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문제로 인해 극도로 취약해진 2020년 경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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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세계 경제도 더욱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경제 위기를 격화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계 경제 상황은 이미 지난해부터 침체하고 있었다. 기업 수익성 악화와 부채 증가, 투자 감소, 저금리 정책의 지속 문제 등은 이미 코로나19 확산 전부터 누적돼 있었고, 이 때문에 어떤 계기로 경제 공황이 닥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글은 올해 1월 노동자연대의 대의원 협의회에 제출된 글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이 경제 위기를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며 읽는다면 현재 경제 위기 상황과 전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19년 9월 17일 미국의 금융당국과 은행가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다. 금융회사끼리 주고 받는 하루짜리 자금의 (초단기)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연 2~2.25퍼센트 수준인데, 오전 8시 거래를 시작하자 5퍼센트 수준으로 오르더니, 불과 10분 만에 10퍼센트로 뛰었다. 뉴욕 연방은행이 531억 달러(약 63조 원)를 긴급 투입하면서 겨우 진정됐다.
이 일은 우연적인 요인들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던 것처럼 여겨지며 지나갔다. 정부가 많은 국채를 발행해 왔기 때문에 은행들이 국채를 사들이느라 시중에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데다 세금 납부 기간이어서,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몰렸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돈줄이 말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만 보더라도 당시 사건이 취약한 경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며 이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은행의 자금 여력이 적은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 시중의 돈을 끌어가므로, 은행들이 더욱 자금이 부족해지며 일시적인 신용 경색이 온 것이다. 금융은 스스로 가치를 창출할 수 없고 생산 부문의 잉여가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낮은 이윤율 때문에 잉여가치가 줄어든 상황이 금융 경색의 근본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례는 경제가 취약한 상황에서 급작스런 공황의 발발이 결코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이외에도 막대한 부채로 인한 금융의 취약성과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IMF(이하 국제통화기금)은 기업부채가 금융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9년 10월 세계금융안정보고서’에서 국제통화기금은 디폴트(이하 채무 불이행) 위험을 가진 주요 경제권의 기업부채가 2021년 19조 달러(2경 26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중국·일본·유로존(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 8개국 기업부채 총액의 40퍼센트에 육박하는 규모이다. 이는 신흥시장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의 금융시장도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렇게 지적했다. “투기등급의 기업부채는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했거나 웃도는 수치”라며 “기업부채가 전 세계적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시스템적인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투자등급 최하위에 해당하는 ‘트리플 비’(BBB)에 속하는 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3배 넘게 늘어나 전체 투자등급 회사채 가운데 약 절반에 달한다. 그러나 이조차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투기 단계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탠더드앤푸어스나 무디스 같은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지나치게 후하게 등급을 매긴 것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가 전해의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 신용등급 낮은 사람들을 위한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뇌관이 됐듯이, 이번에는 부실 기업들에 대출해 준 자금이 새로운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도 기업부채가 201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의 151.6퍼센트로, 2008년보다 4.4배로 늘었다. 중국의 성장 둔화와 부채 위험을 축소하는 중국 정부 정책 때문에, 지난해 중국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의 부도(어음이나 수표에 적힌 돈을 지급받지 못하는 일)는 전년 대비 4배가량 급증했고, 올해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2020년에는 회사채의 만기가 더욱 늘어나고, 특히 달러 표시 채권의 만기가 대거 돌아오므로, 그 충격 효과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중국 중소규모 은행들의 부실 위험도 커지고 있다. 2019년 5월부터 중국의 소형은행인 바오샹은행과 진저우은행, 헝펑은행이 잇따라 무너져 금융당국이 구제에 나서야 했다. 중국 금융당국이 은행 구제금융에 나선 것은 199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중소형 은행들을 중심으로 연쇄 파산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흥국 경제의 불안정도 계속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르헨티나는 2018년 국제통화기금 역사상 최대의 구제금융을 받은 지 불과 1년 만에 다시 위기에 빠졌다. 아르헨티나의 기준금리는 또다시 연 7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마크리 전임 정부가 10월 28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할 게 확실해지면서 금융 시장이 출렁였지만, 실제로는 최근 경제 악화와 함께 국제통화기금과 마크리 정부가 구제금융의 대가로 추진한 긴축 정책 때문에 경제 성장률이 더욱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위기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만약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국가 부도 사태에 처한다면 그 연쇄 효과는 세계 경제에 미칠 수 있다.
이와 같은 금융 불안정성은 미국과 유럽연합 등이 금리를 인하하고, 또다시 양적완화(量的緩和: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의 효과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방법 등으로 통화의 유동성을 높이는 정책)에 나서는 상황인데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2018년 하반기에는 불어난 부채를 줄이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이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신흥국 경제의 불안정이 벌어졌다. 그러나 악화하는 경제 상황 때문에 미국은 2019년 7월부터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또, 2019년 10월부터는 국채를 사들이며 시중에 돈을 풀어 양적완화도 재개했다. 유럽연합도 올해 예금금리(시중은행이 유럽중앙은행에 자금을 예치할 때의 금리)를 -0.4퍼센트에서 -0.5퍼센트로 내렸다. 또, 11월부터 양적완화 정책을 재개할 계획이다. 일본은 경기부양을 위해 계속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며 양적완화를 시행해 왔고, 중국도 2019년 들어 두 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그런데도 경제 위기 우려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실물경제의 상황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기 침체
세계 주요 경제의 제조업 침체는 이미 시작됐다. 세계 경제가 2008년 이후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2011~2012년 그리스 등 유럽의 부채 위기로 촉발된 경기후퇴와 뒤이은 일시적 회복 국면, 2015~2016년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신흥국 위기로 시작했던 경기 침체와 뒤이은 일시적 회복 국면에 이어 세번째 침체로 접어든 것이다.
제조업 생산의 위축은 투자와 세계 교역의 감소로도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31개국의 평균 투자 성장률은 2017년 하반기에 정점을 찍은 이후 꾸준히 하락해 2015년과 2016년 경기침체 시기의 저점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 교역도 지난해 들어 감소세를 보였다.
실제로 중국의 산업생산 증가율은 2018년부터 하락 추세인데, 2019년 7월과 8월에는 4퍼센트대로 17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중국의 성장 둔화는 중국에 고급 기계류를 판매하는 독일, 일본 등과 중국에 중간재 및 원자재를 공급하는 한국·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의 경제들에 연쇄 파급 효과를 낸다. 독일의 연간 산업생산 증가율은 2018년 11월부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산업 전망을 나타내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독일에서 41대로 떨어졌다. 구매관리자지수는 50 이하이면 산업생산이 수축할 것임을 보여 주는데, 독일의 산업생산은 상당히 큰 폭으로 수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지난해부터 산업생산이 거의 연속해서 감소 추세이다. 한국도 감소한 달이 더 많다.
지난해에는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최근에는 미국의 제조업 생산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국의 산업생산지수도 2018년 말부터 하락해 최근에는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제조업 생산은 침체에 접어들고 있지만, 그나마 성장률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소비 증가 덕분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서비스 산업 구매관리자지수는 아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사상 최장기(그러나 매우 저조한) 성장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 생산이 줄어든다면 소비의 증가세가 계속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다. 금융서비스나 부동산·숙박·교육·의료·음식·관광 등 많은 서비스 부문들의 성장은 제조업 생산의 확장 여부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조업 지표는 흔히 서비스업의 선행 지표로 여겨진다.
서비스업의 성장세와 함께 세계적으로 고용 상황이 좋다는 언급들도 흔히 함께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이고 영국의 고용률도 역대 최고로 올랐다는 등의 내용이다. 물론 2008년 이후 세계 주요국들에서 고용이 회복돼 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 회복이 불안정하고 취약한 형태로 진행됐다는 점도 봐야 한다. 독일의 높은 고용률의 배경에는 일자리의 22퍼센트가 월 57만 원 미만의 ‘미니잡’ 고용이라는 현실이 있다. 한국에서는 30~40대 일자리와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드는 대신 단기 알바 수준의 노인 일자리가 증가해 고용률이 지탱되고 있다. 영국에서도 최근의 고용률 상승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견습생 제도가 도입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 제도에 따르면, 기업들은 견습생들을 최저임금의 절반 이하의 시급으로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일본·독일 등의 공식 실업률은 낮은 수준이지만 이 나라들의 실질임금 상승률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일본은 실질임금이 마이너스 상태이고, 미국은 0퍼센트대, 독일은 1퍼센트대에 머물러 있다. 생산한 부 전체에서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노동소득분배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국가들 대부분이 하락해 왔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하고 착취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전 세계적으로 벌어져 온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과 좌파의 일각에서 임금 투쟁을 중시하지 않는 것과 달리 여전히 임금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편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떠들썩한 구호가 현실과 들어맞지 않고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4차산업혁명론에 따르면 기계가 빠른 속도로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야 하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변화의 속도는 2008년 전보다 오히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조셉 추나라는 이윤율이 낮고 투자가 둔화한 것 때문에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상황이 최근 영국의 높은 고용률을 설명해 주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2020년 다시 경제 위기가 오는가’, 〈노동자 연대〉, 제300호). 이 때문에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가 둔화돼, 더딘 성장 속에서도 저질 일자리이지만 고용 증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만약 새로운 경제 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친다면 실업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질 것이다. 이미 일부 경제들의 실업 문제는 악화되고 있다. 터키·아르헨티나·브라질 등은 공식 실업률이 10퍼센트에 육박하거나 이를 넘었고, 남아공의 실업률은 최근 29퍼센트로 치솟았다.
낮은 이윤율
이렇게 각국의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의 임금을 공격하며 착취율을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이윤율은 회복되고 있지 못하다. 이윤율은 이미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고, 이 때문에 기업들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에 따르면, 지난해 들어 그나마 나아 보였던 미국 기업들의 수익도 하락했다. 지난해 2분기 스탠더드앤푸어스의 500대 미국 상장기업들의 실질 순수익은 줄어들었다. 특히, 비금융 기업들의 이윤 감소 폭이 더 컸다. 또, 최근 거대 투자은행 제이피 모건(JP Morgan)이 낸 세계 기업이윤 분석보고서를 보면, 기업들이 얻는 이윤의 수준이 아직 2016년의 침체 때나 2008년 공황 때만큼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2019년 2분기 이윤의 증가율은 정체했고 악화 추세이다.
이런 상황이 위기를 촉발하고 있는 근본 원인이다. 지난해 주류 언론들은 투자와 교역의 감소세가 미·중 무역전쟁 때문이라고 흔히 보도했다. 물론 미·중 무역전쟁이 침체의 촉발점이 됐지만, 근본 원인은 생산 영역에서 비롯한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교역 감소도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뿐 아니라 낮은 이윤율 수준과 관계있다. 이윤율이 낮고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이윤이 적으면, 투자가 줄고 그에 따라 경제가 침체로 향하기 마련이다. 생산이 국제적으로 조직돼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생산과 투자가 줄어들면 원자재와 부품·소재 등의 교역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투자 둔화가 국제적인 수출과 교역 감소로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 경제는 낮은 이윤율이라는 늪에 빠져 있다. 2008년 공황 때 정부들은 파산하는 기업들에 막대한 자금 지원을 하고, 이후 세금 감면이나 저금리를 유지하며 시중에 막대한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하며 부실 기업들을 살려 왔다. 그러나 이윤율이 낮은 상황에서 이렇게 시중에 투입된 돈은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는 않고, 금융이나 부동산 등 비생산적 부문들로 흘러 들어가며 부채 문제를 키우고 있다. 이 때문에 낮은 투자와 낮은 생산성 증가율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각국 지배자들은 부채 문제를 해결하고 부실 기업들을 구조조정 해야 한다고도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 부실과 부채 문제가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부채를 줄이고 부실 기업을 구조조정 하려는 시도는 금세 브레이크가 걸려 왔다. 부실과 부채 감축을 위한 시도를 할 때마다 경제 전체가 추락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경쟁적 축적 때문에, 망하게 뒀다가는 국가경제 전체에 파괴적인 효과를 낼 만큼 기업들의 규모가 커 버렸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진정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이른바 ‘생산적 파괴’를 가로막는 독점(한국에서는 재벌)이 문제라는 주장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침체는 단지 자본의 특정 조직 형태가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경쟁적 축적을 위해 애써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에서 비롯한 근본적 문제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무역 강화
이처럼 지배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에서 트럼프 등을 비롯한 다양한 우익이 부상해 왔다. 트럼프는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광범한 대중의 반감을 이용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이주민을 배척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유럽·일본·캐나다·멕시코 등 세계 곳곳에서 미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무역 협상을 조정하고, 중국과는 심각한 패권 갈등을 벌이고 있다.
물론 미국과 중국은 ‘스몰딜’에 합의했다. 중국이 미국의 농산물을 구매하는 대신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를 일부 인하해 주고, 추가 관세를 유예하는 등의 합의를 했다.
그러나 이 정도 합의로 향후 미·중 관계를 낙관할 수는 없다. 미·중 갈등의 근저에는 미국이 단지 무역에서 수익을 조금 더 거두는 수준을 넘어 세계 패권을 둘러싸고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국내총생산 규모는 미국의 3분의 2로 성장해 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 기업들이 기술력을 발전시켜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에 타격을 입히지 못하도록 중국 정부의 기업 보조금을 문제 삼고, 지적재산권 강화 등을 협상 의제에 올려 두고 있다. 중국계 다국적기업 화웨이를 제재하고, 여타 기업들에 대한 제재도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정구가 〈노동자 연대〉 신문 기사에서 썼듯이, 미국은 중국 기업들에 대해 미국 주식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등 금융자본 통제 등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와 같은 금융자본 통제는 1940년 미국이 일본에 했던 경제제재와 비슷한 조처다. 물론 당장에 이런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일시적인 타협기를 거치더라도 장기간에 걸쳐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미·중 갈등은 지금은 주되게 경제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군사 차원에서도 점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이런 패권 갈등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조셉 추나라가 지적했듯이 경제와 정치가 치명적인 악순환에 빠지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일이다. 또, 부하린이 지적했듯이, 세계적으로 발전한 생산력과 개별 국민국가로 분열된 지배계급들 사이의 모순을 보여 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트럼프의 약속처럼 미국 내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미국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중국이나 세계화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근 지엠(GM) 사의 구조조정 사례에서 보듯이,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해 온 기업들의 수익성 논리가 일자리 감소의 핵심 원인이다. 여기에 제국주의적 갈등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주며 노동계급에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올 것이다.
경제 위기의 책임을 다른 나라나 이주민들에게 돌리는 애국주의적 선동은 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가린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에 매우 해악적이다. 미·중 갈등을 필두로 한국과 일본의 갈등, 중국과 인도의 국경에서 벌어진 군사적 충돌 등 세계 곳곳에서 국가 간 긴장과 갈등이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자들의 ‘남 탓하기’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짚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애국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국제주의적 대안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편 오늘날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세계화 추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쟁점이다. 2008년 이후 저성장과 각국 정부의 보호주의 강화로 세계화의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세계 무역의 규모나 해외직접투자, 국제적 금융투자 등이 모두 이전보다 둔화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지적했듯이, 세계화의 속도가 둔화된 것이지 세계화 자체가 끝났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사실 세계화도 국가가 사라지고 “평평한 세계”(토머스 프리드먼)가 도래했다는 세계화론자들의 말처럼 일면적인 과정은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이미 한 세기도 더 전에 국경을 넘어섰고, 자본가들이 한 국가만이 아닌 다른 국가와도 연결된 연계를 발전시키는 초국가적 자본주의(크리스 하먼이 말한 “trans-state capitalism”)로 발전해 나아갔다. 크리스 하먼은 1991년에 쓴 ‘오늘날 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당분간 자본가들은 일국적 국가자본주의의 시대는 넘어서기 시작했지만 지역적 국가자본주의나 완전한 국제화의 새 시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어정쩡한 세계에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 세계에서는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이, 국가에 대한 의존과 국가와의 관계 단절이, 다국적기업 간 평화적 경쟁과 (일부 다국적기업과 연결된) 국민국가 간 군사적 충돌이 공존한 것이다.”(《자본주의 국가 ─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102p)
크리스 하먼이 위 글을 쓰고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가 묘사한 상황과 비슷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당시에 비해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고 자유무역의 확장 속도는 둔화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쪽 측면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이 2008년 이전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나, 해외직접투자 중에 실제 공장을 짓는 그린필드 투자가 여전히 상당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자본주의는 세계화가 완전히 발전한 것도 아니지만 일국적 국가자본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따라서 ‘민족 자립경제’를 실현하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것이다.) 그리고 경제가 더욱 나빠진 상황에서 국가 간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향후 “지역 블록이 더 공고해질 가능성은 크다”고 전망한 바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블록, 중국을 중심으로 한 블록이 나타날 것입니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손발을 맞춘다면(그것이 가능한지는 언제나 흥미로운 물음입니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블록도 나타날 수 있겠죠.”(‘세계화는 끝났는가’, 〈노동자 연대〉 297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지역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신흥국들이 가장 취약하게 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물론 미국과 중국과 유럽이 상호 긴밀히 연결돼 있는 상황에서 지역화 과정도 결코 순탄치는 않고 상당한 긴장과 갈등이 동반될 것이다. 그럼에도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각자 자신의 생산망을 조직하려는 경향이 강화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당장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도 ‘제조2025’에서 하려는 계획이 소재와 부품의 자체 생산망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계획을 세워 중국 주도의 해외 투자망 강화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는 한국 지배계급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국가가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세계화론이 한창일 때는 국가가 약해지고 있다는 주장이 유행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반대로 국가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커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국가가 중심이 돼 경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유행하고 있다. 그린뉴딜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현대화폐이론이 그것이다. 한국에서도 정의당이나 녹색당 등이 총선을 앞두고 그린뉴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정책은 2018년 말 DSA(이하 미국민주사회주의당)의 당원이자 미국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그린뉴딜은 친환경 재생 에너지와 기후 일자리 등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다는 계획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은 국가가 돈을 새로 찍어 내기만 하면 된다는 게 현대화폐이론이다.
이런 생각은 2008년 공황 이후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이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확대 정책을 통해 경제 위기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규모 공공투자 등을 해서 경제를 부양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가 책임지고 친환경 재생 에너지를 늘리기 위해 돈을 쓰고, 임금과 복지, 일자리를 늘리고, 파산하는 기업들은 국유화해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라는 등의 요구와 운동은 마땅히 필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은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이런 요구를 둘러싼 투쟁들을 전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요구들은 노동계급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자본주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경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에는 국가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가 담겨 있다. 현대화폐이론은 국가가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 낼 수 있다고 보지만, 화폐의 가치는 근본적으로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가치가 생산되는 것과 무관하게 만들어질 수는 없다. 금융 부문이 마치 실물경제와 무관한 듯이 일시적으로 확대될 수 있더라도 결국 실물경제에 의해 제약된다는 점은 금융 거품이 붕괴하는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 국가의 재정 지출이 일정하게 경기를 부양하는 구실을 할 수는 있지만 이윤율이 낮은 상황이라면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는 지난 20년간 대규모 재정적자 정책을 펴 온 일본의 경제 성장률이 여전히 매우 저조하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처럼 국가의 재정 투입은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위기의 심화를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윤율을 회복시킬 수는 없다. 이 점은 지난 10여 년 간의 장기 불황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 경제 소결론
2020년 세계 경제는 낮은 이윤율과 심각한 부채 위기, 심화하는 국가 간 갈등이 일으키는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경제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점증하고 있다. 물론 이 상황이 세계적 공황과 같은 국면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을 이어갈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제조업 침체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임금과 복지와 일자리 등을 공격하려는 시도는 더욱 거세질 것 같다. 이미 지난 10년간의 장기 침체 속에서 노동계급과 빈곤층은 큰 고통에 시달려 왔는데, 자본주의 체제의 수혜자인 지배자들이 경제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침체의 고통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우익의 애국주의적 선동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경제 위기의 진정한 원인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의 위기는 단지 일부 부문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적 축적이라는 체제의 근본 동역학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며 노동계급의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경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지난해 세계 곳곳에서(주로는 신흥국이지만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도) 저항이 터져나왔다. 수단·알제리 혁명과 뒤이은 홍콩의 저항뿐 아니라 칠레, 에콰도르, 이라크, 이집트 등지에서도 대중 저항이 벌어졌다. 격변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대에 혁명적 조직의 구실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전망
2019년 한국 경제 성장률은 가까스로 2퍼센트를 기록했다. 이는 2008~2009년 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3.1퍼센트, 2018년 2.7퍼센트와 견줘도 하락 속도가 빠르다.
2020년에도 한국 경제 상황은 회복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 KDI나 한국은행처럼 정부 입장에서 낙관적으로 예측하는 곳들은 2.3퍼센트를 예상하고 있다. 이조차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경제연구원이나 LG경제연구원 같은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1.8~1.9퍼센트로 오히려 지난해보다도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 수출의 감소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은 세계 경제의 성장률 둔화와 관련 있다. OECD는 지난해 3월 2020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4퍼센트로 예상했지만, 11월에는 2.9퍼센트로 낮춰 잡았다. 마찬가지로 올해 1월 국제통화기금은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4퍼센트에서 3.3퍼센트로 또다시 하향 조정했다.
2017년 이후 반등했던 투자가 다시 정체로 들어간 상황에서 미·중 무역 갈등까지 확산되자, 2019년에는 세계 교역이 위축되면서 제조업 부진이 세계 경제 둔화를 주도하는 상황이었다. 세계무역기구 WTO는 2019년 세계 교역 증가율이 고작 1.2퍼센트에 그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체코·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 중국·한국·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처럼 제조업 수출 중심 국가들의 성장률이 큰 폭으로 낮아졌다.
미국처럼 민간소비의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그럭저럭 성장률이 유지되고 있지만, 2020년에는 투자와 수출에서 시작된 수요 부진이 점차 민간소비로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 둔화를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제조업 부진은 자본주의 경제의 투자 둔화가 낳은 결과이며, 부분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이 심화된 결과이다. 무역전쟁은 전 세계 제조업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올해 1월 15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중국 부총리 류허가 1단계 무역 합의에 서명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년간 2017년 대비 2000억 달러(231조 7000억 원) 규모의 미국 제품을 추가 구매하기로 했고, 미국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부과하려던 중국 제품 1600억 달러에 대한 관세를 중단하기로 했다. 1200억 달러 규모의 다른 중국 제품에 부과해 온 15퍼센트 관세는 7.5퍼센트로 줄이기로 했다. 다만, 2500억 달러어치의 중국제품에 매긴 25퍼센트 관세는 유지된다.
또, 중국은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시장 개방 확대, 인위적인 위안화 평가절하 중단 등을 약속했다. 미국도 서명 이틀 전에 중국을 ‘환율조작국’ 명단에서 해제하고 ‘관찰대상국’으로 수위를 낮췄다.
그러나 중국에게 경제 패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가 팽배한 상황인 데다,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에서 약속한 구매액을 채우려면 미국산 제품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사들여야 한다”는 평가가 있는 데서 보듯이 1단계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대중국 관세 철폐 등과 같은 근본적인 갈등 해소는 기대하기 어렵다. 미·중 무역전쟁이 부분적인 상호 양보로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이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갈수록 둔화되고 있는 것도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2019년 중국 경제 성장률은 6.1퍼센트를 기록해 2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0년 중국 경제 성장률은 6퍼센트대(‘바오류’(保六))가 무너질 공산이 크다. 국제통화기금도 2020년 중국 경제 성장률을 5.8퍼센트로 전망했다. 지난해 중국 총리 리커창이 “6퍼센트 이상 성장률 유지는 매우 어렵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올해 중국의 ‘바오류’ 붕괴는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의 피해가 2019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됐다. 2019년 8월까지만 해도 중국의 대미 수출액은 2018년보다 1퍼센트 줄어든 수준에 그쳤지만, 하반기에 급속히 감소해 결국 2019년 중국의 대미 수출은 2018년보다 13퍼센트나 감소했다. 대미 수입도 21퍼센트나 줄었다. 대미 수출 감소 폭은 1984년 이후 최대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중국의 기업부채는 201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의 151.6퍼센트에 달하는 19조 8000억 달러로 늘었다. 2008년의 4조 5000억 달러보다 4.4배로 불어난 것이다. 중국의 2018년 회사채 채무 불이행은 전년 대비 4배가량 급증했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중국의 성장 둔화는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한국 수출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퍼센트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0.5퍼센트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며 “내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퍼센트를 밑돌 경우, 한국의 성장률은 1퍼센트대 초·중반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 감소로 타격이 컸던 2019년 한국 경제
2018년 2.7퍼센트 성장한 한국 경제는 2019년에 가까스로 2퍼센트 성장하며 세계 경제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다. 투자와 교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둔화된 것이 한국에 특히 불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수출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수출 중에서 투자와 관련된 자본재·중간재 비중이 75퍼센트나 차지한다.
한국의 수출은 2018년 12월부터 2020년 1월까지 14개월째 감소한 데다 다시 반등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2018년부터 전자·화학제품이나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낮아진 데 이어, 2019년에는 교역 물량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0년 수출 단가는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일 수 있지만, 수출 물량이 줄어들면서 수출 감소가 이어질 수 있다.
주요 품목별로 보면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반도체의 가격 하락세는 다소 진정될 수 있지만, 전 세계적인 소비 둔화에다 무역 규제 심화로 현지 생산이 강조되고 있어, 전자제품과 자동차 수출 증가도 쉽지 않다.(특히,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2018년 3퍼센트 감소한 데 이어, 2019년에는 7.4퍼센트나 감소했다). 2018년 수주가 늘어난 조선업도 2019년에는 다시 수주량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2020년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석유화학 등 대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들에서는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다.
세계 교역량 감소에 따라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제조업 기업들의 수익성도 큰 타격을 받았다. 한국은행이 기업 3764곳의 2019년 2분기 경영 실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5.2퍼센트로 2018년 같은 기간(7.7퍼센트)보다 2.5퍼센트포인트나 하락했다. 특히, 제조업의 영업이익률 감소가 컸다. 2018년 2분기 제조업 영업이익률은 9.5퍼센트였는데, 2019년 2분기에는 5.5퍼센트로 급감했다. 비제조업은 같은 기간 5.0퍼센트에서 4.8퍼센트로 소폭 하락했다.
영업이익이 줄어든 결과,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자 등 금융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이자보상배율은 2018년 2분기 765.7퍼센트에서 2019년 2분기 481.3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특히,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00퍼센트 미만인 ‘한계 기업’이 2010년 기준 전체 기업 중 11.4퍼센트에서 2018년 14.2퍼센트로 2.8퍼센트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수로는 2400개에서 3236개로 늘었다.
한국은행은 한계기업이 더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외여건 악화, 국내 경기 둔화 등으로 기업부채가 증가하면서 부채비율이 상승하고 있고, 실적 악화가 겹치면서 이자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형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수출 감소와 기업 수익성 하락으로 한국의 설비투자는 2018년에 11.6퍼센트나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1.4퍼센트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2020년에도 부진할 전망이다.
따라서 2020년에는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구조조정이 더 활발하게 벌어질 공산도 크다. 이미 자동차·디스플레이 등 제조업뿐 아니라 유통·항공·게임 산업 등에서 구조조정이 논의되거나 시작됐다.
지난해 조금 나아진 듯한 고용 증가세는 2020년 다시 악화될 것이다. 2019년 고용 증가는 30만 명이 조금 넘어, 최악을 기록한 2018년보다는 증가했다. 그러나 고용이 증가 추세로 돌아선 것은 전혀 아니다. 2019년에 제조업, 30~40대 일자리는 감소하고, 60대 이상과 18시간 미만 단기 일자리를 중심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효과가 떨어진 금리 인하
한편, 수출과 기업 투자가 감소하면서 경기 침체 압력이 커지자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16일 기준금리를 최저 수준인 1.25퍼센트로 낮췄다. 그러나 금리 인하만으로 기업 투자가 늘어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도 시중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15일 발표한 ‘8월 중 통화 및 유동성’을 보면, 지난해 8월 통화승수는 15.6배로 나타났다. 통화승수는 한국은행이 자금을 풀었을 때 실제 시중자금으로 확대되는 배율이다. 가령 통화승수가 15라는 것은 한은이 1원을 발행했을 때 시중자금은 15원이 된다는 뜻이다.
통화승수는 2009년 8월에만 해도 25배 수준이었지만,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15배 수준의 통화승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따라서 금리 인하 효과는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한편, 금리 인하는 부실 대출을 늘려 금융권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가계대출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또한 금리 인하의 효과를 감소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5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599조 3850억 원에 달한다. 2018년 말과 비교해 5.09퍼센트나 증가했다. 금융위원회는 2019년 가계대출 증가율을 5퍼센트로 설정했는데, 이미 3분기 만에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대형 은행들은 기준금리가 하락했는데도 오히려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는 것도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부실 대출이 늘어나는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기준금리가 이미 미국의 기준금리(1.5∼1.75퍼센트)보다 낮은 상황이어서, 금융 불안정이 심화되면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한국의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하락)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한국 경제 소결론
세계 경제와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도 수출 둔화의 여파로 수익성이 낮아진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면서 내수 경기에까지 부진이 확산돼 갈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 중 기업 매출과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2020년까지 수익성 저하 추세가 이어질 듯하다.
게다가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와 높은 기업부채, 미·중 간 무역전쟁 등으로 중국 경제가 ‘경착륙’ 하는 일이 벌어지면 세계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런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저금리 속에서 부채를 대거 늘려 온 신흥국들에서 자금이 대거 이탈하는 금융 위기가 올 수도 있고, ‘브렉시트’의 여파가 취약한 유럽 대륙 경제에 타격을 줄 공산도 있다. 만약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도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2020년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를 배반하며 펼 친기업 공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정치가 경제를 놓아 달라”(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용만)는 기업주들의 요구에 문재인은 “붉은 깃발법”을 폐지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윤을 위해 기업 규제 완화와 노동법 개악을 약속한 것이다. 박근혜가 이루지 못한 신자유주의적 숙제를 문재인이 풀려고 한다. 그래서 총선 후, 수출 감소에서 비롯한 기업 수익성 저하와 투자 정체 등으로 노동자 임금 동결·삭감, ‘희망퇴직’ 등을 통한 인원 감축, 구조조정 등이 더 심화될 수 있다. 혁명적 좌파가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을 한결같이 방어하고, 노동자 투쟁들을 연결시키려 정치적으로 노력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