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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약을 무상 도입하고 낙태권을 보장하라

최근 먹는 낙태약(미프진)의 국내 도입과 합법화를 둘러싼 관심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올해 3월 초, 국내 제약회사인 현대약품이 영국의 낙태약 제약사와 공급 계약을 맺고, 곧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 시판을 위한 사전 검토에 돌입했다.

낙태약은 마취와 수술이 필요 없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복용 방법을 준수하면 집에서 안전하게 자가 낙태도 가능하다.

세계적으로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돼 현재 70여 개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에 미프진을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고, 임신 초기(임신 10~12주 이내)에 이 약물을 사용한 낙태가 가장 안전한 낙태 방법이라고 공인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렇게 유용한 낙태약을 금지해 왔다. 그래서 국내에서 여성들은 음성적 방법으로만 구매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높은 비용을 감내해야 하고 올바른 복용 안내를 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가짜 낙태약으로 인한 피해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낙태약이 하루 빨리 도입되기를 바라고 있다.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가 바람직하게도 이런 염원을 반영해 “조속한 미프진 도입”과 “보건소 미프진 비치”를 공약했다.

낙태 대부분이 임신 초기에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낙태약 합법화는 여성들의 낙태 부담을 크게 줄여줄 수 있다. 낙태약을 조속히 도입할 뿐 아니라, 의료보험을 적용해 무상 공급해야 한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3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기자회견에서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과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진

안전하고 효과적인 낙태약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약이 심각한 부작용과 합병증을 유발한다며 도입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당수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약 도입은 찬성하면서도 낙태약의 부작용을 강조하고 근거도 없이 낙태 성공율이 낮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낙태약이 위험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다수의 해외 연구 결과를 보면, “약물 낙태든 수술 낙태든 응급실 방문이 필요할 정도의 합병증의 발생 비율은 1퍼센트 미만”이다. “과다출혈이나 불완전낙태로 추가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1~2퍼센트에 불과”하다.[1]

약물 방식의 낙태는 매우 안전하고 수술 방식보다 더 간편해서 영국, 프랑스 등 일부 유럽 나라에서는 약물 낙태 비율이 약 60~7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이다.

낙태약의 성공률도 높은데, 임신 초기일수록 더 효과적이다. 임신 8주 이내 낙태 성공률은 98퍼센트 이상이고, 9~10주 사이에도 93퍼센트 이상이다.

영국 왕립산부인과협회는 낙태약을 임신 24주 이하에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WHO도 임신 24주 전까지 각 시기에 따라 적절한 용량과 복용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한편, 낙태약이 합법화되면 “낙태약 오남용”으로 “무분별한 낙태”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은 황당한 궤변이다. 대다수 여성들은 낙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건강과 미래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한다.

몇몇 산부인과 의사 단체들은 “낙태약 오남용” 방지를 위해 ‘반드시 전문의가 처방 조제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보건복지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의사들의 이권을 우선시하는 발상일 뿐, 설득력은 없다.

WHO는 낙태약 사용법이 간단해 의사 외에도 사용 방법을 숙지한 간호사‧약사‧상담사 등을 통한 처방을 권장하고 있다. 의사 처방으로 한정하면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의사 진료는 선택의 문제이지 의무화할 필요가 없다.

최근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와 같은 나라들에서는 코로나19로 병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많은 여성들을 고려해 클리닉 방문 없이 비대면으로 낙태약을 처방하고 있다.

이렇게 낙태약은 위험하기는커녕 안전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물론 낙태약은 한계가 있다. 여성에게 특정 질병이 있거나 중‧후기 낙태인 경우에는 수술적 방법이 필요하다. 따라서 낙태약의 조속한 합법화와 함께, 기간과 사유 제한 없이 낙태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또한 약물 낙태를 포함한 모든 낙태 방법에 의료보험을 적용해 무상으로 제공하고, 직장 여성들에게는 유급 낙태 휴가도 보장해야 한다.

수수방관 문재인 정부

낙태 권리 보장과 낙태약 도입에 대한 여성 대중의 염원이 크지만, 문재인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 문재인 정부는 낙태죄를 유지하며 제한적으로만 낙태를 허용하는 기만적인 (낙태 관련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이는 낙태죄 폐지를 염원해 온 여성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고, 여성운동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올해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진보층과 보수층 양쪽의 눈치를 보며 연말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올해부터 낙태죄 효력이 상실돼 낙태죄에 따른 처벌은 사라졌지만, 낙태가 합법화되지도 않았다. 정부의 방치 속에서 병원들은 낙태를 선별해서 하고 있고 그 기준도 제각각이다. 여성들은 여전히 비싼 비용 부담을 지고 있고, 병원의 낙태 거부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가짜 낙태약을 먹고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일이 벌어져도 속수무책이다.

올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 부패 등으로 위기가 심화하면서 우파가 반사이익을 얻으며 성장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층과 보수층 모두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와 민주당은 낙태 관련 입법 공백 상태를 계속 방치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간혹 기대감을 주는 발언을 흘리기도 한다.

최근 식약처가 현대약품의 낙태약 허가 여부 “신속 검토”를 언급하자, 일각에서는 낙태약 도입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듯하다.

하지만 집권 내내 행보를 돌아보면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거는 것은 부질없고 해롭다. 정부는 결함 많은 개정안을 내놓은 뒤 이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입법을 미뤄 놓고, 이제 와서 ‘대체 입법’이 없어서 낙태약을 도입할 수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대체 입법이 없어도 낙태약 도입은 가능하다. 게다가 정부가 제대로 된 대체 입법을 추진하지도 않고 이런 변명을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문재인과 민주당도 지배계급의 일부로서 출산율을 높이는 데 이해관계가 있고, 공식 정치에서 우파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을 의식해 낙태 문제에서 더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할 가능성이 크다. 낙태약 허가에서도 ‘안전성 검증’과 ‘각계 의견 수렴’ 운운하며 시간을 끌 수 있다. 낙태약을 도입해도 접근성을 떨어뜨릴 불필요한 규제를 넣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낙태약의 신속한 도입과 무상 공급, 여성의 낙태권 보장을 위해서는 우파 세력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도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낙태 반대론자들과 그에 타협하는 주장을 반박하며 여성의 낙태권을 일관되게 옹호해 나가자.


[1] 윤정원, 2017, ‘유산유도제 미페프리스톤의 도입 – 외국 사례로 본 건강권으로서의 함의’, 《의료와 사회》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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