.6퍼센트를 득표해 27석을 차지했다. 베를린 동부 선거구들에서는 제1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특히 노동자와 이민자가 많이 거주하는 베를린 북부 노이쾰른 선거구에서는 득표율이 갑절 이상으로 뛰어 20퍼센트 이상을 득표했다. 물론 독일 전체를 보면 디링케보다는 독일을위한대안당의 성장이 더 두드러진다.

유럽 정치 양극화의 근저에는 심각한 세계경제 위기가 있다. 최근 벌어진 도이체방크 위기는 유럽 내 최대 경제인 독일 경제도 더는 안심할 수 없음을 보여 줬다.

경제 위기, 중도계 주류 정당의 추락, 난민 위기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에서 중도좌파나 중도우파인 주류 정당들의 지지가 서서히 침식돼 왔다. 둘 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며 노동자를 공격해 나타난 현상이다. 경제 위기 발발 이후로는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모두 긴축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그래서 중도계 주류 정당들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급진좌파와 우익이 성장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40년 동안 중도우파 국민당과 중도좌파 사회당의 득표율 합이 70~80퍼센트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5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그리스의 중도좌파 사회당은 2009년에는 단독으로 44퍼센트를 득표해 집권했지만, 이제는 5~6퍼센트 득표하는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다.

최근에는 난민 위기가 유럽 정치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유럽 난민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세계적·지역적 열강이 시리아에서 각축전을 벌이며 내전이 장기화하고 있어서다.

유럽 각국 지배자들은 공동으로는 난민 유입을 막으려 하는 동시에 서로 부담을 떠넘기려 해 갈등을 빚는다. 각국 국경에 장벽과 검문소가 설치되면서 유럽 통합 구상이 무너지고 있다.

유럽 지배자들이 난민 유입을 막으며 동원하는 이민자(특히 무슬림) 배척 이데올로기는 우익을 성장시키는 좋은 거름이 되고 있다.

다른 한편 난민과 이민자를 환영하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2015년 9월에는 유럽 전역에서 수천~수만 명에 이르는 난민 연대 시위가 일어났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은 영국 코빈의 부상에도 한몫했다.

요컨대, 과거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사회·정치 구조가 엄청난 압력을 받으며 중도가 흔들리고 있다. 유럽 정치가 각종 모순과 불안정, 급격한 전환을 보이는 가운데 6월 23일에는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됐다.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브렉시트를 “세계사적 전환”이라고 불렀다.(관련 기사: ‘브렉시트: 세계사적 전환’, 〈노동자 연대〉 179호) 그만큼 앞으로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 정치에 큰 불안정을 낳을 사건인 것이다.

우익이 양극화의 수혜를 더 많이 가져가고 있다

양극화가 표현되는 양상은 다양하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급진좌파의 성장이 더 두드러진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우익의 성장이 더 두드러진다.

영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독립당(Ukip)이라는 우익 포퓰리스트의 성장이 두드러졌지만 이제는 제러미 코빈의 부상으로 좌파 개혁주의가 부흥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전체를 보면 우익의 성장이 더 두드러진다. 우익의 주된 무기는 유럽연합 비판과 무슬림 혐오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국민전선(FN) 같은 극우파가 있다. 국민전선은 ‘유로파시즘’으로 분류된다. 유로파시즘은 파시즘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점잖은 정치인 행세를 한다. 하지만 궁극으로는 선거에서 거둔 성공을 이용해 거리 전투 조직을 만들어 노동계급을 원자화시킨다는 파시즘의 목표를 갖고 있다.

원자화

국민전선은 지난 몇 년 동안 각종 선거에서 계속 성공을 거두다가 급기야 2015년 12월 지방선거에서는 27.7퍼센트를 득표했다. 낮은 투표율을 고려해도, 전체 유권자의 7분의 1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독일에서는 독일을위한대안당이 약진하고 있다. 개혁주의자들이 대안적 모델로 여기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스웨덴민주당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당명의 파시스트 정당의 득표율이 2006년 2.9퍼센트에서 2010년 5.7퍼센트로, 2014년에는 12.9퍼센트로 증가했다.

헝가리에서는 준군사조직까지 보유한 파시스트 정당 요빅당(‘더 나은 헝가리를 위한 운동’)의 지지율이 2006년 2.7퍼센트에서 2010년 16.7퍼센트로, 2014년에는 20.2퍼센트로 껑충 뛰었다.

그리스에서는 파시스트 정당 황금새벽당이 지도적 인사들이 체포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7퍼센트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계급 투쟁의 뒷받침이 부족한 급진화

중도계 주류 정당들의 지지율 하락을 주로 우익이 메우고 있는 상황의 이면에는 유럽 노동계급 투쟁의 전진이 더디다는 약점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겪은 패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급진좌파, 특히 혁명적 좌파의 성장을 제약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물론 곳곳에서 대단한 투쟁이 벌어졌다. 2011년과 2014년 영국 공공부문 노동자 1백만 명 이상이 긴축 반대 파업을 벌였다. 올해 4~7월 프랑스 노동자들은 노동법 개악 반대 파업을 벌였다. 이런 투쟁들은 좌파 일각의 인상론적 속단과 달리 노동계급의 힘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런 투쟁들은 아직 대체로 수세적이고, 결정적으로 노동조합 관료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노조 관료의 배신 → 패배 → 현장조합원 사기 저하 → 노조 관료의 영향력 강화’라는 악순환이 아직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예외는 그리스다. 2010년 5월부터 시작된 그리스의 총파업은 30차례 이상 일어나며 정부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사회를 좌경화시켰다. 그 덕분에 시리자가 집권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노조 관료들이 유달리 투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투쟁을 꺼렸다. 반자본주의적 좌파가 뿌리 내린 교원노조의 한 지부에서부터 시작된 투쟁이 확산되며 총연맹급 대형 노조들까지 움직였다. 2010년 5월의 첫 총파업은 그 결과였다. (관련 기사: '[그리스 사회주의자가 전한다] 그리스 노조 지도자들이 특별히 더 전투적인 것은 아니다', 〈노동자 연대〉 149호)

혁명적 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모순, 불안정, 급격한 전환이 특징인 유럽 정치 위기가 계속해서 투쟁을 낳을 것 같다. 관건은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말한 악순환을 끊을 만큼 노동계급 투쟁이 전진할 수 있느냐이고 그리스 경험에서 보듯이, 중요한 것은 혁명적 좌파의 효과적 관여이다.

최근 폴란드에서는 대중 항의 물결이 일어, 낙태를 일절 금지하려는 우파 정부의 시도를 꺾었다. 이 투쟁이 성장하는 데서도 혁명가들의 기여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이처럼 혁명적 좌파가 대안이 돼 효과적으로 운동에 관여하면, 중도계 주류 정당들의 지지율 하락이 우익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지적했듯이, 유럽의 혁명적 좌파가 “이데올로기의 명료함, 정치적 응집력, 특히 독립적으로 개입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는 한국의 혁명적 좌파에게도 매우 중요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