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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 전환 제로” 결정 철회하라

9월 11일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결정 규탄 기자회견 ⓒ이미진

9월 9일 교육부가 기간제 교사와 비정규직 강사에 대해 “정규직 전환 제로”를 결정하는 가이드라인을 시도교육청에 제시했다. 4만 7000명의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과 1만여 명의 영어회화전문강사와 초등스포츠강사 등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거부한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 교·강사들이 수차례의 집회와 농성을 벌이며 정부에 촉구했지만 정부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기간제 유치원 방과후 강사와 유치원 돌봄강사 1000여 명은 무기계약 전환이 결정됐는데, 이미 돌봄 강사 대다수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온 추세에서 당연한 조처일 뿐이다.

게다가 정규직화 없이 기간제 교사를 줄여간다고 밝혀 기간제 교사들은 해고 사태가 벌어질 것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 해고 예고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안은 클 것이다.

정부는 이미 7월 20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에서 비정규직 교·강사를 ‘전환 예외’로 명시했다. 그 뒤 교육부가 이들에 대한 전환 여부를 심의하겠다고 했을 때 해당 노동자들은 한 가닥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며 당선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던 문재인은 결국 그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사드 배치 강행에 이어 문재인 스스로 자신의 대표 공약을 내던져 버린 것이다.

“형식적으로 심의위원회 결정을 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결정”(9월 11일 민주노총, 공공·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공동 성명)이었다. 정부는 “아무런 행동도 의지도 보여 주지 않”았고, “자신들의 책임을 전환심의위원회에 전가하는 무책임”(9월 11일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성명)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특히 정부는 올해 교사 선발 인원을 대폭 축소해 갈등을 더 부추겼다. 비정규직 교·강사들과 임용고사 준비생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몰고 갔다.

이 과정에서 차별과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를 해 온 비정규직 교·강사들은 ‘무자격자’ 취급까지 받는 모욕을 당했다. 노동자들이 문재인에게 ‘농락당한 기분’이라며 깊은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시금석

이번 교육부 가이드라인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와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시금석으로 여겨져 왔다.

교육기관은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온갖 형태의 비정규직이 존재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3분의 1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간 교육을 책임져 온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함으로써, 가이드라인의 제1의 원칙으로 제시한 ‘상시업무 정규직화’를 완전히 공문구로 만들었다.

교육부의 잘못된 결정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어질 다른 정부 부처들의 가이드라인에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학교 비정규직 교·강사들의 정규직화가 기존 임용 체계를 뒤흔든다며 반대한다면, 다른 공공 부문에서도 ‘특수한’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환 대상에서 배제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이미 공공기관, 지자체, 국공립 병원 등에서 계약 기간 만료자 해고 사태와 자의적인 정규직 전환 대상 배제 등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재원 투자를 회피해서는 일자리 확대와 정규직화가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라는 점도 보여 줬다. 정부 비정규직 대책이 매우 미흡한 것에는 비용 절감이라는 정부 목표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대다수 공공기관 사용자들은 비용 최소화에만 급급한 실정이라 정규직 전환 논의조차 제대로 시작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질 좋은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를 대폭 충원해야 한다. 비정규직 교·강사 전원 정규직화하고 신규 채용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학령 인구가 줄어들어 필요한 교사 수가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첫 시작부터 문재인 개혁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개혁 파트너 구실(‘협력과 견제’)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약점이 있음을 드러냈다.

사실 정부의 비정규직 가이드라인 발표 직후에도 개선이 일부 있을지라도 정규직 전환 대상과 방식, 예산 등에서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노총과 해당 산별노조들은 노정 교섭으로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려 했지만, 결국 정부는 핵심 사안들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 스스로의 투쟁이 중요하다.

교육부 발표 이후, 비정규직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비스연맹이 문재인 정부를 규탄했다.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은 ‘노정관계 전면 재고도 고려’하겠다고도 했다.

학교 비정규직 교·강사들은 정부의 결정을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는 9월 하순 파업도 예정하고 있고,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도 투쟁을 이어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런 투쟁을 엄호하고 확대할 계획과 방향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젠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 발표 전 전교조 중집이 결정한 학교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입장은 유감스럽다. 정부가 위선적인 정책을 합리화하는 데 필요한 명분을 전교조 지도부가 제공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는 전교조 중집의 무원칙한 입장에 반대하는 수정안이 발의됐고, 비록 중집의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지만 대의원 3분의 1이 이를 지지했다. 이는 전교조 좌파 활동가들이 이후 더 확고하게 비정규직과 정규직 연대를 건설해 나가야 할 과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관련 기사: ‘전교조 비정규직 교사·강사 정규직화 지지 활동평가와 과제’)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전교조 중집이 잘못된 결정을 바꾸도록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 전교조 지도부를 의식해 기간제 교사들의 요구와 투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를 꺼렸다. 현 민주노총 집행부가 강조해 온 “계급 대표성” 획득은 이런 투쟁을 지지하며 정규직과의 연대를 건설하는 것에서 구현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일부 노동운동 좌파 단체들도 내부 이견을 이유로 기간제 교사의 전원 정규직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정부에 맞서 제대로 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성취하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 원칙을 확고하게 고수하며 투쟁을 조직할 좌파의 구실과 개입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