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태평양 전략 협력, 방위비분담금 인상 등:
문재인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 지원을 강화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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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럼프 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라고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타협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안보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은 제국주의 세계 질서의 꼭대기 자리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세계 곳곳에서 제기된 도전들에 일일이 대처하는 데서 갈수록 역량의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그래서 전임 오바마 정부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정부도 일본을 중심으로 역내 동맹 관계를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해 왔다. 그리고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서 일본·호주·인도 등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 역내 동맹국들을 이에 편입시키려 한다. 그 과정에서 동맹국들에게 더 많이 “기여”하라고 압박한다.
남중국해
집권 초만 해도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다분히 중국 등을 의식한 것일 테다.
그러나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은 미국의 전략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간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다.
11월 2일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는 차관보급 협의로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간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설명서를 내놓았다. 대부분이 경제 협력 방안이지만, 거기에도 중국 견제를 위한 코드는 있다. 예컨대 인도·태평양 국가들의 5세대 이동통신(5G) 도입 지원에 관한 논의는 미국이 중국 기업 화웨이를 견제하는 것과 관련 있다.
11월 6일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 키이스 크라크는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중국을 경제 영역에서 견제할 “글로벌 신뢰 네트워크”에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화웨이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화웨이를 삼성 등 다른 기업으로 대신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더한층 협력하라고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많은 데서 타협할 공산이 크다. 11월 4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문재인은 “남중국해가 비군사화되고, 자유로운 항행과 상공비행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화’를 비난하고 이를 견제하고자 펼쳐 온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지지하는 발언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한반도를 벗어나 남중국해와 호르무즈해협 등지의 안보에 한국이 기여하라고 — 파병, 재정 지원, 군사시설 제공 등 —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최근 미국은 ‘한미동맹 위기관리 각서’에 ‘한반도 유사시’뿐 아니라 ‘미국 유사시’도 포함하자고 한국에 제안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이 제안이 주로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훗날 대만해협·남중국해 등지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게 되면, 이를 “미국 유사시”로 간주한 “미국은 주한미군의 군사 자산을 투입하거나 한국을 증원 전력의 중간 기지로 이용하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중 간의 무력 충돌에 한국이 휘말릴 위험이 커진다.”
방위비분담금 5배로 인상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주한미군 지원금) 인상은 최근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 강력하게 내미는 요구 중 하나다. 이미 한국은 매년 1조 원 넘는 지원금을 미국에 주고 있다. 이 밖에 기지사용료 면제, 공과금 및 세금 면제 등을 합치면 전체 지원 규모는 공식 지원금보다 몇 배 더 많다. 그런데도 트럼프 정부는 주한미군 지원금을 5배로 인상해 매년 50억 달러가량을 내라고 촉구한다. 거기에는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전략자산 전개 비용, 연합훈련 비용뿐 아니라 심지어 호르무즈해협을 비롯한 한반도 바깥의 미군 활동 지원도 포함돼 있다. 미국 군대가 수행하는 인도·태평양 전체의 안전 보장 활동으로 한국이 수혜를 입는 만큼 돈을 내라는 식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려고 한국에 주둔하는 게 아니다. 미국은 자국의 패권을 위해 주한미군을 배치했다. 중국과 아주 가까운 평택에 주한미군이 밀집돼 있다는 점은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민중공동행동 등의 주장대로 방위비분담금 같은 미군 지원금은 즉각 폐지돼야 한다.
그러나 자국의 패권 유지 비용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미국의 생떼에 문재인 정부는 타협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요구 수준이 너무 터무니없어 주한미군 지원금 인상 폭을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하는 데에 관심이 있지, 인상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정부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언급한 것은 부적절했다.
11월 23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공식 종료를 앞두고 미국은 협정 연장을 한국에 집요하게 촉구하고 있다. 지소미아 같은 한·일 군사 협력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서 매우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사 문제가 계기가 된 한일 갈등에서 사실상 일본을 두둔한 미국이 지소미아 문제에서도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한일 갈등에서 해법을 찾을 때까지 일단 지소미아 협정 자체는 유지하자는 대안을 한·일 양국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여름 한일 갈등이 불거졌을 때, 주요 진보 단체와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항일’ 노선을 지지했고 이에 사실상 협력했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촉구 속에 일본과의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지소미아에 대한 태도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근 국방장관 정경두, 국정원장 서훈 등이 잇달아 지소미아 연장을 시사하는 말을 꺼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 내에서 지소미아 유지 의견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설사 이번에 지소미아가 공식 종료되더라도, 향후 재추진될 공산이 있는 것이다.
부메랑
정욱식 대표는 미국이 한국에 앞으로 제시할 요구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사드 정식 배치(현재는 임시 배치 상태다), 신형 전술핵 한국 재배치, 미국의 중단거리 지대지 미사일 한국 배치 등등.
미국 제국주의 지원 확대는 한반도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안 그래도 제국주의적 경쟁으로 불안정이 점증하는 아시아에서 그 불안정을 더 악화하는 조처이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이 한국의 첨단무기 도입, 한미연합훈련 등에 대해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은 시사적이다.
진보진영 일각은 문재인 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 협력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사이에서 모순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를 평화 쪽으로 견인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제국주의 체제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는 한국 지배계급의 정치세력이며, 그 이해관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잘 관철하려 애쓴다. 문재인 정부는 아시아 지역의 경제 통합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많이 의식하게 됐으나, 여전히 한미동맹 노선 자체는 굳건하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스스로도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자 우리 안보의 핵심 이익”이라고 규정했다. 한미동맹을 통해 국제 질서에서 한국 국가의 지위를 높이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즉,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끌려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국익(한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능동적으로 제국주의에 협력한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따라서 진보·좌파는 문재인 정부의 친제국주의 정책을 반대해야 한다. 정부와는 독립적으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반대, 지소미아 파기 등을 요구하고 반제국주의 운동 건설을 도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