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난민의 날:
루렌도 가족 사연이 널리 알려지고 연대가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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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난민 루렌도 가족의 공항 구금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그러나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집을 떠나고, 난민들은 각국의 국경 장벽 세우기로 고통받고 있다.
한국의 난민 인권 역시 참담한 수준이다. 한국에 온 난민들은 보호는커녕 한국땅 한번 제대로 밟아 보지 못한 채 문전박대 당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다.
6개월째 인천공항에 갇혀 있는 앙골라 출신 난민 루렌도 가족의 처지는 한국 정부가 난민들에게 얼마나 매정한지를 보여 준다.
난민과함께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인천공항에서 ‘세계 난민의 날에 외친다 — 인천공항 구금 벌써 6개월째, 난민 루렌도 가족에게 자유를!’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월부터 루렌도 가족의 입국 허가를 요구하며 캠페인을 벌여 온 난민과함께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과 루렌도 가족에 연대해 온 시민들은 두 계절이 지나도록 같은 곳에서 같은 요구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참담함과 분노를 느꼈다.
루렌도 가족에 적극 연대해 온 한국디아코니아 홍주민 목사는 “1월 설 전날 점퍼를 전해 주기 위해 인천공항에 왔는데, 그때 오늘의 이 상항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루렌도 가족이 175일간 24시간 백색 불빛 안 밀페된 공간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법관들이 악인을 위해서 재판을 하거나 불의한 재판을 하면 땅의 지반이 꺼진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철회 소송에서의 루렌도 가족 패소 결정을 강력히 규탄했다. 또 “한국이 과연 포용국가가 될 수 있는가?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중당 이상규 상임대표도 참석했다.
이상규 상임대표는 “특정 지역, 특정 시대의 제도 때문에 인간의 권리가 제한돼서는 안 된다”며 “전 세계 평화와 인간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는 수많은 분들과 함께 공항에서 난민에 대한 권리 제약이 없도록 실천해 나가겠다”며 연대를 표했다.
반년 넘는 공항의 노숙 생활은 특히 루렌도·바체테 부부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가혹하다.
기자회견 사회를 본 노동자연대 김지윤 활동가는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협약국임에도 사실상의 아동학대를 자행하고 있다” 하고 규탄했다. 참가자들은 난민 아동 인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루렌도 가족에 열성적으로 연대해 오며 아이들에게 ‘엉클레’(삼촌)이라고 불리는 두리미디어 최윤도 편집장도 발언했다.
“10살 미만의 네 아이는 저마다 꿈이 있다. 그 이유를 물으면 하나같이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말하는 아이들의 눈이 밝게 빛났다.
“지난 1심 재판에서 법무부 측은 ‘우리는 진짜 난민을 돕기 위해 가짜 난민을 가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 인정률이 3.7퍼센트라는] 법무부의 주장대로라면 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대다수 난민이 모두 가짜 난민이라는 얘기인가.”
국제 연대
고무적이게도 루렌도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한국을 넘어 일본과 호주에서도 연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 NHK 기자인 자유 기고가가 이날 기자회견을 취재했다. 이 기자는 최근에 루렌도 가족의 상황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 기사가 일본의 유명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링크되며 루렌도 가족의 사연이 일본에도 많이 알려졌다. ‘savelulendo(루렌도 가족을 구하자)’ 인증샷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호주 멜버른의 난민 연대 단체 ‘the Refugee Action Colletive’도 연대메시지를 보내 국제적 연대를 호소했다.
“서울에서 시드니까지 국가가 허가한 잔혹한 행위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이를 뒤집고, 새로운 세상, 비자와 난민 수용소가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난민들이 집에서 납치당하지 않고, 인천이 앙골라인 가족이 겪는 것처럼 공항에 구금되지도 않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the Refugee Action Colletive’는 멜버른에서 열리는 세계 난민의 날 행사에서도 루렌도 가족의 상황을 공유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는 난민인권네트워크 주최로 공항 내에서 벌어지는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기자회견에서는 루렌도 가족을 비롯해 인천공항 난민들에게 가해지는 추악한 인권 침해의 실태가 낱낱이 폭로됐다.
난민인권네트워크는 지난해 출입국항에서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은 난민 대다수가 강제로 출국됐고, 그 과정에서 난민들이 곤봉 등으로 폭행을 당하고 수갑·족쇄 등의 계구가 채워졌다고 전했다. 또한 공항에 방치된 난민들은 숙식이나 건강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극한의 생존 상황에 놓여 있다고 고발했다.
난민들이 겪는 끔찍한 처우는 “포용”을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민낯을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난민 신청의 문턱을 높일 난민법 개악을 추진하려 한다. 얼마 전에는 체류연장 수수료를 인상하고 난민의 건설업 취업을 금지하는 조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갑기 짝이 없는 정부와 달리, 루렌도 가족 등 공항 난민들에게 진보 정당과 해외 난민단체, 개인들의 연대가 더해지고 있다. 세계 난민의 날, 루렌도 가족의 사연은 국내 라디오, TV, 인터넷·종이 신문 등에 상당히 많이 보도됐다. 루렌도 가족과 구금 난민 모두가 하루빨리 자유를 찾아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연대가 더 커져야 한다.
[기자회견문]
세계 난민의 날에 외친다
인천공항 구금 벌써 6개월째 ― 난민 루렌도 가족에게 자유를!
6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안타깝게도 전쟁, 박해 등으로 인한 강제 실향민을 포함해 전 세계에 무려 6850만 명이 난민으로 살고 있다(유엔난민기구 2017년 연례보고서).
부끄럽게도 한국도 난민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유엔난민협약 가입국이지만 난민 인정률은 3.5%에 불과하다(세계 평균 인정률 29.9%). 이것은 OECD 가입 37개국 중 35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인도적 체류’까지 더한 난민보호율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심지어 많은 난민들은 한국땅 한 번 제대로 밟지 못한 채 문전박대 당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다. 인천공항 내에서는 일상적으로 난민 억류·구금·강제 송환이 벌어지고 있다. 공항이 난민들에게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되고 있는 셈이다.
공항에 구금된 난민들의 삶은 한국 정부의 난민 정책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앙골라 출신 난민 루렌도 가족은 지난해 12월 28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지만 벌써 6개월째 공항 터미널에 갇혀 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루렌도 가족은 장시간 비행으로 고단했지만 이제는 차별과 박해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희망을 품고 새로운 삶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1월 9일 한국 정부는 루렌도 씨 가족에 대한 난민인정회부 심사에서 불회부 판정을 내려 난민 심사를 받을 권리 자체를 박탈하고 입국을 불허했다. 여권을 빼앗았고, 강제 송환 시도도 있었다.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루렌도 씨 가족에게 “명백히 이유 없는 난민 신청”이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이것은 앙골라에서 벌어지는 콩고 출신자들에 대한 광범한 차별과 박해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이다.
두 국가는 분쟁으로 오랫동안 얽혀 서로 간 뿌리 깊은 불신과 빈곤에 시달려 왔고, 이것은 때로 무자비한 살육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말 앙골라 정부는 매우 폭력적으로 콩고 이주민들을 강제 추방했다. 세계적 인권 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는 2018년 10월 앙골라에서 40만 명이 넘는 콩고 이주민을 추방됐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콩고 출신들이 죽거나 다쳤다. 정부 주도로 벌어지는 이주민 차별이 사회 전체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칠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루렌도 씨는 앙골라 국적자임에도 콩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몰던 택시가 경찰차와 부딪혔다는 이유로 영장도 없이 특수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당했고 그 사이 아내 바체테 씨는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통역과 조서 작성 시간을 포함해 고작 2시간 남짓 동안 이뤄진 난민인정심사 회부 심사에서 이런 절박한 사정이 모두 헤아려질 수 있었을까? 일가족의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를 결정한 문서에는 담당기관의 직인조차 제대로 찍혀있지 않았다. 법원이 루렌도 가족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지만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끝까지 불응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4월 25일 인천지방법원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이 문제 없다고 판결했다. 난민 심사만이라도 받게 해달라는 간청을 비정하게 외면한 것이다.
앙골라로 돌아가면 목숨이 위태롭기에 루렌도 가족은 인천공항 탑승구역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 왔다. 그러나 오랜 노숙 생활은 그들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 가족들은 밤새 불이 켜진 공항에서 가림막 하나 없이 잠을 청하고 있다. 가족들은 돈을 아끼려고 하루에 고작 두 끼만을 먹는데, 그마저도 신선하고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하기가 어렵다. 공항 이용객들의 시선과 사진 촬영도 가족에겐 큰 스트레스다. 무엇보다 불확실한 앞날이 심리적 불안을 키우고 있다.
지금 루렌도·바체테 부부의 건강 상태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지속적인 진료와 치료, 안정이 필요하다. 10살도 채 되지 않은 네 자녀는 충분한 영양과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임에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반년째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이지만 아동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난민을 인간으로 대우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루렌도 가족의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호주에서도 연대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난민들이 절망 끝에 스스로 떠나기만을 바라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의 “포용”은 난민에게는 예외인가?
난민도 인간이다. 루렌도 가족과 구금 난민 모두가 하루빨리 자유를 찾아 우리 곁에서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루렌도 가족에게 자유를! 공항 구금 난민들에게 자유를!
2019년 6월 20일
난민과함께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