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훨씬 심각해진 세계경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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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는 ‘잔인한 4월’을 맞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감염자와 사망자 외에도 이동 통제, 외출자제명령, 자가격리 등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17억 명이다. 그리고 사우디와 러시아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유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거대하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지난주 신규 실업급여 청구가 330만 건을 기록했다. 이것은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1982년 9월의 신규 실업급여 신청 건수(67만 건)보다 4배가량 많은 수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절정기에도 66만 건에 그쳤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는 올해 6월까지 미국 내 일자리 1400만 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실업률이 30퍼센트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1929년 대공황 때도 실업률은 25퍼센트였다.
코로나19의 발병지이자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실물경제는 거의 붕괴 수준인 듯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0년 1~2월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5퍼센트 감소했다. 산업생산이 위축된 것은 1990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중국의 3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를 52라고 발표하고, 3월 중소제조업의 경기를 반영하는 차이신 지수 역시 50.1을 기록하자, 경제가 V자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V자 반등을 기대하긴 이르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아직도 중소 제조업 가동률은 여전히 7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계 기업들이 부도 위기로 내몰렸다. 미국 3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인 포드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 수준, 즉 정크본드로 강등됐다. S&P는 뉴욕주의 대형 쇼핑몰 2곳과 항공사 관련 회사채 100여 개의 신용등급도 내렸다.
올해 선진국과 신흥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신용평가사 S&P는 올해 세계경제의 제로 성장을 예상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미국과 유럽의 성장률을 각각 마이너스 2.8퍼센트, 마이너스 4.7퍼센트로 전망했다. 주요 국가들 중에서는 중국만이 3.3퍼센트 성장이 예상된다고 하는데, 이조차 높게 잡은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국가기구인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의 보고서를 인용해 올해 중국 경제가 2.6퍼센트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경기 전망 논쟁
경제기구들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향후 경제가 V자 반등이냐 더딘 회복인 U자냐 아니면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L자냐 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때 미국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다음 분기에는 매우 가파르고 짧은 침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매우 빠른 경기 반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가 금융위기나 대공황이 아닌 자연재해라는 게 그 이유다. 미국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이나 헤지펀드인 골드만삭스 같은 일부 낙관론자들도 1987년 10월 19일(“검은 월요일”)에 증시가 폭락한 뒤 몇 달 후 회복된 것처럼 이번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들은 마치 경제가 한두 달간 휴가를 다녀온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두 달의 휴가 뒤에 모든 것이 정상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겠지만 휴가 갔다 온 다음에 실업자가 폭증하고 기업들이 도산했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반면 2008년 경제 위기를 정확히 예측해 유명세를 얻은 뉴욕대학교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더 심각한 대공황”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이번 경기침체가 심각한 상태로 치달으면서 V자도, U자도, L자도 아닌 I자형으로 수직 낙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비니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지금까지의 경제적 피해가 2008년의 경제 위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고 진단했다. 더 나아가 그는 코로나19를 올해 안에 억제하지 못할 경우 1929년 대공황 때보다 더 심각한 경제 침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부양책
각국 지배자들은 서둘러 대규모 경기부양책들을 내놓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이미 제로로 낮췄고, 국채와 회사채를 사들이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회사채는 매입하지 않았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2조 2000억 달러(연방 예산의 절반이고 미국 GDP의 10퍼센트 수준)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또다시 2조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공공 인프라 투자도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모든 게 시행된다면 경제 침체를 막는 데 미국 GDP의 20퍼센트를 투입하는 것이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가 그만큼 다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과 유로존 국가들도 서둘러 대규모 경기부양책들을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당분간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실로 물건을 당길 수는 있지만 밀 수는 없듯이, 경기부양책이 생산을 위한 투자를 늘리도록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기부양책은 기업과 정부의 부채는 증가시킬 것이다. 이미 전 세계 기업과 정부의 부채 규모는 2008년의 수준을 넘어선 상태였다.
경기순환 때문?
코로나19가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기 전부터 이미 세계경제는 취약하고 부진했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의 수익성은 낮았고, 이윤은 기껏해야 정체해 있었다. 국제무역과 해외투자도 증가하기는커녕 무역전쟁과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소폭 감소했다. 경제가 호황이라던 미국도 2019년 경제성장률은 지난 40년의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본의 이윤율 하락이 아니라 경기순환 때문에 경제 위기가 왔다는 주장은 세계경제의 현실과도 맞지 않고 이론적으로도 틀렸다.
전후의 장기호황이 끝난 뒤 세계경제는 10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패턴이 아닌 만성적인 불황 상태를 보였다. 2008년 이래 13년 동안에도 세계경제는 정체와 부진을 거듭했다.
호황과 불황의 경기순환을 보이려면 불황기에 대규모로 자본을 구조조정해야 하는데, 자본의 규모가 거대해졌고 국가와 자본이 긴밀한 관계를 맺는 국가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경기부양책으로 심각한 위기로 빠지는 것을 유예하기는 했지만 불황이 끝나고 호황이 오지는 못했다.
코로나19는 금융시장이 아니라 생산 영역에 먼저 충격을 줬다. 글로벌 생산사슬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이어서 수요의 급격한 감소가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와 러시아로 대표되는 석유 수출국들이 손실을 서로에게 전가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GDP의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셰일가스 업체들이 높은 생산비 때문에 저유가의 타격을 먼저 받을 것이다.
3월 26일 G20 특별 화상 정상회의에서 전 세계 지배자들은 협력과 신뢰의 재건을 다짐했지만 경제 위기로 인해 제국주의적 갈등과 긴장은 높아질 전망이다. 화상 회의에서 시진핑은 세계경제 회복을 위해 관세 인하, 무역장벽 제거를 통한 제한 없는 무역을 촉구하며 트럼프를 간접 비난했다.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사우디와 러시아의 유가전쟁에 개입하겠다고 했지만 사우디는 증산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는 듯하다.
전 세계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데서는 일치단결해 있는 듯하다. 많은 기업들이 경제 위기를 기회로 삼아 대량 해고와 무급휴직 또는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시간 연장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도 늘어나고 있다. 이참에 기업들은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려 애쓰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가경제도 타격을 받았지만 노동자 대중의 삶도 큰 타격을 받았다. 따라서 노동자 대중이 받고 있는 피해를 완화하는 조처들(예를 들어 〈노동자 연대〉가 밝힌 ‘코로나19 감염 피해 완화를 위한 당면 요구들’)이 필요하다.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으로 긴급하게 조성한 기금은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을 보호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
코로나19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파업과 같은 투쟁을 할 수 있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기업과 이를 돕는 정부에 맞선 저항을 조직할 수 있다. 국내외에 존재하는 이런 저항들을 확대해 가야 한다(관련 기사 6~8면을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