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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는 낙태 제약 시도 말라
여성의 온전한 낙태권 보장돼야

낙태 권리 전면 보장을 위한 2라운드 투쟁이 남아 있다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환영 집회 ⓒ제공 〈노동과세계〉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헌재 결정의 의미와 과제를 둘러싼 논의가 낙태 찬반 진영 모두에서 진행 중이다.

본지가 구체적으로 살펴봤듯이, 헌재의 결정은 현행 형법상 낙태죄의 위헌성을 원칙상 인정했다는 의의가 있지만, 낙태를 전면 허용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낙태에 대한 형사 처벌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결국 낙태 허용 범위, 처벌 여부나 기준에 대해서는 국회로 공을 넘긴 것이다.

반낙태운동 진영은 헌재 결정의 이런 한계와 공백을 파고들어, 낙태 허용 범위를 최대한 좁히려 한다. 헌재 판결 전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가톨릭교회는 헌재 결정 뒤 전열을 정비하고 반낙태 운동을 재개했다.

최근 〈가톨릭신문〉은 형법상 낙태죄 폐지안·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정의당 이정미(오틸리아), 심상정(마리아), 윤소하(암브로시오) 의원을 향해 “신자 국회의원[의] 반생명적 법안 발의”라고 비난했다.

“낙태는 살인”이라거나 낙태죄 폐지 여론을 “나부터 살고 보자는 이기적인 의식”으로 폄하하는 시대착오적 비난도 지속했다.

낙태를 최대한 제약할 세부 방안들도 거론되고 있다. 형법상 낙태죄 남겨두기, 낙태 허용 기간 최대한 축소, 낙태 허용의 ‘사회경제적’ 사유 엄격화, 상담 절차 의무화 등.

가톨릭교회 측은 낙태죄 폐지 반대가 반여성적이라는 비판을 무마하려고 임신·출산·양육에서 ‘남성책임법’의 도입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원하는 건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자유이지, 낙태를 막고 남성도 같이 책임지게 하라는 게 아니다.

낙태 제약 꼼수

최근 한국의 반낙태 세력은 미국에서 공화당이 집권한 일부 주들이 강력한 낙태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에 영감을 받은 듯하다.

물론 이 주(州)법들은 주 연방 지방법원에 제기된 무효 소송에서 이길 확률이 미미해 실행 전에 좌절될 공산이 크다. 최근 미시시피주 연방 지방법원은 주에서 통과된 ‘심장박동법’(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고 무효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법의 효력을 중단시켰다. 또한 미국과 한국의 역사와 세력관계가 달라, 한국 우파들이 미국의 사례를 한국에 고스란히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반낙태 세력은 미국 반낙태 운동의 논리를 차용하고 그 전술 중 일부를 한국에 적용하려 들 것이다. 가령 ‘심장박동법’은 한국의 반낙태론자들이 낙태 허용 범위를 좁히는 근거의 하나로 쓰일 수 있다.

따라서 낙태권 운동이 낙태 반대 세력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태아의 생명권 논리를 절충하지 말아야 한다. 임신 몇 주든 “태아의 권리”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태아는 산모에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여성 신체의 일부이므로 독립된 인간일 수 없다. 원치 않는 출산이 여성의 삶 전반에 미칠 영향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

가톨릭교회 등 반낙태 세력은 헌재가 정한 법 개정 시한인 내년 말까지 교회 조직과 기성체제 내의 연결망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거리 캠페인도 하며 낙태를 최대한 제약하려는 압력을 키워 갈 것이다.

특히 주류 정당들에는 이에 동조할 자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은 낙태죄 폐지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는 우익 기독교 정치인이다.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낙태죄 폐지에 부정적이거나 교회의 압력을 받을 정치인들이 많다. 문재인도 낙태죄 폐지 입장 표명을 꺼려 왔고, 이 정부 하에서도 낙태 시술에 대한 처벌 강화 시도가 있었다.

또한 최근 몇 년 간 낙태죄 폐지 여론이 크게 일어났지만, 정의당을 제외하고 민주당 내 어떤 의원도 낙태죄 폐지안 발의를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내년 4월 총선 때까지는 낙태 찬반 진영 양측의 눈치를 보며 낙태법 개정에 나서려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의 태도를 볼 때, 법안을 내더라도 낙태를 제약하는 법안이 되기 쉽다. 형법상 낙태죄를 삭제하지 않고 일부 개정만 하려 들 수도 있다.

진보진영 내 낙태권 논의

한편 가장 먼저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은 그 안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낙태권 운동 내에서 제기되자 여러 의견을 청취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 신념과의 충돌 문제로 “굉장히 많은 고뇌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본인의 안이 낙태 찬반 양측의 비판을 받았으나, 입법 공백으로 인해 고통 받을 여성들을 위해 서둘러 법안을 발의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정미 대표가 가톨릭교회의 비난에도 형법상 낙태죄 폐지안 발의에 나선 것은 옳다. 또한 이정미 대표의 모자모건법 개정안은 낙태의 대부분을 금지한 현행법보다는 더 낫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반대를 의식했는지 여성의 낙태권 제약을 남긴 것은 상당히 아쉽다.

임신 14~22주의 낙태일 경우 사회경제적 허용 사유를 두고 그 구체적 내용을 대통령령이 정하게 한 것, 허용 범위 밖의 낙태에 대한 과태료 처벌 조항을 남긴 것이 대표적이다. 노동계급과 빈곤층 여성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낙태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보험 적용이나 낙태약(미프진) 도입이 빠진 것도 아쉬운 점이다.

이처럼 기간과 사유의 제한을 두게 되면 그 조건의 충족 여부를 국가나 의사가 판단하게 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온전히 보장되기 어렵다. 또한 의사에 대한 징역형이 아닌 과태료 부과도 낙태를 위축시키긴 마찬가지다.

낙태권 운동의 오랜 요구처럼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므로 “처벌도 허락도 필요 없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이 정신에 걸맞게 법안을 재고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길 바란다.

한편 낙태권 운동 일각에서는 사유 제한에는 부정적이면서도, 여성의 건강 상 위험을 고려해 기간의 제약은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물론 후기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전문의에게 건강 상 위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정권은 여성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오죽 절박하고 불가피하면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큰 후기 낙태를 선택하겠는가.

또한 이 경우 의사에 대한 과태료 부과나 건강보험 미적용 등의 불이익을 주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것도 여성의 낙태권을 제약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지지하기 어렵다.

향후 반낙태 세력의 압박과 로비, 자유한국당·민주당 같은 친자본주의 정당들이 주도하는 국회 내 세력관계 등을 고려하면, 낙태권 운동은 국회에 기대지 말고 아래로부터 운동에 중심을 둬야 한다.

또한 낙태를 제약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경계하고, ‘태아 생명권’ 논리 등 이데올로기적 공세에도 단호히 맞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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