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
상대적으로 약화된 미국의 처지를 반영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은 동맹국들에 힘도 더 쓸 뿐만 아니라 돈도 더 내라고 촉구해 왔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후,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구축·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국제 질서가 미국 자본의 이윤 획득과 미국 국가의 패권에 유리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일에는 언제나 부담이 따랐다. 예컨대, 냉전 초기 미국은 소련에 맞서 서유럽에 대한 지도력을 강화하려고 마셜플랜, 나토 창설, 미군 기지 건설 등 엄청난 물자를 유럽에 투여해야 했다.
또 미국은 다른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에 어느 정도 이익을 보장해 줘야 했다. 미국은 일본과 독일 같은 나라들에 자국의 시장을 개방해 줬다. 한국 기업들도 미국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보장받았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장기 호황 속에 미국이 압도적 경제력을 갖춘 상황에서는 이는 감수할 만한 비용이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상대적 지위가 그때에 비해 하락하면서 기존에 미국이 해오던 방식은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에 이르자 미국은 이른바 쌍둥이 적자(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다른 동맹국들에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분담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국이 보기에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냉전기 동안 경제적으로 훌쩍 성장했으므로 비용 분담은 마땅한 것이었다.
1차 걸프전에서 미국은 전과 달리, 주요 동맹국들에게 군대도 보내고 비용도 내라고 압박했다.
미국 의회는 ‘1989 회계연도 국방부 지출법’에 “나토, 일본, 한국을 포함한 미국 동맹국들의 방위비가 [미국의 방위비와 비교해] 균형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한국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시작한 것도 바로 1991년이다.
그런데 미국의 처지는 지난 30년간 갈수록 악화해 왔다.
수천조 원을 쏟아부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실패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에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미국의 위신은 전보다 더 떨어졌다.
트럼프가 한국에게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요구하고, 다른 동맹국들에게도 비용 부담 압박을 거세게 하는 데는 이런 맥락이 있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뒷받침하는 데 나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