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독일은 유럽 신자유주의의 아성인 듯 보였다. 영국이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고, 프랑스 대선에서 나치 국민전선이 2등을 하고, 권위주의적 우익이 중부 유럽에 퍼져 나가는 동안에도, 독일만은 끄떡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독일 새 정부 구성을 둘러싼 촌극으로 이러한 신화는 깨졌다. 지난 9월 독일 총선 결과는 전임 연립정부에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전임 연립정부는 기민당·기사당 보수연합(CDU-CSU)과 사민당(SPD)의 연정이었다.

이 정치 세력들은 1949년 서독이 수립된 이후로 독일을 지배했다. 그러나 9월 총선에서 이들의 득표율은 2013년의 67퍼센트에서 더욱 떨어져 53.5퍼센트에 불과했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12.6퍼센트를 득표하며 연방의회에 처음으로 입성했다.

사민당 대표 마틴 슐츠는 [연정에 참여하지 않고] 야당 구실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메르켈은 더 작은 정당들과 길고 복잡한 협상에 임해야 했다. 이들과의 협상이 모두 실패했을 때에야 메르켈은 사민당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꾀어낼 수 있었다.

마침내 지난주에 연정 구성 협상이 타결됐다. 사민당은 외교·재무·노동 등 6개 장관직을 가져가 꽤 얻어 낸 듯 보인다. 사민당은 또한 독일이 거의 10년 동안 긴축 정책과 수출 호황으로 축적한 460억 유로의 어마어마한 흑자 예산을 어떻게 지출할지에 대해서도 기민당의 양보를 얻어 냈다. 새로 출범한 대연정은 사회당의 바람 대로 연금, 교육, 사회기반시설, 고속 인터넷 등과 같은 분야에 정부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 협상 타결은 모두를 화나게 만들었다. 바이에른주(州)에 기반을 둔 기독사회당 같은 보수 우파는 [메르켈이] 사민당에 양보한 것에 분개했다. 그 전부터 우파들 중 많은 수가 선거 결과를 놓고 메르켈을 비난했는데, 메르켈이 중도에 연연하느라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오른쪽에서 파고들 공간을 열어 줬다는 것이다. 독일 전경련 회장은 “독일 경제의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에 부의 재분배에 치우쳐 있다”며 연정 합의에 항의했다.

맹비난

사민당 내부의 반발은 훨씬 격렬했다. 그다지 재능도 없으면서 분에 넘치는 직책을 맡았던 슐츠는 이미 맹비난을 받고 있었다. 사민당 청년 조직은 슐츠가 연정에 불참하고 사민당의 기반을 재건하겠다던 약속을 번복한 것을 공격했다.

지난주에 슐츠는 또 하나의 약속을 어겼는데, 그 자신은 정부에 입각하지 않겠다던 말을 뒤집고 외교부 장관을 맡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전 정부의 외교부 장관이자 전 사민당 당대표 지그마어 가브리엘은 [자신이 새 내각에서 배제된 것에] 공공연히 불평했다. “내 공직 활동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는 것을 사민당 새 지도부는 조금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쏟아지는 분노에 밀린 슐츠는 자신은 정부에 불참하겠다고 9일에 최종 선언했다. 슐츠는 앞서 당대표직에서 사임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으니, 이제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난 셈이다.

그러나 사민당은 아직 모든 고비를 넘긴 것이 아니다. 대연정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당원 총투표 결과가 3월 4일 발표될 것이다.

한편 사민당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난주 사민당 지지율은 17퍼센트까지 떨어졌다. 반면 ‘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지지율은 15퍼센트까지 올랐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보루가 영국독립당(UKIP) 류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세운 극우 정당(이 안에는 나치도 있다)보다 겨우 2퍼센트 앞섰을 뿐이라니, 끔찍한 일이다.

메르켈 자신도 압력을 받고 있다. 우익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는 메르켈이 자신의 총리직을 지키려고 “어떤 대가라도” 치를 태세라고 비난했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 편집자 쿠르트 키스터는 이렇게 논평했다. “이 정부에는 ‘단명할 정부’라고 꼬리표를 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대연정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다음 정부는 어떤 정부가 될 것인가?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독일의 정치 스펙트럼 전체를 오른쪽으로 끌어당길 것인가? 좌파당(디링케)이 저항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려면 인종차별에 원칙 있게 반대하고 이민자와 연대하는 것을 긴축 정책에 굳건하게 반대하는 것과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3월 17일 유럽 전역에서 벌어질 인종차별 반대 집회는 이 같은 대안을 보여 줄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