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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증에도 계급이 문제다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사태에서도 사회의 최하층과 노동계급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대구 한마음아파트 집단 감염 사례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와 친문재인 언론은 ‘신천지 집단 거주’니 ‘장악’이니 하며 이들에게 괴기함과 음산함의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1985년에 지어져 엘리베이터도 없는 이 5층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청년 여성 노동자들이다. 대구시는 대구 소재 기업에 취직한 35세 미만 여성들을 대상으로 아파트를 임대해 줬다.

열악한 시설 탓에 임대료가 월 2만 원 남짓하게 저렴한데도 이 아파트는 세대를 다 채우지 못했다. 이런 아파트에 입주하는 데에는 계획이나 ‘특혜’ 같은 것이 필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저소득 노동자라는 게 가장 중요한 입주 조건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조건에 있는 청년 노동자들이 모여 살고 같은 교회에 다니며 교류하는 것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호들갑과 달리,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신천지 교회 신자 중 절반 이상은 코로나19 확진 검사에서 음성으로 나타났다. 140명 중 46명이 확진받았다고 아파트를 집단 격리시킨 것은 대구시가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청년 노동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잘 보여 준다. 여기가 수성구의 고급 아파트여도 그랬을까?

코로나19의 놀라운 감염력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여러 나라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노인, 환자 등)이 더 잘 감염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이 청년 노동자들의 종교가 아니라 평소 건강 상태다.

마스크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시민들 ⓒ조승진

청도대남병원은 좀 더 극단적인 사례다. 한 방에 환자 6~8명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을 함께 지내야 했다. 이들은 얇은 데다 키보다 짧아 발이 삐져나오는 매트를 수십 센티미터 간격으로 바닥에 깔고 지냈다.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아 보였다. 극빈층이거나 연고자도 없다. 이 병원에 ‘수용’돼 있던 환자들이 처음 어떻게 감염됐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전원 감염된 이유는 아무도 조사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이 병원에서만 사망자가 7명이나 나왔다.

대구·경북 지역의 여러 요양기관들에서 집단 발병 사례가 보고된 것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한마음아파트

계급에 따라 수명과 암 발병률 등에 차이가 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 사이에 전염되는 감염병은 그 차이가 더욱 확연해, 평소에 은폐돼 온 계급 격차를 날카롭게 드러내곤 한다. 영양과 위생, 노동시간과 공간 등 노동조건, 휴식 등이 감염 확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들 중 일부는 단순히 소득 수준과 연관돼 있다. 예컨대 평소 영양 상태가 좋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등 면역력을 유지해 온 사람이라면 바이러스에 노출돼도 감염을 면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좀 전까지 감염성 질병을 앓은 사람은 면역력이 소진돼, 충분히 회복되기 전에 새로운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감염되기가 훨씬 쉽다.

충분한 개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과 좁아터진 집에 한 가족이 모여 살아야 하는 경우도 확연히 다르다. 병실이 없어 집에서 대기하다가 죽은 환자들의 사연이 수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리지만 이재용 같은 자들에게 ‘자가 격리’가 무슨 문제겠는가.

퇴근길 지하철 ‘사회적 거리 두기’는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승진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대도시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란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연일 방송에서 읊조리는 코로나19 대응 지침을 들을 때마다 특별히 울화통이 치미는 대목이다. 정부는 마스크 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안 써도 된다’고 말을 바꿨지만, 출퇴근과 근무 시간에 ‘열린 공간’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얘기하는’ 노동자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조처들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정부가 기업들에 휴업을 명령하고, 노동자들이 소득 감소 등의 걱정 없이 쉴 수 있게 해야 한다.

현대 도시에서 위생 문제는 확실히 소득과 큰 연관이 있다. 거주 환경뿐 아니라 개인 위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말만 나와도 지겨운 마스크 문제만 봐도 그렇다. 부유층이 마스크와 손세정제 부족으로 걱정하겠는가.

병에 걸릴 가능성뿐 아니라 진단과 치료에서도 소득 격차는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특히, 보건의료 서비스가 민영화돼 있는 경우 이는 끔찍한 상황을 낳곤 한다. 미국 마이애미에 사는 한 청년이 중국 방문 뒤 독감 증상을 호소하며 코로나19 확진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 판정과 함께 3270달러(약 400만 원)의 고지서를 받은 사례가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현재 사망자에 비해 확진자가 매우 적은 이유다. 미국 내 여러 주정부도 이를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소수의 확진자가 나왔을 때부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소득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마르크스가 말한 소외)도 노동계급을 감염병에 취약하게 만드는 중요 요인이다.

통제

일터에 확진자가 생겨도 기업주들은 하루이틀 소독을 한 뒤 다시 공장과 사무실을 가동시킨다. 위생이나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노동 환경 때문에 어떤 노동자들은 2미터 간격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고, 어떤 노동자들은 주변에 도움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립돼 일한다. 마스크를 쓴 채 평소 작업속도대로 일하다가는 정말로 심각한 호흡장애를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즉시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당장은 소득 감소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불안 때문에 노동자들은 증상이 나타나도 무시하기 쉽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인 ‘37.5도 이상의 발열’은 많은 노동자들이 약국에서 약 하나 사 먹고 출근하는 수준의 증상이다. 전문가들이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을 경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발표를 보면, 미국의 식당 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구토나 설사 등 소화기 감염병 증상이 있어도 출근한다고 답했다.

일단 감염병이 확산되면 병원 노동자들과 공무원은 평소보다 더 격심한 스트레스와 노동강도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려면 사전에 충분한 인력이 고용돼 있어야 하는데, 경제 위기 탓에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인건비를 줄이는 데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인력뿐 아니라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각종 보호구도 코로나19 사태로 부족해져 이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굼뜨고 무능한 데다 기업주들의 이윤 감소를 걱정해 필요한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래 놓고는 얼마 전 경사노위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국민적 협조를 요청했다. 집회나 시위, 노동쟁의 등을 자제하라는 것이다. 문중원 열사 추모 천막을 강제로 철거한 직후의 일이다.

이는 정부가 어느 계급의 편에 서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노동자들은 여론의 압력에 위축되지 말고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서울대병원은 병원 노동자들에게 보호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