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불처럼 번지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규탄 운동: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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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6월 2일에 발행한 ‘들불처럼 번지는 미국의 흑인 사망 항의 운동’을 개정·증보한 것이다.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미니애폴리스 경찰을 규탄하며 시작된 항의 행동이 미국을 휩쓸고 있다.
5월 30일 시위대가 백악관 코앞까지 들이닥치자 트럼프는 지하 벙커로 도망쳤다. 미국 대통령이 벙커로 피신한 것은 2001년 9·11 공격을 받은 이후 처음이며(〈뉴욕 타임스〉), 분노한 시위대가 백악관 진입을 시도한 것도 184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히스토리 채널〉).
비밀경호국 대원들이 시위대를 저지하려 최루액을 난사하자 격분한 시위 참가자 한 명은 이렇게 소리쳤다. “네놈들 죄다 그 썩어빠진 경찰 놈[플로이드를 살해한 데렉 쇼빈]한테는 손 하나 까딱 안 했잖아!”
백악관 앞 대치 사흘째인 6월 1일 아침, 트럼프가 교회에 예배하러 걸어가는 장면을 연출하려고 경찰이 시위대를 침탈했다. 시위대는 밤이 되자 반격에 나서, 워싱턴 DC 시내 곳곳에 불을 지르며 소요를 벌였다. 시위 참가자 한 명은 불길에 휩싸인 워싱턴 DC 사진을 SNS에 게시하며 이렇게 썼다. “제국이 불타고 있다.”
6월 2일 현재(한국 시각) 워싱턴 DC뿐 아니라 뉴욕·디트로이트·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시카고·시애틀 등 미국 200여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정의 없이는 평화 없다”고 외치며 행진했다.
경찰의 흑인 살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시절에도 계속 늘었다. 흑인은 백인보다 인구 대비로 두 배나 더 많이 경찰에게 살해당하며 그 수치는 특히 청년층에서 더 높다. 20~24세 흑인 청년 중 1.6퍼센트가 경찰에 살해당해 25세를 맞이하지 못하는데 이는 백인보다 몇 배나 높은 수치다.
경제적 격차도 심각하다. 65세 이하 모든 연령대에서 흑인의 실업률이 가장 높다. 특히 16~24세 층에서는 백인의 두 배가 넘는다. 흑인의 가구당 실질 중위소득은 4만 1361달러로 백인(7만 642달러)보다 한참 낮고 연방정부의 빈곤선 기준(3만 680달러)보다 약간 높을 뿐이다. 흑인 22퍼센트가 빈곤층이다.
이번에 플로이드가 살해당한 미네소타주는 개중 심각한 축이다. 인종 간 실업률 격차는 미국 전체에서 네 번째로 높고 소득 불평등도 열세 번째로 심각하다. 유색인종을 상대로 한 경찰의 가혹 행위가 빈발했다. 플로이드 살해 주범으로 기소된 데렉 쇼빈만 해도 최소 12건의 가혹 행위에 연루됐다. 이전에 쇼빈에 살해당한 웨인 레이에스는 쇼빈과 경찰들의 총알을 16발이나 맞았다(총 42발을 쐈다).
중첩된 위기
코로나19는 경제 위기와 인종차별에서 비롯한 고통을 더욱 증폭시켰다.(관련 기사)
한 연구에 따르면 흑인은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10만 명당 54.6명)이 모든 인종을 통틀어 가장 높고, 백인(22.7명)·아시아인(24.3명)·라틴계(24.9명)의 두 배를 넘는다. 소득 하락 폭도 다른 인종들보다 흑인이 더 크다.
이런 참혹상의 근저에는 계급 격차가 짙게 드리워 있다. 〈ABC 뉴스〉는 “미국에서 코로나19는 흑인, 갈색 인종, 노동계급의 전염병”이라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는 빈곤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이 월등히 높지만(10만 명당 최대 612명), 맨해튼 같은 부촌에서는 그 비율이 0에 가깝다고 보도했다.
흑인뿐 아니라 라틴계·백인 등 인종을 불문하고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항의 운동에 동참했다. 시위대는 플로이드뿐 아니라 자기 지역에서 경찰에 살해된 흑인·라틴계 희생자들도 함께 기렸고 국가의 빈민 천대에 항의했다.
노동자들도 동참했다. 통합교통노동조합(ATU) 미니애폴리스 지부와 뉴욕 지부는 경찰 병력 수송과 연행자 호송을 거부했다. 미니애폴리스 지부에서 이 결의를 주도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운송 노동자이자 노동조합원으로서 저는 우리 계급 사람들과 급진적 청년들을 감옥으로 실어나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중 하나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입니다.”
체제의 위기로 고통에 시달리기로는 마찬가지인 세계 다른 나라들에서도 연대 행동이 벌어졌다. 5월 30~31일에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캐나다 토론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프랑스에서는 경찰의 집회 금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 1만 명이 행진했다.
격화
지난 주말을 지나며 미국 정부는 대응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는 운동 초부터 주지사들과 사법 당국의 강경 대응을 촉구했고, 6월 1일에는 이 운동을 “테러”로 규정하고 연방군을 투입해 진압하겠다는 강경책(폭동진압법)을 내놓았다. 연방군이 미국 본토에 투입된 것은 1992년 LA 소요 사태 이후 처음이다.
미국 민주당도 처음에는 플로이드 사망에 유감을 표했지만 시위가 확산되자 “폭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은 일부러 유리창이 깨진 가게를 골라 방문해 사진을 찍었다. 민주당이 운영하는 시·주정부들이 잇달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위를 공격했다. 15개 도시에서 주(州)방위군 투입을 요청해, 약 5000명이 각지로 파견됐다. 주방위군은 동네를 쥐 잡듯 뒤지고 가정집을 공격해 시위 참가자를 색출했다.
그러나 항쟁은 계속되고 있다. 곳곳에서 시위대가 야간 통행금지를 강제하려는 경찰과 충돌했다. 소요도 계속 확산됐다.
텍사스주 휴스턴 시위에 참가한 태너 헌돈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태어나서 처음 시위에 나왔습니다. … [저뿐 아니라] 압도 다수가 경찰을 두려워합니다. 저들은 우리가 두려움에 떨기를 바랄 겁니다. 하지만 변화를 이뤄 내려면 싸워야 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누가 “폭도”인가?
트럼프는 시위대를 “폭도”라고 비난하며 “약탈이 시작되면 발포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위가 “급진좌파”, “안티파”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기세가 오른 경찰은 곳곳에서 시위대를 공격했다. 한편에서는 정복 경찰이 시위대 옆에서 (항의 운동의 상징적 제스처인) 무릎을 꿇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바로 같은 대열에서 시위 진압 경찰이 최루액과 고무탄을 쏘며 시위를 진압했다.
미국 전체에서 최소 두 명이 경찰 진압 과정에 사망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경찰이 주먹을 머리 위로 치켜든 흑인 청년의 마스크를 벗기고 얼굴에 최루액을 뿌렸고, 기자 린다 티라도가 경찰이 쏜 고무탄을 맞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 켄터키주 루이지애나에서는 최소 7명이 시위 도중에 총에 맞았다.(경찰은 자신들이 쏜 게 아니라고 발뺌했다.)
헌돈은 휴스턴 현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경찰은 행진 대열이 방향을 틀 때마다 막아섰어요. 경찰은 저지선을 넘으려는 어린 여자애를 바닥에 팽개쳤고, 말을 타고 짓밟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경찰보다 수천 명은 더 많았어요. 경찰은 중무장했지만 시위가 폭동으로 번지자 손을 못 썼어요.”
폭동
이런 폭동(소요)은 무차별적 폭력 행위가 아니다. 사람들이 천대에 맞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고, 폭동도 그중 하나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1929~1968)의 유명한 경구처럼 “폭동은 외면당하던 사람들의 언어다.”
이번에도 많은 경우 경찰의 폭력 진압 시도에 맞서 시위대가 방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폭동에 불이 붙었다.
폭동이 맨 처음 시작된 미니애폴리스에서 사람들은 경찰서를 겨냥해 폭력을 휘둘렀다. 다른 도시들에서도 최초 타격 대상은 대개 경찰서였다. 그중 다수는 가혹 행위 전력이 있는 경찰의 근무지였다.
경찰서에서 시작된 방화와 “약탈”은 이후 상점으로도 번졌다. 주류 언론은 이를 부각해 비난하지만, 상점에서 식량과 (기저귀 같은) 생필품을 가져간 사람들은 대개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제 위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고, 최근 몇 달 동안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사실상 기아에 시달려 왔다.
노동자·빈민의 등골을 빼먹어 이윤을 쌓는 은행과 대기업의 지사에 불을 지른 경우도 있었다.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흑인 폭동은 깊은 분노의 폭발이었다. 그런 분노는 압도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천대와 착취에 시달리는 사회, 흑인들의 목숨을 매일같이 위협하는 인종차별적 경찰이 수호하는 체제를 겨냥했다.(관련 기사 본지 133호 ‘계급적 분노가 들끓었던 1992년 LA’)
물론 폭동은 대체로 투쟁 방향에 대한 지도(정치)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며, 노동자들의 조직적·집단적 투쟁과 달리 내부에 집단적 민주주의나 규율이 없기 마련이다.
저항 운동의 투사들은 지배자들의 폭력 비난에 단호히 반대하면서, 폭동을 노동계급의 집단적 행동과 연결시켜 폭발적 분노의 대상인 이 체제를 진정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트럼프 비난한다고 다 운동의 친구는 아니다
이번 운동으로 그간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양하며 홍콩 항쟁의 친구인 척하는 미국 정부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경찰이 [정식으로] 수사받고 기소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 미국이 경쟁국들과 다른 점”이라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로버트 오브라이언의 말로도 이를 가릴 수는 없다. 미니애폴리스 당국은 시위와 소요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범인 네 명 중 한 명을 (계획적이든 충동적이든 살해 의도가 없었음을 전제하고) 3급 살인과 과실치사로 기소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미국 지배자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강경 진압 입장이 세계 최강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에 흠을 낼까 봐 우려한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렇게 지적했다.
“시위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도적 반대 여론은 트럼프 임기 중에 미국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보여 줬다. 베트남 전쟁과 흑인 평등권 운동 시대에 미국 정부가 남부 주들에서 흑인 권리 운동을 강경 진압해 국제적으로 맹비난이 쏟아졌던 것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와 미국을 비난한다고 해서 모두가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5월 30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은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트위터 게시글을 리트윗하며 “모든 목숨이 소중하다. 중국은 아프리카계 친구들을 단호히 지지한다” 하고 적었다.
그러나 중국도 흑인을 천대하기는 마찬가지다. 4월 광저우 지방정부는 건물주들과 공모해 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이주민 수백 명의 집을 빼앗고 거리로 내쫓았다.(광저우는 아시아 전체에서 아프리카계 이주민이 가장 많은 도시다.) 경찰의 플로이드 살해에 유감을 표한 짐바브웨·케냐 정부에 중국이 힘을 실어준 것은, 중국이 인종차별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중국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위해서였다.(관련 기사 본지 260호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과 제국주의 간 쟁탈전’)
무엇보다,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홍콩 항쟁을 “사실상 테러”라고 공격하는 시진핑 정부가, 흑인들의 저항을 테러로 규정한 트럼프와 무엇이 다른가?(관련 기사)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항의 운동과 국가의 충돌이 격화되자, ‘폭력’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민주당 실세들에서 나왔다.
6월 3일(한국 시각)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폭력을 용납하거나 변호하거나 동참해서는 안 된다”며 “제도를 개혁할 후보[바이든]를 당선시킬 투표를 조직하자”고 주장했다. 흑인인 애틀랜타 시장 케이샤 바텀스도 시위를 “혼돈”이라고 비난하며 “미국을 바꾸고 싶으면 투표를 하라”고 했다.(바텀스는 바이든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민주당 주요 정치인 중 하나다.)
소위 ‘진보 성향’ 민주당 의원들도 그런 주장에 동조했다. 미국 민주사회당(DSA)과 연계가 깊은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일한 오마 하원의원도, 경찰과 충돌하는 시위대는 “흑인 생명 보호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유감스럽게도 DSA는 이에 관해 아무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민주당은 역사 속에서 거듭 대중 운동을 단속하고 변화 염원을 자당 투표 부대로 이용해 왔다. 바로 그 과정에서 1950~1960년대 흑인 평등권 운동이 길을 잃고 민주당에 종속됐다.(관련 기사 본지 315호 ‘미국 민주당은 어떻게 진보 염원을 좌절시켜 왔는가’) 하지만 그 후 반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인종차별은 미국 흑인들을 짓누르고 있다. 흑인 대통령이 당선해도 마찬가지였다.(관련 기사)
19세기 노예제 폐지론자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말처럼, “저항하지 않으면 권력은 하나도 양보하지 않는다.” 흔히 비폭력·평화적 운동으로 알려진 흑인 평등권 운동도 국가와 인종차별 우파의 폭력 탄압에 직면해 반란과 항쟁을 벌이며 전진했다. 1964~1968년에 미국 곳곳에서 시위, 소요, 비공인 파업이 벌어졌다.
플로이드 살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체제가 낳은 질환, 특히 경제 위기와 코로나19 위기가 인종차별과 중첩돼 피와 오물을 쏟는 것이다. 평화적 설득과 선거만으로 체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흑인 평등권 운동의 온건한 지도자였던 킹 목사도 이렇게 주장했다. “자유는 억압받는 사람들 자신이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 도시 전체를 멈추는 총파업을 벌여야 합니다.” 이 연설 며칠 후 킹 목사는 살해당했다.
‘평화적’ 방식으로는 최소한의 지극히 당연한 요구조차 쟁취하기 힘들 수 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많은 영감을 줬지만, 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2014년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살해한 경찰관은 5년 후인 2019년에야 파면됐다. 미니애폴리스 시위 참가자 토드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평화 시위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꼴을 보세요. 미국에서 흑인과 갈색 인종 사람들을 위한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진정한 변화를 쟁취하려면, 체제 자체를 타격할 수 있는 노동계급 고유의 힘이 발휘돼야 한다.
미국 노동계급에게는 그런 투쟁의 역사가 있다. 이번 항의 운동의 진원지인 미니애폴리스는 1930년대 미국 노동자들의 전투적 파업의 시발점 중 하나였다. 그리고 1930년대 미국 노동자들은 인종을 불문하고 단결해, 세계적 반동의 시기에도 흑백 차등임금 철폐 등 중요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혁명가들과 극좌파들이 이 투쟁들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관련 기사)
체제의 위기 자체를 배경으로 벌어진 이번 거리 시위에는 그런 길로 나아갈 잠재력이 있다. 이 반란이 트럼프를 비롯한 진정한 “약탈범”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이기를 기대하며, 한국에 사는 우리도 이 저항에 한껏 연대를 표하자.